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안중근 의사의 변호를 거부했다라는 말은 저도 첨 듣고, 어떠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승만이 무장독립투쟁를 안좋게 본 것, 실지 무장독립 운동에(이토히로부미 저격과 직접 관련된 발언x) 대해서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라는 발언도 때문에 피디가 지나친 비약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혹은 제가 알지못하는 역사적 사실의 근거가 있다면 피디가 이에 대해 밝히고 말해야 납득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승만의 주 활동 무대는 미국이었고, 진주만 공습 직전까지 미국과 일본은 동맹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생각해보시면..)
미국이 주 활동 범위인 이승만 입장에서는 무력투쟁을 지지할수는 없었죠.(진주만 공습이전까지)
특히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한 스티븐슨이 한인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도 있었고.. (스티븐슨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친구였습니다)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한 때는 1909년 입니다.
이승만은 독립협회,만민공동회등의 활동으로 수감되었다가,
1904년 특사로 풀려난뒤, 그해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일본의한국침략을 고발하는 기고나 인터뷰,
미 국무장관과 한미수호조약에 따라 한국의 독립협조요청등의 활동을 하다가,
1905년 조지워싱턴대학에 2학년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1907년 조지워싱턴대에서 "철학학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에서 "석사"학위,
1910년 프린스턴대학에서 "국제정치학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안중근의사의 의거가 1909년이고, 재판이 1910년 입니다.
시기도 맞지 않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이승만은 변호사가 아닙니다. 정치학박사이지, 변호사자격이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미국변호사(뉴저지)일 뿐입니다. 뉴저지변호사는 캘리포니아에서 개업도
못하는게 현실 입니다.
그런데 영 쌩뚱맞게
"일본점령지 뤼순에서의 재판에 왠 미국에서 정치학 공부하는 이승만이 나옵니까?"
위에 다른 분이 쓴 글처럼 이승만은 변호사가 아니였기 때문에 변호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 통역 정도로 보면 되는데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승만이 미국인 외교관을 처단한 의사들편에 섰다면 미국 주류 사회의 편입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야 처죽일 놈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외교관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라고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을테니까요.
이승만의 초기 독립운동은 무력 투쟁보다는 외교력을 통한 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고 파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