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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7 15:42
[한국사] 고려 문화의 포스
 글쓴이 : 햄돌
조회 : 6,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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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 실내 인테리어로 사용하는 타일들을 현대에도 쉽게 구하기 힘든 저런 화려한 문양으로 이미 사용하고 있던 시대가 고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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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청자기와와 조선 청황와와 청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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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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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여인 머리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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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복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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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목탑들과 마지막 고려불화 9층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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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일본 미쓰이(三井) 기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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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화속의 수로(手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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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들의 저택이 10여리에 뻗쳐있는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누각은 봉황이 춤추는 듯 이무기가 기어오르는듯.

서늘한 마루와 따스한 방이 즐비하게 갖춰져 있고, 금벽이 휘황하며 단청이 늘어섰네.

비단으로 기둥싸고 채전으로 땅을 깔고, 온갖 진기한 나무와 이름난 화초들,

봄의 꽃과 여름 열매, 푸른 숲에 붉은 송이, 그윽한 향내 서늘한 그늘이 한껏 곱고 아름다움을 뽑내어오네.

-최자 [삼도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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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안학궁 내전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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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만월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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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황궁 만월대의 복원모형은 노란 부분만이고 최근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부분이 녹색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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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위로는 조정의 관리들이 위의가 우아하고 문채가 넉넉하며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社)가 두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군졸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 자기 고장의 글 가르치는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의 내용)-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 했는데, 극동에 있어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도화견문지(1080년경에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책)

 

그리고 아래 기록은 고려와의 대전으로 국력을 크게 상실한 요나라가

 

금나라에 의해 무너지고 나아가  송나라를 멸하게 되는 시대 상황으로

 

가게되는데  금나라와 관련한 친여성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뿐 아니라 앞서 여진족은 숙신 읍루등으로 부여시대

 

이미 신속했고 고구려 태왕시대에는 이미 상당한 세력화로  고구려말기 수당 전쟁에

 

함께 대규모 전투를 고구려와 함께 수행하는등  상당히 동화된 세력입니다. 이후 발

 

해 시대에는 현재 흑수말갈 지역인 아무르강 유역에서 한러 고고학 조사에 의해 발

 

해의 고분과 행정치소등이 발굴 되면서 발해 영역에 대해 기존에 비해 더욱 확장된

 

인식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입니다.이런 점을 함께 보면서 금나라속의 신라 혹은 신

 

라계로 포진된 고려와의 관계를 보면 좀더 이해가 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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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初部長本新羅人...
그 처음 부장은 본래 신라인인데...  

                                                                                 - 대금국지(大金國誌) -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 
금 시조의 이름은 함보인데 고려에서 왔다

                                                                                 - 금사(金史) -



本自新羅來姓完顔氏 新羅王金姓 相傳數十世則金之自新羅來 無疑建國之名 
... 신라왕성에 의해 국호를 금이라 했다.

                                                                                -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



女真酋長乃新羅人號完顏氏完顏猶漢言王也 
여진 추장은 신라인에서 비롯된다. 호는 완안씨로 완안이란 한자말에서는 왕과 같다.

                                                                               - 송막기문(松漠記聞) -



神麓記曰女真始祖堪布出自新羅奔阿勒楚喀無所歸遂依完顔因而氏 
...    後女眞衆豪結盟推為首領

신록기(神麓記)에서 기록하기를 여진 시조 감포(堪布)는 신라(新羅)로부터 나와 
아륵초객(阿勒楚喀)으로 달아났다. 돌아갈 곳이 없어 드디어 완안(完顔)을 의지하였기에
이를 성씨로 삼았다. ... 후에 여진의 여러 호걸들과 동맹을 맺고 수령으로 추대되었다. 

                                                                                -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



..이해 여진 아골타가 황제라 했다. ..본래 신라인이다.  
..是歲 女真阿骨打稱帝 ..本新羅人 
                                                                                  
                                                                                - 宣和遺事(선화유사) -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 
신라왕의 성씨인 김(金)이 금나라의 먼 계통이다

                                                                                 -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



其初帥長本新羅人
그 처음 수장은 본래 신라사람이다. 

                                                                                 -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



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初從髙麗來
(按通考及大金國志皆云本自新羅來姓完顔氏考新羅與髙麗舊地相錯遼金史中往往二國互稱不為分别以
史傳按之新羅王金姓相傳数十世則金之自新羅來無疑建國之名亦應取此
金史地理志乃云以國有金水源為名史家附㑹之詞未足憑耳)...

금(金)의 시조의 이름은 합부(哈富, 예전에는 함보(函普)로 썼다)인데, 고려(高麗)에서 왔다.
(안: 통고(通考) 및 대금국지(大金國志)에서 이르기를 원래 신라(新羅)에서 왔으며,
 성은 완안씨(完顔氏)라고 하였다.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를 상고해 보니,
 옛 땅이 서로 섞여 있고 요사(遼史)와 금사(金史)에서는 종종 두 나라를 혼동하여 
분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기록(史傳)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신라 임금의 성(姓)은 김(金)이요,
서로 전하기를 수십 대에 이른즉 금(金)나라가 신라(新羅)로부터 나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나라이름은 응당 여기에서 취한것이다. 금사(金史) 지리지(地理志)에서 말하기를 
“나라에 있는 금수(金水)의 발원지를 국명으로 삼았다”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짓는 자들이
 억지로 갖다붙인 견강부회의 말이라서 믿을 것이 못 된다)...

                                                                              -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



 癸丑金主阿骨打遣阿只等五人. 寄書曰: “兄大女眞金國皇帝致書于弟高麗國王.
 自我祖考介在一方謂契丹爲大國高麗爲父母之邦小心事之契丹無道陵轢我疆域奴隸我人民屢加無名之師.
 我不得已拒之蒙天之祐獲殄滅之. 惟王許我和親結爲兄弟以成世世無窮之好.” 仍遺良馬一匹.

"형인 대여진금국황제(大女眞金國皇帝)는 아우인 고려국왕에게 글을 부치노라
 우리의 조상은 한 조각 땅에 있으며 거란을 대국이 라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하여 공손히 하였다..." 

                                                                               - 고려사(高麗史) -



庚子御宣政殿南門引見褭弗史顯等六人宣問來由. 褭弗等奏曰: “昔我太師盈歌嘗言: ‘我祖宗出自大邦至于子孫義合歸附.’
 今太師烏雅束亦以大邦爲父母之國. 在甲申年*閒弓漢村人不順太師指諭者擧兵懲之國朝以我爲犯境出兵征之復許修好故我信之朝貢不絶.
 不謂去年大擧而入殺我耄倪置九城使流亡靡所止歸.
 故太師使我來請舊地若還許九城使安生業則我等告天爲誓至于世世子孫恪修世貢亦不敢以瓦礫投於境上.” 王慰諭賜酒食.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 고려사(高麗史) -


新羅宗室金俊의子克守를迎立하고部落의名을完顔이라하야因하야써姓이되니完顔은女眞語에王子라
 蓋金俊이新羅亡한後에平州에서僧이되였다가女眞地로入하야新羅王子의禮遇를受하며
 克守가阿之古村에居하야...
 신라의 종실 김준의 아들 극수(克守)를 맞아 왕위에 앉혔는데, 부락의 이름을 완안(完顔)이라 하고,
 그들의 성이 되었다. 완안은 여진 말로 왕자라는 뜻이다. 어찌하여 김준이 신라가 망한 후에 
평주에서 승이 되었다가 여진땅으로 들어가서 신라왕자의 예우를 수하며 극수가 아지고촌에 거하여...

                                                                                  - 신단민사(神檀民史) -


 
本書以為滿族本三代遺風,民風純厚,源遠流長,各項習俗皆足以垂訓後世,除此之外,因滿族自新羅、渤海之時便有文字,其有許多習俗

본서는 만주족의 본래 3대에 걸친 유풍이 되는 바로서, 백성의 風俗이 순수하고 인정이 도타우며,
먼 곳에서 비롯되어 길게 흘러가며, 각각의 習俗이 모두 후세에 이어지도록 가르치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이니 이 외에의 것은 빼기로 한다. 만주족은 신라로부터 왔고 발해의 때에 쉬운 文字를 가졌고
수많은 慣習과 風俗들을 지녔으므로 제도는 모두 아래에 담아 남기기로 한다. 

                                                                                     -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



是月生女眞完顔阿骨打稱皇帝更名旻國號金. 其俗如匈奴諸部落無城郭分居山野無文字以言語結繩爲約束.
土饒猪羊牛馬馬多駿或有一日千里者. 其人鷙勇. 爲兒能引弓射鳥鼠及壯無不控弦走馬習戰爲勁兵諸部各
相雄長莫能統一. 其地西直契丹南直我境故嘗事契丹及我朝. 每來朝以麩金貂皮良馬爲贄我朝亦厚遺銀幣
歲常如此. 或曰: “昔我平州僧今俊遁入女眞居阿之古村是謂金之先.”
或曰: “平州僧金幸之子克守初入女眞阿之古村娶女眞女生子曰古乙太師古乙生活羅太師. 活羅多子.
長曰劾里鉢季曰盈歌盈歌最雄傑得衆心. 盈歌死劾里鉢長子*烏雅朿{烏雅束}嗣位*烏雅朿{烏雅束}
卒弟阿骨打立.”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일컫고 국호를 금이라 했다.
혹은 말하기 를 ‘옛적 우리 평주(平州)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阿 之古村)에 거주했으니 이가 금의 시조다’라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평주 승 김행 (金幸)의 아들 극기(克己)가 처음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여진의 딸에게 장가들 어 아들을 낳으니 고을(古乙) 태사(太師)라 하고
고을이 활라(活羅) 태사(太師)를 낳 고 활라가 아들이 많아 장자를 핵리발(劾里鉢)이라 하고
계자(季子)를 영가(盈歌)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雄傑)이어서 중심(衆心)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 핵리발의 장자 오아속(烏雅束)이 위를 이었고 오아속이 졸하매 아우 아골타가 섰다고 한다.

                                                                                  - 고려사(高麗史) -



昔金完顔氏以本出高麗。遇高麗甚厚。終不侵暴。愛州今義州本高麗地而陷於遼。及金滅遼。
以愛州畀高麗

옛날 금의 완안씨는 본시 고려인이었기 때문에 고려에 매우 후하게 대했고 끝내 침 범하지 않았다.
의주는 원래 고려 땅이라 금이 요를 멸한 뒤 고려에 돌려주었다.

                                                                               - 지봉유설(芝峰類說) - 


金傅雖降而麗王幷其外孫完顔阿骨打卽權幸之後乃宰割中國傳世百年豈非所謂神明之後者耶

... 김부金傅가 비록 항복하여 고려왕에 병탄되었으나 그 외손인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
곧 권행權幸의 후예가 중국을 분할하여 백년이니 어찌 이른바 신명神明의 후예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 권행은 본래 김행으로 후백제를 치는데 도왔다하여 고려왕에게 권씨성을 하사 받는다.)

                                                                                  - 해사록(海槎錄) -


부안(부령)김씨는 고려에 귀순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 김일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경주김씨의 계파인데 이 부령김씨세보(扶寧金氏世輔)의 
구전 기록에 의하면 김일의 아들이 기로인데 후에 승이 되어 법명은 정원대사라 
했는데 아우가 여진으로 가자고 청하니 나라를 버릴 수 없다 하므로 
기로를 두고 갔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이들 형제를 기록한 마의태자 유적지의 불서에는 정원대사, 보림대사,보현대사가 있으나 
여진으로 떠난 형제가 포함되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한다.

마의태자는 김일 외에도 김분이 있었고, 경순왕에게는 마의태자 김일, 김분을 포함한 
9남 3녀가 있었다. 해사록에 따르면 금의 시조가 경순왕의 직계후손이 아닌 
외손 김행(당시 친족혼이 가능하였다)의 후손이라 하기도 한다.

 

                                 - 부안김씨족보,마의태자유적,신라삼성연원보,경김족보,해사록 근거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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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3권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갑자 15년(1024), 송 천성 2년ㆍ거란 태평 4년

○ 서역(西域) 대식국(大食國 아라비아 제국)의 열라자(悅羅慈) 등 1백 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을축 16년(1025), 송 천성 3년ㆍ거란 태평 5년 


○ 9월에 대식국의 하선(夏詵)ㆍ나자(羅慈)등 백 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고려사절요 제4권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경진 6년(1040), 송 강정(康定) 원년ㆍ거란 중희 9년

○ 11월에 대식국(大食國)의 객상(客商) 보나합(保那盍)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니, 유사에게 명하여 관(館)에서 잘 대우하게 하고 돌아갈 때에 금과 비단을 후하게 내려주었다.



고려사절요 제19권

충렬왕 1(忠烈王一)
병자 2년(1276), 송 단종(端宗) 경염(景炎) 원년ㆍ 원 지원 13년

○ 윤달에 원 나라에서 임유간(林惟幹)과 회회인(回回人) 아실미리아(阿室迷里兒)를 보내와서 구슬을 탐라에서 채취하였다.




고려사 제123권 - 열전 제36 > 폐행 > 장순룡


장순룡은 근본이 회회족(回回人)이며 처음 이름은 삼가(三哥)이다.


고려사 제136권 - 열전 제49 > 신우 4 > 신우정묘 13년

신우는 김비(金鼻)란 회회(回回) 사람의 집에 가서 그의 딸을 요구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회회의 아들에게 안장과 말을 주고 이어 그에게 머리를 땋고 시종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후 그 집 딸도 데려다가 남자의 의복을 입히고 데리고 다니었다.


고려사 제 36권 - 세가 제36 > 충혜왕 > 충혜왕 갑신 후 5년

회회(回回)족 집에 포를 주어 그 이자를 받아들였고 송아지 고기를 날마다 15근씩 진상하게 하였다.


고려사 제 29권 - 세가 제29 > 충렬왕 2 > 충렬왕 기묘 5년

경자일에 회회(回回) 사람들이 왕을 위하여 새 궁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고려사 제33권 - 세가 제33 > 충선왕 1 > 충선왕 경술 2년

무진일에 민보(閔甫)를 평양부윤 겸 존무사(存撫使)로 임명하였는바 민보는 회회(回回)국 사람이었다.


고려사 제44권 - 세가 제44 > 공민왕 7 > 공민왕 계축 22년

금년의 신년 축하 사절은 4개월 전에 도착하였다. 어쩐 일인지는 몰라도 본격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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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 16-10-28 12:39
   
고려는 정말 화려함의 극치였죠..

신라가 금으로 치장해 금의 나라라 불리울 만큼 화려했다지만

군사 과학 문화 등 여러방면을 볼때 고려에 비하면 비할바 안된다 하죠

그리고 고려때 제작되어 조선초까지 운영되던 고려상선은 수십미터에 달하고 당대 세계최대였다 합니다

조선술과 항해술도 세계최고였죠
한산대첩 16-10-28 12:42
   
본서는 만주족의 본래 3대에 걸친 유풍이 되는 바로서, 백성의 風俗이 순수하고 인정이 도타우며,
먼 곳에서 비롯되어 길게 흘러가며, 각각의 習俗이 모두 후세에 이어지도록 가르치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이니 이 외에의 것은 빼기로 한다. 만주족은 신라로부터 왔고 발해의 때에 쉬운 文字를 가졌고
수많은 慣習과 風俗들을 지녔으므로 제도는 모두 아래에 담아 남기기로 한다.

                                                                                    -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

간도를 돌려받을때 역사적 근거가 될 수도 있는 말이네요..
그리고 만주문자가 발해에 만든 문자라니 새로운 사실 알아갑니다.
야차 16-10-29 21:25
   
고려가 확실히 사치스럽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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