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ko.wikipedia.org/wiki/%EA%B4%91%EC%A3%BC%EB%AF%BC%EC%A3%BC%ED%99%94%EC%9A%B4%EB%8F%99
[광주 시민의 시위와 계엄군의 폭력
19일부터 시위의 성격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생 중심이던 시위에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한 광주의 일반 시민과 고등학생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학생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19일 오후 시위에 참가한 시민은 최소 3천 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계엄군의 진압은 가혹하게 변했다. 공수부대는 학생, 시민, 남녀노소, 행인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가했다. 20일 시위대의 규모는 20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광주 시내 택시, 일부 시내·시외 버스 200여대가 계엄군의 진입로를 가로막기도 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시민들을 진압봉이나 총의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고 옷을 벗기는 등 과격진압을 자행했다.[20] 일부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지휘를 맡고 있던 전투교육사령부를 찾아 직접 항의를 가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보안사의 통제를 받던 언론이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보도한 데 격분한 시위대는 광주 MBC 방송국를 방화했다. 20일 24시 계엄군은 광주역 앞에서 최초의 집단 발포를 가했다.[17] 발포 이후 2군 사령부로부터 발포금지와 실탄 배분 금지 명령이 떨어졌지만, 11공수여단은 이를 무시하고 실탄을 분배했고, 다음날인 5월 21일에는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연결됐다.[21]
[편집] 계엄군의 발포 및 광주 시민 학살
5월 21일 오전 전남도청과 전남대 앞에서 계엄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었다. 21일 오전 시민 대표는 계엄군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렬됐다. 전남도지사는 헬기를 타고 확성기로 21일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철수시키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공수부대 철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수세에 몰린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21일 정오 12시경 전남대 앞·21일 오후 1시경 당시 전남도청 앞)를 시작했으나,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도청 집단 발포 이후,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에 위치한 전일 빌딩·수협·광주관광호텔 등에 4인 1조로 올라가 조준사격을 가했고 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20] 이 날 광주시내 120여 개의 병원과 보건소·3개의 종합병원 등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상자들이 몰려들었다.
[편집] 광주 시민의 항쟁
집단 발포가 일어난 21일 오후부터 시민들은 계엄군의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화순, 나주 지역에서 경찰서와 파출소의 예비군무기고를 열어 총을 들고 무장해, 시민군을 결성했다. 시민들은 광주의 유일한 자동차 공장인 아세아자동차으로 몰려가 차량을 탈취했다. 일부 시민군은 260여 대의 차량을 몰고 나주와 화순 등으로 외부에 광주의 소식을 알리러 떠났다. 총과 실탄, 폭약 등 각지에서 탈취된 무기는 시민들에게 분배됐다.
계엄군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광주시 외곽으로 퇴각했다. 21일 저녁 시민군은 계엄군이 물러난 전라남도 도청을 점령했다. 21일 저녁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보안사 정도영 준장은 자위권 발동을 경고하는 담화문을 계엄사령관 이희성에게 전달했다.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오후 7시 보안사에서 전달한 자위권 발동 경고 담화문이 발표했다. 이희성은 광주 지역의 시위를 ‘광주사태’로 명명하고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묘사했다.]
출처 : 위키백과 일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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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래 관련글에서 말씀드렸듯이.
광주사태라고 예전에는 많이 불렀습니다.
요즈음은 안그러죠.... 주위사람들이 광주사태라고 말한 적을 저는 못들어봤습니다.
(제가 젊어서 그런거겠죠 아마.- 대학교에서도 못들어봤습니다.)
법에 관련해서 우선 시민들의 저항행동이 저항권의 일부라고 보는 측면이 있습니다.
(반대하는 주장도 있긴 있죠. 그것은 말이 복잡해지니 시간이 나시면 네이버에서 저항권이라고 친다음 자세히 알아보시면 되겠습니다. - 저항권의 근거는 위 발췌된 사례에도 포함이 되겠지요.)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민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정권'은 그 나라의 정부가 아닌 것입니다.
하긴, 애초에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그렇게 권력을 잡지도 않았겠죠.
북한간첩들이 선동했다는 것은 둘째 치고, 왜 그런 빌미를 제공했냐는 생각을 안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위키백과에 아주 좋은 내용 많습니다. 시간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p.s 사실 글을 쓰고 난 뒤 글솜씨와 어린 생각 때문에 지우는 것을 반복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올립니다. 아양으로 봐주세요.
p.s 2 그리고 아래 박탱이님께서 '근거'로 제시하신 북한 간첩에 대한 우파들의 주장('설')에 대한 반론과 판례에 대한 내용도 위키에는 포함되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