안녕하세요. 역사초보 탈레스입니다.
오늘도 이리저리 역사관련 웹서핑을 하다가, 흥미로운 주제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정효공주의 묘입구에는 묘지석이 있는데, 여기에는 딸을 잃은 비통한 아버지의 심경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여기서 문왕을 황상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 구라시키시 오오하라 박물관에 함화 4년명 비상이 있다고 합니다.
咸和四年閏五月八日, 前許王府參軍騎都尉趙文休母李氏, 敬造阿彌陀佛及觀音勢至等菩薩尊像.
함화 4년 윤오월 팔일, 예전 허왕부의 참군과 기도위를 지냈던 조문휴의 어머니 이씨는 삼가 아미타불과 관음 보살, 대세지 보살 등의 보살 존상을 만들었다.
이 명문에서는 비상을 만든 경위를 간략하게 적었는데 허왕부의 관리였던 조문휴의 어머니가 모든 불제자를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허왕부라는 관청 이름인데요.이 허왕부는 황제의 위치에 있는 나라에서만 개설할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정석배 교수님이 발표한 논문인 발해 상경성의 도시계획: 황제 도성으로서의 발해 상경 도성에서는
상경성이 당나라의 장안성의 규모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다고 해요.
당나라의 지방정권의 성에서는 주작대로가 없고, 궁이나 관청에서 서북쪽 혹은 서남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해요. 또한 상경성이 당의 지방정권이라면 장안성의 등급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실제 상경성에는 예제(禮制)를 벗어나는 시설이 적지 않았다.라고 분석하셨네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2391484
또한 대 무제 대무예때에는 당나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연합군을 막아내고 마도산에서 승리를 거두고 두려운 당 군대는 만리장성이 뚤릴까봐 겹겹이 방어시설을 쌓은 사실로도 발해가 당나라에게 꿇리는 국가는 아니였다고 생각해요.
이런것으로 볼때 발해가 황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고려처럼 외왕내제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