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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11 03:54
[기타]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지도 않는 국가인가?
 글쓴이 : 대은하제국
조회 : 6,103  

고구려가 조공을 한번도 다른나라에 바친적이 없나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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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o 14-10-11 10:26
   
부여한텐 바치지 않았을까요? 초기 고구려는 부여한테 잽도 안되게 약한 나라였을텐데?
북창 14-10-11 11:29
   
조공은 모든 나라가 다 바칩니다. 조공이란 것이 무슨 속국만 바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그냥 외교 관례였어요. 외교 사절이 오면 조공도 함께 오는 거죠.
     
술담배여자 14-10-12 23:03
   
남의집갈때 선물사들고가는예의가생각나네요 ㅡ_ㅡ;;;
떡하나 14-10-11 11:43
   
고구려 조공 없음.
중국을 약탈해서 먹고 살았던 국가인데.
무슨 조공을 수나라 당나라에 바침?
     
박애주의 14-10-11 12:11
   
아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수,당에게도 조공은 했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일종의 외교행위지 고구려가 중국에게 복종했다..뭐 이런 건 전혀 아닙니다.
고구려가 중국 약탈해서 먹고 살았다고 하시는데 고구려가 약탈로 성장한 건 고구려 초,중기 시절입니다. 떡하나님이 말하시는 수,당은 약탈이나 영토확장이 아니라 침략받아서 방어하던 시절이었죠.
박애주의 14-10-11 12:06
   
고구려가 조공을 했었나 안했었나를 물어보시기 전에 조공-책봉 관계에 대해서 검색해보시는 게 우선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위에 고구려 조공 없다고 하시는 분은 장수왕 시절 남조 북조한테 조공과 함께 책봉 받으신 건 모르나봅니다. 물론 우리가 약해서 조공을 주고 책봉받고 한 게 아니라 고구려가 강성하다보니 중원왕조가 서로한테 위협이 되지 않기 위해 조공 조금만 받고 책봉과 함께 그 보상을 배로 늘려서 주는거죠. 고구려가 물질적,외교적 이득을 얻기 위한 허례허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중국 동북공정 내용중 하나가 고구려가 몇몇 중원왕조와 조공-책봉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고구려가 지방정권이다 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조공 책봉관계는 일종의 외교 채제이기 때문에 중국이 주장하는 내용은 전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Gemini 14-10-11 12:40
   
제가 역사에 무지해서 여쭤보는건데
조공을 바쳤다는게 오히려 지금 중국이하는 역사공정의 반대되는 증거 아닌가요?
같은나라인데 조공은 왜 바쳤을까?
조공이 외교적마찰을 줄이기위한 수단이었다면 이건 중국이 지금 엄청난 뻥카를 들고있다는걸
만천하에 까발릴수있는 증거 아닌가 싶은데...아닌가요?
     
박애주의 14-10-11 12:58
   
중국이 말하는 동북공정 내용(고구려는 중원왕조에 조공을 바쳤으니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은 단순히 같은 나라라는 게 아니라 고구려가 말갈,거란을 복속 시킨 것처럼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아래에 고구려가 있었다 뭐 이런 소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영토사관(현재의 영토를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 고로 현재 고구려땅이 중국영토에 포함되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역사다라는..)을 들이밀고 있기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기도 하고요.

중국의 입장에선 고구려 문제나 조선족,간도 문제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될 경우 현재 중국이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다른 영토와 민족(티벳,위구르)에 대해서도 당연히 난처하게 되겠죠.

위구르와 티벳은 지하자원이 넘쳐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동북공정 역시 중국 입장에서 동북지역이 지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기 때문에(위로는 몽골,러시아, 아래로는 북한과 한국으로 이어지는 위치) 왠만해선 절대 포기하려 들지 않겠죠.

우리나라 입장을 말하자면 굳이 역사적인 문제로 강경하게 대처해서 현재 외교관계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서겠죠. 우리가 중국한테 고구려는 우리 역사다! 라고해서 중국이 순순히 고구려 땅을 내줄리도 고구려 유물이나 역사관련 자료를 내줄리도 없잖아요?

또 요즘엔 일본과의 관계 대신에 중국과의 친선관계에 신경쓰는 것도 있고요. 동북공정에 대해 언론에서도 종종 방송하긴 합니다만 국가에서는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는 거죠.(현재 불법조업과 해경문제만 봐도..)

참고로 동북공정에 관한 내용들은 이미 학자들에 의해 다 논파되버린지 오래입니다. 거기다 고구려 문제는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학자들은 다 한국 역사라는데 동조하고 있고요.(러시아,일본 제외)

중국에서는 그 논리가 ㅄ이라는 거 지들도 알고 있지만 인정하는 순간 처리해야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중화사상에 젖어든 중국인 빼고는 이미 만천하가 그게 다 뻥카라는 거 압니다. 그래도 중국입장에선 난처해지기 싫으니 계속 그 뻥카를 주장하는 거죠.
          
Gemini 14-10-11 13:30
   
그러하군요.
상세한 설명 감사.
좌빵우경 14-10-11 13:23
   
광개토    장수왕도  조공함
스파게티 14-10-11 16:58
   
조공이라..  지금 외교도보면 서로 필요한거 교환하거나 주고 받기 식으로 하는대

그런걸  조공이라 표현한거 아닐까요?  고구려가 바보도아니고 주기만 하진않앗을꺼고

고구려역사책이 없으니 이건뭐 짱개 입장에서 쓴거만보고  수긍해야하니  쩝..


북위왕이  장수왕 죽자 한 행동이나 등등 을보면  조공이 지금 우리가 아는 뜻이 전부는 아닌거같은대
와옹 14-10-11 17:15
   
중국도 고구려한테 조공했어요 ㅋㅋㅋ 그럼 중국은 고구려 신하국이군요 ㅋ
버러버러범 14-10-11 21:22
   
우리나라는 고려까지(정확하게는 원간섭기 이전까지) 중국과 대등한 지위의 나라였습니다.
그것이 무너진 것이 원에 항복을 하면서 제후국 신분으로 격하된 것인데...
대등한 입장에서 조공을 바쳤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죠.
사신 보내면서 선물도 같이 보냈던 것인데 중국놈들이 조공이라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공이라 표현하는 것은 원간섭기와 조선시대에나 적당하겠죠.
그때는 대등한 선물이 아니라 조공과 하사품이 되겠죠.
나와나 14-10-11 21:55
   
북위라든지 고구려가 조공을 한 기록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대 관계는 아니었죠

엄연히 그 당시 조공-책봉 관계는 서토에서나 이뤄지던 문화였고 고구려가 그런 것까지 알리가 없죠

중국은 고구려가 조공을 하고 있다고 보았을 지는 몰라도

고구려 입장에서는 그냥 실리적 이득을 위해 무역을 했을 뿐이죠

마치 닉슨 대통령이 실리적 이익과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 수교한 것 가지고

중국이 닉슨이 알현을 했니 미국이 중국의 속국이니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죠
피카츄 14-10-11 22:15
   
조공바쳤죠
고구려가 막강한전력을 가지고있음에도불구하고
바친이유중하나가 백제랑 신라의뒤통수에대비하기위한전략
굿잡스 14-10-12 00:07
   
저 당시의 조공은 도리어 서토애들이 지들 평화를 구걸하기 위한

뇌물인 경우가 더 맞습니다.(한나라 유방이 흉노 묵특 대선우에 생포되어 수십년

실질적 속국으로 진짜 조공을 바치든 일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그걸 서토식 뉘양스와 체면으로  이후 선비족이 남하하여

세운 정복사인 북조사등에서도 서토식 뉘앙스로 조공(교류) 어쩌고 쳐했고.

<고구려는 초기부터 옛 고토를 회복하기 위한 다물정신을 국가 이념으로

한나라와 투쟁하면서 커온 나라이고>

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49년 모본태왕시절 후한의 깊숙한 내지인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공격

55년 태조대왕이 요서에 10성 쌓고

121년 4월에는 선비(鮮卑)와 함께 요대현(遼隊縣)을 공격해 요동태수 채풍을 신창에서

살해.

172년 한나라 대군을 몰살시킨 좌원대첩

311년 요동 서안평( 西安平) 점령

402년 후연의 숙군성 요서 공격

404년 후연의 연군 요서 공격

407년 고구려의 대대적 후연 공세로 멸망하고 고구려계 고운의 북연이 들어섬.

436년 장수태왕이 북연의 수도 조양에 대군을 보내어 북연을 접수할

당시 북위가 고구려의 군세에 눌려 지켜 보고만 있었다는 기록이 있죠.

(북위는 조양에서의 수모를 갚기 위해 고구려에 이오를 사신으로 파견. 위(조씨)나라

때의 3배에 이르는 인구를 가진 강국으로 뒷날을 도모하자고 말함)

439년 남조 송나라가 고구려 보고 북위를 같이 공략하자고 하자 말 800필과 함께

북방의 유연과 3각 동맹을 맺도록 중재.

이쯤되면 북위는 그냥 고립 무원이죠.

중세시절 고려-요-송의 삼각 견제때보다 더 심각했던게 북위 상황임.

이미 우리 고구려는 만주와 남북한 일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동방문명권의

패자인 태왕이였고 북위는 남조와 유연 그기에 막강한 고구려의 3각 동맹에 여차하면

사방공격으로 떡이 될 수도 있던 상황.

이런 동북아 국제 정세를 조율했던게 고구려였고 이렇게 되자

북위에서 타개책으로 나온게 고구려와의 정략적 결혼카드로

선대부터 지속되다 북위 효문제(재위 471~499)에

이르러 고구려 공주를 원했지만 재차 거절 당하면서 결국

고구려 귀족가문인 후대 북위에 고구려계 황제로 등극하는 세종의 어머니

문소태후와의 결혼동맹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462년에 재차 고구려와 북위의 사신 왕래가 빈번하게 이루어 지는데

장수태왕시절 43회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걸 서토식 뉘앙스로 북위의 교류를 마치

고구려보다 우위 어쩌고 식의 조공 어쩌고 식으로 쳐한 거죠.

위서 봉궤전을 보면 고구려 문자명태왕은 효문제 기간에

북위변방을 거란을 이용해서 두드리는 사건도 나오지만

북위가 이런 국제 정세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고구려와

적극적 화친을 맺는 노력을 함으로써 장수태왕에서 안장태왕 초기까지 이를 통해 고

구려와 북위의 동맹이 어느 정도 평탄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요서일대에서 발견된 한기묘지명을 통해서 보면
 
525년에서 528년사이에 안장태왕시기에 가면

거란을 시켜 요서 대릉하일대 조양을 공격하여 평주사마자의참군 한상을 잡아 오는 등

요하 건너 2천리를 점령하는 등 북사등에 기록되고 있는.

560년대 평원태왕 돌궐 격파 578년경 북주와 싸우고

598년 영양태왕시기 수의 대대적인 공략준비가 본격화되자 영주 선제 공격

644년 당이 요서 영주로 집결하자 공격.


<이런 천년 사직 고구려의

일련의 맞짱이나 혹은 변방 교란, 내지 깊숙히까지 공격을

강행하고 심지어 통일왕조와도 전쟁이 불가피 했을 경우에는 도리어

선제 공격을 과감히 실행하는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보면

당시의 서토와의 조공 어쩌고는

말 그대로 그냥 서토식 자뻑 사관에 의한 교류 기록을 그런식으로 쳐한 것에

불과하며 도리어 고구려 최전성기를 구가한 장수태왕시절 43회에 달하던 사신

왕래 기간의 조공 어쩌고 기록 역시도 도리어 북위가 이런 동북아의 힘을 조율하던

고구려의 3각 동맹에 북위가 어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밥밥c 14-10-12 00:10
   
조공이란 원래 공무역을 말합니다. 각 국가간의 특산품( 가격경쟁력이 우위에 있는)을 거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공무역은 사무역(민간무역)을 위한 하나의 샘플이죠.
  각국의 왕실,부유층계층에 일정부분 최상위 샘플을 보내는게 공무역이고 , 이것으로서 사무역이 시작되
  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떠한 정치적인 부분이 아닌 경제적인 부분입니다.( 장사의 시작이니... )
  적대적인 국가와 일반적인 무역을 하지않는다는것이지 (오늘날도 마찬가지) , 상거래에 딱히 위아래는 없
 습니다.  현 사학계는 이걸 상당히 악용합니다..... 그래서 식민사학이죠.
밥밥c 14-10-12 00:16
   
경제학책, 그중 거시경제학 부분을 봐도
  각 지역의 가격경쟁력이 있는상품을 거래하는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사서에 기록된 것입니다.
후지미츠 14-10-12 03:05
   
외교란 복잡한것이죠. 주는게 있으면 받는것이 있고 의례도 일일히 챙겨야하고.
한림 14-10-12 16:13
   
옛날에는 조공 바치는게 그리 부끄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조공 받은 나라가 더 많은걸
아우국, 또는 신하국에 베풀어야 해서, 오히려 갑을이 서로 뒤바뀌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냥 상대적으로 땅떵이 작은 나라가, 땅덩이 더 큰 나라에 인사치례 한걸로 해석해야 할겁니다..
     
굿잡스 14-10-12 19:26
   
겨울 12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임금의 호를 장수왕(長壽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효문(孝文)이 이 소식을 듣고, 흰색의 위모관(委貌冠)과 베로 만든 심의(深衣)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七十九年 夏五月 遣使入魏朝貢 秋九月 遣使入魏朝貢 冬十二月 王薨 年九十八歲 號長壽王 魏孝文聞之 制素委貌布深衣 擧哀於東郊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79년(서기 491)


28년(서기 519), 임금이 돌아가셨다. 호를 문자명왕(文咨明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영태후(靈太后)가 동당(東堂)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했다.

二十八年 王薨 號爲文咨明王 魏靈太后擧哀於東堂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28년(서기 519)

참고로 영태후는 효명제의 생모로 어린 효명제를 대신해서 섭정하던 북위 실권자였음.

글구 위서 정준열전을 보면 장수태왕이 도리어 북위군주를 사위국으로 삼고자

했던 기록도 보이는데 하여튼 조공, 책봉 어쩌고 하는 서토식 자뻑 뉘앙스의 단어만 빼면

실제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며 북위를 압박하고 마음에 안들면 북위 사신을 피박하거나

변경을 두드리는 내용들을 보면 북위가 도리어 고구려에 실제 갖다바쳤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죠.
멍게 14-10-13 02:45
   
조공 = 상납 이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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