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29일 월요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대동·동남·동화·경기·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을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금융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곧바로 5개 인수 은행의 인수팀 400여명이 투입됐다. 이미 전날 인수업무 행동요령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복잡다단한 은행 구조조정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1차 구조조정…5개 은행 퇴출=97년 초 당시 재계 순위 14위였던 한보철강이 쓰러졌다. 이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들이 연달아 무너졌다. 기업에 돈을 빌려줬던 금융권도 부실에 빠졌다.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동남아시아의 연쇄적 외환위기 속에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지급불능 상태에 놓이자 그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IMF는 한국에 철저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간 방만하게 운영되던 구조가 개선되는 효과는 있었지만 정리해고 칼날에 근로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가계 지갑이 굳게 닫히면서 자영업자들의 파산도 잇따랐다. 여파는 은행에도 미쳤다. IMF 요구에 따라 은행 정상화 방안이 추진되면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8% 미만인 은행 12곳에
경영개선 명령이 내려졌다.
97년 말 기준으로 BIS 비율이 8% 미만인 12개 은행 중 대동·동남·동화·경기·충청은행이 각각 정부 방침에 따라 국민·주택·신한·한미·하나은행에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인수됐다. P&A는 부채 및 우량 자산은 인수은행이 인수하고 불량 자산은 자산관리공사가 매입하는 것으로 당시 정부는 퇴출 은행을 인수한 은행들의 증자에 참여했다. 조흥·상업·한일·외환·평화·강원·충북은행 등 나머지 7개 은행은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1개월 안에
경영진 교체, 감자, 합병·증자계획 등을 담은 이행계획서를 제출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었다.
이후 은행권에는 인수·합병 바람이 불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한빛은행이 생긴 것을 시작으로 하나은행(하나은행+보람은행), 국민은행(국민은행+장기신용은행), 조흥은행(조흥은행+강원은행+충북은행)이 합병을 통해 재탄생했다. 한빛은행을 제외하곤 사실상 흡수합병이었다.
외국 자본 유치도 활발했다. 외환은행은 98년 5월 독일 코메르츠은행으로부터 2억5000만 달러를 유치해 구조조정 바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부의 대규모 출자로 기사회생한 제일·서울은행은 민영화 과정에서 외국 은행들의 관심을 받았다. 결국 제일은행은 99년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됐고, 서울은행은 영국의 HSBC와 매각 협상을 하다 결렬됐다.
은행권 구조조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99년 경영 부실로 재계 2위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대우사태’로 은행 부실이 또다시 증가하면서 2000년부터 2차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2차 구조조정…추억이 된 ‘조상제한서’=계속된 구조조정으로 과거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로 불리던 5개 대표 시중은행은 사라지고 국민·하나·우리·신한은행 등이 두각을 나타내게 됐다.
2000년 7월 정부와 금융노련은 논의 끝에 금융지주회사 방식으로 부실 은행을 정리하고 대형 우량 은행을 합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은행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다음해 예금보험공사가 한빛은행, 평화은행, 광주은행, 경남은행과 한국·중앙·한스·영남 등 4개 부실 종금사를 묶어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켰다. 이후 한빛은행은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지주가 은행 구조조정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다.
같은 해 국민은행이 주택은행과 합병했고 2002년 이름을 KB국민은행으로 바꿨다. 또 2002년엔 서울은행이 하나은행과 합쳐 새로운 하나은행으로 태어났다. 2003년 독일 코메르츠은행에서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로 넘어갔던 외환은행은 지난해 하나금융지주에 인수됐다. 105년 역사를 자랑했던 조흥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에 합병됐다.
1차 구조조정 당시 경기은행을 인수했던 한미은행은 2004년 외국계 자본인 씨티은행에 영업 양수도되면서 한국씨티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뉴브리지캐피털의 자본 유치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던 제일은행은 2005년 스탠다드차타드로 양수도돼 2005년 SC제일은행으로 행명을 바꿨고, 2011년엔 제일이 빠진 SC은행이 됐다.
◇금융 구조조정 후유증 지속=인원 감축으로 97년 말 11만4619명이던 시중 및 지방은행 재직인원 수는 7만5604명으로 34% 줄었다. 은행 점포 수도 같은 기간 6225개에서 1009개 줄어 5216개가 됐다.
29일 공적
자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1, 2차에 걸친 은행 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이 각각 64조원, 40조원 투입됐다. 100조원 이상이 은행 살리기에 들어간 셈이다. 막대한 자금 투입으로 은행들의 숨통은 트였지만 인위적으로 진행된 인수·합병과 매각으로 인한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메가뱅크를 만들어 세계적 은행으로 키우겠다고 진행한 합병이었지만 화학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인사철이면 서로 반목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쳐진 KB국민은행은 여전히 1채널, 2채널로 출신을 나눠 파벌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영진 교체 시기엔 이 때문에 조직 전체가 흔들거리기도 한다.
무분별한 외국 자본 도입도 문제를 일으켰다. 정부는 외국 은행의 국내 은행 인수가 선진 금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국내 은행들도 외국 은행과 경쟁을 통해 자생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외국 자본은 은행 인수를 통해 수익만 챙겨 나갔다.
외환은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3년 외환은행을 사들였던 사모펀드 론스타는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며 5조원 가까운 이익을 챙겨 한국을 떠났지만 한국정부로 인해 매각 과정이 지연돼 손해를 봤다며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