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성리학이 종법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서얼을 차별했다고 생각하면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정도전과 정몽주에 대해서 얘기하기전 이거 얘기 먼저 하자.
이방원과 명나라와 손잡고 권력을 획득한 하륜 이하 고려 구귀족 출신들은 정도전을 뭔가
결함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뒤집어 까고 털어내도 먼지 하나 안나오고 그가 세운 정책 역시 당시로써는
너무나 뛰어나고 흠잡을께 없으니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결국 찾다 찾은 정도전의 흠결이 바로 첩 소생의 서자라는 신분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하륜에 휘하이면서 정도전과 본래부터 앙숙이었던 서성인가 서석인가 하는 사람이 태종대에
이르러 정도전이 서자였고 이런 서자들이 설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지금으로썬 말도 안돼는
개소리를 상소로 올리게 되고 이에 태종은 일고에 고민도 없이 냉큼 받아들여 서얼에 과거참여를
막아버리게 된다.
이로부터 오랜 시간 적서차별과 서얼의 과거응시 규제는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조선에 법이
되어버린다.
자 오늘날 권력을 잡은 계층이 노대통령의 학력가지고 비난했던걸 기억해보자.
시간은 흘렀지만 결국 어느 시대건 보수반동에 하는 짓은 대동소이 비스므레 하게 전개된다.
하륜과 이방원 일당은 자신들에 부족한 명분을 감추고, 정도전이란 한 사람을 죽이고 나서도 아예
존재 자체를 묻어버리기 위해 적서차별을 명문화 해버린 짓을 저지르게 된거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잠그고 나니 이를 시정하기 위해 다시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게 된다.
국가의 비록 형식적이더래도 어찌되었든 서얼의 과거참여 허용은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고 정도전의 신원이 회복된건 더 시간이 흘러 대원군대에 이르러서였다.
비록 그 당시 집권 계층이 아니었더래도 사림들 역시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잘못을 바로잡을 충분한 시간과 역량이 있었음에도 태조,태종 년간에 일을 애써 외면하며
오로지 세조대의 의리에 대해서만 메달렸으니 사림 역시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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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과 손잡고 명나라에 충성을 맹세한 하륜이하 구 고려귀족 출신에 세력들은 오늘날로 치면 친일기득권세력. 정도전 같은 뛰어난 개혁가를 죽이고 철처하게 파묻어 버리는 그 가증스런 짓꺼리가 어쩜 그리 닮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