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四年□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鋼七支刀□百兵宜供供候王□□□□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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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만든 연도에 대한 이견이 있음
일본은 중국연호인 태시
한국은 백제연호인 태화
일본측 주장 '태시'라고 해석
즉 중국 서진의 연호로 즉 진무제 4년 서기로 따지면 268년임.
그런데, 애들 골때리는것이 뭐냐면 태시라고 주장하면 서기 268년이어야 하는데,
일본 서기 신공황후 52년, 즉 서기 252년에 맞춤.
이유는 서기 기록에 백제왕이 왜왕에 칠지도를 바쳤다 기록이 있기때문.
그럼 서기 기록자가 미래를 예측하여 미리 칠지도를 기록했다고 봐야 합당한가?
괜히 일본서기가 구라서기라고 까이는 불리는게 아님.
이런 연대 측정이 지들 주장에서도 안맞음.
한국측 주장 왜 그걸 중국연호에 맞추나?
백제의 고유 연호인 태화로 맞춰보자.
그러면 백제 근초고왕 22년 서기로 치면 367년이다. 즉 백제 최전성기라는 말이다.
또 일본 서기 신공기 보면 366년 근초고왕이 철제품을 만드는 원료를 왜에 보낸다라는 문구가 있음.
16년의 시간적 오류가 있는 일본 주장보다 이게 더 아귀 맞아떨어지지 않음?
그럼 당시 고구려를 아작내고 최전성기를 달리던 근초고왕이 일본에 설설 기었을것 같음?
애초에 칠지도 연대설정 자체가 일본넘들이 지들 입맛에 따라 아무 근거도 없이 중국 연호라 정하고
들어간거고, 또 중국 연호를 사용했을때, 칠지도 기록이랑 일본서기랑 연대차가 16년가량 남.
헌데, 백제 연호를 사용했을때는 칠지도 연대랑 일본서기랑 연대가 맞아떨지고
이때는 근초고왕시대, 백제가 최고 잘나갈때라 근초고왕이 왜에 칠지도를 받쳤다는것이 말이 안됨.
당시 고구려를 아작낸 근초고왕이 고구려한테 쫓겨난 왜왕한테 칠지도를 갖다 바칠까?
하사할까?
모르지 왜넘들이 칠지도 하사 받고 난뒤 지들 기록에는 지들 왕 체면 세워준다고 '받쳤다'라고 표현했을수는 있을지언정. 지 일기장에 지가 뭐라 쓰든 그걸 어찌알고 백제가 태클함?
가장 유력한건 일본서기 작성자 새끼가 훗날 칠지도를 보고 조작한거임
그런데 정확한 역사를 모르니 시간차나는거고, 지가 직접보고 받은 날에 기록했으면 어떻게 연대가 틀릴수 있음 그것도 16년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