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의 압박을 견디는 자가 진실을 볼 것이다.
우파라 함은
국가의 발전을 고민한 끝에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한 자 들이다.
이러한 명제에 입각 했을때,
식민지 개발론자와 극단적인 보수주의 자들은 진정한 우파세력의 적이다.
첫째,
식민지 개발론은 그 허구성은 별론으로 하고,
목적 자체가 국가,민족 영역의 해체에 있으니
국가 발전을 추구하는 우파의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은 명확하다.
일본 우익의 대동아공영론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그대로 주워삼고 있는,
식민지 개발론자들의 목적은
친일 기득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국가를 초월한 자본주의의 연대를 통해
이러한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함에 있다.
특히 이러한 연대는 결국 미국, 일본에 대해 종속적인 형태를 띨 수 밖에 없음으로,
사실상 연대라기 보단 종속이라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따라서,식민지 개발론자의 주장들은 우파 본래의 목적을 망각한채,
국가 위에 자본주의를 둠으로써,
대한민국을 위해 ,자본주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위해, 정확히 말하면 일부 기득권층을 위해, 대한민국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유교경전을 조선 위에 두고 소중화를 추구하던 일부 조선 기득권층이나,
코민테른이 국가를 초월한 좌파의 연대를 주장한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최대한 이용하여 국가 발전의 초석이 되게 함에 있는 것이지,
대한민국이 없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땅에 살아가고 있는 개개 국민을 위한 단체와 조직의 힘,
대한민국이란 방패막이 없다면 자본주의 또한 허상에 불과하다.
친일 기득권층에게 충고 한다.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친일 세력이 광복직후 청산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어찌됫는 현재에 기득권은 존중한다.
따라서 이제와서 급진적인 기득권 청산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는 또 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기득권의 정당성을 과거의 허물을 새로운 허물로 덮음으로써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지난 과거에 대한 자성과 태도변화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정당성을 얻기를 바란다.
둘째,
국가발전이라는 거대한 명분 앞에서
자본주의는 수정 될 수 있다.
따라서 우파는 공산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아닌한
좌파적 사상을 일정 한도에서 수용할 수 있으며
이것이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힘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가 됬던 좌가 됬던,
극단적인 보수의 끝은 어떠한가.
조선과 북한을 보면 그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부 기득권을 위한 극단적 보수 체제 하에서는
실로 소모적이고 기형적인 논쟁만을 일삼게 되며,
국가발전을 위한 합리적이고 건전한 토론은 뒤로 밀려나게 되고,
결국 그 끝은 반대파에 의한 혁명 또는 외세에 의한 몰락을 가저온다.
생각해보라.
조선후기 조선에 극단적 보수세력이 아닌,
진보적 가치를 수용하던 실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거나
현재 북한에 김정일을 위시한 극단적 보수세력이 아닌,
진보적 가치인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세력들이 주류를 이룬다면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국가발전과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극단적인 보수는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우파의 적은
국가발전이라는 목적하에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좌파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공산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극단적 좌파세력과
우파인척 행세하며 국가를 해체하려 하거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신봉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