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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4 00:00
[한국사] 님들은 신라를 안 좋게 보시나요?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3,848  

전 좋게 봐요! 저도 옛날엔 막연히 들리는 말로는 신라는 동족을 배신하고 고구려 땅을 모두 잃게 만들고 한민족의 영토를 반도 내로 국한시켰다 또는 당나라에 나라를 판 족속이다 또는 심지어 경상도 신라놈들! 같은 지역감정이 묻어나는 비난으로 신라를 많이들 까더군요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여러 책들도 읽고 가생이에서도 배우면서 신라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달까?

삼국시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제일 규모도 작았고 (가야 제외) 백제와 고구려에게 대부분 두들겨 맞는 신세였더군요. 심지어 한 때는 왜구들의 침략 때문에 고구려에게 구원을 요청 할 정도. 그런 신라가 기적적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백제 부술 날만 손꼽았잖아요. 신라의 적은 고구려보단 백제였으니.

당시에는 '한민족'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동족 의식도 없었고 다만 백제인 신라인 고구려인처럼 자신이 사는 땅에 군림하는 세력의 일부라고 생각했었고요.

고구려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거절당한 신라가 남은 길은 당나라의 도움을 얻는 것뿐이었고 지금 우리 입장에서야 왜 하필 당나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신라 입장에서는 별 수도 없었고요.

아무튼 당나라와 손 잡고 백제 고구려 차례로 격파하고 당나라는 고구려 땅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가져간 대신 그 밑으로는 모두 신라를 주고 평온히 살아라~ 했지만

당나라의 땅욕심은 끝이 없어서 신라 마저도 집어 삼키려 한 것을 고구려 유민들과 백제 유민들을 매장시키지 않고 잘 구슬리고 달래서 같이 힘을 모아 당대 최강대국 당나라를 몰아낸 것도 신라구요.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은 건 안타깝다만 글쎄요..

이미 신라 아니었어도 물량빨로 고구려를 멸망시키려고 진작에 작정했던 당나라였고 고구려 내부적으로도 개판이었으니 그 멸망에 신라가 일조는 했다만 시기만 조금 앞당겼지 그렇게 까일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고구려 멸망 후 얼마 안 있어 우리의 역사 중 한 부분을 장식하는 발해가 만주땅에 들어서고요. 심지어 고구려보다도 영토가 더 컸죠.

그래서 저는 신라가 그렇게 까일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 후 한반도 내에서 콤팩트하게 집결해 국력도 강해지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이기도 하구요.

제 생각은 대강 이렇습니다 ㅋ 신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보단 호감이 더 가요.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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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S1 16-10-14 06:33
   
신라가 밉기보다는 그냥 막연하게 옛 고구려땅에 대한 아쉬움들이 있어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아닐까요 ㅎㅎ
샛별 16-10-14 06:52
   
고구려는 북방민족이랑 손잡았고
백제는 왜랑 손잡았죠
신라만 까는건 일관성이없는듯
디바2 16-10-14 07:30
   
신라흉노족이죠.
부산공항  파던중 백인유골나옴.
가야계는  백인일가능성이존재함. 허황후가 쥐좆만한 가야에시집을왜옴?
인도는 드라비다족으로 원래백인계였음.
단일민족은 개뿔. 
조상들이ㅂㅅ같아서 그리산걸.ㅂㅅ같은조상후빨만안하면 그럭저럭 괜찬은데.
타샤 16-10-14 07:47
   
드리비다족은 흑인 계열이에요. 흑인은 아닙니다..
참고로 흑인종 백인종과 허연 황인종, 까만 황인종을 구분하는 방법은...
겨드랑이 색과 이마 색을 비교하는겁니다.

겨드랑이 색과 이마 색이 같으면 흑인종이나 백인종.. 다르면 황인종이거든요?
황인종은 햇빛의 변화에 특화된 종이라서, 빛을 많이 받는 이마는 까맣게 되도..
빛을 덜 받는 겨드랑이는 허옇거든요.

흑인종은 겨드랑이도 까맣고, 백인종은 이마도 하얀색입니다.
어쨌거나 드리비다 족은 검은, 황인종이에요. 그 뒤에 들어온 셈족과 함족들이 백인 계열이죠.

허황후의 고향은 네팔쪽에 가까워요.
그리고 네팔쪽 사람을 보면 알겠지만 전형적인 황인종이죠.(고산이라 햇빛을 덜봐서 좀 허연...)
     
아날로그 16-10-14 11:40
   
오오....그런 구분법이 있었군요...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비정상회담에 나왔던 '수잔'과 수잔의 식구들을 보면....까무잡잡하던데...
허옇다는건 다른 동남아 사람들에 비해 허옇다는 건가요?
아니면, 한국인들이 황인종 중에 유독 하얀건지...
타샤 16-10-14 07:51
   
신라가 외세를 끌어 들인 국가니까 안좋게 보는거죠.

어찌 보면 당나라가 배반 당한겁니다.
실제 군사력은 당나라가 다 댔거든요.

김유신은 군량미만 들고 운반했어요.

황산벌에서 계백의 3천명과 신라의 5만이 격돌햇는데 왜... 거의 다이다이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신라의 전투병이 3천 정도 밖에 안된다는 거죠.

대부분은 병참 병력으로 군량미를 수송하던 거고, 5천 정도의 병사로 이들을 보호하는거죠.


그래서 부여에 당도했을때...
소정방이 "신라군이 왜 이리 늦었냐? 책임자를 참수하겠다!!"
라고 한거죠.

전투병이라면 그런 말을 못합니다. 군량미가 늦었으니 참수하겠다는 소리를 한거죠.


싸움은 당나라가 다 하고, 옛 백제 땅과 고구려땅 일부를 잃었으니.. 당나라가 배신 당한거죠.
     
스파게티 16-10-14 09:56
   
전 그래서 김유신을 머  위인 장군  그런식으로 배우는대

제 인식속에는  쌀배달꾼일뿐  그이상 이하도아님
     
가남 16-10-14 10:52
   
계백 결사대 5천이고요 신라는 5만 맞습니다.
신라군 5만 중 전투병이 3천이고 나머지 4만7천이 보급병이라고요?
어디서 그렇게 나오던가요?

당군은 백강으로 신라는 탄현을 넘버 서로 합류하여 백제의 수도권을 공략하는건데
무슨 쌀배달이에요. 그리고 그건 고구려 공략때 일 아니던가요?
          
타샤 16-10-15 03:12
   
소정방의 당나라군이 14만입니다.
14만명을 먹일 군량미가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때 트럭에 실어 보냈을까요?
소달구지?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사람이 매고 끌고 갔으면 5만에 가까운 숫자도 전부 보급병일 수 밖에 없어요.

100만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수양제도 실상은 3~5만의 전투병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nopa 16-10-14 12:44
   
그래서 신라군이 3천으로 백제5천을 이겼다는말인가? ㅋㅋ 역사서에도 나오는걸 왜곡하지마세요
          
타샤 16-10-15 03:14
   
신라군이 5만이라는건 인정하는거에요.
다만 전투병이 그 정도는 아니었을거라는 거죠.
솔까말, 5만이 3천과 붙어서 죽니 사니 하나요?

3천명이 전부 정예병일 수도 없는데...
               
가남 16-10-15 16:30
   
아니 그러니까 신라군 4만7천이 보급병이었다는 걸 어디서 봤는지
소개 좀 해달라고요 나도 좀 보게.
               
nopa 16-10-16 12:42
   
말같잖은소릴해야지 ㅉㅉ
타샤 16-10-14 08:01
   
그리고 또 하나...

항복의 미학 이라는게 있어요.
항복하면 다 죽이냐? 아니거든요.
그래서 항복하는겁니다.

의자왕이 항복을 했어요. 어떻게 했을까요?
의자왕을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물론 백제를 떠나야 했죠. 다른 지역의 왕으로 임명했고 거기서 왕노릇 했습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구요.

그럼 옛 백제 땅이나 옛 고구려땅은?
바로 당나라의 말을 잘 듣는 속국을 만드는 겁니다.
그게 안동도호부 였죠.

그리고 안동 도호부의 도독이 누구였죠?
문무왕입니다.

실질적으로 당나라가 전부 먹은거나 다름 없어요.



역대로 보면 중국이 주변을 제압하는 방식이 이런 방식입니다.

부족간의 갈등을 만들어 부족끼리 다투게 하고, 중국은 그들이 화해하지 않도록 조종하는 겁니다.

A 부족과 B 부족은 같은 거란족이다 라고 가정하면..
A 부족 족장이 B 부족을 쳐서 전공을 세우면, 중국에선 벼슬을 내려요...
역으로 B 부족이 A 부족을 쳐서 전공을 세워도 중국에선 벼슬을 내리구요.
혹시라도 B 부족이 맘에 안드는 행동을 하면, A 부족으로 하여금(물자 지원도 하고) B 부족을 치도록 합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죠.

이라크의 후세인을 지원해서 이란을 치도록하고..
그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니까 바로 응징하고...
똑같죠?
(같은 종족은 아니지만...)


당나라의 장기적인 플랜은 이랬을겁니다.

말갈족(후에 여진), 연남생(연개소문 아들로 당나라에 귀순했죠?), 안동도호부
이렇게 남겨서 서로 다투게 할 생각이었던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신라가 여기서 빠져나갔고, 말갈은 후에 대조영에게 참패하고 발해가 건국되서
영화 중 최민식의 대사대로...
"이러먼 완전히 나가린데..." 가 되버린거죠.


하지만 그래도 중국은 굳건하게 변방 정책을 이어갑니다.
신라와 발해가 반목하도록 하죠.

신라와 발해가 전쟁을 벌이진 않았지만...
신라는 발해 때문에라도 당나라의 말을 잘듣게 되었고..
발해 역시 초창기 당나라와 싸우던걸 잊고, 당나라에 잘보이려고 하게 되죠.
그래서 신라는 북방과의 교역이 끝장 나버립니다.
발해는 신라와 교역을 안하려니까, 어쩔 수 없이 왜와 교역하게 되구요.
비좀와라 16-10-14 10:37
   
신라와 당의 관계는 서융과 동이의 관계 입니다.

은나라가 주나라에 멸망한 직후 은나라 유민들은 주나라에 협조하기 보단 재야에 묻히기를 택했습니다. 소위 정치라는 분야는 당시의 지배국인 주나라의 것이 되었기에 은나라 사람들은 상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상업이라는 말에서 상商은 상나라의 상에서 따온 말로 상업이란 상나라 사람들의 일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상나라는 은나라의 별칭이고요. 물론 상나라와 은나라가 다른다는 주장도 많이 있지만 여기선 일반적인 의견을 따르기로 합시다.

이 상나라 또는 은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았던 곳이 송나라 였는데 이 송나라가 초나라에 멸망 합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에서 춘추시대에 가장 상업이 발달된 곳이 송나라 이었고 이들이 초나라에 밀려 이동한 곳이 제나라와 노나라로 이후 저곳이 가장 상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다시 제나라가 노나라를 병탄한 후엔 제나라가 가장 상업이 발달된 부유한 곳이 되며 제나라는 춘추 전국시대에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는 것 입니다. 그에 반해서 주나라는 정치의 중심지가 되는 것 이고요.

몽골이 동아시아를 평정한 후에 수도를 두 곳에 둡니다. 하나는 지금의 북경 그리고 하나는 카라코룸으로 북경이 상업의 중심지 이고 카라코룸이 정치의 중심지가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대도는 가장 상업이 번창한 곳 이었습니다. 이 또한 은나라 동이와 주나라 서융의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입니다.

고려가 근세조선에게 망한 후에 고려 유민은 상업에 종사 합니다. 고려는 동이계가 되는 것이고 그 반면에 근세조선은 서융계의 국가 되는 것 입니다. 그럼 고려 유민의 중심지는 어디 일까요? 개성이라 생각 할 수 있으나 당시 유흥과 상업의 중심지는 지금의 평양 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 고려 유민의 중심지는 평양 입니다.

그리고 정치의 중심지인 한성은 당연히 서융의 종교인 유교의 중심지 이면서 근세조선의 수도가 되는 것 이고요. 그리고 이것을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로 대립하면 명나라는 상업과 돈의 나라이고 근세조선은 정치와 무력의 나라가 되는 것 입니다.

동아시아 국가명을 지울 때에는 자신의 근거지의 지명을 붙입니다. 여기서 명나라의 명은 중국 어디에도 없는 지명 입니다. 오히려 강원도를 명주라고 불렀으니 명나라의 본거지는 강원도라고 해도 되는 것이죠. 중국인들이 궁색해 지니 명나라는 마니교이 지원을 받아서 세운 왕조이고 이 것 때문에 명나라고 하였다는 하는데 그럼 명나라는 중국 한족의 국가가 아닌 마니교도가 세운 서융의 국가로 정복왕조가 되는 것 입니다.

강원도의 세력이 명나라를 설립했던 마니교도가 설립 했던 명나라는 중국 한족과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조선과 몽골에 더욱 더 친연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수도를 대해서 더 말하자면 미국의 동부 뉴욕은 금융의 중심지 이고 서부 워싱턴은 정치의 중심지 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은 꺼구로죠. 정치의 중심지가 동부 동경이고 상업의 중심지가 서부 오사카 입니다. 이런 구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또는 무언가가 왜곡 변조된 구도라 볼 수 있는 거지요.

아랫 글에서 속국을 말하면서 서양과 동양의 속국 개념이 다르다 말하는데 속국이란 개념이 춘추 전국시대에 생긴 것이고 이 개념을 서양이 받아 들인 것이라 둘의 개념이 다르지 않습니다. 헤게모니라는 패권주의 개념 역시 속국이나 종주권이란 개념이 생길 때인 춘추 전국시대에 생긴 것이고 이것을 서양이 받아 들입니다. 속국이나 패권주의 종주권이런 말들을 서양이 동아시아에서 배웠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에요.

시대나 가치관에 따라서 변했다고 하면은 이해가 되지만 아예 서로 다른 것 이었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신라와 당나라와의 관계역시 마찮가지라는 말이죠. 신라는 동이가 되는 것이고 당나라는 서융이 되는 관계를 맺는 것 입니다. 그래서 신라는 실리를 취하여 역사에 서라벌의 번영이 기록 될 만한 상업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고 당나라의 정치의 중심지가 되어서 명분을 취했던 것 입니다.

여기서 당나라가 신라와의 약조를 무시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취하려 들자 문무왕은 당나라에 무력시위를 하고 결국 둘은 전쟁을 해서 당나라가 집니다. 신라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려는 행위에 대해선 상대가 강대국이고 약소국이 할 것 없이 강경하게 대응합니다. 나당 전쟁의 시작점도 당나라가 한반도 지배야욕을 보이자 문무왕은 약속이행을 할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무력 퍼포먼스를 보이며 전쟁 불사의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의 우리 모습과 많이 다르지요.

적어도 신라는 지금의 한국이나 북한 보단 훨씬 강력하고 부유했던 국가 이었습니다. 지금이 우리가 신라를 비웃다는 것은 글쎄요...
가남 16-10-14 10:55
   
제 자신의 뿌리가 신라6촌에 있지만 어렸을적엔 신라를 아주 많이 싫어했다가 지금은 좋게 봅니다.
고구려 백제 가야도 다 좋아하고 소중하죠.
특히 선호하는 나라는 고려 ㅋㅋ
가남 16-10-14 10:58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163000/2008/07/021163000200807160719009.html

박노자의 친중반미적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신라에 대한 인식의 변천과정과 남북한이 바라보는 신라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볼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록도하억기 16-10-14 14:59
   
그래도 신라는 싫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가 망한것이 딱 두번있는데
삼국시대와 일제 시대입니다
모두다 그 근간의 뿌리가 신라이고 그 지역 기득권자들의 후손이란 사실엔 변함 없습니다
거기다 현대한국사회 60년을 독식하다 시피한 사람들이 친일정권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좋아한다면,, 뭐, 개인적으로는 멀리하고 싶네요
개독사기 16-10-14 15:16
   
다분히 신라의 관점에서 말하는것 같은데요.
고구려,백제,신라가 큰 동질감이 없다면 고구려 백제 유민들이 신라의 편에 서서 당나라와 싸울 이유가 없는거죠.
어차피 당나라나 신라나 적국이었으니까요.
나라를 망하게 한 두 원수들 중 하나를 위해 다시 싸워야 했을 유민들의 처절한 심정을 생각해 보면 유민들을 잘 구슬려서 당나라와 싸우게 했다고 신라를 추켜 세우는 것도 어처구니 없구요.
게다가 발해가 만들어 졌으니 된것 아니냐는 시각은 뭐...
내가 학창 시절에 널 많이 괴롭혔지만 니가 성공 했으니 된것 아니냐 같은 말도 안되는 소리죠.
     
흑요석 16-10-14 15:43
   
백제에겐 신라와 고구려가 원수지만 신라에겐 백제가, 당나라에겐 고구려가 원수였습니다. 합이 맞았으니 연합을 했죠.

혼자 힘으로 원수를 제거 못 하니 당나라의 힘을 빌린 거고요. 이게 왜 학창 시절 괴롭힘 비유와 비교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신라 입장에선 백제는 그냥 없어져야 할 원수였는데 이게 왜 신라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서요.

외세를 끌어들여서? 백제는 왜의 병력을 자주 이용했습니다. 신라도 그것 때문에 고생 많이 했고요.

백제 위덕왕 때는 백제가 수나라에게 연합해 고구려를 같이 치자고 제안했죠. 거절당했습니다만.

무슨 신라만 얍삽하고 외세의 힘을 빌리려 했다는 식으로 말하시는데 백제도 혼자 힘으로 안 되니 고구려를 치기 위해 수나라에게 도움 요청했었습니다;;

전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각자 스스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우리 고대의 역사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거기서 백제는 좋고 신라는 나쁘고, 고구려는 위대했고 누구는 아니고 이런 역사 관점은 유치하다고 생각해서요.
          
개독사기 16-10-14 17:27
   
신라가 외세를 끌어 들인것 자체를 욕하는게 아니죠.

당나라에 뒤통수 맞게 생긴 상황에서 스스로 극복하지 않고 어제까지 공격하던 유민들을 구슬려서 당나라에 대항하게 만든 염치 없는 짓을 비판하는 거고 그걸 자랑스러운 일 인양 말하는걸 어처구니 없어 하는거죠.

그리고 학창시절 괴롭힘은... 왕따가 괴롭힘을 당한거와 사회에서 성공한거 와는 관계 없으니 성공 했다고 일진이 가한 폭력이 정당화 되지 않는다는 뜻에서 한 소리죠.
같은 이유로 발해가 건국된건 신라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발해가 건국 된것 가지고 신라가 영토를 잃어 버린걸 옹호하지 말라는 거죠.
               
nopa 16-10-16 12:41
   
신라입장에서는 영토를 늘렸으면 늘렸지 잃어버린적이없죠 애초에 고구려와 신라는 한나라가 아니였는데
          
촐라롱콘 16-10-14 17:37
   
흑요석님 주장에 100% 공감합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는 고사하고 한 집안을 보더라도 같은 부모를 둔 동복형제 사이도

원수가 되면 제거해야 할 대상에 불과합니다. 특히 왕권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쟁투라 한다면......

조선 태종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에서는 이복형제들을, 그리고 2차 왕자의 난에서는

동복형제인 방간을 제거했는데(방간의 경우는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을때까지 유배지에

가둬놓았지요) 이 경우 원수가 된 피를 나눈 동복-이복 형제보다는 피한방울 안섞였지만

이방원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숙번, 조영무 같은 이들에게 수 백배는 더 동질감을 느끼

는 법입니다. 물론 이방원의 공신들 상당수도 나중에는 숙청되기는 했지만.....

이는 고구려-백제를 대상으로 연합했던 신라와 당나라도 나중에는 서로 척을 졌으니~~ 

한 집안을 보더라도 이러할진데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이 난 신라, 백제, 고구려인들에게

그까짓 말이 좀 통하고 주변 다른 민족들보다 서로간에 문화-언어적 동질성이 짙다고

자기를 잡아먹으려드는 상대에게 그냥 앉아서 잡아먹히란 말입니까....???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이 난 삼국 가운데 신라가 최종적으로 승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무슨 외세를 끌여들여 동족을 멸망시킨 원수 어쩌고저쩌고 하는 순진한 말들을

지껄이는지.......
가생이인 16-10-14 18:35
   
저시대에 한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까요???정복전쟁에 민족에 개념은 없었을듯한데요???그렇게 따지면 백제가 가장 못쓸짓을 한것이죠...왜에 문물을 전해줘 임진왜란  일제시대때 제대로 뒤통수 맞았으니...게다가 수백년간 조선을 노략질과 살육으로 괴롭혔음...
     
록도하억기 16-10-15 13:01
   
물타기 쩌십니다

역사 문헌에 삼국시대는 지금의 남북한처럼 단어는 틀린부분이 많았지만,

서로 의사소통은 가능할 정도로 서로 말이 통했고
고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파생되어온 것이라는것은 모두다 인지 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민족이란 개념이 없다는 님의 생각은 그저 님의 생각일뿐

남북한은 한민족이란 개념이 없어 6.25 전쟁을 벌인거겠네요

님의 주장도 좋지만,,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생각좀 하고 삽시다
닥생 16-10-15 18:06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좀 더 직접적으로는 김춘추가 개인적인 원한[백제의 공격에 딸이 죽음]을 갚으려고 동분서주하다가 얻어걸린 통일[?]을 하게 된 것임. 그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만주와 한반도에는 두 개의 국가가 각각 존재하고 있을 지도 모름. 중국의 국경선은 요하일지도 모르는...
최악의 경우에도 한반도는 먹히지 않고 살아남게 돼있음 지리적 여건상.

덧글 중 성씨 얘기 쓰신 분 있는 거 같은데. 신라 성씨 김,이,박,최,정에 해당하는 성을 가진 분들은 대부분 신라와 관계없는 분들입니다. 왜냐 하면 족보 대다수가 가짜이고 진짜인 경우도 혈통과 상관없이 족보에 편입된 경우도 많아서입니다. 박혁거세는 평생 경주에 살았던 사람이지 징기스칸처럼 수많은 여자를 임신시키고 다닌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후손이 현재 수백만 명이 넘게 남한에 살고 있을 리가 없어요. 그리고, 신라의 인구 비율이 백제보다 상당히 적었고요. 평민들도 고려초에 (몰락한)신라왕성을 따라서 마구 성을 갖다 붙이면서 구분이 무의미해졌어요.  때문에 성씨 가지고 신라의 후손 여부 가리는 거는 바보같은 짓입니다.
     
가남 16-10-15 21:45
   
웃기지마세요 갖다 붙이긴 뭘 막갖다붙여요.
우리나라 성씨중에서도 인구가 적고 6성중에서도 인구가 적은데
뭐하러 인구적은 성씨로 위조를 하나요?

저희도 오랜 세월 경주와 그인근에 있었고 고려때 일부가 순창으로 가고 거기서 또 일부가
개성으로 간게 전부고 일산엔 집성촌이 있었지만 신도시 개발하면서 없어졌고
명절때 선산가서 보는 사람들 다 친척이고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는데 막말하지 마세요.
닥생 16-10-15 22:47
   
덧글이 너무 길어져 죄송~. 20세기 초 조사에서 전체가구수의 1.9%만이 양반이었다는 의외의 기록이 있음.
참고로 인용 좀 하겠습니다. ---> 세계일보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3>
...지금까지 전해오는 최초의 족보는 1476년에 제작된 '안동권씨 성화보'이다....
따라서 15세기, 16세기 이전에는 족보다운 족보는 없었고 가계의 족도나 세계도만이 존재했었다....
그러므로 현재 내려오는 각 가문의 족보에서도 15세기 이전의 가계도는 그 실체에 대해 신빙성을 증명하기 쉽지 않다.
...임란 전까지 발행된 족보는 안동권, 문화류, 순흥안, 강릉김, 동래정 등 10개 성관 미만이며, 그 외 가첩 초보 형태로 출간된 것까지 합쳐도 대체로 30개 성관 안팎이다. 하지만 임란과 호란이 끝나고 17세기 18세기에 들어와 족보는 크게 늘어났다.

신라 말 고려 초나 고려 말 조선 초의 사회적 혼란기에는 신흥세력에 의해 새롭게 성씨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족보가 만들어진 조선 후기에는 성씨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명문귀족의 족보에 이어붙이거나 합보를 하는 경우가 주종을 이뤘다.

그런데 한국에서 40%가 넘는 무성 층에게 성을 갖도록 했더니 대부분이 김씨, 이씨, 박씨로 신고를 한 것이다. 결국 한 성씨(김씨)가 5000만 인구의 5분의 1이 되는 기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렇듯 일제의 신분질서 해방조치로서의 성씨 부여는 양반질서를 허물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거대씨족을 더욱 더 거대하게 만들어주는 역효과만 불러왔다.

다소 지루한 제 댓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karin123 16-10-17 21:22
   
신라, 자국 입장에서는 어쨌든 당과의 연합을 통한 통일은 그들에겐 신의 한수긴 했죠. 하지만 신라는 이전부터 몇번이나 통수를 쳤던 나라입니다. 장수왕이 평양천도하면서 나제동맹을 하여, 광개토때 구원받은 은혜를 그대로 원수로 갚았고, 나제동맹 끝에는 고구려가 평양 이남까지 신라땅을 용인해준다고 하고 북진하지 말라하자 곧장 백제 통수치고 한강유역을 점령합니다. 신라는 은혜를 모르는 나라였습니다.

고구려 내분 말인가요? 내분도 내분 나름입니다. 신라가 돕지 않았으면 고구려 어차피 내분으로 망했다라.. 글쎄요. 확실히 남생의 편이었던 신성 등이 무너지면서 부여성 및 많은 요동전선이 무너지고 신성구원가던 고구려 20만이 패퇴하긴 했지만 그 밑 요동이나 안시성 등등 많은 요동전선이 버티고 섰습니다. 그래서 당이 평양진공작전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고구려는 평양성에서 디팬스를 하였고, 이때 등장한게 20만의 신라군입니다. 신라군은 북으로 진격해서 그나마 군량미 충당하던 고구려 영토를 취하였고, 이때부터 고구려는 연남산등이 당나라에 항복하고 완전한 내분이 일어나 평양은 끝내 함락 당했습니다.

님 말대로 빠르거나 늦거나, 이런 식으로 따지면 신라가 없던 당군만 따져봤을때, 평양성에서 안시성 마냥 방어해냈을지 누가 압니까. 당나라도 신라가 반도에서 밀고 올라온다니까 전략상으로 용이하여 대군을 일으킨 거지...

나당전맹도 보면, 당나라가 제대로 했으면 어땠을까요. 당군은 매소성전투에서 패했으나, 서북변경을 위협하는 토번 때문에 더는 신라를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토번이 없었으면 신라는 어땠을까요?
뭐 저 또한 나당의 고구려멸망과 함께 신라의 삼국통일 아주 좋게 보고 있습니다. 그 덕에 늙고 쇠약하던 고구려가 가고 새로운 고구려 발해가 일어섰으니까요.
     
주예수 16-10-18 16:49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그 영토를 지금은 중국이 관리하고 있지만,
언젠간 우리가 반드시 수복해야 할 땅입니다.
그런데 고수 전쟁 때 말입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면 백제가 그 길잡이가 되어 주겠다고
백제에서 국지모(國智牟)를 보내 수나라 황제에게 그 향도를 맡겨 달라고 자처하며,
백제군과 수군의 협공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자고 꼬드겼던 일이 있군요.
이 때 고구려가 내분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당 침공 때 처럼 만약 고구려에 내분에 있었다면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겠군요.
만약 고구려가 고수 전쟁 때에도 내분이 격렬하여,
백제와 수나라 연합군의 고구려 침공으로 고구려가 멸망했더라면,
그럼, 백제는 민족을 배신하고 뒤통수 친 나라가 되는 건가요?
고구려의 막강한 힘 앞에 백제와 수나라의 연합작전이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에,
민족을 배신한 백제의 뒤통수 치기는 잊어버려야 하지만,
고구려의 내분으로 연합작전이 성공한 신라는 뒤통수 치는 달인의 나라가 되는 건가요?
그냥 궁금해서 문의드리는 겁니다.
딴지 거는 것 아닙니다.
마뽕마씽 16-10-18 15:38
   
삼국통일을 했다지만 영토는 백제 신라뿐이니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는 당이 먹고 백제는 신라가 먹자 뭐 이런꼴이지 찬란한문화?  무슨 문화가 찬란한건지는 기억에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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