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신라의 입장에서
신라 지배층이 살아남기 위해 당과 연합한것이
살아남기 위한 묘수 고육지책이었음은 인정합니다.
다만 제가 고구려가 아닌 신라의 통일
바꿔말하면 신라가 당과의 군사동맹을 결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킨것이
가장 큰 아쉬운 대목은
고구려의 멸망으로인해
중국의 한족과 구별되는 동이족의 독자적 천하관이
무너져버렸다는데 있습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고구려는 시종일관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적 천하관을 고수해왔습니다.
중원에 통일왕조가 들어서 주변세계에 일원적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은게 당시 세계대전이나 다름없는 규모의
고수 고당전쟁의 원인이 된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죠.
아무튼 고구려는 근 백년에 달하는 오랜시기동안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원의 침략을 멸망직전까지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입장에선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던
한수이남세력이 당과 동시에 고구려를 공격함으로써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고 맙니다.
만일 신라가 당과 군사연합을 이루지 않았다면
분명히 역사는 달라졌을것이라 봅니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고구려가 당시에 패망하지 않고 좀 더 지속하거나
이후 왕조가 바뀌었다하더라도
요하 동쪽의 세계는 변함없이
중원 및 초원세력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동방세계로서 유지될 가능성이 컸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라는 당과 대동강이남 영역에 대한 지분을 약속받았지만
이후 그 약속 이행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결정적으로 고구려 멸망이후 우리민족은
중국을 중심으로한 세계에 편입되버리죠.
그러나 고구려가 건재했던 시절
특히 장수왕 시절에는
472년 무렵 백제의 개로왕이 북위의 황제에게
고구려의 배후를 쳐달라는 표문을 올리?지만
북위측이 고구려에 사절을 파견하여
백제와 고구려의 상황에 대한 조사를 하려 시도하나
당시 장수왕은 이들 사신이 국경에 입국하는것 자체를
완강히 막아 돌려보내버립니다. 그리고 정확히 3년후
백제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과 왕족들을 아차산에서
참수해버리죠.
여기서 북위사신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고구려가 당시 중원세력에게
요하 건너 이쪽세계는 우리 고구려의 천하라는것을
명백히하는 행위이고
한성을 함락시킨것도 백제는 우리의 속국인데
고구려의 천하에 외부세력을 끌어들인데 대한 응징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