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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이 미국을 방문한 시점은 1905년 8월 4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은 1905년 11월 17일.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그 인원은 독립협회와 일진회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같이 동행했던 윤병구도 독립협회 사람입니다. 을사늑약이후 일진회의 성격이 친일로 변질돼버린 것인데 그 이후 이승만과 일진회의 관계는 잘 모르겠습니다. 을사늑약 이전에는 서구열강에 대항한 독립을 생각한 사람들은 일본과의 제휴를 통한 아시아인의 독립을 생각하였지만 을사늑약이후 인식은 당연히 바뀌게 됩니다.
2. 1918년에 국적을 Japan이라고 쓴 것이 무슨 매국적 행동이 되나요? 물론 Korea라고 쓴 것만 못하지만 미국서 제약없이 활동하기에는 Japan으로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 보입니다. 국적을 Korea라고 쓰면 독립이 된다면 누구나 그렇게 했겠습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의 댓글에 왜 이리 ㅅㅂ 욕지거리에 헛소리에 왜 이러시나.
이승만은 좋게보면 실용주의자요 나쁘게 보면 기회주의자이고 그런 성격이 임정위원 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그는 미국쪽에서 실제적으로 독립을 위해 일한 사람입니다. 무슨 이승만이 친일파라도 되는 양 매도하지 말기 바랍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미국 체류 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것과는 달리 그 시절 박용만, 민찬호 선생 등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한 절대 다수의 미주 한인들은 국적을 한국(Korea)으로 당당하게 표기한 사실이 16일 밝혀졌다.
미국 국가기록원과 고문서보관 사이트 엔시스트리닷컴(Ancestry.com)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하와이와 LA 지역의 한인들이 제출한 1차 세계대전 징집카드(U.S. World War I Draft Registration Cards) 중 90%가 국적란에 ‘Korea’로 기재했고 나머지는 ‘China’, 드물게 ‘Japan’으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하다 했는데 결국 우민끼에서 퍼서 날른 것이군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다 알고나니 화가나네. 몇 마디 더해야 겠네요.
이승만을 이렇게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은 김구계열, 남로당 계열, 김일성 계열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보는 관점은 대한민국의 적화통일 (김구는 좌우지간 통일)을 방해한 인사로 충분히 헐 뜯을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후에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끄럽고 불의로운 역사이며 부정해야 할 역사라는 사관을 가진 민중사학자 들까지 가세하니 이승만에 욕지거리하면 깨시민인 줄 아는 분들이 많네요. 김일성, 박헌영은 물론이겠지만 김구가 집권했던라도 지금쯤 북한에 흡수 통일 돼 있을 것입니다. 김구 선생의 애국심은 알지만 그 순진무구함으로 김일성에게 농락만 당하지 않았습니까!
다가오는 8.15는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절입니다. 위의 4계열은 대한민국 건국절을 부정합니다.
어찌 되었든 태극기는 꼭 게양하세요. 이석기네는 한반도 기 다나?
질문을 하는 태도가 ****님도 아니고, 이승만이가, 들어봅시다 등의 시비조이긴 하지만 대답은 하리다.
독립운동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국제적 외교인식을 변화시키고 한국의 자주적 독립을 성취시키는 노력 또한 독립운동입니다. 이승만이 미국의 체류기간 동안 연대별로 활동의 특성이 다르기는 하나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1. 미국에서의 임정활동 성금 모금 및 송금
2. 국제연맹을 통한 독립 호소 노력
3. 미국 국무부를 통한 독립 호소 노력 및 신문을 통한 독립군의 독립운동 노력 홍보
4. 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 발간으로 일본의 미국 침략 사전경고 및 일본에 대한 미국의 호의적 인식을 변화시킴.
5. 임시정부의 권리 요구를 위한 참전 독려, 선전포고문 전달, 임시정부 승인, 임시정부 무기지원 노력. 소련과의 관계를 고려 미국무부는 임시정부 승인과 무기지원 등을 꺼렸으나 한미협회를 통한 계속적인 설득으로 간접적 승인
6. 미국의 소리를 통한 한국어 항일 단파방송으로 전쟁상황을 알리고 임정도 연합국에 합류하여 참전하도록 독려
7. 임정 광복군과 OSS와의 합동훈련 중재 및 그 결과로 광복군이 OSS 훈련에 참여.
8. 미 정부에 임정승인, 한국의 완전한 독립 요구, 얄타 회담 및 신탁통치 반대 등의 노력. 미소와 연합군 간의 이해문제로 신탁통치로 결정 되었으나 해방직전 완전한 독립을 위한 그의 외교적 노력은 평가할만함.
위에 적은 것들 중에 대부분은 내가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지라 언급을 할 수 없지만
성금 모금에 대해서는 언급할 것이 있음.
이승만이가 하와이에 있을 때, 배운 게 많다고 자랑질하고 다니기에
후세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서 영재로 길러야 민족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이숭만에게 후세들 교육기관을 만들 수 있겠냐고 물었고 이숭만은 자기가 추진할 수 있다고 대답.
그래서 교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았고, 적지 않은 성금을 이승만에게 위탁.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도 뭔가 이루어지는 것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음.
교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물으면, 잘 되고 있다면 기다리라고 대답.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가시화되는 것이 전혀 없음.
그 와중에 이승만의 생활은 전과 다르게 많이 형편이 많이 피어 보임.
안되겠다 싶은 교민들이, 그 동안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교민들이 건네준 성금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내역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
그런데 이승만은 오히려 성질을 내며 기다리라고만 말하며
성금은 좋은 데에 쓰고 있다며 내역서 제출을 거부.
결국 해방이 되고 이승만이가 한국으로 떠날 때까지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성금의 사용처를 밝힌 것도 하나도 없었음.
정말로 떳떳한 곳, 제대로 된 곳에 성금을 사용했다면
자기 자랑을 위해서라도 밝혔을텐데, 끝끝내 성금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음.
교민들 생각에는, 성금을 위탁한 이후로 이승만의 생활 씀씀이가 전과 다르게 좋아진 것으로 보아
성금을 자기 주머니 돈처럼 써버린 것이었다고 추측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