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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26 00:43
[통일] 고구려 문명권이 건설한 북경의 고대도시와 역사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6,228  

 
 
 
 
 
 
 
 
 
 

 

고구려  5세기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백제인에 의해 건립.

안학궁과 750 미터 떨어진 같은 셋트형의 대성산성만 해도

성벽 총길이 9,284m, 면적 2,723㎢

으로 그 안에 연못 갯수만 해도 170여개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궁은 전체적으로 말하면 평지성+산성 종합의 규모로 말
 
해야 정확한 표현
 
 
 
 

 
kkdx_194.jpg

 
발해 상경용천부 제2궁전과 인도의 타지마할 크기 비교!
실제 크기로 편집해서 비교한 것입니다.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Koryeo (Silla) is parents of Kim and Cheong(金 and 淸 / Jin and Qing) empires (1/3)
 
 
 
 
 남북국 시대 발해가 요에게 멸망했지만 발해는 이름만 동란국으로 바뀐채
 
요나라에 의해 여전히 군사적으로 활용되었고(수만의 군사 유지) 거센 저항에 의해 거의 반독립적 상태로 관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발해 고구려 후예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요동부터 여러
 
곳에서 계속해서 국호가 생겨 났고 이후 이런 가운데 남쪽의 신라는 고려로
 
바뀌면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 신라인들이 말갈족 세력으로 들어가서 성문
 
법을 만들면서 중심 세력화를 이루어 나온게 여진족이죠.
 
이에 마침내 신라인 황제 아골타는 반요사상의 고구려인과 연합하여 요나라
 
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요나라에 주요 관직과 영향력을
 
보여줬던 고구려인들을 포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골타는
 
여진과 발해는 일가라는 말로서 적극적으로 포용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10대의 금황제 기간에 무려 4명이나 발해인 황후가 황실의 외척으
 
로 군림했고 국무총리부터 도시개발 행정 병권등에 고구려인들이 중축역할
 
을 하면서 심지어 금황제의 즉위와 폐위까지 좌지하게 되는 등 실로 금나라
 
의 내부는 신라황제계의 본국 성씨를 국호로 했지만 여전히 고구려인들이
 
지배적으로 활동하는 등 남북국 시대의 발해 신라의 연장선의 금 고려와 다
 
르지 않는 내용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북방의 민족이 흥할 때에 요나라 부터 금나라의 도시 문명의
 
계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게 다름 아닌 발해인 즉 고구려의 후예들입니
 
다. 즉  유구한 우리의 고구려 도시 문명권의 힘이 여전히 요 금시기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이어져 왔다는 것이죠.>
 
특히나 금나라가 북경에 중도를 건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북경은 북방 민족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몽골의 원 그리고 명에서 다
 
시 일어난 후금 정복왕조 청에 의해  대륙을 주무르는 핵심
 
정치 도시화 되면서 지금의 짱궈의 수도가 됩니다.
 
 
 금나라시기 이 중도 설계와 주도를 한 인물이 다름 아닌 고구려의 후예인
 
장호라는 인물로 이 역시 금나라의 국무총리까지 역임할 정도로 행정과 도
 
시문명에 중축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입니다.
 
(금사(金史)’ 장호(張浩)열전은 ‘장호의 자(字)는 호연(浩然)으로서 요양발
 
해인(遼陽渤海人)이다’라며 ‘본래 성은 고씨로 동명왕의 후예(東明王之
 
後)’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금나라 해릉왕(海陵王)과 세종(世宗) 2대에 걸쳐
 
상서우승(尙書右丞) 등 최고위 관직에 있던 사람임)
 
 
중도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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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3-01-26 00:45
 
발해가 해동 성국으로 불린 이유가 있는데요

참고로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 직접 지배지 면적을 보면 당시 대발해는 당과 견주는 대국임.

(물론 고구려 시대에도 요서의 8대 거란족과 선비 실위(몽골) 그리고 말갈족을

부용 휘하 군사세력으로 둔 태왕이라 연해주와 아무르 일대(흑수말갈의 남시베리아

맞닿은 곳까지) 고구려 영향권에 있었음.

다만 발해때는 기온이 상승해서 연해주와 북쪽으로 직접 행정치소를 둠.
굿잡스 13-01-26 00:46
 
발해가 당나라 산둥 등주의 해군 시절을 박살내고 요서로 밀어버리고 흑수말갈을 재복속시키면서

기존 고구려 영토을 다시 다 회복합니다.

이에 반해 당나라는 고구려를 어그지로 무너뜨리려다 평양성의 일부 함락 이외에 여전히 건재한

동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 성들에 의해 평양성 일대의 당나라 군대가 도륙되면서 3여년이 안되어

요동 요서로 밀려나버리면서 보장왕을 대리로 간접 지배를 시도하는데
     
굿잡스 13-01-26 00:46
 
이 과정에서 당나라 국고가 바닥을 내게 되면서

중앙 힘이 약화되자 절도사를 두게 됨.

이때문에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제나라등 수십개의 세금 안내는 번국부터 독립왕국들이

들어서게 되고 토번 위구르 족등이 당나라 수도를 털어버리는 무서운 성장을 방치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요서 거란 세력도 일어나고.

이과정에서 대발해가 들어서 무왕시기에 밀어버리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실제 이시기에 가면 발해도 당에 견주는 대국의 위용을 보이죠.

그러면서 해동성국이라는 짱궈에서 춘추필법에 타국은 깍아 내리는 쪽인데도

이런 호칭을 부침.
굿잡스 13-01-26 00:46
 
참고로 인도는 저 타지마할 짓고는 재정 거덜남 ㅋㅋ


그리고 인도 북부지역은 울 동북아의 북방 유목의 소수세력의

진격에 (거란같은) 쳐 발려 거의 식민지로 살던 역사였음.


그만큼 당시 동북아의  전투력이 세계사에서 ㅎㄷㄷ한 수준이였다는.

그리고 이런 북방 유목민족을 제압하고 그 위에 군림한

고구려가 그래서 대단한.
     
굿잡스 13-01-26 00:46
 
천년사직 우리 고구려가 동북아를 평정하고 수세기를 향유할때는

거란 8대부족이고 몽골 실위고 꺠꺵. 선비족도..

몽골은 거란부족에게도 발렸던 상황에.

당시 말갈족은 그냥 뭐 고구려의 완전 부용세력이였으니.
메론TV 13-01-26 00:52
 
우와 고구려후예와 금이랑 관계가 있었다는거 첨알았네요 감사합니다 ㅋ
웅크린하늘 13-01-26 00:58
 
굿잡스님은 역사학자신가? ㅡ,.ㅡ
로엔그람 13-01-26 08:27
 
국가의 흥망성쇠가 다반사인데 역사가 누구의 것이다 주장하는 자체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이씨조선 일제시대 대한민국도 그냥 한반도에서 전개된 역사로 인식되는데
     
굿잡스 13-01-26 13:04
 
ㅋㅋㅋ 망구 님 생각 ㅋㅋ

어디 속이 불편한가 보죠 ㅋ
마법사냥꾼 13-01-26 11:44
 
흠 좀.......

일단 금나라에 흡수된 발해인들을 과연 발해인이라 볼 수 있을까요?

또......완안 아골타의 5대조가 신라인이었다는 것만으로 완안 아골타를 신라계였다고 하기는 좀......(신라계였다는 사실 자체는 워낙 여러곳에서 나와서......)

5대면 꼬박꼬박 20살에 아들을 낳았다고 해도 100년인데......구한말 귀화한 사람의 후손을 외국인이라 보기에는 좀........

고려 초만 해도 중국인들이 오대 십국시절의 혼란 때문에 꽤 건나왔고, 고려 초기 기틀을 잡았는 데...... 그렇다고 고려를 중국 문명권이 건국한 도시라고 보기엔........
     
굿잡스 13-01-26 12:56
 
?? 본문 글을 안 읽고 댓글 다시네요.

발해는 이름만 동란국으로 바뀐채 200여만명의 발해인들이 살고 있었음.

그리고 무엇보다 엄연히 군사력도 수만명을 유지하고 있었고.(요나라가 이를 활용하며

반독립적 상태). 이 때문에 아골타도 만주일대에 주요 행정 병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발해인들을 현실적으로 포섭하지 않을수 없었기에 반요 사상의 토착

발해인(고구려인)들과 연합.

단순히 신라계 황제 어쩌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임. 이 때문에 금나라 황실의

주요 관직과 병권 그리고 도시 문명 개발에 고구려인들이 중축적 역할에 금나라 황제

즉위와 폐위까지 좌지하는 영향력을 보입니다.
     
굿잡스 13-01-26 12:59
 
금나라 황실과 조정 내의 막강한 고구려(발해)계 영향력



 


 

 금나라 황실과 조정내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나라가 기존에 우리가 추상적이고 단편적으로 알던

단순한 여진족의 나라가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그 속에는 우리 고조선 토착세력의 기반으로 천년을 이어온 고구려 사직의 문명과 정치적 파워가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음이 새삼 선명히 확인됩니다.

 

 실제 4대 해릉왕의 옹립에 발해인이 관여했고 그의 몰락과 다시 5대 세종의 옹립에도 고구려계가 뒷받침 했으며 이후 8대 선종에까지 고구려계가 금나라 황실 계보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했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물론 초기 금나라 1대 아골타는 발해와 여진을 일가로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고구려계를 포섭했던 이유는 앞서 말한 김광석씨의 논문내용처럼 발해라는 국호가 비록 멸망했지만 여전히 동단국으로 이름만 바뀐 채 거의 200여 만명의 발해인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이런 가운데 이들의 협력과 포섭은 아골타에게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현안이었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금나라 건국의 중추 세력으로 이후 금나라 황실의 중심 외척 및 황위 옹립에 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정도였다는 점이죠.

 

 더 재미난 것은 7대 위소왕이 시해를 당하자  도단명이라는  여진관료까지 중심이 되어 고구려계 선종을 8대 금나라 황제로 올립시킨다는 사실입니다.(위소왕 당시 몽골의 침입에 금나라내의 거란 장수들이 반금세력으로 돌변하며 몽골에 붙어 금나라가  궁지에 몰림. 이런 과정을 보면 고구려계는 금나라 건국에 중추 세력이였고 금나라의 전성기와 위기시에도 중심세력으로 함께하면서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국가관으로 금나라에서 생활하고 활동하며  운명을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금나라의 전성기라는 해릉, 세종 시기로 이어지는 기간 조정내의 고구려계의 활동은 더욱 두드려집니다.

 

"張浩字浩然,遼陽渤海人.本姓高,東明王之後.....

장호는 자가 호연이며, 요양발해인이다. 본성은 고로서, 동명왕의 후손이다..."

 

4대 해릉왕 시기 북경의 중도라는 수도건립의 최고 책임자가 다름 아닌 고구려계로 금사에 열전으로 따로 둘 만큼 중요 인물로 기록되어 있고 그외의 열전항목으로 독립해서 소개되는 발해의 후손들이 적지 않은데 예를 들어 보면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고 간, 행어사대부(行御史大夫)였던 고 정(高 楨), 호부상서(戶部尙書) 고덕기(高德基), 행대병부상서(行臺兵部尙書)와 추밀부사를 지낸 고 표(高 彪)가 있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국무총리를 지낸 장 호(張 浩)와 그의 아들 장여림(張汝霖), 장 호와 항렬이 같은 집안인 장현소(張玄素), 현소의 조카인 장여필(張汝弼)이 있었습니다. 군사적 면에서도 송을 정벌함에 발해인 대호나 곽약사의 활약도 두드러졌습니다.

 

즉 금나라 황실의 당당한 중심 외척 세력으로 활동했던게 고구려계(발해인)였고 조정의 행정이나 도시 문명, 군사 부분등 다방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며 금나라 황위 계승에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보였던 게 고구려계 입니다.

 

이외 아골타의 부계 역시도 단순히 흑수말갈 세력이 아니라 신라에서 고려로 국호가 바뀌자 북으로 올라간 신라인으로 이 세력을 단순히 한명으로 보는 것보다 일단의 신라계 무리로 여진족 부락을 통합했다고 보는 게 좀 더 현실적이지 않나 봅니다.

 

금나라 황실의 추이 변화를 보면 마치 고려 황실의 변화를 보는 듯합니다.

 

고구려 멸망 후 남북국 시대 신라가 백제와 한강 이북의 고구려 세력을 통합한 이후 경주 서라벌의 힘이 약화되자 50여년간의 후삼국 시대로 다시 각지역적 정치색으로 대립하다 고구려 정치색을 등에 업은 왕건이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936년)하고 수도인 개경과 함께 북진 일환으로 평양의 서경과 서경파 역시 중요하게 대우합니다. 이후 고려 조정은  천여년을 이어오던 신라계 정치 세력의 영향력이 고려 황실을 장악해 가는 형태처럼 금나라는 부계가 신라계로 만주 원류고에서 보이듯 국호 역시 신라 김씨성의 계승의식을 이어 신라계적 색채로 세워졌지만 앞선 고조선과 고구려 천년의 뿌리를 이어받은 고구려계의 영향력이 금나라 황실을 장악해가는 형태와 흡사 크로스되는 느낌이군요.
     
굿잡스 13-01-26 13:07
 
그리고 우리가 아는 속말말갈은 다름 아닌 부여 예맥말갈을 말합니다.

우리 고구려의 전신이면서 이후 백제도 남부여 어쩌고 하던.


이들은 이후 고구려에 흡수 동화 되었고 나아가 고구려 부흥의 중축 역할로 그리고

다시 발해를 건국하는 주도 세력이며 금나라 시대에도 여전히 만주일대에 활동하던

우리의 예맥계인들임.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과 절대다수의 발해 주민들이 고구려와 같은 부여예맥 종족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군사를 이끌고 천문령 전투에서 쫓아오는 당나라 대군을

대파하고 건재하던 동만주 일대의 고구려인들과 합세해서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며 발해 세움)

<구당서 발해말갈전>
발해말갈의 대조영이란 자는 본래 고려별종이다.
渤海靺鞨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

고려별종이라고 언급한 사서들-당회요, 오대회요, 구오대사, 태평환우기, 책부원구, 신오대사, 무경총요, 자치통감, 고려도경, 송사, 요사, 송회요

<신당서 발해전>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이 고구려에 귀부했던 이들로 성이 대씨이다.
渤海 本粟末靺鞨附高麗者 姓大氏

<속일본기>권22
발해의 문왕 대흠무가 스스로 고려국왕대흠무언高麗國王大欽茂言라 하렸고 일본의 회답서에도 발해를 고려국이라 칭했다.

같은 책 권10에
대무예의 계에....고려의 옛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가지고 있다.
大武藝啓...復高麗之舊居 有夫餘之遺俗

,책부원구>에서는 속말말갈이 수나라에 투항하자 수나라는 이를 위해 부여후라는 직함을 내렸다.
이는 모두 명확히 속말말갈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말갈의 7부 중에 <수서 말갈전>에는 불열이동은 모두 돌화살을 사용하며 옛 숙신사람이다.自拂涅以東 矢皆石鏃 卽古肅愼氏也라고만 하고 불열 이서지역의 속말말갈 등의 부에 대해서는 옛 숙신인들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속말말갈이 거주하던 송화강 상류는 자고이래로 계속해서 예맥족이 살던 지역.


http://cafe.daum.net/alhc/ALGC/1843?docid=346915630&q=%BA%CE%BF%A9%20%BF%B9%B8%C6%20%B8%BB%B0%A5&re=1
긍까네 13-01-26 11:47
 
굿잡스님 항상 글 잘보고있어요 ^^
발렌시아 13-01-29 06:43
 
국사책에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야하는데.. 지금 국사책은 선택과목에 고구려사에 대한 이야기는 1장이 채 안되죠 .................
둥가지 13-01-31 13:52
 
오오오 ㅋ
하늘나비야 15-10-12 20:14
 
굿잡스님 글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매번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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