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물왕 쿠데타 이후 법흥왕부터 나타난 자료에 의해서 모씨로 표기 되었다는 것과
신라와 가야 지역과 왜의 지역에서 갑자기 적석목곽분이 많이 나타났다라는거을
근거로 kbs 장한식 기자가 선비족이 동해안루트를 타고 신라를 건국하고
그 일파가 가야와 왜로 이주했다라는 가설을 내고 있는데
몇가지 이해 안가는 부분이 있네여...
선비족의 동해안 루트는 믿지도 않고 걍 가설이지만,,,
그럼 왜 4세기 이후부터 5세기에 걸쳐 금관가야와 신라가 그렇게 싸웠는지가
먼저 의문입니다,, 선비족이 신라에서 가야와 왜로 이주했다면 왜 같은 민족이
그토록 짧은 기간에 그토록 치열한 싸움을 했고 가야와 왜가 연합해서 경주를 함락했는지
그리고 고구려는 신라가 모용선비족의 후예인것을 알고 있었을텐데 왜 구원해줬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여,,,
그 때 신라는 사로국이라는것으로 존재했고 가야의 영향을 받았고 그렇지 않더라고
거의 경주에 국한된 소국이였고 고구려가 모용선비족이 경주로 갔다고 하면
왜 가만두지 않았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신라에 정착한 선비족은 신라가 힘이 약해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야는 그때만 해도 금관가야 뿐아니라 아라가야등 대부분 김수로왕의 후손들이 철기무기를
바탕으로 왜와 연결된 강력한 힘을 가진 곳인데 모용선비족이 함부로 정복해서
적석목곽분을 남길만큼 왕권을 확보했을까여??
또한 김수로왕 역시 일본의 기록에서 보면 모씨로 기록되어 있고 그 후손들도
모씨의 기록이 있어 신라에서 가야로 모용선비족이 들어온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김수로부터 가야로 부터 유입된 김씨가 모씨였을수도있다는 것입니다,,,
kbs 드라마 광개토대왕에 보면 고구려의 적으로 나오는 모용황이 바로 모용선비족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고구려의 적은 선비족이였습니다,,,
국영방송에서 고구려의 적으로 다룰만큼 모용선비족과의 전쟁이 고구려에서 차지하는것은
엄청나게 큽니다,, 모용선비족과의 대결에서의 극복이 바로 고구려의 성장이고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