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패배한 것은..
이순신 함대에 의해 해상 보급로가 막힌게 가장 큰 패인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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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대 쌀 수송 능력 요약
-사람 1명 23.62kg~31.5kg
-말 1마리 64.2kg~141.23kg
-수레 1대 465.68kg
-표준형 조선 1척 6만8975kg (68.975톤)
-최대형 전선 1척 13만7950kg (137.95톤)
조선시대 표준형 해상 수송선박(1000석급 조선) 1척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사람 2189명 or 말 488마리 or 수레 148대 필요.
http://lyuen.egloos.com/5533955
출처: 번동아제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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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량형은 조선에 대략 2를 곱해주면 됩니다.
보통 현대의 밥 한공기를 100그램으로 잡으면
하루 3끼 x 365 일 잡아도 대략 100kg 수준의 쌀이 필요합니다.(109.5kg)
(10만명 x 110kg = 11000톤)
하지만, 이 쌀이란게 일종의 화폐개념으로 물물교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특히 반찬 구매를 위해 화폐로 쓰이기도 하기에,
병사들에게 있어선 이 쌀이 단순히 먹거리로 끝나는게 아니었죠.
게다가,
군대에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곡물을 먹어치우는 말들이 있기 때문에..
보급수요는 상당히 늘어나게 됩니다.
사람은 보통 밥한공기가 100그램(372칼로리) 정도인데..
이걸 3끼 먹으면 대략 1년에 100kg의 쌀을 먹게 됩니다.
하지만,반찬보다 쌀에 대한 의존이 강했던 옛날에는
야외활동을 병행하면서 성인남성 2천칼로리 수준의 식량을
제공하려면 매끼니 쌀 200그램 정도를 먹어줘야 되기에..
거의 1년에 1.5~2석 정도의 식량을 보급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1만석당 250명의 병력을 동원했는데..
사실상 그 영지의 세율을 50%로 잡으면 5000석으로 250명의 병력을 고용한 것이고,
평균으로 잡으면 대략 1인당 20석의 비용이 발생됩니다.
물론, 높은 직위의 사람이 받는 연봉과 말단 병사가 받는 녹봉은 엄청난 차이가 나긴 합니다만..
최소한 생존을 위해선, 일본군에게 대략 1~2석의 식량을 제공해야 되고..
한양의 일본군 10만대군에게 보급하기 위해선 대략 10~20만석의 쌀이 필요한데..
이걸 실어나르려면, 육로수송으로는
조선시대 표준형 해상 수송선박(1000석급 조선) 1척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사람 2189명 혹은 말 488마리 혹은 수레 148대 필요.
사람 4400명 x 100~200,
말 1000마리x 100~200배,
혹은 수레 300대 x 100~200대가 필요하게 됩니다.
즉, 인력은 44만~88만명 or 말 10~20만 마리 or 혹은 수레 3만~6만대..
이걸 1년에 1번 꼴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려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1달에 1번씩 12번에 나뉘어 올려보내려면,
36666명~73333명 or 말 8333~16666마리 or 수레 2500~500대가 필요)
그런데, 배에 실어서 보내면..
당시 일본의 수송선이 1천석을 실어나르는 대형 선박들도 있었기에..
200척만 올려보내면 끝이 납니다.
일본의 선박은 전쟁 초기 1천척에서 전쟁후기까지 포함하면 3천척을 건조한 것으로 나오는데..
앞의 인력과 말, 수레를 동원하는 것보다 이게 유지비용도 아주 싸게 먹히고, 대량수송이 가능하죠..
그런데 이 모든걸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이 막아버린 것입니다.
********************************************************************************* 한편 조선군은 제승방략을 기준으로 하루 3되의 보급을 받았다. 즉 하루의 쌀 보급량이 1.8리터라는 말. 기병은 전마에 따로 죽미 1대승을 보급. 짐말인 복마는 콩 3되를 보급받았다. 짐꾼은 보병기준 1명, 기병기준 2명이 동반되었고 종은 기병기준으로 2명이 쌀 4되, 콩 3되를 소모했다. (조선의 1승(=1되)는 0.58리터) 1곡(=석) = 10말(=두) =100 승(되) = 1000 합(홉) 중국은 1석이 10말인데. 조선은 1석이 15말 방량식= 조선시대 식량 소모율을 미리 적어둔 문헌 http://blog.daum.net/koreanmarinecorps/14580 물 1.8리터(무게=1.8kg) 쌀 1.8리터(무게=1.6Kg) 콩 1.8리터(무게=1.4Kg) 물 : 쌀 : 콩=1 : 0.88 : 0.77 ********************************************* 선조 31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10월 26일(임자) 2번째기사 비변사가 중국군에 소요될 군량을 계산하여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중국군은 모두 합쳐 4만 8천 5백 85명인데 장령(將領)·중군(中軍)·천파총(千把� �)은 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1일 양식이 1명당 1승(升) 5홉입니다. 말은 2만 6천 7백 필인데 장령 등의 말은 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1필당 1일에 콩 3승(1.8리터)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4만 8천 5백 85명의 군량이 하루에 대략 쌀 7백 20석이 들어 2개월이면 쌀 4만 3천 7백 30석이 들고 말 2만 6천 7백 필의 먹이는 하루에 대략 콩 8백 1석이 들어 2개월에 콩 4만 8천 60석이 듭니다. 본국과 중국의 되·말·석(石)은 크고 작은 많고 적은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10승을 1두(斗)로 치고 10두를 1석으로 치지만 본국에서는 15두를 1석으로 칩니다. 중국의 쌀 1승 5홉은 본국의 2승 7홉에(1.56리터) 준하고 콩 3승은 대략 5승 4홉(3.13리터)에 준합니다. 의주에서 평양까지 직로로 열 고을과 삼현(三縣) 등지의 여섯 고을에 받아들여 쌓아둔 곡식의 숫자를 조사해보니 쌀과 좁쌀이 모두 5만 1천 4백 88석이고 콩은 3만 3천 1백 27석이었습니다. 각 고을에 쌓아둔 것이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리저리 맞추면 군량은 50여 일을 지탱해낼 수 있겠으나 말먹이 콩은 한층 부족할 것 같습니다. 요사이 준비한 쌀과 콩의 숫자가 또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가가(假家)·시초(柴草)·도로·교량 등의 일에 대해 본사 낭청들을 보내어 아울러 검칙하고 오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http://egloos.zum.com/hyukjunseo/v/2997284 *********************************************
간단히 말해서 보병 1명은
하루에 쌀 0.8Kg~1.6Kg 가량 주면 끝인데 비해서,
기병은 기병 녹봉 (최소 보병이랑 동급 이상 쌀 1.6kg)
+ 말 먹일 풀 + 콩 (콩만 최소 3~4 Kg + 건초 한무더기 혹은 길가의 풀)
+ 짐꾼 먹여 살릴 식량(쌀 2Kg + 콩 1.4Kg 을 따로 지급해야 되서 보급소요가 훨씬 증가한다는 소리입니다.
(대략 인원 식량 5KG + 콩 3KG + 건초 ? 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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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에서 최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1일 쌀 소비량 300그램~600그램으로 계산했지만..
실제로 명나라군이나 조선군이 받는 녹봉 개념에서 이해하자면,
쌀의 지급량은 1일 800그램에서 많게는 1.6kg를 받아야 해서. 실제로는 거의 3배로 늘어납니다.
즉, 인력은 44만~88만명 or 말 10~20만 마리 or 혹은 수레 3만~6만대.. x 3
=> 인력 132만~ 264만명 or 말 30~60만 마리 or 수레 9~18만대. (연인원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이걸 부산에서 서울까지 보름정도 기간 동안 운송하고 다시 내려왔다 치면.. 30일이 걸리는데..
1년에 12번을 날랐다고 하면,
대략 11만~22만명의 인부, or 말 2만5천마리~5만마리 or 수레 7500~15000대가 필요합니다.
이런 육로수송을 대신하려면,
일본수군은 한양의 10만 일본군을 먹여살리기 위해,
1년에 1번은 반드시 600척의 대형 수송선에다
곡물을 가득 실어 보내야 되는 상황인데.. 그게 안되는 것이죠..
그래서, 일본군이 남해안으로 내려와서,
왜성을 쌓고 틀어박혀 보급 잘되는 경남지방에서 머물게 된것입니다.
본래는 점령지에서 세금을 걷으려고 했었지만,
조선식 세금(대략 20%~25%)에 비해서,
일본식 세금은 너무나도 가혹했고(50~60%)..
세금을 내지않으면 가차없이 목을 쳐버리는 관계로,
조선백성들이 봉기하여 의병활동을 벌이게 되자..
식량조달은 물론, 소부대로 쪼개져서 움직이면, 툭하면 매복한 의병한테 죽어나가는터라..
식량수송을 위해서 수십리마다 방어거점을 마련하고,
여기에 수비군을 두고, 식량수송을 담당하는 병력들을 최소 300인~500인 단위 이상으로,
주고 받고 하면서 보급수송을 계속해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충청도와 경상도를 담당한 일본군 병력들은
보급수송에 바빠서 전쟁 와중에도 거의 꼼짝도 못했던 것이고..
사실상 활약이 잘 안보입니다. 아니면 의병들에게 시달리는 역사 기록에 등장하던가요.
이런 일본으로써도 지옥같은 보급난이 일어난 게...
이순신 함대에 해상보급로가 막혔기 때문이었고..
일본 역시 전국시대 때엔 애시당초 바로 옆동네랑 싸우거나,
원거리 전쟁은 해로수송에 의존하던 나라라서,
이런 엄청난 대규모 육로수송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 삼국시대 때에도 수나라, 당나라가 대규모 수군을 편성했던 이유가 이 것 때문이고,
수군이 작살나고 난뒤로 보급난을 겪다가 패배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죠.
결론:
1.이순신 함대 때문에 일본군이 물러난게 맞습니다.
2.사실상 육로수송은 그 당시로서는 미친 짓이었고.. 해상수송은 불가능했습니다.
*주의..
저기 위에서 인력, 말, 수레로 표시된건...
각 운송수단 저만큼 필요하다는 소리지.. 인원 + 말 + 수레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즉, 육로수송에선 수레.. 즉, 달구지를 대량 활용하는게 그나마 수월한 보급수송이 가능하다는 소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