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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10 11:45
[중국] 최초의 중원 침공한 발해 무왕 대무예
 글쓴이 : 예맥
조회 : 4,632  


[잃어버린 발해사를 찾아] <6> 무왕 대무예의 당나라 공격


"믿음 저버린 대국 응징하라" 웅대한 기개로 독립국 천명 
흑수말갈을 통해 발해 견제 
요동반도 발해 영역 증명 
해상과 육상으로 전면 공격
 
발해는 719년 대조영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대무예(大武藝)가 왕위를 이어 받아 제2대 무왕이 되었다. 대조영이 자식을 얼마나 두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록상으로 무왕이 된 대무예와 당나라 책봉에 대한 답방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대문예(大門藝)만이 확실하다. 이들의 어머니가 누구이며 어느 집안 출신인가 하는 점도 모른다.

제2대 무왕과 그 동생 대문예는 당나라 공격 문제를 놓고 뜻을 같이 하지 못하고 형제의 의를 끊게 된다. 이 비극은 사극 작가들의 '흥미'를 끄는 대목일 수 있다. 단순히 권력의 생리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그의 시호(諡號)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사적 업적을 많이 쌓은 왕이다. 그는 대조영의 외교 방향을 이어 받아 '인안(仁安)'이라는 독자적 연호도 사용하는 등 독립국의 면모를 내외에 천명하였다. 이러한 발해의 독자적 행동에 대해서 '신당서'는 '사사로이'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하였고 '사사로이' 연호를 사용하였다고 평하고 있다. 

당에 대한 무왕의 감정이 극히 나빴던 것은 아버지 대조영과 건국의 고통을 같이 했던 과정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는 이미 영주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당나라의 집요한 방해를 무릅쓰고 건국 길에 올랐다. 무왕은 737년에 죽었으며 발해 건국을 위해 영주에서 탈출한 지 40년이 지난 정도였다. 무왕이 60세에 사망했다면 20세 정도에 이미 그는 아버지 대조영과 할아버지 걸걸중상의 활동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발해와 당이 전쟁을 하게 된 계기는 당이 흑수말갈을 통해 발해를 견제하려 했던 사건에서 비롯한다. 그 내용은 '구당서'와 '신당서'에 자세하다. "개원 14년(726)에 흑수말갈이 사신을 보내와 조공하므로,현종(玄宗)이 그 땅을 흑수주(黑水州)로 삼아 장사(長史)라는 관리를 두고 통치케 하자" 무왕은 크게 격노하였다. "(무왕은)흑수가 우리 국경을 거쳐서 처음부터 당나라와 서로 통하였고,지난날 돌궐에게 토둔(吐屯)의 직책을 청할 적에도 모두 우리에게 먼저 알리고 함께 갔는데,이제 뜻밖에 바로 당에게 벼슬을 청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당과 공모를 하여 앞뒤로 우리를 치려는 것이다."고 하면서 친아우 대문예 및 그의 장인 임아(任雅)를 시켜 군대를 이끌고 가서 흑수를 치게 하였다. 

그러나 전에 일찌기 볼모로 당나라 서울에 갔다 온 대문예는 다음과 같이 당나라 공격을 반대하였다. "흑수가 당의 벼슬을 청하였다 하여 그를 바로 치고자 한다면 이것은 당을 저버리는 것이다. 당은 사람의 많음과 군사의 강함이 우리의 1만 배나 되는데,하루 아침에 원수를 맺는다면 다만 스스로 멸망을 부를 뿐이다. 지난날 고구려의 전성기에 강병 30여만으로 당과 맞서 복종하지 않다가,당병이 한번 덮치매 땅을 쓴 듯이 다 멸망하였다. 오늘날 발해의 인구가 고구려의 몇 분의 일도 못되는데,그런데도 당을 저버리려 하니,이 일은 결단코 옳지 못하다."고 대문예는 만류하였다. 그러나 무왕은 듣지 않았다.


대문예는 군사를 이끌고 국경에 이르렀을 적에 또 글을 올려 강하게 간했다. 그러자 무왕은 노하여 사촌 형 대일하(大壹夏)를 보내어 문예를 대신하게 하고 문예는 불러다 죽이려 하였다. 이에 문예가 그의 무리를 버리고 당나라로 도망하자 당 현종은 오히려 그를 좌효위장군으로 삼아 양국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무왕은 사신을 보내어 문예의 죄상을 피력하며 죽이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현종은 몰래 문예를 안서로 보내고 무왕에게는 영남으로 유배하였다고 거짓으로 알렸다. 하지만 내부 제보자를 통해 이 사실을 안 무왕은 당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대국은 남에게 신의를 보여야 하거늘 어찌 거짓을 일삼는단 말인가. 이제 들으니 문예가 영남으로 떠나지 않았다 한다. 청컨대 죽여주기 바란다."고 거듭 요구했다. 이로 말미암아 당은 누설자를 색출하여 좌천시키고 문예를 잠시 영남으로 보내고 무왕을 달랬다. 

그러나 무왕은 결국 당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732년에 그의 장수 장문휴(張文休)를 보내어 등주(登州,현 山東省 蓬萊)를 공격하면서 양국은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에 당 현종은 대문예를 유주(幽州)에 파견해 군사를 징발하여 발해군을 치게 하였다. 또 당나라에 묶고 있던 신라 김사란(金思蘭)에게도 신라 군사를 내어 발해의 남쪽 국경을 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신라는 "마침 산이 험하고 날씨가 추운데다 눈이 한길이나 내려서 병사들이 태반이나 얼어 죽어 전공(戰功)을 거두지 못한 채 돌아 왔다."고 전한다. 

전쟁의 결과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무왕이 전쟁으로 원한을 풀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몰래 동도(東都)에 사신을 보내 자객을 사서 천진교(天津橋) 남쪽에서 문예를 찔러 죽이려 했다. 하지만 실패하고 자객들은 모두 잡혀 죽었다고 한다. 무왕이 당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에 대한 깊은 원한과 주변의 돌궐과 거란도 당과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발해 무왕의 당나라에 대한 응징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발해의 당 공격은 해상과 육로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상 루트로는 압록강 하구에서 출발해 등주를 공격했고,육로로는 영주로 가는 길을 통해 거란과 가까운 마도산(馬都山)으로 내달아 당을 공격했다. 발해의 당 공격은 무왕 시기에 이미 요동반도가 발해 영역이지 않고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발해 역사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의미가 크다. 

한규철/경성대 사학과 교수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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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불타 13-04-10 11:46
   
Enter Key를 사용 하세요...ㅠㅠ
     
넌몰라도되 13-04-11 04:30
   
* 최초의 중원 침공한 발해 무왕 다무예  X
* 최초로 중원(을) 침공한 발해 무왕 다무예  O
* 최초의 중원침공, 발해 무왕 다무예  O
굿잡스 13-04-10 12:20
   
서토 최초 침공은 발해시대가 아닌데요 ㅋㅋ

이미 후한시절 모본태왕이고 아래 님이 올린 고수전쟁때 선제 공격으로 영양태왕의 영주 공격이고.

그외 거란 8대부족을 부용세력으로 두고 있던 고구려는 서토왕조가 말을 잘 안듣거나 하면

거란을 부려서 한번씩 치려 갔음.(이처럼 북방 호전적 유목민족까지도 휘하로 두면서 태왕으

로 군림하다 보니 이후 북방 순찰 중에 돌궐과 고구려 사신이 만나는 걸 수나라 군주가

보고 기겁해서 전쟁 준비에 돌입했던 것이고요. 뭐 애초에 고구려 건국 정신 자체가

다물 정신에 초기부터 한나라와 다이질 하고 싸우면서 컨 나라이니.)

이십오년 붐 '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에 침입하자 요동태수 '제융'이 은혜와 믿음으로 이에 구하니 모두 변방으로 돌아갔다.
二十五年春, <句驪>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 >以恩信招之, 皆復款塞.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後漢書 東夷列傳 高句麗)


2년(서기 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쳤으나, 요동태수 제융(祭)이 은혜와 신뢰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二年 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2)原 而遼東太3)守祭4)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2년(기원후 49년)
     
고프다 13-04-10 15:13
   
요동태수 '제융'이 은혜와 믿음으로 이에 구하니 모두 변방으로 돌아갔다.

=>요동태수 제융이 엄청 쳐발리고나서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었다는 말 같습니다.ㅋㅋㅋ

삼국사기는 그 기록을 고대로 가져온듯 하구요.

침입을 당했는데 은혜외 신뢰로 대우해서 화친했다는게 당최 뭔 개풀뜯어먹는 소린지 ㅋㅋㅋ

하여튼 짱께 사서들 참.. ㅎㅎㅎ

암만 봐도 한참 뚜드려 맞고 요구조건 다 들어주고 돌려보냈다는 소리 같음
          
굿잡스 13-04-10 22:48
   
선비족에게 조공바치는 후한. 선비족을 다스린 고구려

후한

후한(後漢, 25-220)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25-57)는 중국 남부와 월남의 북부를 다시 정복했다. 기원전 209년에 묵특의 지휘아래 유목제국을 수립한지 250여년이 지난 AD 47년, 흉노제국에 내란이 일어나 몽골초원 전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덕분에 요서 초원지대의 오환(烏桓)과 선비(鮮卑)는 제일 먼저 흉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실호기, 후한 명제(明帝, 57-75)는 전한 무제를 본받아 흉노를 다시 한번 통제해 보려 했다.

일찍이 AD 48년에 흉노제국이 남과 북으로 양분되자, 조정관료인 장궁(臧宮)은 흉노의 약세를 틈타 “고구려,” 오환, 및 선비와 연합하여 흉노를 공격하자고 주장했었다. 1 당시 광무제는 전쟁을 반대하는 자신의 신조를 강하게 피력했다. 49년, 광무제는 푸짐한 선물과 국경무역을 제공해 선비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명제가 즉위한 다음 해인 58년 이후에 후한 조정이 선비 부족장들에게 정기적으로 갖다 바친 금액은 년간 2억 7000만냥에 달했는데, 그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남흉노에게 바친 것의 세배에 달하 했다.


선비(鮮卑)는 고구려의 부용세력

부용(附庸)이란 원래 소국(小國) 그 자체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대국(大國)에 복속되어 있는 상황을 나타내기도 한다. 로마제국이 당시 해방 노예가 그들의 옛 주인인 자유민을 보호자(patronus)로 삼는 대신 노역 및 군역에 봉사하는 부용민(clientes) 제도를 제국의 피정복지 통치방식으로 채용했는데, 고구려와 선비의 관계도 이러한 보호-종속관계라는 것이다.

고구려의 지배집단은 전쟁을 주체적인 생존방식으로 인식하고 군사역량을 제고하는 데 주력하여 전사국가(戰士國家)화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세력에 대한 군사적 팽창정책을 관철시켜 나가면서 내부적인 통합으로 정치사회적 중앙집권화정책을 견지해갔던 것이다.

고구려는 이런 내외 정비를 통해 후대에 들어서 ‘전제적 군사국가’에서 탈피,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독자적 생존권을 확보한 하나의 제국(empire)을 성립한다. 고구려가 선비 등 흉노(흉노가 동서 및 남북으로 나뉘기 전의 흉노를 의미)에서 파생된 유목국들을 자신이 의도하는 작전에 수시로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와 피정복민이 부용 관계였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말갈 선비 거란 지두우(地豆于) 같은 이종족(異種族)에게 그들 본래의 공동체적 질서와 생산양식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세금을 받고, 특히 노역과 군역을 확보했다. 이를 공납적 수취관계(貢納的收取關係)에 기반한 속민제도(屬民制度) 또는 이종노예제(異種奴隸制)라고도 한다.


고구려제국은 복속된 기마민족들을 유효 적절하게 구사하였으므로 새롭게 탄생한 국가 수·당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수·당이 고구려와 혈투를 벌인 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북방에 산재한 흉노의 후예들과 연합하여 자신들을 공격할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수·당은 고구려와의 전투를 한-흉노간 전투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수나라 문제가 30만명을 동원하고도 참패했음에도 그의 아들 양제가 또 다시 고구려 침공에 매달린 것은 고구려가 거란과 말갈족을 지배하고 있는 동북아의 패자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양제가 고구려 침공을 결심하게 된 것은 607년 양제가 돌궐 가한의 막사를 방문했을 때 때마침 고구려 사자와 마주친 후 고구려와 돌궐이 연합하여 수나라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고구려와 부용세력 간의 연합을 방해하는 것이 양제로서는 급선무였다. 마침 고구려의 남하를 경계한 백제와 신라가 원조를 요청하는 등 침공 명분까지 만들어주자 수나라는 고구려에 대해 총력전을 펼친 것이다.

그러나 수나라는 고구려와 말갈 연합 세력에게 패퇴했고 당 태종의 공격 또한 무위로 돌아갔다


http://blog.daum.net/kankokuichi/11042599
          
천리마 13-04-11 16:46
   
중국의 역사기술 방식의 하나죠. 상대국역사는 간략하게, 자국역사는 자세히. 굴욕의 역사는 간략하게, 이긴역사는 자세히등.
굿잡스 13-04-10 12:23
   
그리고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계와 관계가 깊은 사기의 동호같은 세력등이고 상고시대에 보면 서토는 북방

이나 동이족 관련해서 내륙 깊숙히 활동하며 내내 쳐발랐습니다.

이러다 보니 내륙에 쳐박혀 동서남북 네개의 대륙을 마치 사해로 인식했던게

하한족의 실상임. 뭐 서토 실체하는 최초의 왕조인 상나라조차도 정확히 어떤 세력인지는

앞으로 더욱 연구가 되어야 한다지만 동북방에서 내려온 선진 이민족 정치 세력이고.
굿잡스 13-04-10 12:28
   
어디서 보면 무슨 울 나라가 남을 절~~대

침략하지 않고 평화만 지켜네 어쩌니 하는건 수천년 전쟁사에서

나올수 없는 궤변이며 전혀 맞지 않는 역사적 근거들임.

상대가 도발해 오는데 마냥 쳐앉아 있는다는 건 아예 병법 자체를 모르는 바보나 하는 거

죠. 그기에 무슨 900회의 외침 어쩌고 하는 헛소리도 기본 소수 양아치 놀이하던 해안가 왜

구들 약탈까지 다 합친 숫자이지 울 나라가 굵직한 웬만한 외세 대전은 거의 승리한

강한 전투민족이면서 문화대국의 나라임.

그냥 저런 소리는 일제 시대 들어오면서 마치 우리 민족을 피동적 그리

고 외세에 핍박만 받고 살아왔다는 식으로 각인 시킨 왜곡된 일제식민사관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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