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서 도배시러님이 댓글로 제시하신
"~ 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 非平壤之舊. 至王建, 以平壤爲西京. ~"
이 속한 글의 전문입니다.
서경의 위치가 아킬레스인데 가능한 모든 기록을 종합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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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史』卷59 志11 地理2
요양등처행중서성 동녕로
동녕로(東寧路). 본래 고구려(高句驪) 평양성(平壤城)으로 또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하였다. 한(漢)이 조선(朝鮮)을 멸하고 낭랑(樂浪),·현토군(玄菟郡)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낙랑지역이었다. 진(晉) 의희(義熙) 연간 후반에 그 왕 고련(高璉)이 처음으로 평양성(平壤城)에 머물렀다[居]. 당(唐)이 고려(高麗)를 정벌할 때 평양(平壤)을 공략하여 그 나라가 동쪽으로 옮겨 압록수(鴨綠水)의 동남쪽 1,000여리 되는 데에 있었는데, 평양의 옛터가 아니었다. 왕건(王建)에 이르러 평양이 서경(西京)이 되었다. 원(元) 지원(至元) 6년(1269)에 이연령(李延齡)·최탄(崔坦)·현원열(玄元烈) 등이 부주현진(府州縣鎭) 60개 성(城)을 가지고 와서 귀부하였다. 〈지원〉 8년(1271)에 서경을 고쳐 동녕부(東寧府)라고 하였다. 〈지원〉 13년(1276)에 동녕로총관부(東寧路總管府)로 승격시키고 녹사사(錄事司)를 설치하였으며 정주(靜州)·의주(義州)·인주(麟州)·위원진(威遠鎭)을 나누어 파사부(婆娑府)에 예속시켰다. 본로(本路)는 사(司) 1개를 거느렸고, 나머지 성은 폐하여져서 사(司)를 설치한 것이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지금은 옛 이름만 남아있다.
녹사사(錄事司)
토산현(土山縣)
중화현(中和縣)
철화진(鐵花鎮)
도호부(都護府). 당 말부터 땅이 고려로 들어가 있어 부주현진(府州縣鎭) 60여 성을 설치하여 이것이 도호부가 되었는데, 비록 당의 옛 명칭 그대로이지만 도호부의 실상은 없다. 지원 6년(1269)에 이연령 등이 그 땅을 가지고 와서 귀부한 후 성의 치소가 폐하여 지고 훼손되어 겨우 그 이름만 보존하고 있으며 동녕로에 속하여 있다.
東寧路, 本高句驪平壤城, 亦曰長安城. 漢滅朝鮮, 置樂浪·玄菟郡, 此樂浪地也. 晉義熙後, 其王高璉始居平瓖城. 唐征高麗, 拔平壤, 其國東徙, 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 非平壤之舊. 至王建, 以平壤爲西京. 元至元六年, 李延齡·崔坦·玄元烈等以府州縣鎮六十城來歸. 八年, 改西京爲東寧府. 十三年, 升東寧路總管府, 設錄事司, 割靜州·義州·麟州·威遠鎮隸婆娑府. 本路領司一, 餘城堙廢, 不設司存, 今姑存舊名.
錄事司. 土山縣. 中和縣. 鐵化鎮.
都護府, 自唐之季, 地入高麗, 置府州縣鎮六十餘城, 此爲都護府, 雖仍唐舊名, 而無都護府之實. 至元六年, 李延齡等以其地來歸, 後城治廢毀, 僅存其名, 屬東寧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