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날 무렵은 일제시대였다. |
따라서, 내 어린시절의 국적은 일본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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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류상으로는 분명 나는 일본인이지만 아버지는 |
내게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일본놈이 아니여. 너는 조선사람이다 |
라고 하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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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린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문제다. |
집에서는 나를 조선인이라고 하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
나를 일본인이라고 하셨다. |
가정에서는 조선인으로서 조선왕조에 충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
교육받고, 학교에서는 대일본제국의 황국신민으로서 천황폐하를 |
위해 살아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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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애국심이란 또 무엇인가. 애국은 반드시 |
이행해야 하는 의무사항인가. |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각자 내게 주는 답이 다르니 너무도 |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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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재는 우린 당연히 조선사람이고 주상전하 천세 천천세고, 일본놈들 |
물러가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아주머니는 조선 왕조는 우리 농민들을 |
너무도 괴롭혔다며 일본은 좀 덜 괴롭힌다면서 일본이 좋다고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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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내 어린시절의 가장 큰 고민은 정서적 국적인 조선과 서류상 |
국적인 일본, 이 2가지의 모순과 충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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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내 나이 15살 때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
어떤 사람은 매우 기뻐하고 환호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일본의 패망을 |
진심으로 슬퍼하여 대성통곡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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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배하고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쳤으니 이제 다시 조선왕조가 |
부활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의 예상을 뒤엎고 제3의 국가가 탄생하였다.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이다. 더 복잡해진 건 내가 있는 남쪽에는 대한민국, |
38선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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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3번째 국적이 생긴 셈이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
나는 조선인인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
가정에서 받은 교육에 의하면 나는 조선인이다. 서류상으로는 일본인이었다가 |
지금은 한국인으로 국적이 변경되었다. |
그럼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나는 세 나라중 어느 나라에 애국해야 하는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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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조선에 대한 애국심을 버리지 않고 조선왕조를 다시 세우려고 |
하다가 잡혀갔고, 또 어떤 이는 일본이 교육시킨 영향 때문인지 자신을 |
일본인으로 생각하고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다가 잡혀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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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탁통치라는 것이 있었으니 짧은 기간이니마 나는 미국인이기도 했던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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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조선인인가, 일본인인가,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
나의 정체성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참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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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저런 역사적인 자료를 찾아보며 나름 연구를 해봤다. |
그러다가 점점 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
우리 집안은 원래는 저 북방의 흉노족 출신이다. 한반도에 건너와서는 |
신라의 왕족이 되었고 신라가 망하고는 고려인이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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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이 아니다. 내 조상님은 고려를 배신하고 조선에 붙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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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강태공의 보좌를 받아 은의 주왕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
희씨의 후손이다. 이거참..중원 천자의 후손이 어찌 오랑캐 집안에 시집을 |
왔단 말인가. 허허.. |
어쨌든 이 이야기대로라면 내 어머니의 혈통적 민족은 중국인이라는 것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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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란 인간은 흉노족의 후손이면서 주 왕실의 혈통이 약간 섞였으면서 |
신라를 배신한 조상과 고려를 배신한 조상을 둔 가정에서는 조선인으로 |
교육받았으나 서류상으로는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변경된 사람.. |
너무 복잡해서 무슨 말인지 나도 잘 모르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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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일본의 SF 소설을 읽게 되었다. 작가가 내 아들놈과 |
동갑이라서 왠지 더 끌렸다. |
그 소설의 주인공은 전쟁의 천재인 군인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말을 함으로써 |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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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家が細胞分裂して個人になるのではなく主体的な意志を持った |
個人が集まって国家を構成するものである以上どちらが主で |
どちらが従であるか民主主義社会にとっては自明の理でしょう。 |
人間は国家がなくても生きられますが人間なくして国家は存立しえません。 |
(국가가 세포분열하여 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의지를 갖는 |
개인이 모여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인 이상 어느쪽이 주이며, 어느쪽이 종인가 |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자명한 일이겠죠. 인간은 국가가 없어도 살아갈 |
수 있지만 인간이 없이 국가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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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가 내 모든 고민을 일거에 해소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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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인도 일본인도 한국인도 미국인도 중국인도 아니다. |
나는 그냥 나일 뿐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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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대세에 따라 적응하고 순웅해서 살면 그만인 것이다. |
지금은 내 국적이 대한민국이지만 나라가 또 바뀌면 그냥 바뀐대로 맞춰서 |
살면 그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