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실리적으로 중동국가와 교류, '중동 특수'를 누림
-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때그때 나타난 기회들을 잘 활용하여 극복해냈다. 예컨대 베트남 특수에 이어 1970년대에는 '중동 특수'가 경제개발 개혁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중동에 대한 진출은 3번째 외환위기인 1973년 10월에 발생한 제1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적자규모가 1974년에는 최초로 두 자리 수인 20억 달러를 넘어서며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진행된 것이었다.
1973년은 한국과 중동사이의 본격적인 경제교류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되었는데, 한국정부는 중동 각 산유국들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는 동시에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조달을 하기위해 중동의 건설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3년 10월 제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오일쇼크를 일으켰고, 그에 따라 유가가 4배로 급등하면서 이들 아랍 산유국들은 엄청난 '오일달러'를 축척하게 되었다.
이러한 막대한 오일달러와 구매력을 가진 중동시장은 한국의 가장 매력적인 상품 및 건설시장의 대상이 되면서 이슬람세계에 대한 지역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기존에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전환하여 실이익을 추구하고자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중동의 아랍국과들과 교류를 하며 적극적으로 중동의 특수를 위한 계획을 추진했다. 즉, 1973년 12월15일에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내기업들의 중동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또 권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73년 6월에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카이바, 알울라 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한 것을 비롯해서 토목, 건축 분야를 중심으로 중동 진출이 시작되었다. 특히 현대건설의 중동 진출은 괄목할 만했다. 현대건설은 1975년에 바레인의 아랍수리조선소 건설 수주를 시작으로, 197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9억 3,000만 달러에 수주하는 개가를 올렸다.
현대건설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중동에서 51억 달러가 넘는 외화를 벌어들였는데, 현대의 총매출 이익누계에서 해외건설이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또한 국가적 지원 속에서 중동 건설의 총 수주액은 1974년의 8,900만 달러에서 1975년에는 7억 5,100만 달러로 급격히 증가했고, 1977년에는 33억 8,7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1975년에는 전체 건설 수출액의 93%, 1977년에는 96%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1975~1979년 사이에 중동 건설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 수입은 총 205억 700만 달러였는데, 이는 총 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삼아 그동안 외화 보유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경제는 상당한 힘이 생기게 되었다.
30. 외국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켜 동반자로서 입지를 구축
-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에 외국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쳐 아군을 형성하고자 했다. 북한도 역시 그 시절에 아군을 만들고자 외교에 신경을 썼는데, 북한은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동반자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현명한 방법을 통해 외교를 진행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박정희 대통령의 외교는 일본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일본 이케다 수상과 1차 회담을 1961년 11월 11일 가져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 토의를 하고 이후 재산청구권과 평화선문제를 토의하기에 이른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과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회담을 가졌고, 후임인 존슨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국제의회연맹(IPU)에도 가입했으며, 서독도 방문하여 뤼브게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독일을 통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막대한 차관을 들여와 재정 1,350만 달러와 상업 2,625만 달러를 얻어냈다. 말레시이아와 월남, 동남아순방을 통한 태국과 말레이시아, 자유중국과도 교류했다. 또한 공산권과도 교류를 추진했으며, 서울에서는 제1차 아시아 태평양지구 각료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시아민족반공연맹 제12차 총회가 서울에서 개막하기도 했으며, 국제통신위성기구에 56번째로 가입했다. 이외에도 에티오피아와 교류했다.
주목할 것은 1973년 12월 15일에 이스라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을 발표하여 국익을 우선시하며 위기를 타개하고자 새롭고도 파격적인 외교를 시도했다는 것이며, 제3세계에 대한 외교활동도 역시 강화했다. 또한 아시아의원연맹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도 했고, 이러한 결과로 1979년 11월 30일에는 수교 국가가 무려 117개국으로 증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참고자료>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남덕우(국민대학교에서 정치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로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하다 1969년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경제관료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내며 1970년대 개발경제의 주역으로 일했다. 제14대 국무총리로서 14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1983년부터는 한국무역협회 회장,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한국무역센터를 건설하는 등 ‘무역 한국’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 상임위원,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회장, 동아시아경제연구원(API) 회장, 동북아경제포럼 한국위원회 위원장, 동서문화센터(EWC) 이사, 세계무역센터협회(WTCA)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으로서 대한민국 경제의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강만수(서울대 법학을 전공했으며, 미국의 뉴욕대에서 경제학석사를 받았다. 1970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발을 디딘 후 재무부 보험국장,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주미대사관 재무관, 국회 재무전문위원,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일했으며, 이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경제부처를 거치면서 때론 정책입안자로, 때론 정책결정자로 부가가치세부터 금융ㆍ부동산실명제, 보험ㆍ금융시장 개방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의 중요 정책들이 도입, 시행되는 현장에 참여했고,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서 IMF지원자금 협상과 금융감독ㆍ중앙은행제도 개편 등 금융구조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연구와 함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 김기형(초대 과학기술처 장관), 김상선(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김석준(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 김영섭(서울대 공과대학 객원교수), 금동화(전 KIST 원장), 나도선(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 전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노석균(영남대 교수, 과실련 공동대표), 박원훈(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 서정만(전 국립중앙과학관장), 임기철(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 전상근(전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 전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장), 정근모(전 과학기술처 장관), 정윤(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전 과학기술부 차관), 최영환(전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기술처 장관), 최외출(영남대 교수, 박정희리더십연구원장), 홍재학(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부장,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소장)
<스티브 잡스와 26인의 부자들(세계를 뒤흔든 27인의 부자들에게 배우는 돈 버는 기술)>, 이수광(대한민국 팩션의 대가로 1983년 <중앙일보>에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 부문, 미스터리클럽 제2회 독자상,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이수광은 오랫동안 조선시대 살인사건 기록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오랫동안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의 지혜를 책으로 보여주는 저술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CEO 역사에게 묻다>, 김경준(경영컨설팅 회사 딜로이트(Deloitte)의 전무로 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과 회사를 위한 '경영코칭' 과 시대를 읽는 경영코드들을 제시하는 작가이다. 그의 주 분야는 장기전략 수립 및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경쟁력 회복인데, 쌍용투자증권의 애널리스트 업무, 쌍용경제연구소, 쌍용정보통신을 거치며 컨설팅 업무에 경력을 쌓아왔다. 또한 각종 신문과 잡지에 컬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글로벌 프리즘’ 코너, KBS1라디오 '시사플러스'‘안방 MBA’와 울산MBC '이광현의 시사매거진' ‘재미있는 글로벌컨설팅’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알렸다)
<궁극의 문화기행(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 문화사, 이색박물관 편)>, 이용재(명지대학교 건축과 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공했고 건축전문출판사를 설립했다. 이후 건축 잡지사 편집장, 건축 현장의 감리를 역임했다. 이후 인터넷에 건축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해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모아『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를 출간하였다. 두 번째 저서로『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거예요』를 출간,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수십 개 언론에 조명을 받는다. 또『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을 출간하여 6개월 만에 1만 권을 판매하고 교보문고에서 팬 사인회도 열었으며, ‘KBS TV 책을 말하다’에도 출연하였다)
<박정희>, 김성진(서울중학, 고려대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이후 한국일보와 동양통신에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동양통신 워싱턴 특파원 때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를 현지 취재했으며 정치부장 겸 편집부국장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 문화공보부장관 등 요직에서 박 대통령을 9년 넘게 보좌했다. 유신시대에는 전통적 한미우호관계를 계속 돈독히 유지하고자 ‘한국미술 5천년 전시회’를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순회·개최했다. 뉴욕 전시 때에는 특히 한미정상회담을 아울러 개최하려고 비밀리에 기획하고 있었으나 10.26유고사태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인문학 콘서트3>, 이어령(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5ㆍ16에서 10ㆍ26까지)>, 조희연(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남가주대학교(USC)에서 한국학 객원교수와 영국 랑카스터대학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비판사회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이며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성공회대학교 통합대학원장과 민주주의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세기 이야기(1970년대,100년의 기록 100년의 교훈)>, 김정형(성균관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일보 편집국 조사부로 입사해 현재는 독자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역사 속의 오늘'이란 제목으로 조선일보(2002.12~2003.11)에 1년, 주간조선(2004.9~2006.8)에 2년 연재하고, CBS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방송전파(2006.6~7)를 탔다. 월간지 뉴스메이커에 '100년의 기록, 100년의 교훈'(2010.1~2011.12) 제목으로 2년 동안 연재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사 기자로 재직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올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제상식 충전소>, 최진기(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동부증권에서 근무했다. 입시학원인 메가스터디에서 사회탐구 영역을 강의하면서 전국 사회탐구 영역 점유율 1위를 기록했으며, 현재는 비타에듀 학원에서 그 명성과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 객원 교수, 한영회고·김포외고·명덕외고 논술특강 강사로 활동했다)
<지리 블로그(지구 환경 그리고 우리의 터전)>, 이민부(현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미 유타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지형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지역지리학회 부회장, 대한지리학회 홍보부장, 지리올림피아드 특별위원장, 대한지리학회 회장 및 육군사관학고 환경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상생의 경제학(더불어 성장하는 따뜻한 시장경제)>, 김선빈(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강성원(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김창욱(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박 준(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김갑수(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이동원(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채승병(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최희갑(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한 준(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대한민국 리더십을 말한다(한국형 리더십의 미래)>, 최익용(중동고등학교와 국민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무부대장, 연대장, 학군단장, 부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다. 군에 있는 동안 육군대학과 국방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정희 일화에서 신화까지>, 김인만(동화작가로 지은책으로는 제3회 동쪽나라문학상 수상작인 장편동화 <날개없는 천사의 노래>(1995)와, 박정희 테마에세이집 <임자, 막걸리 한잔 하세>(2007) 등이 있다. 1946년 인천에서 태어나 건국대 축산과를 중퇴했고, 출판사에서 오랜 세월 책을 만들다가 전업작가의 길을 고행하고 있다)
<이병철 거대한 신화를 꿈꾸다(삼성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작)>, 김찬웅(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홍보 업무 등을 거쳐 대기업 사보와 출판사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소설 쓰기를 좋아해 젊은 시절 몇 편의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 겸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기업을 살리는 9인의 경영학>, 이채윤(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문학과 창작 잡지에 소설이 당선된 뒤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민문학사 주간과 인터넷서점 BOOK365의 CEO를 역임했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했다)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 호사카 유우지(동경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1995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를 졸업, 또 동대학원에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를 졸업(정치학 박사)을 했다. 현재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있다.)
<이야기로 읽는 대한민국 경제사>, 석혜원(서울대학교 소비자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현재 메트로은행 서울지점 부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하영선(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교수이고 한국평화학회장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과 미국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이건희 스토리(생애와 리더십)>, 이경식(서울대 경영학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2(근현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지역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외대대학원지역학연구회
<WE CAN DO 박정희 리더십>, 박정희육영수연구원
<참고하면 좋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