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수,당에게도 조공은 했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일종의 외교행위지 고구려가 중국에게 복종했다..뭐 이런 건 전혀 아닙니다.
고구려가 중국 약탈해서 먹고 살았다고 하시는데 고구려가 약탈로 성장한 건 고구려 초,중기 시절입니다. 떡하나님이 말하시는 수,당은 약탈이나 영토확장이 아니라 침략받아서 방어하던 시절이었죠.
고구려가 조공을 했었나 안했었나를 물어보시기 전에 조공-책봉 관계에 대해서 검색해보시는 게 우선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위에 고구려 조공 없다고 하시는 분은 장수왕 시절 남조 북조한테 조공과 함께 책봉 받으신 건 모르나봅니다. 물론 우리가 약해서 조공을 주고 책봉받고 한 게 아니라 고구려가 강성하다보니 중원왕조가 서로한테 위협이 되지 않기 위해 조공 조금만 받고 책봉과 함께 그 보상을 배로 늘려서 주는거죠. 고구려가 물질적,외교적 이득을 얻기 위한 허례허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중국 동북공정 내용중 하나가 고구려가 몇몇 중원왕조와 조공-책봉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고구려가 지방정권이다 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조공 책봉관계는 일종의 외교 채제이기 때문에 중국이 주장하는 내용은 전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역사에 무지해서 여쭤보는건데
조공을 바쳤다는게 오히려 지금 중국이하는 역사공정의 반대되는 증거 아닌가요?
같은나라인데 조공은 왜 바쳤을까?
조공이 외교적마찰을 줄이기위한 수단이었다면 이건 중국이 지금 엄청난 뻥카를 들고있다는걸
만천하에 까발릴수있는 증거 아닌가 싶은데...아닌가요?
우리나라는 고려까지(정확하게는 원간섭기 이전까지) 중국과 대등한 지위의 나라였습니다.
그것이 무너진 것이 원에 항복을 하면서 제후국 신분으로 격하된 것인데...
대등한 입장에서 조공을 바쳤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죠.
사신 보내면서 선물도 같이 보냈던 것인데 중국놈들이 조공이라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공이라 표현하는 것은 원간섭기와 조선시대에나 적당하겠죠.
그때는 대등한 선물이 아니라 조공과 하사품이 되겠죠.
조공이란 원래 공무역을 말합니다. 각 국가간의 특산품( 가격경쟁력이 우위에 있는)을 거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공무역은 사무역(민간무역)을 위한 하나의 샘플이죠.
각국의 왕실,부유층계층에 일정부분 최상위 샘플을 보내는게 공무역이고 , 이것으로서 사무역이 시작되
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떠한 정치적인 부분이 아닌 경제적인 부분입니다.( 장사의 시작이니... )
적대적인 국가와 일반적인 무역을 하지않는다는것이지 (오늘날도 마찬가지) , 상거래에 딱히 위아래는 없
습니다. 현 사학계는 이걸 상당히 악용합니다..... 그래서 식민사학이죠.
옛날에는 조공 바치는게 그리 부끄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조공 받은 나라가 더 많은걸
아우국, 또는 신하국에 베풀어야 해서, 오히려 갑을이 서로 뒤바뀌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냥 상대적으로 땅떵이 작은 나라가, 땅덩이 더 큰 나라에 인사치례 한걸로 해석해야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