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27·넥센 히어로즈) 포스팅에서 500만2015달러를 적어낸 팀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밝혀졌다. mlb.com은 23일(한국시간) 피츠버그가 독점 협상권을 가지게 됐으며, 향후 30일 간의 계약 협상 기간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포스팅 승리 구단이 피츠버그라는 것은 꽤나 놀라운 소식. 그동안 무수한 팀들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피츠버그가 언급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는 스카우팅 과정에서 가장 최선을 다한 팀이 피츠버그였음에도 그들의 내야 상황을 봐서는 강정호를 영입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피츠버그의 2014 내야 포지션별 fWAR
유격수 : 2.3 (ML 16위)
이루수 : 2.9 (ML 12위)
삼루수 : 3.8 (ML 8위)
피츠버그 주전 내야수들의 2014년 성적
유격수 : 머서 - .255 .305 .387 / 12홈 55타
이루수 : 워커 - .271 .342 .467 / 23홈 76타
삼루수 : 해리슨 - .315 .347 .490 / 13홈 52타 18도
먼저 피츠버그의 주전 유격수는 조디 머서(28)다. 피츠버그는 공격력 강화를 위해 올시즌에 앞서 유격수를 클린트 바메스에서 머서로 바꿨다. 머서는 공격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2013년 .285 .336 .435) 반대로 수비에서는 기대 이상을 해내며 준수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fWAR 2.0을 기록했다. 게다가 머서는 서비스 타임 2년차 선수로 FA까지 4년이 더 남아 있다(올해 연봉 51만).
2루수 닐 워커(28)는 앤드류 매커친(27·중견수)과 함께 피츠버그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선수. 피츠버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뽑은 피츠버그 태생 1라운드 지명자다. 워커는 올해 공격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며 메이저리그 2루수 중 홈런 공동 1위(23) 타점 4위(76)에 올랐는데(NL 실버슬러거 수상) 수비 역시 나쁘지 않다. 워커의 문제는 FA까지 2년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장기 계약을 맺지 못했다는 것(올해 연봉 575만). 하지만 워커의 인기와 팀에 대한 그의 애정을 감안하면 합의점을 도출해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피츠버그의 원래 3루수는 2008년 전체 2순위 지명자이자 지난해 홈런왕인 페드로 알바레스(27)였다. 하지만 알바레스는 지난해(.233 .296 .473 36홈런 100타점) 대비 크게 부진했고(.231 .312 .405 18홈런 56타점) 특히 수비에서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이에 시즌 중반 이후 3루는 '유틸리티 맨' 조시 해리슨(27)이 맡았고, 해리슨은 MVP 투표 9위에 오를 정도의 대활약을 했다. 결국 피츠버그는 알바레스를 1루로 보내고 해리슨에게 3루 자리를 완전히 내줄 전망이다. 해리슨 역시 FA까지 3년이나 남아 있는 선수다(올해 연봉 51만).
피츠버그는 올해 휴스턴(5200만) 마이애미(5400만) 탬파베이(7700만) 다음으로 적은 7800만 달러를 쓰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1위 다저스 2억5700만, 2위 양키스 2억1800만, 3위 필라델피아 1억8300만). 그 중 2루수-유격수-3루수 내야수 세 명에게 쓴 돈은 단 677만 달러였다. 그런 팀이 포스팅 비용으로만 500만 달러를 쓴 것이다. 게다가 피츠버그는 아메리칸리그의 탬파베이와 더불어 수비를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다.
현실적으로 강정호가 피츠버그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내야 유틸리티'다. 하지만 내야 유틸리티에게 연평균 500만 달러를 쓸 만한 사치는 다저스나 되어야 부릴 수 있다(3년 900만 달러 계약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피츠버그는 강정호에게만 연평균 500만 달러 가까이를 쓰는 셈이 된다. 500만 달러는 피츠버그에게 큰 돈이다). 그렇다면 피츠버그가 강정호를 영입하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 머서의 공격력이 아쉬웠다?
2013년 피츠버그는 유격수를 수비가 강한 바메스와 공격이 강한 머서에게 나눠 맡겼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공격이 강한 강정호와 수비가 강한 머서에게 나눠 맡기려는 것일 수 있다. 피츠버그는 이미 숀 로드리게스(통산 .225 .297 .372)와 페드로 플로리몬(통산 .204 .266 .300)이라는 백업 내야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방망이를 크게 기대할 만한 선수들이 아니다.
2. 워커의 재계약 불발을 고려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워커는 피츠버그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하지만 재계약이 어렵다는 것이 내부적으로 확인된 상태라면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강정호를 영입했을 수 있다. 이 경우 워커는 내년 시즌 후 또는 내년 시즌 중에 트레이드 카드로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강정호가 빠르게 안착하면 할수록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네 명뿐인 20홈런 미들 인필더
3. 해리슨은 검증된 선수가 아닐 수도 있다
올해 해리슨이 기록한 fWAR 4.9는 팀내에서 매커친(6.8 NL 1위) 다음이었으며 내셔널리그에서도 11위에 오른 대단히 좋은 기록이다(다저스 1위 야시엘 푸이그 5.1). 그러나 해리슨의 앞선 3년 간 기록은 0.9, 0.2, 0.1이었다. 타격에 확실하게 눈을 떴다는 보장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츠버그는 해리슨의 실패를 대비할 선수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강정호가 가진 포지션 소화 능력(유격수 3루수 2루수)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4. 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츠버그는 비교적 조용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프란시스코 리리아노와 3년 39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었으며, 1루에서 알바레스와 플래툰을 이룰 선수로 우타자 코리 하트(1년 250만)를 영입했다. 에딘손 볼케스(2년 2000만 캔자스시티행)가 나간 자리에 A J 버넷(1년 850만)을 재영입했으며, 또 한 번 양키스와의 거래를 통해 러셀 마틴(5년 8200만 토론토행)이 떠난 자리를 프란시스코 서벨리로 채운 것이 전부다. 이에 강정호의 독점 협상권을 따냈다는 이야기는 기존 내야수들 중 한 명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가능성은 높지 않다.)
5.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2010시즌 후 열린 이와쿠마 포스팅에서 오클랜드는 1910만 달러를 적어내고 독점 협상권을 얻음으로써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오클랜드는 이와쿠마의 요구(7년 1억2500만)와는 거리가 먼 제안을 했고(4년 1525만) 더 이상의 추가 제안을 하지 않음으로써 시애틀행을 막을 목적으로 독점 협상권을 따낸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한편 당시 2위에 해당되는 770만 달러를 적어낸 팀은 시애틀이 아닌 미네소타였다). 이에 나쁜 눈으로 보면, 피츠버그 역시 세인트루이스를 비롯해 경쟁 팀으로 가는 것을 막은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500만달러에다 2015달러까지 붙였다는 것은, 강정호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낙찰 받으려는 피츠버그의 강한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계약 무산을 목표로 했다면 이와쿠마 포스팅에서의 오클랜드처럼 더 큰 돈을 써냈을 것이다. 과거 보스턴은 양키스가 거액을 베팅한다는 거짓 소문에 낚여 마쓰자카 다이스케 포스팅에서 5111만1111달러11센트를 쓴 적이 있는데, 이가와 케이(2600만194달러) 마쓰다카 다르빗슈(5170만3411달러) 류현진(2573만7737달러33센트) 등 지금까지 '자투리 돈'을 붙였던 팀들은 모두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독점 협상권이 '인심이 후할 수 없는' 피츠버그에게 넘어감으로써 강정호로서는 쉽지 않은 협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행 포스팅 제도로는 독점 협상권을 가진 팀과의 협상이 불발되면 2위 팀으로 넘어가는 대신 포스팅은 그대로 끝나 버린다. 혹시라도 피츠버그가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강정호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제안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넥센 구단이 포스팅을 수용하기로 하고 해당 팀이 알려지기 전까지 많은 팀들이 강정호를 데려갈 후보에 소환됐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으로 여겨졌던 팀은 주전 유격수 지미 롤린스를 다저스로 보낸 필라델피아였다(네이버에 칼럼을 쓰는 이모 기자는 필라델피아행 기사를 이미 써놓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에 비해 피츠버그는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더 좋은 전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필라델피아와 달리 확실하게 보장된 자리가 없다. 또한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가 대표적인 타자 구장인 반면 피츠버그 PNC파크는 투수에게 대단히 유리한 구장이다(지난 3년 간 우타자 홈런 팩터 - 필라델피아 128 ML 3위, 피츠버그 58 ML 30위).
피츠버그는 강정호와의 협상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가슴 졸이는 한 달이 시작됐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24&article_id=0000003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