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대한 모든 의문을 풀어 드립니다.
단 하나의 의문, 한글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PREP화법으로 설명합니다.
Point ===============
1.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기호이다.
- 훈민정음은 중국어(문자)를 통일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한국어를 표기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문자(한자)의 발음을 쉽게 표기함으로써, 자음을 정립하여 중국어를 통일하는 것이 훈민정음의 목적입니다.
2. 훈민정음은 언문(한글)으로 만들었다.
- 우리가 지금 한글이라 부르는 것은 훈민정음이 아니라 언문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최소 고려 때부터, 이미 언문이 한창 잘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본국(동국, 한반도)의 언문을 한자의 발음기호로 사용한 것이 훈민정음입니다. 언문27자에 ‘여린히흫’을 추가하여 28자로 만든 것이 훈민정음입니다.
3. 훈민정음은 중국(China)에 반포했다.
- 언문을 이용한 세 가지 정책은 모두 중국에서 시행했습니다. 이두를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 한문서적을 언해하는 것,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는 것(훈민정음) 등의 세 가지 정책은 모두 중국에서 시행했습니다.
Reason ===============
=> 중국은 천하의 중심에 자리한 나라입니다. 그 중국의 천자가 구주를 다스립니다. 그리고, 구주의 바깥인 외국(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 등)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지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존의 지식에서는, 우리 동국도 외국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동국은 외국이 아닙니다. 동국은 천제의 나라로서 곧 ‘하늘나라’입니다. 구주는 중국이 다스리지만, 동국은 중국과 외국을 모두 다스립니다.
=> 한국(동국)과 중국은 이웃이 아닙니다. 한국과 중국은 가족입니다. 누가 누구의 속국이니, 강대국과 약소국이니 등의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동국이 부모이고 중국이 자식입니다. 동아시아는 ‘동방(천하) = 동국 + 중국 + 외국’입니다. 중국은 장남이고 외국은 차남과 같습니다. 중국은 본처의 자식이고 외국은 첩의 자식과 같습니다. 동국은 회장실이고 중국은 사장실이며 구주는 본사이고 외국은 지점이나 하청업체에 해당합니다.
=> 사대모화의 사대는 요즘말로 ‘부국강병’이고 모화는 ‘복지국가’입니다. 즉, 동국이 정성들여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고 꾸준히 중국의 제도를 꽃피운다는 말입니다. 사대교린의 뜻은 ‘정성들여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고 외국은 가까이 둔다’는 말입니다. 본처의 자식은 열심히 교육시키고 첩의 자식은 먹이고 입히기만 한다는 뜻입니다.
=> 미연방(미국)과 비교하겠습니다. 미연방은 동방입니다. 미본토는 구주입니다. 워싱턴DC는 동국입니다. 뉴욕은 중국입니다. 화와이는 일본입니다. 알래스카는 몽고입니다. 일제가 한반도를 점령한 것은 화와이가 워싱턴DC를 점령한 것과 같습니다. 동방과 미연방이 다른 것은, 동방은 중국이 구주를 다스리지만 미연방은 뉴욕이 미본토를 다스리지 않고 뉴욕주만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와 행정에 한해서만 그렇지, 경제와 문화에서는 뉴욕이 미연방이라는 월드(천하)의 중국임에 틀림없습니다.
=> 따라서, 동국에서 훈민정음(동국정운, 홍무정운역훈 등)을 만들어 중국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설총이 이두를 중국에 시행하고, 제왕운기를 중국인(몽고인)이 읽게 하고, 용비어천가를 중국인(한인)이 읽게 하고, 동의보감을 중국과 외국에 내려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동국의 책무입니다.
=> 중국어(문자)는 동방의 공용어로서 인공어입니다. 한국어(언어諺語)는 동방의 자연어입니다. 중국의 언어는 방언이라 하며 동국의 언어는 리어라 합니다(방언리어). 훈민정음을 만든 명분이 담긴 훈민정음서문의 내용을 풀이하면,
‘동국의 언어 발음과 중국의 언어 발음이 달라지고 문자(중국어)의 발음도 동국과 중국이 서로 잘 맞지 않아, 중국사신이 세종과의 면담에서 자신의 뜻을 말(음성언어, 언어와 문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자가 많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용어인 문자의 음을 표기하기 위한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
입니다.
=> 세종이 한자의 발음을 더 쉽게 표기하기 위하여 궁리한 결과, 동국에서 이미 고려 때부터 잘 사용되고 있었던 언문27자에 '여린히흫'을 추가하여 28자로 만든 것이 훈민정음입니다. 즉, 훈민정음 책은 한자발음표기법이며 28자는 한자발음기호입니다. 그리고, 동국정운 등의 운서를 본격적으로 발간하면서 28자만으로는 한자의 발음을 완전하게 표기할 수 없어서, '순경음'과 '치두음, 정치음'을 만들었습니다.
=> 훈민정음은 단 한번도 우리말(한국어)을 표기하는 데에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말을 표기하는 데에 사용된 것은 언문(諺文)입니다. 문자(중국어)의 발음을 쉽게 표기하기 위해 만든 훈민정음은 중국인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의 우리가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훈민정음과는 상관 없고, 일반 대중이 꾸준히 언문을 사용한 덕분입니다.
=> 물론, 우리 동국도 동방에 속하므로 훈민정음의 영향하에 놓이지만, 자음에는 동음과 화음이 따로 있어 굳이 훈민정음을 배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동국인은 훈민정음과 언문을 잘 구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여린히흫, 순경음, 정치음, 치두음 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이 언문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말과 동음을 표기할 수 있었습니다. 역관 등의 중국발음(화음)을 공부할 필요가 있었던 사람들도, 언문만으로도 한자음을 배우는 데에 충분했고 중국발음은, 지금의 우리가 영어를 배우고 미국본토, 영국본토의 발음을 따로,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훈민정음을 반절이라 불렀던 것이며, 동국인은 그냥 언문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세종이 언문을 이용한 3대정책을 힘차게 추진하지만 단종, 연산군, 중종 등을 거치면서 백지화 됩니다. 또, 명과 청이 교체되고 일제의 침략과 문화혁명 등을 겪으면서 언문의 흔적이, 중국 땅에서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훈민정음을 비롯한 세종의 3대 언문정책은 모두 실패했다 할 것입니다.
Example ===============
훈민정음서문과 최만리상소문을 해설한 저의 글을 읽어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을 일삼는 강단학계가 저의 한문해석이 엉터리라고 무조건 우기면서 무시하기로 일관하면, 힘없는 촌부는 진실을 세상에 알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서 ‘부정할 수 없는 세 가지 증거’를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진실을 퍼뜨릴지 말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과 손에 맡기겠습니다. 여기 내미는 세 가지 증거는, 제가 해석한 것이 아니라 강단학계가 해석한 원문 그대로입니다. 그들이 무엇이라 변명할지, 무엇이라 거짓말을 늘어놓을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1. 동국정운서문이 그 증거입니다.
동국정운은 운서입니다. 운서란 ‘한자의 발음 사전’입니다. 동국정운이 세종이전의 운서들과 다른 것은, 이전에는 한자의 발음을 한자로 표기하였는데, 동국정운은 한자의 발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훈민정음과 동국정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강단학계에서도 여러 가지 정황상,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가 동국정운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냐는 말이, 퍼진지 오래입니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글사史에 있어 동국정운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반드시 동국정운 얘기가 뒤따라오고, 동국정운에 대해 얘기하면 반드시 훈민정음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래는 동국정운서문의 일부로서, 동국정운을 펴내는 이유가 담겨있는 핵심부분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제게 유리한 해석을 위해, 제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옮겨온 것이라 의심하시는 분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하셔서 앞뒤의 내용과 서문 전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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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東方表裏山河, 自爲一區, 風氣已殊於中國, 呼吸豈與華音相合歟! 然則語音之所以與中國異者, 理之然也。 至於文字之音則宜若與華音相合矣, 然其呼吸旋轉之間, 輕重翕闢之機, 亦必有自牽於語音者, 此其字音之所以亦隨而變也。
~
~
우리 나라는 안팎 강산이 자작으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 그러한즉,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른 까닭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고, 글자의 음에 있어서는 마땅히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 같으나, 호흡의 돌고 구르는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과 열리고 닫힘의 동작이 역시 반드시 말의 소리에 저절로 끌림이 있어서, 이것이 글자의 음이 또한 따라서 변하게 된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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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학계의 해석 그대로, 이 글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국과 중국의 어음이 서로 달라진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한자의 음은 중국음과 같아야 하는데, 어음의 영향을 받아 한자의 음도 동국과 중국이 서로 달라졌다’
그런데, 이것은 제가 해석한 훈민정음서문의 첫 번째 문장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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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 불상류통)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나랏 말소리 듕귁과 달라 문짜로 더브러 서르 흘러통티 몯하논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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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학계 주류의 통상적인 해석(의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말(어법)이 중국말과 달라서,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잘 맞지 아니하네.’
저의 해석(의역)입니다. 이렇게 해석되는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말의 발음(어음)이 중국에서 달라졌고, 한자의 발음도 동국과 중국이 서로 잘 맞지 아니하네.’
훈민정음서문과 동국정운서문이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동국의 한자음과 중국의 한자음이 서로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해석한 서문의 첫 문장을 두 번째 문장과 연결하여 해석하면,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어서 중국 백성에게 하사한 것>이 됩니다. 달리 해석될 수 없습니다.
2. 훈몽자회가 그 증거입니다.
훈몽자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최세진이 1527년에 동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만든, 진상하여 간행된 언문을 이용한 한자학습서입니다.
훈몽자회에 범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대의 ‘일러두기’와 같은 것인데, 일러두기의 사전적 설명은 ‘책의 첫머리에 그 책의 내용이나 쓰는 방법 따위에 관한 참고 사항을 설명한 글’입니다.
그 훈몽자회의 범례에 나오는 10개의 항 중에 하나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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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註內稱俗者 指漢人之謂也 人或有學漢語者 可使兼通 故多收漢俗稱呼之名也 又恐註繁 亦不盡收
1. 註 안에 '俗'이라고 일컬은 것은 중국 사람이 말함을 가리킴이니, 사람들 중에 혹시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있으면, 겸하여 통하게 할 수 있어서 중국어의 속어를 많이 수록했는데, 역시 주가 너무 번잡할까봐 모두 수록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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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훈몽자회의 본문 앞쪽, 범례와 본문 사이에 언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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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문자모諺文字母 <속소위반절俗所謂反切, 이십칠자二十七字>
언문자모 <속에서는 이른바 반절이라 하는데, 27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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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주註입니다. 주는 ‘글이나 말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 그 뜻을 자세히 풀어 주거나 보충 설명을 더하여 주는 글이나 말’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현대에는 그 페이지의 하단이나 그 장의 말미 또는, 책의 뒷부분에 모아서 싣고 있지만, 옛날에는 그 단어나 문장 바로 아래에 작은 글씨로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이 부분은 세로로 기술되어 있는데, ‘언문자모’라는 제목 밑에 작은 글씨로, 오른쪽에 ‘속소위반절’, 왼쪽에 ‘이십칠자’라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 뒤에, ‘언문자모’라는 글자의 왼쪽으로 언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속소위반절 이십칠자’는 ‘언문자모’에 대해서 달아 놓은 주입니다. 이 부분을 풀이하면, ‘언문자모’라는 것은 ‘속에서는 이른바 반절이라 하고, 글자 수는 27자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에서 어떻게 배웠습니까? ‘속俗’에 대해서 ‘한국의 속, 풍속, 민속’, ‘중국의 속, 풍속, 민속’, ‘일본의 속, 풍속, 민속’이라는 뜻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훈몽자회에서 최세진은 ‘속=중국’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훈몽자회라는 책 안에 들어있는 ‘속’이라는 글자는 전부 다 중국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뒷부분의 ‘한속漢俗’이라는 단어도 ‘속을 한이라 부른다, 한이 살고 있는 속, 한족이 살고 있는 속’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단어이지, ‘한의 민속, 중국의 민속’이라는 뜻의 단어가 아닙니다. ‘동방(동양)’이 ‘천하(바다)의 동쪽 부분’이 아닌 ‘동쪽에 있는 천하(바다)’라는 뜻으로서, ‘동방=천하’인 것과 같습니다. 설령, ‘한속’을 ‘중국의 민속’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제가 밝히고 있는 사실(fact)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훈몽자회의 본문이나 인, 범례 그 어디를 뒤져봐도 그냥 ‘속’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동국의 속’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훈몽자회에 등장하는 모든 ‘속’은 전부 ‘중국’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동국의 속’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속’은 훈몽자회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훈몽자회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속=속세=세상=천하=중국’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훈몽자회에서 언문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의 제목, ‘언문자모’에 대한 주註인 ‘속소위반절’의 ‘속’은 중국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즉, 언문을 반절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중국인이라는 뜻입니다. 언문을 반절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한반도의 우리가 아니라 중국인입니다.
훈몽자회는 한반도(동국)의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입니다. 어른들은 알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으므로, 어른들을 상대로 만든 책에서는 굳이 동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 중국이 속이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는 동국의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책에서는, 속이 무엇을 가리키는 단어인지 가르쳐 주어야합니다.
강단학자들이 말해오길. 훈몽자회를 언급하면서 ‘언문(훈민정음)의 별칭 중에 하나가 반절이다.’라는 말만 하였지, 훈몽자회의 범례에 있는 ‘俗이라고 일컬은 것은 중국 사람이 말함을 가리킴’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함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속을 한국의 민간이라고 속였습니다. 분명히 ‘俗이라고 일컬은 것은 중국사람(漢人)이 말함을 가리킴’이라고 명확히 써져있는데도, 그러한 사실(fact)을 숨기고, 우리나라(한반도, 동국)의 민간에서 언문을 반절이라 부르기도 한다며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강단의 학자들은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자료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중국인이 언문을 반절이라 부른다’는 것은, ‘한자의 발음표기를 위해, 본국의 언문으로 만든 훈민정음을 중국에 내려 보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명확한 증거가 됩니다.
3. 최만리상소문의 4항이 그 증거입니다.
이두 대신 언문을 사용하겠다는 세종의 뜻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상소문의 4항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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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若曰如刑殺獄辭, 以吏讀文字書之, 則不知文理之愚民, 一字之差, 容或致冤. 今以諺文直書其言, 讀使聽之, 則雖至愚之人, 悉皆易曉而無抱屈者, 然自古中國言與文同, 獄訟之間, 冤枉甚多. 借以我國言之, 獄囚之解吏讀者, 親讀招辭, 知其誣而不勝棰楚, 多有枉服者, 是非不知招辭之文意而被冤也明矣. 若然則雖用諺文, 何異於此? 是知刑獄之平不平, 在於獄吏之如何, 而不在於言與文之同不同也. 欲以諺文而平獄辭, 臣等未見其可也.
1. 만일에 말하기를, ‘형살(㶈殺)에 대한 옥사(獄辭)같은 것을 이두 문자로 쓴다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언문으로 그 말을 직접 써서 읽어 듣게 하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모두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라.’ 하오나, 예로부터 중국은 말과 글이 같아도 옥송(獄訟) 사이에 원왕(冤枉)한 것이 심히 많습니다. 가령 우리 나라로 말하더라도 옥에 갇혀 있는 죄수로서 이두를 해득하는 자가 친히 초사(招辭)를 읽고서 허위인 줄을 알면서도 매를 견디지 못하여 그릇 항복하는 자가 많사오니, 이는 초사의 글 뜻을 알지 못하여 원통함을 당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합니다. 만일 그러하오면 비록 언문을 쓴다 할지라도 무엇이 이보다 다르오리까. 이것은 형옥(刑獄)의 공평하고 공평하지 못함이 옥리(獄吏)의 어떠하냐에 있고, 말과 문자의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한다는 것은 신 등은 그 옳은 줄을 알 수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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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소문 4항에 대해 강단학계가 해설해 놓은 것을 보겠습니다. 4항에 대한 한문 해석은 정말로 잘 했지만, 해설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우리 대중이 접하는 것은 해석이 아닌 해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저들의 거짓말에 속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통상적인 해설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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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를 한글(언문)로 하면, 한자(이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이 없을 것’
이라고 세종이 말하자.
‘우리나라(동국)가 옥사에 한글을 사용하더라도, 선진국인 언문일치(言文一致)의 중국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중국처럼 옥송에 억울한 일이 여전히 많을 것’
이라고 최만리 등이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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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최면에서 깨어날 때입니다.
이대로 놓고 보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해하기 쉽게 편집하겠습니다. 당연하지만, 원문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단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얻는 것뿐입니다. 제 글에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었지만, 여기에서는 네 부분으로 나누겠습니다. 원문 훼손 없이, 그냥 한 뭉텅이를 네 부분으로 쪼개기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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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一, 若曰如刑殺獄辭, 以吏讀文字書之, 則不知文理之愚民, 一字之差, 容或致冤. 今以諺文直書其言, 讀使聽之, 則雖至愚之人, 悉皆易曉而無抱屈者,
1. 만일에 말하기를, ‘형살(㶈殺)에 대한 옥사(獄辭)같은 것을 이두 문자로 쓴다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언문으로 그 말을 직접 써서 읽어 듣게 하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모두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라.’
나.
然自古中國言與文同, 獄訟之間, 冤枉甚多.
하오나, 예로부터 중국은 말과 글이 같아도 옥송(獄訟) 사이에 원왕(冤枉)한 것이 심히 많습니다.
다.
借以我國言之, 獄囚之解吏讀者, 親讀招辭, 知其誣而不勝棰楚, 多有枉服者, 是非不知招辭之文意而被冤也明矣.
가령 우리 나라로 말하더라도 옥에 갇혀 있는 죄수로서 이두를 해득하는 자가 친히 초사(招辭)를 읽고서 허위인 줄을 알면서도 매를 견디지 못하여 그릇 항복하는 자가 많사오니, 이는 초사의 글 뜻을 알지 못하여 원통함을 당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합니다.
라.
若然則雖用諺文, 何異於此? 是知刑獄之平不平, 在於獄吏之如何, 而不在於言與文之同不同也. 欲以諺文而平獄辭, 臣等未見其可也.
만일 그러하오면 비록 언문을 쓴다 할지라도 무엇이 이보다 다르오리까. 이것은 형옥(刑獄)의 공평하고 공평하지 못함이 옥리(獄吏)의 어떠하냐에 있고, 말과 문자의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한다는 것은 신 등은 그 옳은 줄을 알 수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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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항은, ‘이두 대신 언문(한글)을 사용하려는 세종의 뜻’에 반대하는 최만리 등이, 언문 사용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4항은, 이두 대신 언문을 사용하면 억울한 옥송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세종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주장한 것에 대해), 역시 최만리 등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세종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습니다.
4항의 가항은 세종의 주장으로서, 언문을 시행하려는 장소가 동국인지 중국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항은 ‘하오나(然) ~’로 시작하여 ‘~ 심히 많습니다’로 단정斷定하면서 끝나, 가항에 대한 반론이 나항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하오나(然)’는 나항, 다항, 라항을 통틀어 대표하여 가항과 연결되는 접속사가 아니라, 가항과 나항을 잇는 접속사입니다.
나항은 ‘예로부터 중국은 ~ 심히 많습니다.’라고 하여, 중국이 언여문동言與文同이라도 억울한 일이 많다고 단정하여, 언여문동(今以諺文直書其言, 讀使聽之)이면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라는 세종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즉, 가항의 반론에 해당하는 부분은 나항입니다. 언문정책의 시행 장소가 중국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언여문동이란 언문일치를 말함이 아니고, 사건조서에 써진 내용과 그 사건조서를 소리 내어 읽은 내용이 서로 일치함을 말합니다. 학자라는 전문가들이 언여문동을 해석할 때는 바르게 해석해놓고, 강단에서 대중(비전문가)에게 교육할 때는 언문일치의 뜻이라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다항은 ‘가령 우리 나라로 말하더라도(借以我國言之) ~’라고 시작하여, <예例>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항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언문정책의 시행 장소가 ‘우리나라’가 아님을 세 살짜리 젖먹이도 알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는 사람(세종)이 동국인이므로, 세종이 자신(최만리)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동국(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라항은 ‘만일 그러하오면 비록 언문을 쓴다 할지라도 ~’라고 시작하여, 예로 든 다항에서 도출한 결론으로서, 나항을 설명하는 부분이 라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항은 <예例>에 해당할 뿐, 가항에 대한 반론은 나항이고, 나항에 대한 설명은 라항이 되는 것입니다. 나항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되는 라항이, 예로 든 것이 다항입니다.
한문의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의 독해력이 문제입니다. 저 학자들이 대중에게 최면을 걸어,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결론은, 우리나라(동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중국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fact)로서, 언문정책을 시행하는 장소가 중국입니다. 동국에서 내려 보낸 훈민정음을 사용하는 곳이 중국이라는 것은, 더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절대 사실(fact)입니다.
Point =======
동국의 정체가 어떠하다는 것은 저의 주장입니다.
동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떠하다는 것은 저의 주장입니다.
동방(조선천하)이 어떠하다는 것은 저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동국에서 중국으로 훈민정음을 내려보냈다는 것은 저의 주장이 아닙니다.
중국인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의 주장이 아니라 사실(fact)입니다. 지금, 저는 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훈민정음을 중국에 내려보냈다는 사실과 여러 고전을 바탕으로, 동국과 중국, 동방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한 것뿐입니다. 훈민정음을 중국에 내려보냈다는 사실을 전달하면서, 여러분이 당연히 궁금해 하실 내용들에 대해 아무 설명도 없이, 무조건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라 생각하여, 제 주장도 함께 언급하였습니다.
아무튼,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기호라는 것, 훈민정음은 언문(한글)으로 만들었다는 것, 훈민정음을 비롯한 언문의 3대 정책은 중국에서 시행했다는 것, 이 세 가지는 명확한 사실입니다.
거짓에 더 이상 속지 말고, 진실을 추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