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크코트
이 글은 삼전도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 목적이 있다. 전에 올렸던 글들에 대한 보충설명이다. 글의 요점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삼전도에서 인조가 받은 옷은 밍크코트이다.
2. 삼전도에서 인조가 받은 밍크코트는 선물이다.
3. 삼전도에서 황제로 임명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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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에서 청태종이 인조에게 옷을 주었는데, 이것을 조선의 복식이 청나라의 복식을 따라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으로 예속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어떻게 해야 이렇게 정반대의 해석을 할 수 있을까.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복식이 바뀌기는 하였나?
인조가 받아 입은 옷은, 청태종이 감사의 뜻으로 인조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그 날 삼전도에서는 청태종의 즉위식이 열렸고, 인조가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한 것에 대해, 청태종이 인조와 그 일행에게 감사의 뜻으로 밍크코트를 선물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모든 사람들이 삼전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분명히, 동국은 부모이고 중국은 자식이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하는 것이 사대(事大)이고, 자식이 훌륭하게 장성하는 것이 중화(中華)이다. 한국사의 왜곡이 얼마나 심한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모르겠다. 동방(東方)의 뜻도 모르고 중외의 뜻도 모르며, 사대와 중화의 뜻도 모르고 있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이 글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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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국인들이 삼전도에서 받아 입었던 옷에 대해, 승정원일기 등에서 무엇이라 하였는지 알아보자.
승정원일기에서는 초피구(貂皮裘), 초구(貂裘)라 하였고, 실록에서는 초구(貂裘)라 하였고, 청실록에서는 흑초포투(黑貂袍套), 흑초피투(黑貂皮套), 초피투(貂皮套)라 하였다. 초피구와 초구, 초포투와 초피투가 서로 같은 것이지만 기록하는 과정에서 조금 다르게 기록된 것인지, 아니면 분명 나름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황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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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貂) : 족제빗과의 동물인 담비를 말하고, 서양식으로는 밍크에 해당한다. 담비와 밍크가 생물학적으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생김새가 비슷하고 털가죽을 고급 의복의 재료로 사용하는 등의 공통점이 있다.
구(裘) : 짐승의 털가죽으로 안을 댄 옷인데, 갖옷(가죽옷)이라 한다. 쉽게 말해서 털옷이다.
포(袍) : 도포, 두루마기 등의 겉옷을 말한다.
투(套) :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머리에 쓰는 모자를 말한다.
초구(貂裘) :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겉옷을 말하는데, 오늘날의 밍크코트와 같다.
흑초포투(黑貂袍套) : 검은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도포와 모자를 말한다. 오늘날의 밍크코트와 밍크모자라 할 수 있다. 인조에게 주었다.
흑초피투(黑貂皮套) : 검은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겉옷과 모자를 말한다. 빈궁과 인평대군에게 주었다.
초피투(貂皮套) :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겉옷과 모자를 말한다. 검은담비의 가죽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검은담비가 다른 색의 담비 보다 더 고급으로 취급되는 것 같다. 김류 등의 대신(大臣)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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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 따르면 인조가 1벌, 인평대군이 1벌, 삼공(三公)이 각 1벌, 오경(五卿)이 각 1벌, 오승지(五承旨)가 각 1벌 등, 총 15벌을 받았다. 실록에서는 인평대군이 빠져 있어, 총 14벌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청실록에서는 왕비(?빈궁)에게도 1벌을 준 것으로 되어 있어, 일기와 비교하면 총 16벌을 받은 것이 된다. 인조에게는 흑초포투를 주었는데, 포(袍)는 보통의 도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인 인조가 입게 되므로 용포가 된다. 동국에서는 초구라 기록하여 임금이 받은 것과 다른 사람이 받은 것을 구분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청나라에서는 인조가 받은 것을 (용)포라 하여 구분하고 있다. 또, 같은 왕족이라도 왕비와 인평대군은 임금이 아니므로 피(皮)라 하였고, 왕족이 검정 밍크코트인 흑초피투를 받은 것에 비해 대신들은 그냥 초피투를 받았다.
세자와 봉림대군은 받지 못했는데, 인질로서 청태종을 따라 청나라에 가기 때문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왕족과 주요 대신 모두가 받은 것은, 분명히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으로서, 현대식 표현으로 밍크코트이다. 청태종이 어떤 목적으로 주었던,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옷의 재료는 담비의 가죽이고,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털옷과 털모자로서, 밍크코트가 분명하다.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이 명확하다.
2.
인조 일행이 받은 옷은 선물로 받은 것인가? 아니면, 누구의 말대로 동국의 복식을 청나라의 복식에 맞추는 행위인가?
지금처럼 양식을 하는 것도 아닌 옛날에는, 담비가죽을 얻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귀한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을 15벌이나 준 것이다. 선물로 주었다는 것은, 다른 것 다 놔두고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정황상, 만약 그날 인조 일행이 더 있었다면 옷을 더 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큰마음을 먹고 선물을 한 것이다.
동물보호가 일상화되기 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밍크코트는 부귀의 상징이었다. 밍크코트가 보온성이 좋은 것도 있지만, 희소성이 높아 부귀의 상징이 되었고, 특히 상류층의 선물용으로는 최고의 품목이었다. 밍크코트라는 단어가 외국어이기도 하고 한창 서양문화에 동화되는 시기이기도 하여, 부귀의 상징인 밍크코트는 서양문화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삼전도의 일을 살펴보니 밍크코트에 대한 동경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밍크코트는 예나 지금이나 부귀의 상징이고, 선물로 밍크코트를 줄 때에는 최고의 예를 표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물로 받은 것이 맞다’라는 명확한 증거를, 일기와 실록에서 찾아보자. 실록의 이날 기사는 일기를 바탕으로 편찬한 것이라 내용이 동일하다. 일기의 내용이 더 세세한 것은 있으나, 실록은 글자나 단어 등을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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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已龍骨大等, 持貂皮裘出來, 以皇帝言傳曰, 此物當初欲爲相贈而持來, 今見本國衣制, 與此不同, 非强使着之也, 只欲表情而已。上受而着之, 入庭伏謝
잠시 후 용골대 등이 초피구(貂皮裘)를 가지고 나와 황제의 말로 전하기를,
“이 물건은 당초에 주고자 해서 가져왔는데, 지금 보니 본국의 의복 제도가 이와 같지가 않다. 감히 억지로 입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리(情理)를 표하고자 할 뿐이다.”
하니, 상이 받아서 입고 뜰에 들어가 엎드려 사례하였다.
<승정원일기>
龍胡等又將貂裘而來, 傳汗言曰: "此物, 當初意欲相贈而持來。 今見本國衣制不同, 非敢强使着之也, 只表情意而已。" 上受而着之, 入庭展謝
용골대 등이 또 초구를 가지고 와서 한의 말을 전하기를,
"이 물건은 당초 주려는 생각으로 가져 왔는데, 이제 본국의 의복 제도를 보니 같지 않다. 따라서 감히 억지로 착용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의(情意)를 표할 뿐이다."
하니, 상이 받아서 입고 뜰에 들어가 사례하였다.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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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선물할 때는, 옷을 받는 사람이 입으라고 선물하고, 가능하다면 옷 입은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원한다. 받는 사람도 입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가능한 입은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선물 받은 옷을 구석에 쳐 박아두고 썩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즉, 선물로 옷을 주는 것은 강제로 옷을 입게 하는 것과 같고, 선물로 옷을 받는 것은 억지로 옷을 입어야만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주고받는 사람의 신분고하를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해당되고, 동서고금이 동일하다. 그런데, 준비한 옷에 하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선물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선물을 안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하자가 있는 옷이라도 일단 선물로 주면서, 양해를 구하는 말로서 ‘옷에 하자가 있으니 억지로 입지는 말고, 내 마음만 받아 주면 된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같은 상황이 일기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즉, 인조 일행이 받은 옷은 선물로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 물건은 당초 주려는 생각으로 가져 왔는데, 이제 본국의 의복 제도를 보니 같지 않다. 따라서 감히 억지로 착용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의(情意)를 표할 뿐이다."
동국과 청나라의 복식은 많이 다르다. 인조 일행에게 준 밍크코트는 당연하겠지만 청나라 복식으로 만들어졌다. 청태종은 나름 성의를 가지고 귀한 밍크코트를 준비하였는데, 미처 거기까지는 살피지 못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했어야 하는 일이다. 아무튼, 옷을 주려는 생각으로 가져 왔다는 것은, 입게 하려고 가져왔다는 말로서, 선물로 준다는 뜻이다. 본국의 의복 제도와 같지 않다는 것은, 옷에 하자가 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선물에 하자가 있으니 억지로 입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상증(相贈)이라 하였는데, 상증이 국어사전 등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贈은 기증(寄贈)하다, 증여(贈與)하다 등으로 쓰이는 ‘주다’를 뜻하는 글자이고 相은 ‘서로’를 뜻하는 글자이므로, 相贈은 ‘서로 주다’는 뜻이 되고, 나아가서는 ‘서로 주고받다’는 뜻을 가진 관용어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서로 주다, 서로 주고받다’는 친분을 나누는 행위이다. 따라서, 相贈을 요즘말로 바꾸면 ‘선물하다’라는 말이 된다.
강제로 입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다. 청나라 복식 제도를 동국에 강요한 것이 절대 아니다. 청태종이 밍크코트를 준 것은 명확하게 선물이다. 그리고, 인조가 밍크코트를 착용한 이유는, 선물을 준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 입은 것이다. 전쟁에서 패했다는 상황이 압박한 것도 있겠지만, 인조가 밍크코트를 입은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 입은 것이 명확하다. 속마음이야 쫙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싫은 티를 못 내고 입은 것이겠지만, 밍크코트를 입은 명분은 선물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명확하다.
밍크코트를 받은 사람은 왕족인 인조와 인평대군 등을 제외하고, 대신들 13명이 더 있었다. 청실록에 따르면, 대신들이 받은 밍크코트는 왕족이 받은 검정 밍크코트가 아니다. 아마도, 검정색의 밍크코트가 더 귀하게 여겨진 것 같다. 밍크코트를 주는 데에도 신분이나 직위에 따라 차별을 두고 있다. 인조와 인평대군 등의 왕족이 순서대로 먼저 받고 나서, 삼공(삼정승), 오경(육조판서), 오승지(육승지) 등의 13명이 차례로 받았다. 대신들이 받을 때의 상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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謂之曰, 奉主上, 勤勞於山城, 故敢以拜贈耳。大君以下受賜之人, 亦皆入庭伏謝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상을 모시고 산성에서 애썼기 때문에 감히 이것을 주는 것이다.”
하자, 대군 이하의 하사받은 사람들 또한 모두들 뜰에 들어가 엎드려 사례하였다.
<승정원일기>
謂之曰: "奉主上, 勤勞於山城, 故以此爲贈耳。" 受賜者皆伏謝於庭
말하기를,
"주상을 모시고 산성에서 수고했기 때문에 이것을 주는 것이다."
하였다. 하사(下賜)를 받은 이들이 모두 뜰에 엎드려 사례하였다.
<조선왕조실록>
賜李倧黑貂袍套雕鞍馬賜王妃及第三子李㴭黑貂皮套大臣金流土等各賞貂皮套李倧率眾謝恩行兩跪六叩頭禮畢
이종에게 흑초포투와 독수리 안장을 얹은 말을 주었고, 왕비와 셋째 아들 이묘까지 흑초피투를 주었고, 대신 김류 -토 등에게 각각 초피투를 상으로 주었다. 이종이 무리를 이끌고 은혜에 감사하는 양궤육고두례를 행하고 마쳤다.
<청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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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이 밍크코트를 받은 이유는 상(賞)이다. 청실록에는 명확하게 賞이라 기록되어 있고, 실록 등에서는 근로(勤勞)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근로하였다는 것은 수고하였다, 잘하였다는 뜻으로서, 근로한 대가로 밍크코트를 받은 것이므로 상으로 받았다는 뜻이 된다. 즉, 세 기록 모두 대신들이 받은 밍크코트는 상이라고 기록한 것이 된다. 상으로 밍크코트를 준 것은 호의(好意)로 선물(膳物)을 주는 것일 뿐, 복식을 청나로 제도로 바꾸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말 그대로 상품(賞品)일 뿐이다.
청태종과 인조 일행의 속마음이 각각 어떠하였는가에 관계없이, 이 날 삼전도에서 청태종이 인조 일행에게 준 밍크코트는 선물이다. 청태종이 진심으로 주는 것인지, 아니면 예의상 어쩔 수 없이 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청태종이 주는 밍크코트는 선물로 주는 것이 명확하다.
3.
청태종이 인조 일행에게 밍크코트를 선물로 주었는데, 무슨 이유로 주었던 것일까? 진심으로 주는 것인지 예의상 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명분상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먼저, 선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선물은 호의(好意)로 하는 것이지 악의(惡意)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선물의 목적은 상대방과 친분을 갖기 위해서 또는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이다. 그 외 다른 목적으로 주는 물건은 선물이 아니다. 잘 보이기 위해서나, 무엇인가 이득을 얻어내기 위해서 주는 것도 선물이라 할 수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뇌물이다.
청태종이 인조 일행에게 준 밍크코트는 분명히 선물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과연 청태종이 인조 일행에게 선물을 줄 상황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기존의 지식에 의하면, 인조는 전쟁에 져서 항복을 하러 삼전도에 왔다. 폐위되어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나느냐 마느냐의 위기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연하지만, 청태종이 요구하는 대로 뭐든지 따라야 할 입장이었다. 선물을 준다면 받을 수는 있겠으나, 선물을 주는 이유를 인조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태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인조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며, 황제를 거역한 반역자이다. 이 날의 상황이 이러한데, 청태종이 인조 일행에게 귀한 밍크코트를 선물한다는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는가?
억지로 이유를 생각해보면, (1)인조가 항복한 것이 고마워서 선물한 것이거나, (2)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선물한 것이다. 아니면, (3)인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나, (4)인조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선물을 준 것이 된다. (5)또는, 항복하는 굴욕을 당한 인조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 외 다른 이유는 생각하기 어렵다.
(1) 항복한 것이 고마워서 선물한 것인가? 인조는 군사를 일으키게 만든 전범이라, 청태종이 미워하면 미워했지 고마워할 일이 없다. 오히려, 목숨까지도 뺏길 수 있는 상황에서 자리보존까지 하였기에, 인조가 은혜를 입은 것이며, 청태종의 은혜에 고마워할 일이다. 즉, 항복을 받아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선물을 줄 사람은 인조이다. 만약, 스스로 귀속하는 것이라면 환영하는 의미로 선물을 줄 수도 있으나, 힘들여서 강제로 귀속시키는 것이라, 화를 내지 않고 용서해주는 것만도 다행이다. 따라서, 항복한 것이 고마워서 선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2)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선물한 것인가? 이 날 이후로 두 나라가 한 집안이 되었으니, 싸운 것은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는 잘 지내자는 뜻으로 선물할 수 있다. 그런데, 궁지에 몰아 항복하는 굴욕을 맛보게 한 것은 그렇다 쳐도, 왕자들을 인질로 삼고 수많은 백성을 잡아가는 것은 계속 진행형인데,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선물을 준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구나, 겨우 밍크코트 몇 벌에 두 나라가 서로 친해질 수 있다고, 청태종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청태종은 정말 바보이다. 실제로, 청나라는 호란 이후 계속해서 감시와 간섭을 하는 등, 조선에 대해 불신하고 있었고, 조선 역시 진심으로 따르지 않아, 두 나라가 실질적으로 친해지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대신들이 밍크코트를 받은 이유는 분명히 상(賞)이다. 따라서,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선물한 것이 아니다.
(3) 인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선물한 것인가? 이것은 더 이상 생각하고 말 것이 없다. 전쟁에서 이긴 청태종은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인조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오히려, 눈치를 살필 사람은 인조이다. 따라서, 인조에게 잘 보이려고 선물한 것이 아니다.
(4) 인조에게서 얻어낼 무엇이 있어서 선물한 것인가? 전쟁에 이겨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선물을 통해서 얻어낼 것이 따로 있지 않다. 설령, 선물로서 얻어낼 것이 있다 하여도, 겨우 밍크코트 몇 벌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냥 요구하면 될 일이다. 따라서, 인조에게서 무엇을 받아내기 위해서 선물한 것이 아니다.
(5) 참담한 인조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인가? 이것 역시 생각하고 말 것이 없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참담하게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다. 설령, 불가피하게 참담한 일을 겪게 하였고,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 하여도, 밍크코트 한 벌로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밍크코트를 주는 청태종이나 밍크코트를 받는 인조나 상식이하의 수준을 가진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도, 밍크코트는 10여일 이전에 준비한 것인데, 이미 며칠 전에 참담한 마음을 달래려고 준비하고서, 오늘 참담한 일을 겪게 하였다는 것인데, 청태종이 그런 친절을 베풀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패자에게 그러한 배려를 미리 계산하여 친절을 베푸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따라서, 인조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선물한 것이 아니다.
인조 일행이 밍크코트를 받은 것은 분명히 선물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청태종이 선물을 할 이유가 없다. 기존의 역사지식으로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강단학계는 인조 일행이 밍크코트를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복식제도가 청나라의 복식제도에 예속되는 것이라 해석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학자도 생기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분명히 인조 일행은 밍크코트를 선물로 받았다.
그렇다면, 청태종은 왜 인조 일행에게 밍크코트를 선물로 준 것인가?
먼저, 대신들이 선물을 받은 이유를 살펴보자. 청실록에서는 상(賞)으로 받는 것이라 하였고, 상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주상을 모시고 산성에서 수고했기 때문에 이것을 주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역사적 지식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앞뒤 사정 다 자르고 이 구절만 놓고 생각하면, 청태종에게 인조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고, 그 인조를 산성에서 모셨던 신하들의 노고를 칭찬한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자식이 객지에서 하숙을 할 때, 비록 돈을 내는 것이지만, 그 하숙집 주인에게 자식을 잘 돌봐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과 같다. 또, 부부싸움 끝에 아내가 집을 나가 친구 집에 머물다가, 남편과 화해를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의 친구에게 아내를 잘 돌봐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과 같다. 이 구절만 놓고 보면, 청태종에게 인조는 예전부터 소중한 사람이었고, 잠시 다툼이 있었다가 화해를 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역사적 상황을 대입하고 나서도 인조는 청태종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나? 기존의 지식에 의하면, 청태종에게 인조는 적(敵)이었으며, 황제를 거스르는 반적(叛賊)에 불과하였다. 이제까지 따르지 않던 자를 힘으로 따르게 하였고, 그 수하들에게도 죄를 묻고 용서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청실록에 따르면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상대가 적이라면, 상대가 전쟁 중에 자멸하기를 바랄 수도 있고, 항복 후에는 적장과 그 수하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이다. 즉, 적장이 잘 지냈기를 바라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죄를 묻고 용서해준 후에, 전쟁 중에 적장을 잘 모셨다고 하여 그 부하들에게 상을 주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위로하거나 달래기 위해 선물하는 것이 아닌, 적장을 잘 모신 것에 대해 상(賞)을 주었다.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적장, 그 적장을 잘 모셨다고 상을 주는, 적장이 잘 지냈기를 바라는 일이 생긴 것이다.
억지를 부려 생각하면, 청태종에게 인조는 자신의 신하가 될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그 인조를 잘 모셨던 사람들에게 상을 준 것이다. 그러나, 인조가 항복을 하고 나서 청태종의 신하가 된 것이지만, 인조의 신하들도 청태종의 신하가 된 것이다. 모두가 내 신하인데, 신하가 신하를 잘 모셨다고 상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분명히, 신하들도 청태종에게 죄를 지었고 용서를 받았다. 인조가 청태종에게 죄를 지었고, 그 인조를 모시고 청태종에게 대항한 신하들도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죄를 짓는 인조를 모셨던 것에 대해서 상을 주었다. 청태종이 인조의 신하들에게 상을 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은, 기존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즉, 강단학계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 되며,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과는 다르게, 청태종은 인조를 적으로 보지 않고 소중한 존재로 보았다. 자신의 뜻에 따르게 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지만, 죽여 없애야 할 원수로 보지는 않은 것이다. 조선이 청나라를 적(賊), 노적(奴賊), 반적(叛賊)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왜 인조를 소중하게 여겼는가?
인조의 신분이 청태종의 신분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을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하는 예식인 유신(維新)을 행하고,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한 것이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태종이 삼전도까지 직접 온 목적은, 천지개벽의 천제(天祭)를 참관하고, 황제즉위식을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인조가 청태종보다 신분이 낮았다면, ‘이 물건은 당초에 주고자 해서 ~ 정리(情理)를 표하고자 할 뿐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주거나, ‘앞으로 잘 하라’라는 등의 말로써 주었을 것이다. 인조의 눈치나 불편을 살필 이유가 전혀 없다. 신하들에게 줄 때는 의제(衣制)에 맞지 않는 옷을 주면서도, 상으로 주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큰 선심을 쓰듯 주었다. 즉, 인조의 신분 등급이 더 높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병자호란은 청태종이 친정(親征)을 한 것이 아니다. 청태종은 부하 장수들이 열어 놓은 길을 뒤따라, 최소 14벌 이상의 밍크코트를 가지고 왔다. 이 날 삼전도에는 김류의 농간 등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신하들이 많았는데, 정황상 신하들이 더 많았다면 밍크코트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심양에서 한양까지 최소 열흘은 걸렸을 것이므로, 밍크코트를 선물하려는 준비를 오래 전부터, 어쩌면 병자호란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태종이 밍크코트를 선물한 것은 특정한 목적으로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이 되며, 즉위식을 열어준 보답으로 준비한 것이 된다.
카톨릭 국가의 즉위식이 평상시에는 추기경의 찬례로 열리지만, 직접 바티칸에 방문하여 교황의 찬례로 즉위식을 거행한다면, 그것처럼 영광되고 자랑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즉, 청태종이 삼전도에 직접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난 후, 연회도 끝이 난 후, 비공식적으로 용골대 등을 통하여 밍크코트를 전달하여 준 것은, 즉위식에 대한 보답이다.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듯이, 그 어떤 이유도 선물을 준 이유가 될 수 없다. 즉위식을 열어준 것이라면, 전쟁의 참혹함이라던지 인질로 잡혀 간다던지 등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선물을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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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종 스스로 자신의 군사(軍事)를 의병(義兵)이라 하였고, 승전비나 은덕비가 아닌 공덕비를 세웠으므로, 하늘에 죄를 지어 종사가 무너질 위험에 놓인 인조에게, 종사를 보존시켜준 공을 세웠으므로 재조지공(再造之功)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병자호란의 명분이다.
분명히, 이 날 삼전도에서는 인조가 개천의 제례와 벽지의 제례를 행하였고, 청태종의 즉위식을 위해 인조가 조현하여 예신을 하고 찬례를 하였다. 물론, 청죄의 예식도 행하였다. 그러나, 하늘에 청죄를 하였지 청태종에게 청죄를 한 것이 아니다. 청태종에게 청죄를 한 것은 신하들이며, 인조는 청태종에게 신하로써 절을 한 적이 없다. 밍크코트를 받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으나, 그것은 맞절의 형식이었음이 틀림없다. 공식적인 절을 한 번도 하지 않다가, 옷 한 벌을 받고 땅에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인조의 술상 등급을 낮췄는데도 청태종의 술상과 같은 모양이었다는 것은, 인조가 동방의 교황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동국이 동방의 바티칸이고 동국의 임금이 교황이었다는 사실, 그 동국의 임금에게서 즉위식을 거행하기 위해 청태종은 삼전도에 직접 왔고, 즉위식을 열어준 보답으로 인조 일행에게 밍크코트를 선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