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1-06-20 17:46
[한국사] (6-2) 후한서 군국지 검토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937  

■ 전한 원시(元始) 연간(서기 1~5)과 후한 영화(永和) 5년(140)의 요서군·요동군·현도군·낙랑군(·요동속국)의 총 규모 변화 

 

전한

(서기 1~5)#

후한

(서기 140)

증감율

총 현수

60

46

- 14

가구수

236,444

141,394

- 40%

인구수

1,253,427

463,641

- 63%


※후한의 가구수와 인구수에서 요동속국 6개 현은 해당 정보가 미상이므로 포함되지 않았다.
# 청(淸)의 고증학자 전대흔(錢大昕)은 서기전 8~9년 정보로 고증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기술된, 서기 140년 이전까지의 고구려의 대양한(對兩漢) 군사활동

연도

고구려 왕

내용

기원전 9

유리왕 11

선비(鮮卑)를 복속시킴

서기 12

유리왕 31

한나라 변방 약탈.

요서(遼西) 대윤(大尹) 전담(田譚) 살해.

 

왕망은 엄우(嚴尤)를 보내서 고구려 연비(延丕), 또는 구려후(句麗侯) ()를 유인하여 살해하고 고구려왕을 하구려후(下句麗侯)로 격하.

서기 14

유리왕 33

서쪽으로 양맥(梁貊)을 정벌해 멸망시키고 계속 진군하여 한나라 현도군 고구려현을 습격하여 빼앗음.

서기 28

대무신왕 11

한나라 요동(遼東) 태수(太守)가 쳐들어옴.

서기 37

대무신왕 20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킴.

서기 44

대무신왕 27

한나라 광무제가 병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서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만듦. 이에 살수(薩水)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됨.

서기 47

민중왕 4

잠우락부(蠶友落部)의 대가(大家) 대승(戴升) 1만여 가()가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투항. 후한서(後漢書)에는 대가 대승 등 만여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서기 49

모본왕 2

한나라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접하므로 다시 화친.

서기 55

태조대왕 3

요서(遼西)10 개의 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의 침략에 대비.

서기 56

태조대왕 4

동옥저(東沃沮)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음.

 

국경을 개척하여 (영토가) 동으로는 창해(滄海), 남으로는 살수(薩水)에 이름.

서기 105

태조대왕 53

봄 정월, 한나라 요동(漢遼東)에 장수를 보내 6 개 현을 약탈. 요동태수 경기(耿夔)가 군사를 출동시켜 대항한 까닭에 패배함.

 

가을 9, 요동태수 경기가 맥인(貊人)을 격파. (이 때까지 계속 한나라 요동을 수시로 약탈했다는 말)

서기 111

태조대왕 59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현도(玄菟)에 속하기를 요구. 또는 예맥(穢貊)과 함께 현도를 공격.

서기 118

태조대왕 66

예맥과 함께 한나라 현도를 습격하여 화려성(華麗城)을 공격.

서기 121

태조대왕 69

, 한나라 유주(幽州) 자사 풍환(馮煥), 현도 태수 요광(姚光), 요동 태수 채풍(蔡風)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침략해서 예맥의 우두머리를 쳐죽이고 병마와 재물을 모두 빼앗음.

 

고구려는 임금의 아우 수성(遂成)을 보내 병사 2천여 명을 거느리고 풍환, 요광 등을 역습하게 하였는데. 수성이 기만전술을 쓰며 몰래 군사 3천 명을 보내 현도, 요동의 두 군을 공격하여 그 성곽을 불사르고 2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음.

 

여름 4, 임금은 선비(鮮卑) 8천 명과 함께 요대현(遼隧縣)을 공격. 요동 태수 채풍이 병사를 거느리고 신창(新昌)에 나와 싸우다가 죽음.

 

12, 임금이 마한(馬韓)과 예맥의 1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아가 현도성을 포위하였으나 부여의 왕자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병사 2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한나라를 구원한 까닭에 고구려가 패배.

서기 122

태조대왕 70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입하였으나 부여왕이 병사를 보내 요동을 구원하고 고구려를 격파.



■ 후한(後漢) 당시 고구려의 영역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과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접하여 있다. 
땅은 방 2천리인데,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으며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산다. 
高句驪,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地方二千里, 多大山深谷, 人隨而爲居. 
《후한서·고구려전》



■ 방 2천 리에 해당하는 역사상 국가들

국명

시대

출전

()

BC 4세기 말 전국시대

사기·소진열전

()

BC 4세기 말 전국시대

사기·소진열전

()

BC 4세기 말 전국시대

사기·소진열전

()

BC 4세기 말 전국시대

사기·소진열전

부여(夫餘)

AD 2세기 경

후한서·부여전

고구려(高句驪)

AD 2세기 경

후한서·고구려전



 

ⓒ 무쿠리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Total 72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95 [한국사] 稍役屬真番 이하 해석에 대해서 (6) 감방친구 07-27 780
694 [한국사] 우리 고대사의 주 활동영역을 연산 이남에서 찾는 사… (8) 감방친구 07-26 851
693 [한국사] 한문에서 注와 入의 대구 표현 해석에 대해서 (7) 감방친구 07-25 835
692 [한국사] 예와 왜가 같은 말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2) 감방친구 07-24 873
691 [한국사] 역사 논문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문제적 인상 (8) 감방친구 07-24 773
690 [한국사] 한강 대학생 의문사와 역사연구 (20) 감방친구 07-24 842
689 [한국사] 정부의 가야사 복원 사업에 대해서 (50) 감방친구 07-23 1270
688 [한국사] 촐라롱콘님의 연나라 관련 주장에 대해서 (2) 감방친구 07-18 1107
687 [한국사] 예/맥/한/이의 개념도 (16) 감방친구 07-17 1376
686 [한국사] 우리 조상들이 만주/한반도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2) 감방친구 07-16 1013
685 [한국사] 한사군에 대해서 가장 압도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27) 감방친구 07-13 1332
684 [한국사]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역사를 탐구하는 곳에서 (9) 감방친구 07-13 841
683 [한국사] 연구자들이 논문을 공개하고 책을 펴내는 이유는 (4) 감방친구 07-11 848
682 [한국사] 사람들이 책 자체를 잘 안 읽습니다 (16) 감방친구 07-11 813
681 [한국사]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있네요 (25) 감방친구 07-11 882
680 [한국사] 우리 고대사 공부를 위한 루트 (15) 감방친구 07-10 1021
679 [한국사] 150여 년 전 경복궁 분뇨 정화조(ft.수세식 변소) (5) 감방친구 07-08 1642
678 [한국사] 조승연의 탐구생활에 나온 돌궐 영역 지도 (74) 감방친구 07-07 1786
677 [한국사] 난로회(煖爐會)는 조선 고유의 풍습인가? (13) 감방친구 07-03 1765
676 [한국사] 숙신이 살던 데는요 (6) 감방친구 06-27 1810
675 [한국사] 만주원류고의 '주신' (12) 감방친구 06-26 1426
674 [한국사] (6-6) 후한서 군국지 검토 (4) 감방친구 06-25 926
673 [한국사] (6-5) 후한서 군국지 검토 감방친구 06-24 781
672 [한국사] (6-4) 후한서 군국지 검토 (3) 감방친구 06-24 859
671 [한국사] (6-3) 후한서 군국지 검토 (1) 감방친구 06-24 826
670 [한국사] 마한에 대한 가설 (6) 감방친구 06-24 1023
669 [한국사] (6-2) 후한서 군국지 검토 감방친구 06-20 938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