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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27 01:23
[한국사] 고려는 여성상위 시대
 글쓴이 : 꼬꼬동아리
조회 : 1,661  

고려시대는 여성의 위치가 남성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높았다고 합니다.
고려사회는 일부일처사회인데 고려말 몽고의 영향으로 일부 관인층에는
일부다처제의 경향이 있었구요.
고려시대의 혼인제도는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결혼식은 처가에서 하고 일정기간 남편이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고려시대의 재산상속은 아들. 딸 차별없이 균분상속과 함께 의무도 균등했다고 합니다.
여성이라도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인정되고 보호되었습니다.
또 재산권행사가 독립적으로 보장되었으며 부모봉양과 부모제사등 자녀들이
 똑같이 행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사 상속은 윤행이라 하여
 아들·딸이 돌아가며 부모의 제사를 모셨습니다.

또 고려시대에는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웠으며 여성도 호주가 되었습니다.
조선초기에 정도전은 당시의 여성들이 여가 중심의 혼인제도에 힘입어
남편에게 교만한 자세를 갖는다고 비난한 바 있는데요,
이는 고려이래 조선초기까지 유행하던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인제도는 유교적 사회 윤리와 배치되어 친영제도(親迎制度)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 되었습니다. 친영제도는 신랑이 신부를 맞아 데려온다는
육례의 마지막 예식입니다.

태종은 “우리의 혼인제도가 결혼하면 남편이 부인집에
거주하여 웃음거리가 되니 고금의 제도를 참작하여 제도를 정하라”고 하였답니다.
고려 시대는 조금 있다 살펴보겠지만 여권이 굉장히 높았어요.
실제로 원나라의 일부다처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박유라는 관리가 왕에게
일부다처제를 해보자고 건의를 했습니다. 근데 그 이후로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갔다는 거 아녜요.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난 여자들에게 맞아 죽X까 봐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10271&cid=47322&categoryId=47322
 
고려는 공식적으로 일부일처제입니다. 단, 황제는 자식을 많이 두어야 했기에 예외였습니다.
태조 왕건의 경우 29명의 부인을 들인 상태에서 일부일처제를 공표하였습니다.
황제 말고는 모두 일부일처제였고 황자들은 황제에게 허락을 받으면 첩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고려는 처가살이혼이 일반적인 추세였습니다. 여자들은 시집가서 시댁에서 산다고 하잖아요?
이것의 반대말입니다. 남자가 장가들어서 부인의 집에서 사는 겁니다. 부인의 집에서
장인 장모 모시고 살고 있는데 첩 둔다 하면 좋아할 부인이 있을까요?
그래서 일부일처제가 될 수 있었던 거죠).
황후도 최대 5명까지 둘 수 있었습니다
(들인 순서대로 제 1비, 제 2비 등 서열의 차이만 있을뿐 정실부인이었죠).
 
그러던 것이 원나라 간섭기(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이후에 일부다처제가 되지요.
이 시기의 왕들은 원나라에 충성하라는 의미로 앞에 충성 충자가 붙습니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 이때에도 법제적으로는 일부일처제였습니다)
충렬왕 시기에 원나라에 갔다온 박유라는 자가 원나라에 다녀와 보니 첩이라는 것을 당당히 두고 있는
 원나라가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우리도 원나라를 본받아 첩을 두자 라고 한 거죠
(본받을 게 따로 있지 그런 걸 본받아야겠습니까?)
 
이 축첩제가 뭐냐 하면 첩을 인정하자는 겁니다. 제도적으로 첩을 인정하자는 거죠.
고려는 일부일처제일뿐만 아니라 첩을 두는 축첩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박유가 우리도 첩을 두자 했을 때 여자들이 들고 일어났겠죠. 뭐? 첩? 첩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무튼 고려는 원나라 간섭기를 지나 일부다처제로 변화합니다만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일부일처제였습니다. 첩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였죠. 그 후 조선이 등장하면서 일부다첩제가 보편화되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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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동아리 17-06-27 01:52
   
단 권력은 남성들이 쥐고 있었는데 무신정권 이였죠 전쟁이 많으니 남성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형국 이였죠
mymiky 17-06-27 05:28
   
고려의 경우에도 첩이 존재합니다.
어느 시대나 높은 신분의 남자들은 첩이 있었습니다.

단. 정실부인같은 경우 동등한 가문에서 데리고 온 여자이기 때문에
만만히 대할수 없는건 있습니다.

고려시대 귀족남자들은 두집살림 세집살림 가능합니다.
처가에 살기 때문에 첩 못둔다?

우리전통 결혼은 처가에서 첫째.또는 둘째 자식 낳을때까진 처가생활하는거지
그렇다고 영원히 처가에 사는게 아닙니다.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또는 첩은 따로 저택주고 논밭주고 분가시킵니다.
남자가 왔다갔다 하면 됩니다.

귀족과 평민들은 달라요.
경제력만 확실하다면 여러명 거느리고 삽니다.

박유는 일반(평민) 남자들에게도 첩들이는걸 국가적으로 허용하자고
 인구 늘리자고 했다가 시장의 평민 아낙들에게까지 욕들었던 겁니다.

어차피. 상류층들 세계는 다릅니다.
그들에겐 아내 이외에도 축첩제가 엄연히 있고
그게 이상한 일도 아니였습니다.

여자쪽 가문이 잘 나가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귀족이 평민여자나 기생과 맺어지는건 평등한 결혼이 아닙니다.

귀족여인들과 혼인하고 그 여인들 역시 귀족이면 모두 정실입니다.
이성계의 한씨부인. 경처 강씨부인 (신덕왕후) 이야기 유명하죠.

최씨정권에 최우는 서자인 최항에게 물려줍니다.
최항도 역시 서자인 최의에게 물려줬고요.

이들의 모친은 기녀출신 이였습니다.

고려왕실은 황후를 5명만 둔다고 했는데. 그렇게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왕건이 29명이 최다기록이고 모두 호족들의 딸이였습니다

우왕만 해도 부인이 9명인가 ? 그래요.
귀족딸들은 정실이고 3명은 기생 출신 후궁입니다.
mymiky 17-06-27 05:48
   
또한. 고려는 이혼이 자유롭다는데.. 조선보다 자유로운건 맞아요.

단. 그게 여성의 인권이 높아서가 아닙니다.

여자가 우리남편이 맘에 안들어 자유롭게 이혼하는 경우보다
현실적으로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팽하는 경우가 많고
억울해도 하소연할 때가 없었습니다.

봉건시대에 이혼이 자유로워봤자
대다수 여자에겐 별로 메리트가 없습니다.

 이 같은 경우를 막고자
조선은 3불거 조항을 만든겁니다.

.조강지처 버리면 안되고 시부모 제사 올려주는 부인은 내치면 안되고.. 뭐 그런 내용입니다.

여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경제생활을 하게 된 것은 현대에 와서 입니다.
오래된게 아닙니다.

고려라해서 여자들이 경제적 독립체들은 아닙니다.
남편이 농사짓고 아내가 내조하고 애 키우는 건 동서고금 마찬가지 입니다.

고려는 과부가 왕과 재혼은 가능합니다.
왕이 그 여자가 미인이고 본인 마음에 들면요.

하지만 역으로
왕실에서 쫒긴 폐비들이 다른 남자와 재혼 할수는 없습니다.
왕이 손된 여인을 누가 감히 새 아내로 맞겠습니까?

고려왕들은 여자가 자기맘에 들면
남의 집 유부녀들도 데려오거나
왕이 직접 찾아가서
간음했습니다.

조선은 연산군?빼고 그런 왕은 희박했죠.

조선의 과부재혼 금지는
양반사족 계급 여자들에게 행해지는거지.
평민 여자는 해당하지 않아요..

농사짓고 해야하는데. 노동력은 중요합니다.
평민들은 실제로 과부되면 먹고 살려고 재혼 많이 했습니다.

조선후기에 와서야 양반부터 서민들까지 정조지키면 열녀라고 하고 했지만..

조선후기때도 평민여자가 재혼하는게 엄연히 불법은 아닙니다.
걍.. 주변에 손가락질 받는 쪽팔림만 참으면..
청천 17-06-27 13:25
   
여성의 지위는 임진왜란 전후로 나뉜다고 들었습니다.
임란 전에 위인들을 보면 외가에서 자란 분들이 많습니다.
장가간다란말...장인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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