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고 조선을 건국했다.
당시 중원에 각 군벌을 통일하고 원나라를 몽고로 밀어넣은 명나라 주원장 입장에선
이보다 고마운 일이 없을수 없다.
그러나 이성계와 정도전은 근본적으로 요동정벌 자체를 부정하거나 대륙진출에 꿈을
접은 사람이 아니었다.
정도전은 요,금,원 등 이민족들이 중원을 정복한 고사를 들어 조선이라고 이리 못할
이유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녔다.
여기에 태조 이성계는 불세출에 무장으로 명나라를 10년동안이나 괴롭히고 주원장 역시
끝끝내 어쩌지 못한 니하추를 간단하게 멸망시켜 버린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도와 명나라를 세운 공신들조차 믿지 못해 2만명이나 되는 신하들을 죽인 의심많은
주원장 입장에서 이성계와 정도전의 조선은 북원(몽고로 쫒겨난 원나라) 만큼이나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조선에 수많은 첩자를 파견해 조선조정 역학 관계를 파악하고 있던 주원장은 자신에 파트너로써
이성계가 아닌 이방원을 점찍고 은밀히 내통하게 된다.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앞뒤 잘 분석해보면 몇가지 정황증거가 나온다.
조선의 사신을 심심하면 억류하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주원장이 생트집을 잡고 조선의 왕자를
보내라고 요구한다. 이때 이방원이 스스로 자청하여 명나라에 가게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수차례 주원장이 친견을 하고 거의 국빈급 대접을 한다.
표전에 쓰인 자구를 트집삼아 정도전을 소환하라는 주원장의 요구에 이성계가
거절하고 대신 하륜(이방원의 심복)에 친구인 누구였나 암튼 이방원쪽에 가까운 대신이
명나라에 가게 되는데 역시 주원장의 환대를 받게된다. 그러나 정도전의 심복이었던 다른 세명에
대신은 끝내 억류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죽임까지 당한다.
이래저래 주원장은 까다로운 상대이며 중원을 노린다고 생각되는 이성계와 정도전이 아닌
이방원을 자신에 파트너로 인정했고 이방원은 주원장에게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요동정벌 따위는 논하지 않고 성심껏 명나라를 섬길것을 약조한 모종에 거래가 있었다는 얘기다.
비록 이방원이 쿠테타를 일이키기 얼마전 주원장이 먼저 죽긴 했지만 이런 명나라 조정에 지원은
이방원이 자신있게 쿠테타를 일으킬수 있는 주요 동력중 하나가 됐음은 분명하다.
이제 정몽주와 정도전을 얘기해보자.
한 사람은 새로운 이념과 사상으로 새로운 나라를 열었고
그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나 한 사람은 구시대의 망해가는 나라와 함께
비명횡사했으나 어찌 누가 알았을까.
정도전은 조선왕조 500년 내내 간신, 역적으로 기록되어 후대에 손가락질을 받았고
정몽주은 조선왕조 500년 내내 충신으로 추앙받고 존경에 대상이 되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정몽주가 고려에 마지막 충신으로 목숨을 바쳐 충성했기에 즉 옳은 일을 했기에
후대에 올바르게 평가 받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건 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것이 틀릴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전에 얘기했듯이 정도전의 적은 이방원과 명나라 주원장이었다.
정도전이 이성계의 오른팔이었듯이 이방원에겐 하륜과 민제가 있었다.
이들에 공통점은 모두 귀족출신이면서 정몽주와 친한 같은 학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거다.
정도전과 남은 등을 죽이고 이들이 벌인 일은 철저하게 정도전을 깍아내리고 정몽주를
추켜 올린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접적으로 정몽주를 죽인게 이방원이었지만 어찌되었든 하륜과 그 일당
(정몽주와 마찬가지로 고려말 귀족 출신이면서 성리학을 수용한 일단에 무리)들은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 오로지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입신출세한 정도전을 깍아내리기 위해 정몽주를 추켜세우게 된다.
당연 새로운 왕조의 개혁정책 거의 모두를 입안하고 추진한 정도전은 나쁜놈이 되어버린다.
명나라 입장에서도 요동정벌을 계획한 정도전이 고울리 없었으니 비정상적인 왕위찬탈에 다름아닌
이방원의 쿠테타와 국왕등극을 신속하게 승인해주게된다.
광해군이 단지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명나라의 고명을 받지 못했던것을 생각해보면
이방원에 대한 명에 승인이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지 알수있다.
분명 공정왕 정종은 아들이 있었음에도 정실부인 대비소생의 자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는게 정상적인 왕조국가의 왕위계승은 아닐진데 명나라가 이에 조금이라도
문제삼지 않았다는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란 얘기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지만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과 태종의 등극은 단순한 왕자들간에 권력 투쟁
을 넘어 귀족출신 보수세력들이 조선건국에 핵심 주축이었던 개혁진보세력을 몰아낸
정치보복이었으면 정치세력간 권력투쟁의 성격까지 있는 사건이라고 할수 있다.
정도전이 최고권력실세이면서도 별다른 재산증식을 하지 않았던거에 비해
하륜일당이 권력을 잡자마자 백성의 땅을 뺏고 심지어 태조 이성계의 죽은 마누라 강비의
현릉 소속에 땅까지 사유화한 행태를 보라.
이런 하륜을 박기현은 조선의 최고 명재상 7인중 한명으로 꼽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통탄스럽기
그지 없다.
그저 눈치가 빨라 국왕에 심기를 헤러려 앞에서 조심하고 뒤에선 온갖 협잡을 저지른 세력일뿐
하긴 국왕입장에선 부정부패를 일삼더래도 자기 앞에선 찍소리 않고 말만 잘들으면
편할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하륜을 위시한 일단의 보수세력은 조선초기 훈구세력의 뿌리가 되며 근 200년 가까이
조선에 중심세력이 되어 사림을 탄압하고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