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의 '지명점탈' 또는 '땅뜨기 신공'을 전통 용어로는 '교치(僑置)'라고 하지요.
태행산을 기준으로 산동(山東)과 산서(山西)가 나뉘고, ㄴ자로 꺾이는 황하 중류를 기준으로 하동(河東)과 하서(河西)가 나뉘고, 하남(河南)과 하북(河北)이 나뉩니다. 그런데 지금 지도를 보면 '하북'은 '하남'의 맞은편에 있는 게 아니라 '땅뜨기 신공'을 부려 태행산 동쪽에 가 있지요.
<사기집해>에서 정현이 말하기를 “순이 청주를 나누어 영주와 요동 및 요서로 삼았다(舜分靑州爲營州遼西及遼東)‘라고 했는데, 청주(靑州)는 옛 청구(靑邱)애서 유래된 지명으로 지금의 산동성에 해당되지요. 기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산동 산서는 요동 요서와 겹칩니다.
즉 지나 최초의 교치로 부터 지금까지의 지명점탈을 통시적으로 표현하면 '하북을 떼어다 산동에 놓고, 산동을 떼어다 요동에 놓고, 요동을 떼어다 만주에 갖다 놓았다'라고 말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