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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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러시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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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아 국제팀장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은 분명 크게 달라져 있었다.1년간의 기자 연수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첫발을 디뎠던 2007년 8월. 시골 기차역만큼이나 좁아 터진 아르촘 공항은 입국 수속부터 짐을 찾아 나오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금은 그 '인내의 시간'이 30분으로 대폭 줄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진 왕복 4차로 도로도 시원하게 뚫렸다. 러시아인 운전 기사는 "이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우수리스크, 하바로프스크가 나오고 쭈욱 더 가면 모스크바"라는 농담을 건넸다. 차선이 다 지워지고 도로 곳곳이 움푹 패어 위험천만이던 예전 공항 길을 떠올리며 감동하려는 순간 도로가에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다. 차는 연륙교 위를 달리고 있었다.그러나 5년 만에 다시 찾은 블라디보스토크가 안긴 감동은 시내로 들어서는 순간 끝이 났다. 역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달라지지 않았다.러시아 연방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 APEC 프로젝트에 무려 210억 달러(약 23조 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APEC 정상회담이 끝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이 프로젝트의 절반가량은 미완성인 채 남아 있다. 이 부실한 결과물을 두고 "떡고물이 사라진 게 아니라 떡판 몇 개가 통째로 없어졌을 것"이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대규모 국제회의를 치른 도시니 제반 여건은 나아졌을까. 진출 기업들은 "세법이나 행정절차가 갈수록 복잡해져 비즈니스 여건은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며 한숨짓는다.5년 전 기자 연수를 마치고 쓴 책 '극동 러시아 리포트'는 슬프게도 상당 부분 여전히 유효할 듯하다. 그 사이 부산항만공사가 나홋카 항 현대화 사업에 투자했다 실패하는 등 투자 실패 사례만 늘었지 추가된 성공 사례는 없다.APEC 프로젝트 중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루스키 섬 오페라하우스엔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눈물의 실패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건설 사업을 수주한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은 우리나라 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재하청을 받았던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빈손으로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자원의 보고' 극동 러시아는 과연 진정한 '기회의 땅'일까.지난해 말 기준 한-러 총 투자액은 우리나라 전체 해외투자액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그만큼 러시아가 힘든 시장이란 의미일 것이다. 사실 러시아에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일'이다.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에 비치는 러시아는 여전히 양극단이다.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기회의 땅'(주로 극동 러시아를 이야기할 때)이거나 스킨헤드가 설치는 '무서운 땅'이거나. 연해주를 이야기할 땐 '아득한 그리움의 땅'이라는 감성적인 접근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는 잠재력만 믿고 뛰어들기엔 분명 무서운 땅이며,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실망만 더할 그들의 땅이다.게다가 러시아엔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아닌 도시'가 있을 뿐이다. 모든 인프라는 수도 모스크바에 몰려 있다. '모스크비치'의 자부심은 '서울특별시민'의 자부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들은 우랄산맥 동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도 없다.자원부국 러시아가 진출 기업들에게 진정한 기회의 땅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러시아 시장에선 피눈물 나는 인내도 필수 조건이다.거의 성사 단계인 한·러 무비자 협정은 이제 한·러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난해 WTO에 가입한 러시아는 2017년까진 느린 걸음이라도 글로벌 기준을 갖출 것이다. 지금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시장 진출만 무책임하게 독려할 게 아니라 그 위험성이 무엇이며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려 줘야 한다.9월로 예정된 한·러 정상회담은 결국 쓸모없어질 MOU 체결에 힘쏟는 이벤트가 아니라 진출 기업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실질적인 경제협력 약속을 얻어낼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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