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1-06-24 04:11
[한국사] (6-3) 후한서 군국지 검토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827  

■ 후한(後漢) 중심 양한(兩漢) 시대 오환(烏桓)의 활동


시대순

내용

BC 119, 한 무제가 곽거병(霍去病)을 막북으로 보내서 흉노의 동쪽을 격파하였는데, 당시 흉노에 복속돼 있던 오환을 上谷郡, 漁陽郡, 右北平郡, 遼西郡, 遼東郡塞外로 이주시켜 흉노를 감시하고 변방을 지키게 했다.

왕망(王莽)이 제위(帝位)를 찬탈한 후 흉노를 공격하고자 하여 12()의 군대를 일으켜 동역장(東域將) 엄우(嚴尤)에게 오환과 정령의 병사들을 지휘하여 대군(代郡)에 주둔하도록 하고 오환과 정령 병사들의 처자를 군현(郡縣)에 인질로 남겨두도록 하였는데 오환 사람들은 대군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주둔하고 쉬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차례 되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런데 왕망이 그들을 보내주려 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스스로 달아나거나 반란을 일으켰고, 원래 살던 곳에 돌아와서는 약탈하고 도적질하였다. 그래서 여러 군()에서는 그들이 억류해 놓았던 인질들을 모두 다 죽여 버렸다.

후한 광무제(光武帝) 초에 오환과 흉노는 연합하여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니, 대군 동쪽은 더욱 그 피해를 입었다. 5(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의 민서(民庶)들은 고통을 당하였고, 군현이 손상되고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유망(流亡)하기에 이르렀다.

광무제 건무(建武) 21(45)에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 에게 3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대군(代郡)의 오완관(五阮關)을 나가서 오환을 급습하도록 했으나 백여 급을 벤 후에 후퇴하다가 패배.

광무제 건무 22(46)에 오환이 흉노를 공격하여 격파하자 흉노는 북쪽으로 수천 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였고, 막남(漠南)의 땅은 비게 되었다. 이에 광무제는 폐백(幣帛)을 오환에게 뇌물로 주었다.

광무제 건무 25(49)上谷郡, 漁陽郡, 右北平郡, 遼西郡, 遼東屬國, 廣陽郡, 代郡, 雁門郡, 太原郡, 朔方郡 등지로 이주하여 거주.

후한 안제(安帝) 영초(永初) 3(109)에 어양오환(漁陽烏桓)과 우북평호(右北平胡) 천여 기()가 대군과 상곡군을 침입하여 노략질.

가을에 안문오환(鴈門烏桓) 의 솔중왕(率衆王) 무하(無何) 가 선비의 대인 구륜(丘倫) , 남흉노(南匈奴) 골도후(骨都侯)와 함께 모두 합하여 7천 기를 이끌고 오원군(五原郡)을 침입하여 약탈.

후한 순제(順帝) 양가(陽嘉) 4(135) 겨울에 오환이 운중군(雲中郡)에 침입하여 상인들의 우마차 천여 량()을 약탈.

후한 순제 영화(永和) 5(140)에 오환의 대인 아견(阿堅)과 강거(羌渠) 등이 남흉노(南匈奴) 좌부(左部)의 구룡왕(句龍王) 오사(吾斯)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도망가자, 중랑장(中郞將) 장탐(張耽)이 이들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참하니 나머지 무리들이 모두 항복.

후한 환제(桓帝) 영수(永壽) 년간(155~157)에 삭방오환(朔方烏桓)과 휴저도각(休著屠各)이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중랑장 장환(張奐)이 공격하여 평정.

후한 환제 연희(延熹) 9(166) 여름에 오환은 다시 선비 및 남흉노와 함께 변방의 9개 군을 침입하여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 장환이 이들을 토벌하자 모두 새외(塞外)로 달아났다.

후한 영제(靈帝) 중평(中平) 4(187)에 전직 중산 태수(中山太守) 장순(張純)이 배반하여 구력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이라 칭하며 마침내 여러 군에 있던 오환 무리들의 우두머리[元帥]가 되었고, 청주(靑州), 서주(徐州), 유주, 기주(冀州) 4()를 침입하여 노략질.

후한 영제 중평 5(188) 에 유우(劉虞)를 유주목(幽州牧) 으로 임명하여 오환의 침입을 막도록 하였는데 유우는 현상금을 걸어 장순의 목을 베니 북방의 변경(北州)이 안정됨.

후한 헌제(獻帝) 건안(建安 12(207), 조조의 오환(답돈) 정벌

                                          # 후한서(後漢書) 오환전(烏桓傳)/동북아역사넷 국역본 발췌 정리   



ⓒ 무쿠리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감방친구 21-06-24 04:25
   
오환과 선비의 활동영역과 성격은 훗날 해(고막해)와 거란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오환과 선비에게 흉노와 후한이 있었다면
해와 거란에게는 돌궐과 당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거주 영역을 보자면

오환은 지금의 시린궈런맹의 동남부, 커스커덩기, 장자커우시, 승덕시, 적봉시 일대였는데
이는 훗날 해(고막해)의 영역과 거의 일치하며,

선비는 그 초기에는 지금의 시라무룬허 북쪽에서 활동하다가
오환이 장성의 안쪽으로 옮겨가자 남쪽으로 이동하여 활동하여
훗날의 거란과 그 영역 및 활동 양상이 거의 일치합니다.
 
 
Total 72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95 [한국사] 稍役屬真番 이하 해석에 대해서 (6) 감방친구 07-27 784
694 [한국사] 우리 고대사의 주 활동영역을 연산 이남에서 찾는 사… (8) 감방친구 07-26 854
693 [한국사] 한문에서 注와 入의 대구 표현 해석에 대해서 (7) 감방친구 07-25 837
692 [한국사] 예와 왜가 같은 말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2) 감방친구 07-24 874
691 [한국사] 역사 논문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문제적 인상 (8) 감방친구 07-24 775
690 [한국사] 한강 대학생 의문사와 역사연구 (20) 감방친구 07-24 843
689 [한국사] 정부의 가야사 복원 사업에 대해서 (50) 감방친구 07-23 1271
688 [한국사] 촐라롱콘님의 연나라 관련 주장에 대해서 (2) 감방친구 07-18 1108
687 [한국사] 예/맥/한/이의 개념도 (16) 감방친구 07-17 1377
686 [한국사] 우리 조상들이 만주/한반도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2) 감방친구 07-16 1016
685 [한국사] 한사군에 대해서 가장 압도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27) 감방친구 07-13 1334
684 [한국사]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역사를 탐구하는 곳에서 (9) 감방친구 07-13 841
683 [한국사] 연구자들이 논문을 공개하고 책을 펴내는 이유는 (4) 감방친구 07-11 851
682 [한국사] 사람들이 책 자체를 잘 안 읽습니다 (16) 감방친구 07-11 814
681 [한국사]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있네요 (25) 감방친구 07-11 885
680 [한국사] 우리 고대사 공부를 위한 루트 (15) 감방친구 07-10 1023
679 [한국사] 150여 년 전 경복궁 분뇨 정화조(ft.수세식 변소) (5) 감방친구 07-08 1646
678 [한국사] 조승연의 탐구생활에 나온 돌궐 영역 지도 (74) 감방친구 07-07 1788
677 [한국사] 난로회(煖爐會)는 조선 고유의 풍습인가? (13) 감방친구 07-03 1768
676 [한국사] 숙신이 살던 데는요 (6) 감방친구 06-27 1812
675 [한국사] 만주원류고의 '주신' (12) 감방친구 06-26 1428
674 [한국사] (6-6) 후한서 군국지 검토 (4) 감방친구 06-25 929
673 [한국사] (6-5) 후한서 군국지 검토 감방친구 06-24 782
672 [한국사] (6-4) 후한서 군국지 검토 (3) 감방친구 06-24 860
671 [한국사] (6-3) 후한서 군국지 검토 (1) 감방친구 06-24 828
670 [한국사] 마한에 대한 가설 (6) 감방친구 06-24 1024
669 [한국사] (6-2) 후한서 군국지 검토 감방친구 06-20 938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