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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20 01:35
[기타] 대방군과 대방국
 글쓴이 : 꼬마러브
조회 : 4,501  

안녕하세요 글을 보다 보니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고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다고 하시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글을 올립니다. 요서에 있었던 대방군과 한반도 황해도에 있었던 대방국은 구별해야합니다. 위만조선이 멸망 후 조선유민들이 이주하여 여러 나라를 세웁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동예, 동옥저 등이 있죠. 낙랑국과 대방국도 이에 포함되는데 요서에 있었던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 한나라는 위만조선의 지명들을 따와 낙랑군, 대방군 등등 으로 통치하였는데 한나라를 피해 이주해온 조선 유민들이 원래 살았던 지명들을 따와 낙랑국, 대방국을 세운것입니다.
200608_13603.jpg


일단 간단하게 오환선비동이전만 보더라도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했는데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잘못 옮겼다. 그러자 신지가 한(韓) 백성들을 격분시켜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했다. (대방)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이를 정벌하였는데 궁준은 전사했으나 두 군은 마침내 한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다음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입니다.



고이왕 13년 8월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 삭방태수 왕준과 함께 고구려를 쳤다. 왕은 그 틈을 타서 좌장 진충을 시켜 낙랑을 습격하여 변방 백성들을 잡아왔다. 유무가 듣고 노하므로 왕은 이들이 침범해 올 것을 염려하여 그 백성들을 돌려보냈다.


두기록을 보면 대방태수 궁준이 삭방태수 왕준으로 바뀌었을 뿐 서로 비슷합니다. 왜그럴까요? 삼국지에 나오는 한은 백제이고 마한의 신지는 백제의 고이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한반도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백제를 마한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을 멸망시켰다는 것은 딱 봐도 중국 측의 고의적인 왜곡고요. 결론적으로 당시 백제의 고이왕이 대방군과 싸워서 이긴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건 백제가 대방과 싸워서 이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당시 백제와 대방군의 관계가 서로 적국이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죠.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계속 보면


高句麗伐帶方 帶方請救於我  先是 王娶帶方王女寶菓 爲夫人 故曰 帶方我舅甥之國 不可不副其請 遂出師救之 高句麗怨


고구려가 대방을 치니 대방에서 우리에게 지원을 청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대방 왕의 딸 보과에게 장가들어 부인으로 삼았으므로 대방은 우리와 장인과 사위 관계의 나라이니 그 청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여 드디어 군사를 내어 지원하였다.


이 기록은 고이왕의 아들인 책계왕에 관한 기록입니다. 책계왕이 대방 왕의 딸인 보과와 혼인하였으며 책계왕이 대방을 지원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기록의 대방이 한사군의 대방군이라면 모순점이 생깁니다. 앞에서는 분명 백제와 대방군은 서로 적이었고 백제에 의해 대방태수 궁준이 죽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고이왕의 아들인 책계왕이 대방 왕의 딸과 혼인했죠. 책계왕이 대방 왕의 딸 보과와 혼인 한것은 고이왕 때인 것으로 보이는데 고이왕 때 백제와 대방군은 서로 적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사돈끼리 싸운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보과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시집간 것이며 고이왕은 자신의 사돈을 죽인 것이 됩니다. 이건 딱봐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즉 책계왕이 지원한 대방과 한사군의 대방군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책계왕이 지원한 대방은 조선유민들이 세운 독립국 대방국인 것이죠.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책계왕이 대방 왕의 딸 보과에게 장가들었다고 나오는데 여기서 보과의 아버지가 대방의 왕이라고 나옵니다. 만약 이 대방이 한사군의 대방군이라면 보과의 아버지는 대방 왕이 아니라 대방 태수로 나와야 하죠. 고작 중국 군현의 태수가 왕을 칭할리는 없기 떄문입니다. 즉 고이왕이 싸운 대방과 책계왕이 지원한 대방은 다른 것이라는 거죠. 고이왕이 싸운 대방은 대방군이고 책계왕이 지원한 대방은 대방국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방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아마 대방국은 지금의 황해도에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백제와 대방국은 북쪽의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하여 혼인동맹을 맺었습니다. 즉 혼인동맹을 맺었다는 것은 서로 가까운 곳이라는 것으로 유추가 가능하죠. 그리고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백제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고 하니 백제보다는 북쪽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백제보다 북쪽이라고 했으니 지금의 황해도가 가장 유력하다 볼 수 있습니다. 또 대방군, 즉 한사군의 위치는 요서에 있었다고 했죠? 즉 백제의 고이왕이 대방군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것은 백제의 대륙진출로 연결이 됩니다. 즉 고이왕이 대륙백제의 초석을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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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경상도 14-12-20 01:47
   
대방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까? 한나라에 한사군중에 비교적 가장오랫동안 마지막으로 존속한 대방군(황해도)이 한나라 멸망이후 대방국으로 바뀐것이인지 설명부탁드리겠습니다^^
     
꼬마러브 14-12-20 01:56
   
단군조선이 몰락하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나라로 분열 하는 데 그중 요하와 난하 사이에 있던 나라가 위만조선입니다. 원래는 단군조선의 거수국 중 하나였는데 단군조선이 몰락하면서 독립을 한것이지요. 한나라는 이 요서와 난하사이에 있었던 나라인 위만조선을 멸망시켜 군현을 삼죠.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나라를 피하여 위만조선유민들이 요하 동쪽으로 이동하여 정착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위만조선의 예족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세운  동예, 같은 이유로 동옥저 등이 있는 것이고요. 낙랑국과 대방국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한나라는 위만조선에 원래 있었던 지명인 대방과 낙랑을 그대로 군현 이름에 붙여 낙랑군, 대방군 하면서 다스린것이고. 위만조선 유민들은 한나라를 피하여 한반도 황해도 지역까지 이주하여 세운 나라가 낙랑국, 대방국인 것이죠
변방경상도 14-12-20 02:12
   
위만은 중국 연나라에 세력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그이전은 기자조선? 본인은 단군조선이라는것을 사실상 부정하고있기때문에.. 미리말씀드리자면 개인적인 역사에대한 해석과 의견차는 양해바랍니다^^  후한서에 내용으로는 옥저 동예 고구려백제 전부 언어와 풍습이 유사한 부여에 한갈래로 기록되고있습니다 다만 삼한(마한.변진.진한)은 서로가 많이 차이가있다는 부분 중국대륙 이민자가 다수이고 혹은 왜인과 더불어살고있다는 부분 그리고 한성백제가 전라도를 합병할당시 그곳에 토인(마한인 추정)과 서로 언어가 다르다고 기록된부분 여러가지 다양한 중국측사료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함축하여빗대어 해석해볼때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나라기원을 부여로 확신하고있습니다 마한과 변진세력은 요하와 랴오둥반도의 세력 위만조선에 유이민으로 생각하지만 부여는 시베리아 바이칼에서 남하한 그들과 다른개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에조상 신라의 전신인 진한은 진나라에 유민과 왜인계가 다수섞여있는 다민족사회 였던거같구요
     
gagengi 14-12-20 07:50
   
연나라는 중국이 아닙니다.  연나라는 동이족인 선비족의 국가입니다.  위만조선은 중국에서 위만이 넘어온 것이 아니라 동이족국가에서 선비족이 넘어온 것입니다. 이를 중국에서 넘어왔다고 하는 것은 중국의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변방경상도 14-12-20 02:14
   
뭐 요하문명권에 유이민으로부터 형성된 기존 삼한세력과 새로이 남하한 강력한 부여세력에 혼합이 결과가 현 한반도 문명이라고 정의할수도있겠네요
변방경상도 14-12-20 02:24
   
따지고보면 중화자체도 여러이민족에 혼합탕이기때문에 우리도 굳이 아주먼 옜적부터 단일민족이였다 라는 기존학설에 인식자체가 많이 의구심을 만들기도했지만 인정할것은 인정할필요가 있다고 생각됨니다
고대 단군이라는 신화적 존재에 재해석은 삼한을 통일한 고려시대에 이루어진거지요 그렇지만 그 나이가 터무니없기때문에 그 신빙성이..다소떨어지죠 그렇다고 단군이라는 존재자체가 뭐 고려시대 갑자기 생겨났다는 소리는 아니구요
     
꼬마러브 14-12-20 02:40
   
마한과 변진세력이 위만조선의 유이민이 주를 이루었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부여가 우리나라 문명에 많은 영향을 남긴 것도 동의하고요. 단 제가 의구심을 품은 부분은 고구려는 부여를 이은 나라인데 이후 고구려는 자신을 고조선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다물정신을 내세웁니다. 또한 곰신앙의 흔적은 한반도 남부 곳곳에서도 발견이 되고요. 또한 최근 요령성 지역의 문화유적들을 방사성탄소측정을 해보면 북표현 풍하유적은 서기전 1600년경으로 나오고 적봉시 지주산 유적은 서기전 2015년경으로 나옵니다. 교정연대는 서기전 2410년 경으로 나오고요. 저는 충분히 단군조선이 실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꼬마러브 14-12-20 03:42
   
그리고 님의 글을 보니 임라를 자꾸 언급하시는데 임라가 실존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역사서인 일본서기만 보더라도 562년에 완전히 멸망된 가야와 646년까지  사신을 보내어 교류를 한다든지.. 그리고 어쨰서 임라라고 주장하는 곳은 경상남도지역인데.. 일본서기에서는 임라 북쪽에 바다가 있다고 쓴 점 여기에서 2가지를 도출해낼 수 있죠
1. 일본서기가 잘못됬다
2. 삼한과 같은 한반도 남부세력들이 왜열도로 이주하여  개척한 곳이 임라일 가능성
윤내현씨는 임나가 오카야마에 있었다고 추정하기도 하죠
          
변방경상도 14-12-20 03:51
   
그럴듯한 내용입니다 좋은지식을 공유해주신거같아요^^
그 가야나 왜라는세력이 당시에만해도 고구려 백제와같은 확실한 중앙집권적 국가에 개념이 아니죠 그들은 그냥 그땅에 선주민이였던 세력으로 그들에게 비협조적이였던 여러부족에 연합세력같은 조금더 비성숙했던 집단이였던것같습니다  확실히 일본서기에 어느부분을인용하자면 왜에서는 가야를 친척이라는 표현을 쓰고있는것으로 미루어보아 가까운 동족에 인식이있던것같습니다 왜는 가야와 무슨 관계였을까요? 가야식 철기갑주가 일본 전국시대 요로이에 조상인것같고
               
꼬마러브 14-12-20 04:18
   
갸야 이전부터 즉 상고시대부터 한반도와 왜 열도간의 교류가 있었던 것 같긴 해요.한반도 내 정치적 변동(위만조선 멸망)같은 것이 있을 때 마다 왜열도로 건나갔다고 하죠 일본에서는 이걸 도라이진(도래인)이라고 부르고요. 한반도와 일본의 상고시대 교류는 확실한것이 그닥 많지 않아서.. 아직 미스테리죠 ㅋ
변방경상도 14-12-20 03:40
   
바이칼호수에 현재살고있는 토인들에 우리와 유사한 풍습과 곰의 관한 신화라던지 부리야트족에 대해  연구해보면 흥미로우실수도있어요^^ 김정일이 죽기전에 민족에 발원지라고 러시아에 순방중 가장먼저 들린지역이기도하지요 우선 고구려내에서두 다수에 위만에 사람들이 부여인와 함께 나라에 주체가됬을수도있단 가정을 해볼수있는 지식이였네요 그리고 요하권에 사람들이 한반도에서는  선주민으로써 그들보다 이후에 정착한 부여인과 함께 서로에게 문화적인 공유와 건설을 같이했을것으로 판단됩니다^^ 싸우기도했겠지만 그들을전부 하나로 단결하기위해선 여러가지 배경과 과정이 있던것같습니다
없습니다 14-12-20 04:07
   
중국대륙 한사군설을 주장하던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한반도내 한사군의 유물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지자 새로 들고 나온 이론이 낙랑군/대방군과 낙랑국/대방국 이원설인데 일부 재야 사학자들이 주장하긴 하지만 아직 증명된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방국이라는건 역사책에 나오지도 않아요. 삼국유사에 낙랑,대방이 국가를 참칭했다라는 한구절이 전부입니다. 그나마 삼국유사에도 실제 적혀있는건 대방군,북대방만 나오지 대방국은 나오지 않습니다.
     
꼬마러브 14-12-20 04:14
   
한반도 내 한사군의 유물들을 설명 못했다뇨? ㅋ님이 말하는 유물은 무슨 유물입니까?
변방경상도 14-12-20 04:14
   
대방군을 제외한 나머지 3군현은 그 존립시기가 너무 짧아서 유물이 나오기쉽지는않을꺼란 망상추측을해봅니다 그들에게는 익숙치않은 너무 추운지방이라서ㅡ오래못버티고 다수가 삼한으로 이주했지요
변방경상도 14-12-20 04:19
   
대방은 정확히 황해도에 지명인것같습니다 한나라유물도 출토되지않았나요?
호태왕 비문에도 대방(황해도)에서 왜인을 섬멸했다라던지 구절을본거같지만
     
꼬마러브 14-12-20 04:31
   
한군현의 위치는 우리고대사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한군현과 대결하며 성장해온 나라가 고구려이기 떄문에 한군현의 위치에 따라서 우리민족의 영역이 크게 달라지죠. 말씀하시는 한나라 유물은  평양지역에서 발견된 봉니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이 봉니라는 것이 한번에 한지역에서 200점이 넘게 출토된다는 점과 낙랑대윤장이라는 관명이 적힌 봉니도 있는데.. 대윤이라는 관직은 왕망시대의 관직명이라는 점.. 왕망시대에는 낙랑을 낙선으로 개명시킵니다.. 고로 낙랑대윤장? 위조죠.. 그리고 요서에도 한군현 유물은 나옵니다 이 글은 복기대선생님의 글입니다.
지금까지 필자는 遼寧省 錦西市 連山區 女兒街 邰集屯 小荒地에 위치한 옛 성터에서 수습된 '臨屯太守章' 封泥와 동반유물 및 그것이 수습된 유적과 그 주변 유적의 성격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臨屯郡을 포함한 漢四郡의 遼西지역 설치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臨屯太守章' 封泥는 그 규격과 서체 및 문장이 西漢에서 제정한 규격 및 규정과 일치한 것으로 보아 중앙에서 만들어 보낸 것이 분명하였다. 이것은 臨屯郡이 실존했음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이 臨屯郡이었을 가능성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封泥가 수습된 小荒地 유적의 문화층을 검토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 지역에는 원래 이 지역 토착인들이 거주하면서 黃河 유역 문화와는 다른 고조선 문화의 성격을 지닌 토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戰國시대에 이르러 黃河 유역의 문화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西漢시대에 이르면 黃河 유역 문화 요소가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西漢시대의 문화층에서는 中國의 지배층 문화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小荒地 유적 주변의 여러 유적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이것은 지금의 妖書 지역은 원래 고조선의 영토였으나 戰國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이주민이 많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燕나라 秦開의 고조선 침략 등으로 인하여 中國 문화가 이 지역에 전달되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西漢 초에 이르러서는 衛滿이 西漢으로부터 이곳으로 망명하여 衛滿朝鮮을 세우게 됨에 따라 西漢의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고 西漢 중기에 이르러 衛滿朝鮮이 멸망되고 그 지역에 漢四郡이 설치됨에 따라 西漢의 관리들이 이 지역에 많이 와서 거주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西漢의 지배층 문화가 강하게 자리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漢四郡은 지금의 遼西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지금의 錦西 지역이 臨屯郡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 자료에 의한 고증결과는 그간 논란을 빚어온 漢四郡에 관한 문헌 기록들의 해석을 재검토하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지난날 漢四郡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와 지금의 요동 지역으로 본 통설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한국 고대사의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변방경상도 14-12-20 04:36
   
디테일한 장문에 지식으로부터 많이배우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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