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서, 통전, 태평환우기의
안동도호부(요동성)~장안 4,600여리
와 구당서의
평양~장안 5,100리 리수 기록을
제껴두고 접근해야 합니다
이는 앞의 게시글에서도 충분히 검토했는데
이견이 있는 분들은 댓글로 설명 부탁합니다
전근대 리수 기록으로
현 조양 (영주)와 현 요양/심양의 거리는 700여 리입니다
장안+영주+요동성 거리와
장안~요동성 거리가 1,000여 리도 더 차이납니다
후삼국시대 후고구려와 왕건 고려의 현 평양의 거리 정보가
구당서(945년) 등의 거리 정보를 왜곡시켰다 판단됩니다
그런데 빌어먹을 통전이 문제입니다
통전은 8세기 말, 9세기 초에 완성되었으나 그 후에도 계속 가필(보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통전 자체도 거리 기록이 맞지 않고
후한서도 문제인데 후한서 역시 거리 기록이 그 사서 내에서도 낙랑, 현도, 요동 거리를 중심에 두고 다른 거리와 비교하면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이전 게시글에서 검토하였습니다
신당서 가탐도리기
營州入安東道
營州西北百里曰松陘嶺, 其西奚, 其東契丹距. 營州北四百里至湟水. 營州東百八十里至燕郡城. 又經汝羅守捉, 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 故漢襄平城也. 東南至平壤城八百里,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西至建安城三百里, 故中郭縣也, 南至鴨淥江北泊汋城七百里, 故安平縣也. 自都護府東北經古蓋牟新城, 又經渤海長嶺府, 千五百里至渤海王城, 城臨忽汗海, 其西南三千里古肅慎城, 其北經德理鎮至南黑水靺鞨千里
통전
安東府
東至越喜部落二千五百里南至栁城郡界九十里西至契丹界八十里北至渤海一千九百五十里東南到丹衙帳一千里里西南到丹界八十里西北到契東北到契里去西京五千三百二十里去東京四千四百四十里戸口
(통전은 다른 사서보다 더 거리 기록을 뻥튀기하고 있습니다 안동도호부~장안이 5,320리라고 적고 있습니다)
모든 사서가 장안~영주를 3,000리 내외로 적고 있는데
거기에서 700여 리 떨어진 안동도호부이자 양평성이자 요동성이 4,600여 리인 게 말이나 됩니까
사서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일 시 안동도호부이자 양평성이자 요동성인 곳은 부신ㅡ신민ㅡ심양ㅡ무순ㅡ요양 이 바운더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요양에서 조양까지 1,500여 리 거립니까?
빙글뱅글 돌아가는 조선시대 연행길도 의주에서 북경까지 2,100여리인데 조양에서 요양까지 1,500여 리예요?
4,600리, 5,100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적용하면
안동도호부는 북한 청천강 께,
고구려 평양은 개성이나 서울이 되고
백제 수도는 6,200리니까 전북 전주시가 돼버립니다
이런데도 수용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