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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7 15:24
[한국사] 세계 도시와 비교한 고려의 도시규모 포스!!
 글쓴이 : 햄돌
조회 : 6,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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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려시대 송나라를 궁지로 몰아 넣는 세계사에서도 - 동북아의 도시 규모나 군사력의 수나 질은 근대 이전까지  

 

세계사적으로 매우 크고 강한 수준을 유지해 왔으며 동아시아의 일부 세력이 서로 가서 세운 대형 제국들이 상당히

 

많은 예들을 볼수 있다-   매우 강력한 전사적 국가인 요나라를 상대로 여러 차례의 대전을 치르고 승리로 이끈  고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아가 여진정벌등 대외적 무력행사를 강행할수 있던 힘들 역시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 단지 깡으로

 

이루어낸 우연의 결과들이었을까.. 듣은 풍월에는 나름 강력한 군사력이나 국제사회에서 외교력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역

 

량은 실질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반인들이 실제 좀 더 체감할수 있는 고려의 전반적 힘을 느낄수 있는 고려의  도시

 

의 규모와 문화 수준의 역량을 통해서 이해 한다면  나아가 세계사의 다른 유명한 국가들과 비교해 본다면 고려

 

의 포스가  어떻한지를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느껴 볼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고려는 몽골과의 전쟁에서 수도를 통채로 강화도에 단기간에 옮기거나 몽골의 요구에 수많은 배를 단기간에 만들거나 거란과

 

의 전쟁에서 2, 30만명의 대군을 동원한다는 것들은 고려에 대한 기존학계의 인식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고려는 개경을 중심으로 서경(평양), 동경(경주), 남경(서울)이라는

 

대도시및 기타 중소도시를 두었습니다. 서경이라 불리는 평양은 남북국시대에 폐허가 된 도시를

고려시대에 새롭게 건설했지만 그 위세나 행정체계를 개경과 동일한 위치로 놓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고, 상당히 번성한 곳이 되었습니다.

 

남경의 경우 그 규모가 대봉(東), 기봉(西), 면악(北), 사리(南)를 경계로 했는데

 

그 면적이 조선시대 한양도성보다 훨씬 큽니다. 물론 이 구역이 모두 도시화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남경의 경계는 남경이 가지는 위치를 말해줍니다.

남경이라는 도시는 고려의 다른 대도시들처럼 불교가 번성한 곳이었고,

 

개경과 서경처럼 궁궐을 둔 곳이었습니다. 풍수지리로 인해서 중요하게 취급되었고,

고려시대에 이미 여러 차례 천도를 계획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남경의 인구를 10만명 정도로 추정하는데...만약 동경도 비슷한 규모라고 한다면 개경과 평양은 이

 

보다 크기 때문에 고려시대

 

의 도시들 중에서 10만명 이상이 되는 도시는무려 4개가 된다는 뜻이 됩니다- 아래에서도 언급이

 

있겠지만 근대 산업 혁명 이전의 고대의 도시에서 서구나 기타 동양에서 10만 이상의 도시는

 

상당히 큰 규모의 도시임을 아래에 설명으로 이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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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은 현종 이후 사찰이 성곽 바깥으로 건설됩니다.

이러한 것으로 당시 시가지가 나성 바깥으로 확장되어 도시가 계속해서 팽창

 

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평양은 고려시대에 서경이었습니다. 고려사에 기록된 서경의 사찰 19개 중에서8개가 성(城) 바깥에 위치했습니다. 당시에 기록된 사찰들은 군대가 주둔하거나천자가 방문했던 곳입니다. 중요한 것들만 기록된 것이죠.


서경의 성곽내 면적은 11.85㎢입니다. 당시 사찰의 분포를 추정하면 최소한 20만은 될 수 있는 도시입니다.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도 서경을 개경이 비슷하다고 기록할만큼 대도시였습니다.

그리고 개경은 50만의 인구를 가졌습니다. 동경과 남경도 규모가 큰 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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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파리의 시가지는 위의 지도에 보이는 성곽 내부의 점으로 표시한 부분으로실제 시가지의 크기는 파리 성곽 내부에서도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파리가 저 정도 수준으로 시가지가 형성되는 것은 13세기입니다. 당시 파리의 성곽 내부 면적은 2.4㎢...실제 시가지가 형성된 면적은 약 1.5㎢입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도시로 통합니다.파리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 줄어들면서 중세 초기에는 시테섬에만 국한되었다가
중세 후기로 가면서 점차 확장합니다.이러한 것은 서유럽의 공통적인 현상인데, 이것이 중세를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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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의 인구를 50~100만 정도라고 말하지만실제 면적 12㎢에서 시가지가 형성된 지역은 7㎢ 정도입니다.

 

전형적인 과장이며 100만이란 매우 상투적 표현입니다 .로마도  유럽에서 매우 독보적 큰 도시이지만  로마의 100

 

만도 상투적인 과장에 기인합니다. 물론 남북국 시대의 전성기 신라의 서라벌의 100만도 역시 과장된 표현이나  신

 

라의 서라벌이 상당한 규모인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로마제국의 로마인구는 20~30만, 비잔티움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10~15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개경과 서경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보다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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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이 네델란드의 황금시대라고 일컫는 17세기에 그려진 암스테르담의 지도입니다.1689년의 것이고, 네델란드의 급성장과 더불어 크게 성장한 모습의 암스테르담입니다.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던 곳입니다.고려 개경과 백제 사비성과 동일비율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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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장안 근대 초기까지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고대 로마
산업혁명이 있던 18세기 후반의 런던17세기 후반의 황금시대를 이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동일 비율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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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의 전성기 서라벌이 아니라 삼국시대의 서라벌입니다.
사찰의 분포도로 서라벌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데...이것은 실제로도 학계에서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고고학 발굴을 보면 삼국시대의 기와분포가 남북으로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찰의 분포보다
면적이 더 넓습니다. 서라벌은 이미 삼국시대에도 대도시였음을 알 수 있죠.
흔히 신라를 후진국처럼 인식하는데...그것은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말하는 것일 뿐
실제 세계적인 기준에서 신라를 본다면 이미 삼국시대에도 최고수준의 문화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로마와 같은 비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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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세번째로 큰 도시 '안티오키아'
고구려의 세번째로 큰 도시 '한성'동일비율입니다. 과거 고구려 인구의 보수적 축소된 시각으로(고구려인구 350만명정도)  매우 비정상적인 크기가 실제 고구려 도시 유적에서 기타와함께 나오고 있는  규모입니다. 즉 얼마나 기존의 인구 추론이 상당히 근거없고 비합리적인지를 알수 있는 대목이지요.근대 이전의 고대 도시는 소비지향적 도시입니다. 즉 농업을 기본으로 하는 먹거리의 잉여물들이 도시 지배층에게 흘러 들어가서 소비되는 구조로  도시의 규모는 전체 인구의 10에서 최대 20퍼센트를 거의 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에 기인한 것입니다.즉 고대의 그나라의 여러 도시규모를 살펴보면 전체 규모를 대략적으로 알수 있다는 뜻과도 같습니다.일제 식민지 이후 식민 보수적 시각의 역사관에서 가장 전형적이고 쉬운 패턴이 인구를 근거없이 축소해 버리고 각인 시키는 방법입니다. 현대도 그렇지만 근대 이전의 모든 힘이 소,말 이외 인간의 노동력에 의지하는 사회임으로 고대의 인구 규모는 그 나라의 노역, 군사력 세금등  대국이나 소국이냐를 쉽게 판가름 할수 있는 큰 잣대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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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와 두번째는 고구려 오골성의 내부 사진과 지도입니다.
세번째 사진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지도입니다.

오골성은 고구려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아테네는 당시 지중해의 대도시였으며, 면적은 2.15㎢입니다.
동일비율로 올립니다.

 

고구려 시대는 좀더 구체적으로 따로 내어 설명할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도시 크기 만으로 말할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로마는 서구 문명에서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의 동양사회에도 직간접적 많은 영향력과 훌륭한 건축물과 법률등 다

 

양한 문화 유산을 일구어온 역사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한국

 

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서구나 세계사적인 전반적 수준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도시크기를 이

 

른 시기 일구며 유지해 온 것을 알수 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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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좀와라 16-10-27 19:32
   
우리 역사에서 평가 절하된 국가가 고조선이나 조선 만이 아니라 고려도 이에 해당 합니다.

거란의 당시 음운은 후일 편찬된 한글의 기록에서 확인된 바는 셜단이라는 것이죠.

이 셜단이 고려에 패해 국력이 쇠퇴된 후에 금에 멸망 한 후 일부 거란족이 중앙아시아로 가서 서요를 세웁니다.

이 서요의 왕을 술탄이라고 하는 것 이고 이는 셜단에서 유래된 것이죠.

아직도 중앙아시아의 군주를 술탄이라고 하는데 저 들은 거란의 후손이라 그런 것 입니다.

거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아직까지 존재 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죠.

일부 에서는 히타이트가 거린족이 아닐까 추측 하지만 아직 소수의 의견 입니다.

하여간 고려에 패해서 거란족을 우숩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란족은 몽골 못지 않은 대제국을 건설한 종족 입니다. 이런 거란족을 일대일로 야전에서 붙어서 패퇴시킨 국가가 고려죠.

이런 상황을 보면 당시 고려의 군사력이나 국력을 옅볼 수 있는데 동북아시아 에서 거란(요) / 고려 / 송의 삼각 관계에서 제일 강대국은 고려임을 알 수 가 있는 것 입니다. 당시 패권을 쥔 국가가 바로 고려 였던 것이죠.

그리고 고려의 국경도 다시 생각 해 봐야 한다고 보고요.

이런 국제적인 지도를 보면 고려의 도시가 동시대 어느 나라의 도시보다 발전 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추측이 된다고 봅니다.
     
그노스 16-10-27 21:57
   
일단 술탄은 거란의 '셜단'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중동 현지 아랍어 '술타(권위, 힘)'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아랍어가 6세기 이전부터 중동 지역에서 그 역사가 보이고 아랍민족은 7세기부터 세력을 떨쳤으나, 거란(터키)의 경우 그보다 훨씬 늦은 11세기경에 투르크의 일파인 오구즈족이 중동에서 세력을 떨쳤는데 보통 이들을 우리가 말하는 터키의 시조로 봅니다(더 훗날의 오스만 왕조도 오구즈족의 일파이니)

아나톨리아 지역과 일부 중동 지역에 터키나 아랍인들보다 앞선 선주민들이 있었는데 바로 님께서 언급하신 히타이트인들(기원전 1300년경)이지만 역시 말씀하신대로 거란으로 보는 경우가 드물지요.

사실 술탄이라는 칭호가 제일 처음 사용된건 875년 아랍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무타미드의 동생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0세기에 들어서 칼리프가 실권을 잃고 나서 지방 여러 군벌들이 앞다투어 아미르나 술탄을 자칭 남발하게 되고 칼리프는 그들을 승인하는 대신에 그들의 원조를 받습니다.
이처럼 원래 술탄은 칼리프의 아래였다가 차츰 칼리프의 권위를 능가하고 나중에는 칼리프의 권위를 술탄이 흡수해 버립니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투르크 계통의 진정한 의미의 단독 술탄이 나오는건 훨씬 이후의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거란에서 파생된 '셜단'이라는 단어가 '술탄'의 어원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님 말씀처럼 거란이 다른 이름으로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지도 의문인 것이, 현재 터키란 나라 자체도 원래 소수 거란 유목민이 들어와서 현지 다수 아랍인들과 섞이고, 훗날 다시 그리스인들이나 주변 잡다한 민족들과 섞였으므로...글쎄요.

여담으로 보통 셜단 = 술탄을 주장하시는 일부의 분들은 한국 = 거란 = 터키를 말씀하시며 한국 민족이 중동을 제패했다고 주장들을 종종 하시더군요.
     
볼텍스 16-10-28 13:23
   
또 입니까?
70%의 진실에 30% 개인 생각을 마치 전체가 진실인냥...
히타이트가 도대체 어떻게 거란족입니까? 왔다갔다 했다는겁니까?
슐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노스님 말처럼 어원이 엄연히 있는 것을..어떻게 우리 발음과 연결을 짓습니까?
타샤 16-10-27 22:23
   
거란과 여진족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 해서 우릴 높게 보시는경향이 있네요.

중국을 중심으로(주로 거란 여진과의 전쟁은 중국이니까요) 볼때, 중국은 항상 이들의 공격에 시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채택한게 이이제이 죠.
불행하게도 몽골, 거란, 여진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서 독자적인 국가를 성립한적이 별로 없습니다.
몽골은 원나라, 거란은 요나라, 여진은 금과 후금(청) 정도죠.
왜 그럴까요?

바로 이이제이 정책의 결과 입니다.
이 부족 저부족 사이를 오가며 서로 이간질 시키고 해서 서로 경쟁하게 한 결과 라는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요나라를 쳐들어가서 멸망시킨적도 없고, 원나라를 쳐들어가서 멸망시킨적도 없고
금나라나, 청나라를 쳐들어가 멸망시킨적도 없는 시점에서 그들과 비교할 수가 없어요.

여진정벌이요?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운데 그중에 한 부족을 공격한게 승리 축에 드나요?
그저 그들의 공격에 고생한쪽으로 생각하는게 차라리 낫죠.
그리고 고려말, 몇만도 안되는 왜구에 당한것도 그렇구요.
(왜구는 차라리 낫죠. 얘네들은 게릴라성이라 원체 대응이 쉽지 않아요)
     
그노스 16-10-27 23:48
   
?
발제글에서 '매우 강력한 전사적 국가인 요나라를 상대로 여러 차례의 대전을 치르고 승리로 이끈 고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라고 자문하는 것이 왜 거란과 여진족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 해서 우릴 높게 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을 읽어봐도 딱히 유목민족을 평가절하 하는 내용이 없을 뿐더러 어느 부분에서 고려에 대해 과대평가 하는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님께서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발제자분께서 근거로 올려주신 자료가 부정확하다고 지적하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님께서는 몽골, 거란, 여진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서 독자적인 국가를 성립한적이 별로 없고 원, 요, 금, 청 밖에 없다고 하시지만 저 나라들 모두 전성기에 아시아 최강국의 위치에 있었고 그런 나라들에 대항해서 때론 상당한 역량을 보여준 것에 대해 우리가 자부심을 갖는 것이 자찬이나 과대평가 같지는 않습니다.
타국 영토내에 당당하게 쳐들어가서 적대국을 멸망시키고 죽이고 빼앗고 강x하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보신다면 저도 드릴 말씀이 없지만, 대저 전쟁이란 행위가 인류 역사에서 무조건 한쪽의 멸망으로서 끝을 보는 식으로만 진행되어온 것도 아닌데, 님께서는 유난히 한국의 경우에만 엄격한 잣대를 세우시며 냉정한 평가를 내리시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대요전쟁처럼 분명히 우리가 성공적으로 방어 승리한 역사마저 논할수 없다면 어떤 역사를 논해야 하나요. 식민지배 받은 역사만 부각시켜 자학이라도 할까요.

고려의 여진정벌은 군사적으로 분명 실패였지만(고려는 고구려가 아니더라)
동북9성만 반환해준다면 고려쪽으로는 '기왓장 하나 던지지 않고 부모의 나라로 섬기겠다' 며 애달픈 맹약을 하던 이들이 바로 여진족이었고, 고려 스스로 그 땅을 포기하고 여진족에게 돌려줌으로서 분명 고려는 외교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합니다.
훗날 여진이 금나라를 세우고 패권을 잡은 후 고려와 새로이 군신관계를 맺고 옛 맹약의 낙인을 지우는 것으로만 만족한 것을 보면 윤관의 여진정벌은 절대 가치없는 전쟁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쟁이 고려의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부정할수 없으나 정치적으로 보면 대국으로 성장한 금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고려로서는 더 많은 것을(100여년이 넘는 평화) 얻었다고 봅니다.

더욱이 여진족의 조상인 말갈은 한때 우리 민족의 속민이었지 않나요.
조선시대에조차 시기에 따라 가변적이긴 했지만 각 부족별로 여진족에게 사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대명일통지'의 기록을 보면 랴오둥 지역, 184개 구역 중에 79개 구역이 조선의 책봉을 받고 있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고려말 왜구에게 농락당한 것도 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말 그대로 고려 '말기' 입니다. 쇠퇴기에 접어들어 국기 문란에 따라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남에서는 왜구가 북에서는 대규모의 홍건적까지 침략해 왔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조상들의 불운을 탓할수는 있어도 그 분들에 대한 평가절하는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님께서는 북한이 대한민국을 또 다시 침공해오는 와중에 뒤에서 일본이 기습을 꾀한다면 적절한 대처법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양면에서 대규모 적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면, 사태 해결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라도 해볼 생각이라도 할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것이 다행한 일이 아닐지...

제겐 자부심과 오만한 우월심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되네요.
님께서 우리가 경계해야 하듯 말씀하시는건 우리 스스로가 갖게되는 우월심에 대한 비판일테고, 국가를 방어하고 국민을 지켜내기 위함이라는 당당한 전쟁 명분과 그에 따른 정당한 승리를 논하는 자부심을 왜 불필요하게 보시는지요.
          
타샤 16-10-28 01:12
   
뽕 좋지요.

왜요? 신미양요 병인양요도 꺼내지 그랬어요?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이겨낸 조선... 근데 왜 일본에게 식민지가...


3차에 걸친 거란의 침략을 물리친거 그건 없던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이성계의 회군 이유에서 처럼...
방어엔 침략군의 1/3 로도 가능합니다.

1차 2차는 별볼일 없었고(서희의 담판이 2차죠)
오직 3차만이 전쟁이랄 수 있는거 아니었나요?

신미양요 병인양요를 이긴것과 비슷한 결과에요.
이긴건 이긴거지만...

그걸로 뽕에 취할 필요까진 없어요.
               
그노스 16-10-28 09:19
   
님 아니지요.
발제글을 다시 읽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신미양요 병인양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고, 위에서 저도 님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전 님께서 위에서 언급하셨던 전쟁들과 적성국들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는데, 님께서는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들과 비교하시며 뽕에 취했다고 단정을 하시는군요.
게다가 지금 말씀하시는 두 양요들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전투에 가까운 규모였지요. 구체적인 양상을 보면 여진, 거란과의 전쟁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그 전쟁, 전투의 결과로 고려와 조선의 미래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더욱이 님께서 위에서 고려말기를 언급하셨듯, 두 양요들도 조선이 완전히 몰락했던 조선말기 입니다.

방어엔 침략군의 1/3로도 가능하다고 하시지만 사실 수성시엔 경우에 따라 그것의 1/10로도 가능합니다.
세계사에도 종종 나오는 일로서 수성자가 그렇게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그 승리를 평가절하 하지는 않습니다.
다수의 공세를 소수의 수성으로 막아낸 대표적인 경우가 십자군이나 베네치아의 수성전입니다.

규모가 좀 다르지만 오스만 제국의 대군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공략하러 왔을때 오스트리아는 고려처럼 단독으로가 아니라 동맹군들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간신히 물리치지만 그걸 가지고 서구 학자들이 승리가 아니다라며 평가절하 하지도 않고, 오스트리아인들이 그 전쟁을 자축하며 오스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크라상이라는 빵을 만들어 먹은 것을 가지고 오스트리아인들이 집단으로 뽕에 취했더라라며 비아냥 거리지는 않지요.

전 캐나다에서 역사를 배웠는데 동양사를 배울때 일본, 중국사에 비해 비록 한국사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여기서도 khitan(거란)의 침공에서 한국이 승리했다고 언급합니다. 대체적으로 방어뿐인 전쟁이었으니 승리가 아니다하는 이상한 주장이 나오지는 않아요.
님만의 생각이실뿐이지요.
전 님의 편파적이고 비객관적인 견해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촐라롱콘 16-10-28 09:48
   
거란(요나라)과의 전쟁을 3차로 보았을때 서희의 담판은 1차에
해당합니다.

거란과의 전쟁은 비교적 큰 규모에 해당하는 전쟁이 3차례이고...
수 천명 규모의 국지적인 분쟁과 침입까지 포함하면 횟수는 더욱 늘어납니다!

물론 3차례의 거란과의 전쟁에서 각각 거란군 규모를 예전 우리 역사에서는
대부분 1차 80만, 2차 40만, 3차 10만으로 서술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3차를 제외한 1,2차는 과장된 규모라고 인정되기는 합니다.

1차 침입당시 80만이라는 병력규모는 당시 요나라에서 전투가능한 성인남성들을
죄다 긁어모아도 가능할지 모르는 병력규모이고.... 더구나 당시 송나라와 대치하며
여진,몽골,청해방면의 여러 유목-수렵민족들까지 콘트롤해야하는 거란의 형편상
가능성이 전혀 없는 병력규모입니다.

당시 거란군이 허장성세로 부풀린 병력규모를 아무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거란군을 이끌었던 지휘관인 소손녕이 동경유수라는 직책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대체로 1차침입 당시의 거란군 규모를 4만에서 최대 6만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2차 침입 또한 당시 거란의 성종이 직접 친정했기 때문에 1차와 3차보다는 당연히
월등한 병력규모였지만... 대체로 기존의 40만이 아닌 20만 수준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것만 해도 당시 요나라가 송나라와 대치시 동원했던
최대병력규모와도 비슷한 병력규모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역사에서 일반적으로 배웠던 여요전쟁은 과장되고 부풀린 측면도
있으나...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요나라와 송나라의 대결구도에서 고려 또한 서쪽의
서하와 함께 적어도 균형추의 역할을 맡았던 비중있는 존재였음은 부인하기는 어려울듯 합니다!
햄돌 16-10-28 01:39
   
일본 발명품으로

삼각팬티 얘기한 사람이 ㅋㅋㅋ
     
가남 16-10-28 11:03
   
믿고 거르는 짜샤 ㅋㅋㅋㅋ
가남 16-10-28 11:06
   
고려의 전반적 국력을 당시 도시의 규모를 통해 유추해본다 라는 것인데
어떻게든 한국사를 폄하하기 위해 애를 쓰는군요.
한산대첩 16-10-28 12:51
   
경주는 발굴을 통해 당대 실제로 100만이 살았을 거라 보고

고려 개성은 당대 최고의 무역지 중심이었던 송나라 서긍도

개성을 보고 송은 개성만도 못하다고 했으니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실제로 고려는 대형 상선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거리에도 회회족을 흔히 볼 수 있고

심지어 회교도 사원까지 있을 정도로 국제도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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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724
19980 [한국사] 낙랑국이 제3의 지역에 있었다는설이 생겼네요 대한국 01:43 21
19979 [한국사] 막강했던 고대 한민족 예맥족의 활동 범위는 만주를 … (15) 아비바스 04-23 251
19978 [한국사] 서한초 요동의 위치 하이시윤 04-22 185
19977 [세계사] 고구려가 초기, 전쟁 원문 기사가 더 있을까요?. (4) 아비바스 04-22 243
19976 [한국사] 안시성의 위치에 대한 의문 (2) 위구르 04-21 287
19975 [세계사] 역사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초대형 위성 지도 4 ( 16K ) … (18) 아비바스 04-20 391
19974 [세계사] 역사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초대형 위성 지도 3 ( 16K ) … (1) 아비바스 04-20 186
19973 [세계사] 대륙별 실제크기 하이시윤 04-20 284
19972 [세계사] 역사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세계 위성 지도 3 ( 8K ) (1) 아비바스 04-19 278
19971 [세계사] 역사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세계 지도 2 ( 2.5K ) 아비바스 04-19 248
19970 [세계사] 역사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세계 위성 지도 ( 2.5K ) (8) 아비바스 04-19 255
19969 [기타] 역사란...사관이란... (6) 윈도우폰 04-17 304
19968 [한국사] 역사학자의 위치비정 2 (4) 하이시윤 04-17 285
19967 [한국사] 역사학자의 위치비정 논문 일부 (5) 하이시윤 04-17 260
19966 [한국사] [역사지리 #4] Quiz의 답안 - 내가 생각하는 열국의 위… (12) 윈도우폰 04-08 505
19965 [한국사] [역사지리 #3] 부여의 위치 추정 (4) 윈도우폰 04-07 682
19964 [한국사] [역사지리 #2] 고조선 시대의 열국의 위치 추정 (2) 윈도우폰 04-07 455
19963 [한국사] [역사지리 #1] 한반도와 만주의 지형 (소국 들의 위치 … 윈도우폰 04-07 523
19962 [기타] 민족의 친연성에 대해 (1) 관심병자 04-07 346
19961 [한국사] 가설을 세우는데는 출처가 필요없죠 (16) 하이시윤 04-07 430
19960 [기타] 출처를 다는 건, 남녀노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입… (11) 아비바스 04-05 360
19959 [한국사] 소위 말하는 시민사학자들이 가생이 동아게에 계시… (7) 하이시윤 04-02 680
19958 [기타] 무식한 사람은 역사나 학문을 말하기 전에 기본을 갖… (2) 윈도우폰 04-02 381
19957 [한국사] 역사를 학문으로 받아드린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 (9) 아비바스 04-02 517
19956 [한국사] "정보" 를 다루는 사람들은 "출처" 를 달아야 맞습니… (11) 아비바스 04-01 444
19955 [한국사] 역사에 있어 사료나 증거라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3) 윈도우폰 04-01 513
19954 [한국사] 사이비 역사유튜버 거르는 꿀팁 (3) 아비바스 04-01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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