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의도, 순수하게 볼 수 없는 이유
21세기판 내란죄 부활
우리나라 형법 제87조는 내란죄를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시킬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로 규정하고 있고,
이 내란죄를 저지른 단체의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죽거나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이 죄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제90조에서는 내란의 예비, 음모, 선동, 선전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내란을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번에 국정원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선 죄목이 바로 내란예비음모죄다.
현직 국회의원이 주축이 돼 내란을 준비하다가 발각되었다는 국정원발 언론보도는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30일자 언론에는 일제히 "내란예비음모혐의로 국정원이 수사 중인 지하혁명조직
(RevolutionOrganization·RO)이
지난 5월 12일 모임에서 무기 확보, 기간시설 타격, 기간시설 종사자 포섭 등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이 원본인지 아니면 일부만 내놓은 건지 의도적으로 짜깁기를 했는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 내용만 가지고는 아직까지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다까끼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되려 한다"며
박근혜 후보를 공격했던 이정희 진보당 대표를 보면서 많은 이들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가 유신의 퍼스트 레이디가 대통령이 되고,
유신시대 중앙정보부 출신의 대표적 공안검사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정권의 수뇌부가 되면서 현실이 되고 있다.
유신시대 '인혁당 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등 다수의 내란음모 사건이 조작돼
당사자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징역을 당하는 등 민주인사들이 탄압을 받았다.
그 유신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근혜가 지금은 대통령이 되었다.
'저도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 시대의 이런 용공조작을 모를 리 없다.
유신의 용공조작을 기억하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신의 핵심이었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국부장,
비서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했고,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노태우 정부에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정치검사의 맏형으로 불리던 그가 2013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비밀권력 국정원과 민주주의, 공존할 수 없다
국정원은 불법 대선 개입 댓글 사건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여당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도 말로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잘못한 것이 없다는 국정원에게 스스로 개혁을 하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까운 일이지만
국정원 개혁은 시대적 요구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내파트와 국외파트, 정보수집과 수사권, 나아가 대공업무뿐 아니라
국내정치부분까지 간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정치파트의 해체,
국내파트와 국외파트의 분리,
정보수집과 수사권의 분리(수사권 박탈)등이 될 것으로 이야기가 나왔었다.
내란음모예비죄가 그 시기와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00년만에 부활한 내란죄 수사는 국정원이 대북 정보수집과 수사권의 유지 필요성을 보여줘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개혁 논의를 되돌리기 위한 기획이라는 의심이다.
마르틴 니묄러 신부가 생각나는 2013년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부제 '다음은 우리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30여 년만에 부활한 내란예비음모 사건은 이제 시작이다.
분명한 것은 국정원과 이석기 의원 둘 중 하나는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