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학은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라서 어떤 두 사회적 현상을 놓고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라고 논리적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연구를 했기에 붕당싸움이 양란의 원인이란 결론이 나오지요?
특히나 이건 자연과학 처럼 실험실에서 실험을 해서 증명을 할 수도 없는거 아닙니까?
그냥 우겨서 선동질만 잘하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나보죠?
조선시대 최대 비극은 임진왜란과 정묘 병자호란이라고 보네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으니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봅니다...
당리당략에만 몰두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니 그시대 고위 관직자들은 죄가 크다고 보네요..
그나마 당색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책무를 다했던 분들은
제가 아는바에서 유성룡 , 이덕형 , 유몽인등 이런분들이 아닐까요...
더있겠지만 , 님들이 아는 인물을 알고 싶네요...,
동인과 서인이 나눠진 사건은.. 사실상 인사권을 쥔 이조좌랑 자리를 놓고 갈라졌다고 하는데..
보통 서인이 율곡 이이, 동인이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많았죠..
그리고, 동인의 경우..
징비록에서 나오듯 서인 정철의 처벌을 놓고, 강경처벌은 북인.. 온건한 입장은 남인으로 갈라지는데..
이산해의 북인은 이산해 시절은 거의 무적이라할만큼 잘나갔습니다. 근데 광해군 때 인조반정으로 싹뚝 잘라져 나가죠.
북인의 대부분도 의병장으로 참전하는 등 상당히 애국적인 세력이었습니다.
정인홍 같은 북인의 거두도 그런 사람이었고, 평소에도 칼을 차고 다니며 꼿꼿한 선비였다고 하죠.
다만, 북인을 활용한 이이첨이란 간신배가 있었다고 하는게 문제..
이 북인 세력들은 대체로 남명 조식의 제자들로써, 서부경남권, 지리산쪽에 본거지를 둔 세력이었습니다.
곽재우도 북인이었죠.
남인의 경우 유성룡으로 대표되는 세력으로..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쪽 사람들이 권력하고는 잘 인연이 없었지만, 상당히 애국자들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서인세력인데..대체로 기호학파(경기,충청)라고 하죠.
보통 친일세력이 많이 나온게 이쪽이라고 하더군요.
주로, 조선 후기 권력을 독점한게 이 쪽 세력이라.. 서인이 노론, 소론, 시파, 벽파로 쭉 가다가...
나중엔 정조 시절부터 홍국영을 시작으로 세도정치라는게 싹트기 시작해서..
나중에 정조 사후부터 본격적으로 세도정치가 시작되죠.. 이 세도정치 세력들이 대체로 서인이었습니다.
노론 벽파, 시파 이 쪽이죠.. 대표적인 세도정치 가문인 안동김씨 자체는 시파쪽이라더군요..
붕당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외척들을 활용한것인데.. 이런 조선왕들의 판단이
결국 외척들이 조정을 장악하게 만들어.. 나라가 기울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이 외척에 치를 떨었던것도 이 때문이죠..
그리고 훗날 민비가 이런 외척들을 대거 기용하기에 이르러 나라를 망치는데 한몫했죠.
사실 일본 우익들이나 정한론자들조차도 흥선대원군을 조선의 마지막 걸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