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읽으면 여섯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이 세상이 여래장에 의해 운영되는 완벽한 환상(혹은 가상현실)이라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인생 체험은 우리의 업식과 수준에 따라 여래장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염불이나 다라니를 하면서 묵은 업을 닦고 현상을 잘 관조하는 수행을 해야합니다.
4. 우리가 포함된 사바세계의 운영자는 석가모니불이라는 것입니다.
5. 불경은 이 세계를 움직이는 법(法)을 설해놓은 것이니 다 읽고 알아야 합니다.
6. 이 가상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위 여섯 가지를 염두하고 천천히 읽어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능엄경>
아난아, 만일 빈곳[空 :공]을 연해서 보는 작용이 있다면 당연히 막힘을 보지 못해야 하며, 만일 막힘을 연해서 보는 작용이 있다면 당연히 빈곳을 보지 못해야 한다. 이와 같이 밝음과 어둠을 연하는 경우도 빈곳과 막힘의 예와 같다.
그러니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이 정밀한 깨달음의 묘한 밝음은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고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인연과 자연이 아닌 것도 없고, 인연과 자연이 아니라는 것이 아닌 것도 없으며[無非不非], 인연과 자연이란 것도 없고, 인연과 자연이란 것이 아니란 것도 없는 가운데[無是非是], 일체의 모양을 떠나서 일체의 법과 일치하느니라. 너는 어째서 이 가운데 마음을 두고 세상에서 희론(戱論)하는 온갖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는 것이냐. 이렇게 분별하는 것은 마치 손으로 허공을 잡으려고 하듯 스스로 수고로움만 더할 뿐인데,허공이 어떻게 너의 손에 잡히겠느냐.”
[심연 : 이런 식의 문답이 아난과의 대화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데, 그러면서 경전 내용이 점차 핵심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단 위 구절은 공을 연해서 본다면 막힘을 보지 못해야 하며, 밝음을 연해서 본다면 어둠을 보지 못해야 하나, 우리는 밝고 어두움을 다 인식하며, 세상에는 두 양면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묘한 밝음은 모든 양면성, 즉 일체의 법을 초월한 동시에 품고 있음을 설법하십니다. 다음 구절은 여래장이 일체의 법을 주관하는 것에 대해 설명되고 있습니다.]
<능엄경>
너는 흙의 성질을 보아라. 긁어서는 대지(大地)가 되고, 가늘어서는 미진(微塵)이 되었다가 인허진(鄰虛塵; 허공에 가까운 티끌)이 되느니라. 인허진은 저 극미한 물질의 가장자리[極微色邊際相]를 일곱 몫으로 쪼갠 것이며, 다시 인허진(鄰虛塵)을 쪼갠 것이 바로 완전한 허공의 성질이니라.
아난아, 만일 이 인허(鄰虛)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마땅히 허공이 색상(色相)을 출생시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너는 지금 ‘화합한 까닭에 세상의 온갖 변화하는 모양이 출생하는가’를 물었으니, 너는 또 이 점을 생각해보아라. 한 인허진은 얼마의 허공을 들여 화합해야만 생기겠느냐. 당연히 인허진이 합쳐서 인허진이 되지는 않으리라.
또 인허진을 쪼개어 허공이 되려면 얼마의 색상(色相)을 들여 합해야만 허공이 되겠느냐. 만일 색과 합할 때라면 색과 합했으니 허공이 아니며, 만일 허공과 합할 때라면 허공과 합했으니 물질이 아니다. 색은 오히려 쪼갤 수 있겠으나, 허공을 어떻게 합하겠느냐.
너는 원래 여래장(如來藏) 안에 성품이 색인 진실한 공[性色眞空]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색[性空眞色]이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知量]에 응하는 줄을 모르고 있느니라.
업을 좇아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모두 이 인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심연 : 여래장이 중생의 앎의 수준, 즉 각자의 업식에 따라 대응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금강경의 "여몽환포영"과 같이 일체 유위법과 세상은 환상이지만 이 환상의 이면에 여래장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다는 법문입니다. 이를 승만경에서는 불공여래장(공하지 않은 여래장)이라 합니다.]
<승만경> 세존이시여,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은 항하의 모래보다도 많은 여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아니한 부사의한 불법을 말합니다.
[심연 : 다음 능엄경 구절을 통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능엄경> 5음(陰)과 6입(入)과 12처(處)에서 18계(界)에 이르기까지,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겨난다 하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멸한다고 하지만, 단지 이 생기고 멸하고 가고 옴이 본래 여래장(如來藏)으로서, 영원히 머물러 묘하게 밝고 움직이지 않고 두루 원만하고 미묘한 진여(眞如)의 성품임을 잘 알지 못할 뿐이다. 이 성품의 진실하고 영원불변한 가운데서는 아무리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음을 찾아보아도 전혀 찾을 수 없느니라.
[심연 : 가고 옴이 본래 여래장이며 영원불변하다고 나옵니다. 이러한 여래장에 대한 법문이 요약되어 승만경에 매우 잘 설법되어 있습니다. 위 내용이 어느정도 이해 되었다면 다음 법문이 이해될 것입니다.]
<승만경> 13. 깨끗한 제 성품[自性淸淨]
"세존이시여, 생사(生死)란 것은 여래장(如來藏)을 의지할 것이니, 여래장인 까닭으로 그 비롯한 때[本際]를 알 수 없다 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 있음으로 해서 생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훌륭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난다, 죽는다 하는 생사라는 것은 바깥 것을 받아들이는 근(根)이 없어지고, 받아들이는 근이 차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을 생사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죽는다, 난다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법이 곧 여래장인데, 세간의 말로 말하므로 죽는다, 난다 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근(根)이 망가지는 것이요, 난다는 것은 새로운 근이 생기는 것일지언정, 여래장이 나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여래장은 유위의 모양을 여의었으므로, 여래장은 항상 머물러 있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의지할 데며, 거두어 지니는 것이며, 세워 일으키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여의지 않고, 끊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부사의한 불법이므로, 세존이시여, 끊어지고 벗어나고 달라지는 여러 가지 유위법의 의지가 되고 거두어 지니고 세워 일으키는 것이 곧 여래장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장이 없으면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할 수 없나니, 그 까닭을 말하면, 지금 있는 6식(識)과 이 알음알이 지혜[心法智]와의 일곱 가지 법은 잠깐도 머물러 있지 못하므로 모든 괴로움을 심지 못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전제(前際)가 없어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법이므로 모든 괴로움을 심으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게 여겨 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내가 아니고 중생이 아니고 목숨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므로 여래장은 몸이란 소견에 떨어진 중생이나 뒤바뀐 중생이나 공한 데 뜻이 어지러워진 중생에게는 그들의 경계가 아닙니다.
[심연 : 뒤바뀐 중생들이나 공에 떨어진 자들이 이해할 경계가 아니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곧 법계장(法界藏)이며, 법신장(法身藏)이며, 출세간상상장(出世間上上藏)이며, 자성청정장(自性淸淨藏)입니다. 이 성품이 깨끗한 여래장으로서 객번뇌(客煩惱)ㆍ티끌번뇌[客塵煩惱]와 상번뇌에 물드는 것은 부사의한 여래의 경계입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찰나의 선한 마음은 번뇌에 물든 것이 아니며, 찰나의 나쁜 마음도 번뇌에 물든 것이 아니니, 번뇌는 마음에 접촉하지 아니하고 마음도 번뇌에 접촉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접촉하지 아니하는 법으로 어떻게 마음을 물들일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러나 번뇌도 있고 번뇌가 마음을 물들이는 일도 있사오니, 성품이 깨끗한 마음으로서 물든다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불세존만이 진실한 눈이시며 진실한 지혜로서 법의 근본이 되시며 법을 통달하시어 바른 법의 의지할 데가 되었으므로 실제와 같이 아시고 보십니다."
승만 부인이 이렇게 알기 어려운 법을 말하여 부처님께 여쭐 때에 부처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성품이 깨끗한 마음으로서 물든다는 것은 알기 어려우니라. 두 가지 법이 알기 어려운 것이니, 성품이 깨끗한 마음을 알기 어려우며, 그 마음이 번뇌에 물든다는 것도 알기 어려우니라. 이 두 가지 법은 너와 대승법을 성취한 보살마하살만이 듣고 이해할 수 있거니와, 다른 성문들은 다만 부처의 말씀 믿을 뿐이니라."
<마하반야바라밀경>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능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거나 나아가 바르게 억념하고 능히 선나바라밀에서 단나바라밀에 이르까지 구족하고, 내공에서 무법유법공에 이르기까지 구족하고, 4념처에서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와 부처님의 10력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구족하는 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대승밀엄경>
부처는 정(定)에서 자재하니
모니(牟尼)는 최고로 뛰어난 몸,
그 누가 세간일 만들 것인가.
오직 부처가 변화로 만든 것이지.
<대승밀엄경> 금강장아, 여래는 항상 머물러 언제나 변화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염불(念佛)하고 관행(觀行)을 닦는 경계이니, 여래장(如來藏)이라고 이름한다. 마치 허공은 파괴하거나 없앨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열반계(涅槃界)라 이름하고 또한 법계(法界)라 이름한다.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ㆍ세존이 모두 이것을 따라서 말씀하신 까닭으로 세상에 오셨거나 세상에 오시지 않았거나 이 성품은 항상 있기 때문에 법주성(法住性)이라 이름하고 또한 법니야마성(法尼夜摩性)이라고 이름한다.
[심연 : 위 대승밀엄경 구절을 보면 염불이 중요함을 알게됩니다. 다라니와 염불수행은 필수입니다. 여래장을 조금이라도 관조하고 싶다면 다라니 수행을 열심히 하여 업장이 소멸하며 변화해가는 현상을 잘 관조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