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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2 23:49
[한국사]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재해석.(펌) -1
 글쓴이 : 비좀와라
조회 : 2,323  

그 동안 계시판에 명성황후를 비판하는 글이 많았는데 이에 대한 반론이 많지만 그 중 특히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황현의 기록이 아닌 다른 기록으로 재 해석한 글이 있어 올려 봅니다.

역사는 승자들이 만든 얘기이니...

일제는 문론이려니와....

 민황후의 정적인 역적 대원군과 친일파들이 짓어댄... 일제이후의 기록들을 그대로 믿는건 바보들일 겁니다.

 

 허나, 범죄인들의 기록일지라도...면면히 들여다 보면...

해석에 따라선 그날의 만행들이 속속들이 재 조합됄 수 있음은...

우리동내 파출소의 피의자 심문조서 형식만 참고해도 손쉽다 하겠습니다.

 

 

우린 을미사변의 원인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대원군과...며느리 민황후의 관계...

동학교도들과 친한 일종의 민족자주파 대원군과...동학교도들을 배척하는 외세 의존파 민씨정권의 관계...

신식군대(?) 이자 민씨계열인 시위대만 우대하고... 

구식군대(?)이자 대원군계열인 훈련대를 해산한려한 민씨정권에 항거한 훈련대의 불만을 일본과 대원군이 이용했단 분석...

 

아주 교활한  일제와 대원군계 친일파들의 세뇌교육이라 보입니다.

 

 

대원군은...

말 그대로...이성계로부터 이어지는 조선의 왕조 직계 혈통이 아닌...

방계혈통의 왕인 ...철종과 고종등의 아비이기에 주어진 직함입니다.

고로,대원군은...

아무리 고종이 나이가 어렸다 해도...조대비에게 수렴첨정을 마꼈어야지...정치일선에 나서선 않됄 신분이였습니다.

여타 조선의 직계왕들 아비나 형인 ... 상왕,태상왕이 아니기에여...

그러나 왕의 아비인 신분을 이용해 아주 적극적으로 나섰고...

자신의 세력구축을 위해...운현궁엔 항시 정치 몰이배들과 돈다발을 싸든 청탁꾼들로 바글바글했던 역사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임오군란과 동학운동의 원인인 매관매직과 삼정의 문난은...

정작,동없는 천민이지만...달리기 실력이 초인적였던 지를 군부에 기용...돈없고 빽없던 홍계훈등을 충성도로 기용...

이리, 다소 무리는 있지만...적잖은 수를 능력대로 기용했던  민황후 집안들 보단...

대원군 계열들의 운현궁서 벌인 더러운 매관매직과 ...

세력유지를 위한 정치자금 마련의 당백전과 대원군 명의의 무분별한 어음 발행... 과도한 조세등으로 인한 경제파탄...

이것 때문에 기인했다 할 것입니다.

 

동학을 결정적으로 유발시킨 조병갑도...

고종의 친정이후 대원군을 내찬 조대비 세력이니 반 대원군계라 하지만...

풍양조씨들이 득세한 시긴 엄연히 조대비와 손뼉이 잘 맞았던 대원군 섭정기이고...

한일합방 후...대부분의 대원군계 친일파들과 같이 영화를 누린  조병갑의 득세가 대원군은 동학교도들 후원관 전혀 무관함 증명합니다.

 

 

동학란 발생 초기엔...

민황후 세력인 홍계훈이 경성의 군대를 이끌고 동학군을 저지하지만...

청군의 당도 이후... 일본군이 지들 멋대로 개입한단 정보 이후엔...재빠르게 전주화약을 맺는 융통성도 보였던게 민씨 정권입니다.

 

막상, 처절한 희생을 치뤘던 2차 동학봉기 땐...

모두가 친 대원군계 친일파들과 일본군에 의해 잔악하게 학살이 진행됐음도 역사를 좀 꼼꼼히 읽어 보면 다 나옵니다.

 

요즘 발견된 민황후 피란기록인 임오일기를 보자면...

민황후가 청군을 끌어 들였단 기록도...역시, 일제와 대원군계 친일파들의 개수작였음이 들어 납니다.

민황후는 청군의 경성입성 방문을 베껴오랄 정도로...청군의 개입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단 반증이니여...

 

글이 또 늘어지니...

그 얘긴 담에 하기로 하고...

 

 

민황후가 참변을 당한 그 더러운 날의 역사를 재 정리해 보겠습니다.

기존의 지들 맘대로 기록한 기록들이 결정적인 부분에선 너무 다르게 나오니...

역시, 저도 제 맘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때 두 번이나 민황후제거를 획책한 역적 대원군은...

저자거리 능지처참형이 원칙임에도...

 

그래도 왕의 아비인 덕으로...유약한 고종의 배려로...운현궁에 가택연금돼는 정도로 약한 처벌을 받았음에도...

자중하지 못하고...일제 총독부를 비밀리 들락거리며 구걸하여 권력을 유지하려 시도했으며...

큰아들 집안 이재선을 보위에 앉히려는 역모...

큰아들의 아들인 이준용을 보위에 앉이려는 역모등을 계속 저질러...

궐밖 공덕리로 쫒겨 납니다.

 

이를 일제와 대원군계 친일파들은...후세에...

며느리나 민씨일파의 독재가 더러워 아소정으로 물러나왔다 개수작을 떨었던 것이겠고여...

 

 

공덕리로 물러 나왔음에도 자숙하지 않고...

대원군은 왕의 아비란 신분을 이용해...계속 자신의 파벌을 규합하고...

일본 총독부를 수시로 비밀리 들락거리며...민황후 제거를 획책했고...일제가 분담을 맞은 훈련대의  대대장들을 죄다 포섭해 놨으며...

 

청일전쟁 승리후 급격히 조선병탄의도를 보이는 일제의 세력을 견제키 위한 민황후와 고종의 러시아 끌어들이기 싯점부턴...

아예 노골적인 친일파가 되어...적극적으로 러시아 견제를 명목으로한 일제의 민황후 제거를 제의한 정황들이 ....

친 대원군계였다가 훗날 친미파가 된 유길준의 회고록에도 나온다니...

대원군이란 작자는...민족자주정신의 쇄국정책은 커녕...권력욕에 나랄 말아먹었던 한심한 인물였던 겁니다.

 

 

다소 온건한 이노우에가...대원군의 민황후 제거제의 까진 미적거리자...

이또히로부미는...즉각,미우라로 교체합니다.

 

미우라가 조선공사로 발탁받기전...

역적혐의로 일본 망명중인 박영효에게...조선내 가장 적당한 민황후 제거 행동대장을 천거해 달라 제의하고...

박영효는 우장춘(씨없는 수박)의 아비인 우범선이를 우선 포섭자로 천거합니다.

 

조선에 발령받은 미우라는 즉각,우범선 이하...훈련대 대대장애들을 포섭합니다.

훈련대 자체가 일본교관들이 교육하고...이미 전부터 대원군과 입지를 같이 하던 자들 일색인지라 포섭은 손쉬웠을 겁니다.

 

단지,

명목상 최고 대장인 훈련대 연대장은...친 민황후계열이자...친 대원군계 훈련대병사들에게도 신임을 받던 홍계훈이였기에...

훈련대 연대 본부병력들은 제외됐을 뿐이였겠고여...

 

 

민황후 제거의 역적모의는...

그 역모날을 10월 10일로 계획하고...치밀하게 진행되어 갔던 것인데...

이를 감지한 민황후와 고종은...서둘러 훈련대를 해산하는 교지를 내리는데...

궐내의 친일파 애들이 이를 쪼르르 일본 공사관에 보고해 버림으로서...그날 당일 밤으로 수정됍니다.

 

 

역모를 은폐하기 위한 안심책으로...

미우라는 민황후의 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액션을 취하며...대규모 정치자금 기탁까지 천명합니다.

미우라는 오카모도"등의 민황후가 제일 견제하던 극력분자들을 본국소환 시키는 척...인천항으로 보내는 술수를 부립니다.

그리곤 다시 급히 경성으로 불러 들입니다.

 

남대문 밖에 모인 한성신보사 섬 원숭이들 위주의 군인 경찰애들까지 혼합한 낭인애들은 ...

저녘부터 난동을 위한 사전 음주파티를 했고...12시 경...

일본 수비대 병력과 역적 우범선등이 이끈 조선 훈련대가 합류...역모의 명분이자 주모자인 대원군을 뫼시러 갑니다.

 

 

 

오늘날의 강단사학과 재야사학계 모두가...

대원군은 이 을미사변의 주동자는 커녕...일제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이용당했단 증거로...

일본군과 훈련대애들이...아소정을 지키는 경비병력들을 제압해 감금하고...그 군복들도 빼앗아 입었단 대목을 드는데...

다 한심한 소리들입니다.

 

당시 아소정을 경비하던 조선군들은...

대원군을 보호하기 위한 병력이 아닌...대원군의 역모를 감시하기 위한...

즉,누차에 걸처 일제와 친일 정치모리배들을 도성안 운현궁으로 끌어 들여 역모를 도모한 대원군을 도성밖으로 내치고...

도성박에서도 시도될 일제와 친일 모리배들과의 회합을 막기위한 외인출입 통제역할의 경비대였던 겁니다.

 

고작 열몇명 정도인 반은 잠들었던 대원군 감시병력을 손쉽게 제압한 일본군과 훈련대...그리고 한성신보 잡배들은...

 

대원군에게 거사가 급히 앞당겨 졌음을 알리고...

대원군 자신이 평소 원했듯이...그는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는 대신...그가 원하는 큰아들 이재면과 이준용을 내세우잔 것 등의

역모 4개 협상안의 인가를 대원군에게 내밀었고...

대원군은 역모엔 자기도 동의하나...나는 이미 다 늙어 뭔 영화를 보겠냐... 넌즈시 빼는 모냥세를 갖춰보고...

같이 있던 이재면과 이준용이 적극 권고하는 모냥세를 갖추어...

그럼, 한 번 해 보잔 의연한 기개로...민황후 제거의 대의명분을 선전하는 포고문에 싸인하고...

한성신보 섬 원숭이들이 보위하는 교자에 높이 올라...

우리의 길을 막는 자들은 용서치 않을 것이니라~라... 포효를 하며 도성문으로 향한다.

 

 

이미, 대궐 안밖이 죄다 친일 군벌들에 포섭된 도성 수비대 애들이 경비를 맞던 때이라서...

더군다나 왕의 아비가 교자에 높이 처질러 앉아있는 꼴이라서...

도성문들은 일사불란하게 미리 쫙쫙 열리고...

궐문인 광화문에 당도한게 새벽 5시 전이다.

 

이미,역모를 계확한 도성내 군벌애들의 가담에 의해...

민황후가 임오군란 등의 위기 때 처럼... 궐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새벽 2시 경부터 궐의 동북문과 서북문은 일본 수비대애들이 포위하고 ...대원군의 행차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였고여...

 

광화문에서 총성이 남과 동시에....

동북문과 서북문의 일본수비대 애들은 벌써 궐담을 넘어 대궐의 후측방을 제압하게 되고...

 

 

 이때,

광화문에서 기고만장하던 대원군 일행은 의외의 장애물을 만납니다.

역사는 사바틴의 화고록을 들어...홍계훈의 수비대가 총 한 방 쏴 보질 못하고 달아나고...홍계훈만 죽었다 ...

참으로 조선군들은 전부 별수없는 오합지졸들이였다 한탄들도 하나...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대궐내 숙직하던 러시아고문 사바틴은...잠겨져있던 광화문 밖을 볼수 없는 위치입니다.

총 한 방 못 쏘고 총을 버리고 도망친 건...이미 시위대장놈도 도망한 ...사바틴이 이끈 일부만 남은 궐내 시위대를 이른 것이지...

궐밖에서 제지하던 홍계훈의 훈련대 연대본부 20여명이 아니였던 정황이 여러 증언들에 나옵니다.

 

20분간 옥신각신했다 했고...

홍계훈의 군사와 역적군 상호 모두 사상자가 났다고 고종이 말했습니다.

 

여러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정황히 유추됍니다.

 

대궐문인 광화문에 당도한 대원군일행 중...

조선 훈련대 대장놈이...궐안문을 지키는 시위대들에게 호통을 칩니다,...궐문을 열라고...

시위대들은 물론 열지 않았을 터이고...상당수 시위대들은 이미 지들끼리 전해들은 정보에 의해 도망을 칩니다.

남아있던 친 민황후계 사바틴이 이끌던 시위대들만 궐문을 지치는 중...

일본군들은 궐문의 틈바구니로 총을 난사합니다.

 

질겁을 한 시위대가 뒤로 물러나자...

일본군들이 사다리를 놓고 궐담을 넘습니다....궐문이 열리고 대원군의 교자가 보부도 당당히 입궐하려는 찰라...

뒤늦게 급보를 듣고 달려온 홍계훈의 훈련대 연대본부 잔여병들이 동쪽 벽에서 조준을  하고...

홍계훈은 어느놈들이 감히 궐문을 침범하느냐 호통을 칩니다.

 

어째든지 지들의 최고 수장인 훈련대 연대장의 호통을 들은 우범선역적등이 동원한 훈련대 1,2,3대대 병력들은...

어정쩡하니 서있는 형국이고...

 

일본 수비대애들이 홍계훈의 군대에 사격을 가합니다.

홍계훈의 군대도 사격을 가합니다.

숫적으로 턱이 않 되는 훈련연대본부대는 화력의 열세로 ...홍계훈이 유탄에 맞아 쓰러지자 제압됍니다.

섬 원숭이가 쓰러진 홍계훈을 칼로 찌릅니다.

 

소문대로면...홍계훈은 광화문 밖 누군가들에 의해 옴겨져 몇 일 더 생존하다 순직한 듯 싶습니다.

 

 

 

광화문으로 일본군과 친일훈련대가 호위하는 대원군의 교자가 들어가자...

전날부터 뭔가의 싸인을 받았던 대부분의 조선 시위대 군관들과 병사들은 죄다 일사분란하게 도망치고...

사바틴이 이끈 잔여병력들만 눈치없게 이를 막아 섭니다.

 

일본군과 훈련대들은...이들 머리위로 위협사격을 합니다.

애초부터 죽일 의사가 없었던 겁니다.

왜 눈치없게 여태 서 있냔 싸인였던 겁니다.

군복 상의를 벗고...무기를 버리던지 탄창을 버리던지 하면 항복으로 간부하겠단 싸인까지 사전에 있었던 정황입니다.

 

사바틴은 후퇴 중...

아비귀환이 되어 달아나는 대궐내의 대신과 노복들에 휩쓸리다...건청궁에 이르고...

왕비의 처소인 건청궁 후방까지 몰려...

왕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섬 원숭이 잡배들의 만행을 목격합니다.

 

 

여기서 사바틴의 증언을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황후와 후궁들이 머무르던 건물로 통하던 두 개의 문을 일본군들이 경비하고 있었다 했습니다.

그럼,사바틴은 왕비의 곤녕전이던 교태전이던 옥호루던 그 안에서 벌어진 만행은 목격할 수 없었을 겁니다.

높은 담장이 막혔고 두개의 출입문이 있었던 격이니여...

 

고로 사바틴이 목격한건...

담장 넘어 높은 곳에서 난리가 나는 현장의 먼발치 목격인 뿐이고...

2.5미터의 난간에서 집어 던져지면서도 신음소릴 하나도 안 내던 궁녀들의 의연한 표정은...그 먼 거리서...

그것도 담장으로 마당 바닦이 뵈지도 않았을 터이니... 볼 수도 없었던 겁니다.

 

그럼, 사바틴이 본 현장은 어디였을 까여...?

 

고종이 있던 고종의 침전인 겁니다...그게 곤녕전(혹은 교태전)인 것이겠고여...

 

 

 

우린 흔히 착각하는게...

황제(왕)과 황후(왕비)가 같이 묵는 장소가 교태전이니 뭐니 하는데...전 다르게 봅니다.

황제나 왕은 여자가 하나가 아닙니다.

매일 여자가 바뀐단 겁니다.

 

정실부인격인 황후(왕비)의 궁전이 따로 있어 그게 중궁전인 것이고...

그 주위로 후궁전들이 있는 것이며...중궁전과 후궁전을  보필하는 상궁들의 처소가 다닥다닥 딸린 거대 건물이 왕비의 거처인 것이요...

 

날마다 취향따라...황제는 황후든 후궁이든지를 방문하여 묶게 되는 이치며...

여타  상궁이나 궁녀들은...거처가 누추한 관계로...황제의 침소인 곤령전(교태전?)으로 불러 들이는 형식였던 겁니다.

 

 

고로,사건 당일날...

정상적 위치상으론...고종이 중궁전에 침소를 들지 않고 왕만의 거처인 곤녕전에 중전과 같이있었다 함은....

평소엔 있을 수 없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여러 증언들엔...

민황후는 곤녕전과 복도로 딸린 옥호루에서 사살됐다 합니다.

 

 

그럼,사바틴이 목격한 궁녀들의 봉변과... 미국인 군사고문 다이가 목격한 민황후 봉변 장면은...

담장으로 가려지고 출입문이 봉쇄된 왕비와 궁녀들의 거처가 아닌...고종이 거처하던 침소인 곤녕전이란 말이 됍니다.

 

 

 

 

여러가지 각기 제각각인 증언들을 조합한 민황후 시해순간은 이렇습니다.

 

 

전날부터 궐내엔 괴상한 수근거림이 있음을 민황후나 고종이 감지합니다.

숙직 경호를 강화하고...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민황후 대피계획도 세웁니다.

 

허나, 궐내엔 이미 일제와 대원군에게 매수됀 스파이들 천지였으니...

고종과 민황후 최측근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빼먹고 지나가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정병하...당시, 당직을 서던 농상공부대신 역적 정병하...

고종이 믿는 최측근자가 아니였다면 그가 민황후 옆에 있을 수가 없었을 터인데...그가 민황후 옆에 있었고...

후일 희안허게 대원군의 친일내각에 등용돼고...후일 고종에게 역적죄로 죽음을 당합니다.

 

죄명은...

민황후가 주변의 수군거림과 정세를 보아...아무래도 은신처를 바꿔야 할려나 보다 제의하자...

일본군은 훈련대의 난동을 막으려 입궐한 것이니 안심하시라 고해...민황후가 도피하질 못하게 했단 죄목입니다...???

 

좀 억울할 듯 합니다.

 

순간적 판단미스로 그리 판단했을 수 있는데...어자피 대궐 전체가 일본애들 천지니...어딜가든 민황후는 당했을 터인데...

대부분의 당직 대신들과 군관 내관들도 죄 도망친 판국에...

유독, 고종은 이 정병하를 말실수 했단 죄로...유독 대역죄인 중 하나로 처단합니다.

 

과연 그게 다일까여...?

 

 

다이의 증언으론...

황후는 어디 계시냔 질문에...고종은 이미 안전한 곳에 잘 모셔 조치했다고 고종이 자신감을 보였다했습니다.

 

첨부터 봉쇠당하고 공격당한 황후의 공식 처소인 옥호루 근처가 안전한 장소였을까여...?

그저, 여러 왕후와 궁녀들의 공식 침소에...여러궁녀들과 섞어 놓아 누가 왕비인지만 실토치 않으면 안전하다 생각했었던 것일까여...?

 

 

그게 아니였을 겁니다.

이미 임오군란때도 그랬듯이...

대원군이가 황후의 처소 쯤은 눈치 않 보고 유린할 수 있는 인물임을 고종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디가 젤 안전한 장소일까여...?

내.바로 황제의 침소인 겁니다.

그건...대원군펜인  마약쟁이 황현이도 뭔 잡서로도 언급했던 겁니다.

황제가...적도들이 설마 황제의 침소까지 침범하질 못할 것이라 착각한게 원인였다 했습니다.

 

건청궁내 황후와 궁녀들의 처소가 황제의 침소였다면...

임오군란때의 침범도 황제의 침소를 침입한 격이니...황현이의 말이 모순이 되는 겁니다.

 

황현이는...

황제의 거처 궁전들 중 어느 궁전(건물)이라 한게 아니라...

황제만이 늘상 자던 장소...즉,곤녕전엔 원래 황후가 상주하지 않는 장소인데...

그곳으로 왕후를 은신시키면...감히 누가 왕의 침소까지 어쩌겠냔 착각였다 나무란 겁니다.

 

 

이 정황들로 다시 당시의 상황을 추정해 보겠습니다.

 

 

 

중궁전을 이미 확보한 일본군이 중궁전으로 통하는 문들을 통재한 상태로...

일본잡배들이 개 난장질을 치며... 민황후를 찾아 나선다...

 

민황후가 평소 이뻐하여 양녀로 들이던 일본인 소가의 딸이 증언한 몽타쥬를 한장씩 들은 섬 원숭이들이...

아무리 얼굴들을 비교해도 민황후로 추정돼는 이가 뵈질 안하자...

 

다급해진 섬 원숭이들은...

보여설 않될 라이벌국 러시아 고문관...미국 고문관들이라도 족처 민황후의 거처를 확인하려는 실수까지 하고...

사후, 러시아와 미국의 개입이 두려운 섬 원숭이들은 사바틴은 궁궐밖으로 인도... 

 

 

그리곤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수색지점인 황제의 침소를 침입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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