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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31 01:48
[한국사] 초ㆍ중기 백제 위치의 재조정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181  

4세기까지의 황해도ㅡ평안도 등의 서북한 지역이 실제로는 백제 영역이었을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고구려 초기 근거지가 실제로는 현 환인ㅡ집안 지역이 아니라 그곳에서 서북/북서쪽, 혹은 북쪽인 동요하ㅡ혼하 일대였을 가능성 역시 사서 탐구를 하며 계속 드는군요

기원전을 전후한 시기에 요중 근방까지 바다였고
유적/유물 또한 현 판진/잉커우 일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우리 고대사의 역사지형이 작금의 상식과는 많이 달랐으리라 생각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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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5-31 02:09
   
반복해서 고구려 요산에서 요수가 발원한다 했으니
고구려 위치가 북상해야죠.

요수는 중국하천이 아니라 고구려 하천이라는
각 사서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방친구 18-05-31 02:11
   
삼한의 중원 왕조와의 교류도 이로써 해석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 북한 평양은 백제 한성으로 봐야 할 것이고
Attender 18-05-31 12:22
   
저어.......감방친구님, 초기 백제의 위치가 태자하이남-서북한 지역이였다 하시면 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낙랑국 의 위치는 어떻게 되는건지요.........
(참고로 한사군의 낙랑”군” 은 현재 요서지역, 옛 변조선과 위만조선 자리)

그리고 한가지 더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와 낙랑국의 최리 왕의 딸 낙랑공주에 대한 이야기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남쪽이 백제로 막혀있는데, 한반도에 있는 낙랑국을 고(구)려가 공격 하다니요.....
     
감방친구 18-05-31 13:59
   
백제는 그 초기에 요동 남부에서 건국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기존의 제 견해는 여전히 유지합니다

그 위치는 고구려, 말갈을 북쪽에 두고,  낙랑국을 동쪽에 두는 위치로 생각됩니다
대략 단동ㅡ려순 일대로 상정합니다

대무신왕의 낙랑국 정벌 이후 백제사에서 낙랑은 200여 년 가량 사라졌다가 3세기에 낙랑태수, 대방국 등으로 나타납니다

낙랑, 대방 등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고구려가 서와 동에 위치합니다

이 때의 낙랑/대방은 공손씨와 원위 등의 그것으로 현 대릉하/의무려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는 이 서쪽에 영역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이보다 앞선 서기 1세기의 한반도에는 신라를 괴롭히던 낙랑이 백제로 대체돼 신라사에 등장합니다 또한 백제에 멸망한 마한의 장수가 신라에 망명하기도 합니다

대무신왕에 멸망한 낙랑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44년에 살수이남(낙랑땅)이 한나라 땅이 되었다고 돼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 사서기자가 중국 사서, 특히 위서 동이전을 토대로 기입한 것으로 저는 봅니다

꼬마러브님의 견해대로 망한 낙랑과 그 주변 소국의 일부 세력이 한나라에 귀부해서 콩고물 얻어먹으려 한 것을 중국 사서가 뻥튀기를 한 것으로 봅니다

낙랑국 멸망 후 낙랑인들이 대거 신라에 망명합니다
그리고 맥국이 등장하죠
낙랑은 그 후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힘이 거세된 서북한 지역에서 백제가 기세를 펴 간 것으로 보는 것이죠

백제와 고구려는 분명히 패수를 경계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전쟁도 외교도 하지 않습니다 근 4세기 가량을
이상한 일이죠

역사의 의문을 구성적으로 추론해 가정하는 것입니다
단지 추정입니다
          
꼬마러브 18-05-31 16:01
   
단동-려순 일대에 위치했던 백제가 고구려와 패수를 경계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시에
동쪽의 낙랑국이 고구려와 살수를 기준으로 남과 북이 나뉘어질 수가 있나요?

잘 이해가 안되네요 ...
               
감방친구 18-05-31 16:33
   
꼬마러브님 최근에 이럴 때마다 황당하더라고요
지난 해 이맘 때부터 계속 낙랑군 문제 집요하게 탐구해온 거 잊으셨어요?
님도 계속 참여하셨잖아요?
이 얘기도 여러번 했던 것이고
다른 분일리는 없는데
왜 이러시지 싶네요

님은 3세기 낙랑, 대방을 서북한의 낙랑국, 대방국으로 보는 것이고
저는 공손씨ㅡ원위의 요서 지역 군국으로서의 낙랑, 대방으로 보는 견해 차이가 있고요

소서노의 백제 건국지 위치 문제는 제가 지난 1년 동안 최소 대여섯 번은 님에게 설명을 드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패수, 살수 문제도 그렇고 이렇게 물으시는 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네요
          
Attender 18-05-31 21:09
   
감방친구님 좋은말씀,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ㅇ^ ;;;;;
독산 18-05-31 20:32
   
적어도 백제 근초고왕 때의 수도는 황해도 재령의 한성입니다.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남한성'이란 글귀는 광개토왕의 南進이전에는 '남,북한성'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근초고왕이 남평양을 치고 한성에 도읍한 것은 한반도의 평양을 취하고 황해도 재령의 한성을 취한 것이 옳다.
국내외 학계가 남평양을 지금의 서울로 비정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백제와 관련해서는 무구검(관구검이 아님)의 고구려 침공 시,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목지국(진왕의 치소)을 멸망시켰다.
이 당시 기리영(가리영으로 읽고 '假營'의 의미)을 설치하고 낙랑군의 관할로 두려하자 신지가 韓인을 격분시켜 공격하므로 인하여 낙랑, 대방의 군사가 와서 결국은 진한 8국을 멸망시킨다.
이 목지국이 있던 곳이 아마 한반도 평양이었을 것이다.

고구려는 북쪽 숙신 남쪽지역까지 밀려났다가 환도성을 쓸 수 없어 한반도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다.
목지국의 주세력이었던 백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隋書>에 그 내용이 보인다.
일부는 남으로 내려와 변한과 雜居하고(이른바 '변진한') 본 세력은 옥저, 예, 신라 세력들과 한반도 동북, 또는 그 이북의 옥저지역에 피신하여 있었던 것이다.

<양직공도><송서> 등에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요동(양평)에서 천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고 되어 있다.
백제가 고구려 환도성(요동지동 1천리)에 함께 있었을 리는 없고, 그 동쪽 예와 옥저지역에 피신해 있었을 것이
다.

<송서>는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할 시기에 백제도 요서군을 공략하였고 적고 있다.
이들 백제 세력이 한반도에 다시 집결한 것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백제가 근초고왕이전에 목지국을 통하여 서북쪽 지역을 관할한 것은 분명하다.
     
도배시러 18-05-31 20:39
   
삼국사기 기록은 크게 2가지로 나뉨니다. 본기와 잡지...
남평양 이야기는 잡지의 기록입니다. 김부식이 첨삭한 흔적이 있는 잡지이구요.

백제본기에서는 (남)평양을 점령한게 아니라 약탈을 하고 물러납니다.
약탈 = 점령이라는 해괴한 방정식은 김부식의 영향이 아닐런지 생각해봅니다.
약탈하고 물러갔는데도... 점령이라 우기는 김부식의 사관을 계승한게 주류사학이죠.

물론 고구려의 중원약탈에 대해서는 이 김부식 방정식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병주의 태원을 약탈했다고하지 점령했다고 하는 경우는 희귀하죠.

근초고왕 26년(서기 371), 고구려가 병사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임금이 이를 듣고 패하(浿河,) 강가에 복병을 배치하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공격하니, 고구려 병사가 패배하였다.
겨울, 임금이 태자와 함께 정예군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범하여 평양성(平壤城)을 공격하였다. 고구려왕 사유가 필사적으로 항전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임금이 병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근초고왕 [近肖古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임금이 병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王引軍退 移都漢山 => 병력을 철수했는데도 점령이 가능한가 ?
     
감방친구 18-05-31 23:36
   
흥미로운 해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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