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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01 12:49
[일본] 일본이 신으로 모신 신라인
 글쓴이 : 예맥
조회 : 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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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일본 속 우리 신불(神佛)을 찾아서’ <3>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 고대사회에서 종교나 신앙의 역할은 지금보다 매우 컸을 것이다. 제정일치(祭政一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종교와 신앙은 지배층들의 이데올로기로써 백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신권(神權)정치 즉 왕이 신으로서의 권력을 가졌다고까지 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한다. 신라 시대 때 법흥왕과 진흥왕이 이를 표방했다.

고대사회에서 종교와 신앙의 중심지는 정치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한시대의 소도가 그러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천 년을 넘게 일본 속에서 신라라는 이름을 지켜온 신사들은 그 자체로 연구대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신라에서 직접 건너온 사람들과 그 후예가 그들의 신과 조상을 기렸던 곳이 바로 신라신사다. 신라의 신들을 모신 신사는 신라에서 건너간 신라 사람들의 신앙적 중심지였다. 그리고 그 신사는 신라 이주민들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나아가 민속적으로는 제사 전후에 벌어지는 축제의 장소이기도 했다.

신라라는 이름이 천 년이나 변하지 않고 지속한 것은 신라인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집단의식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닭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신화의 내용을 믿고 자신들이 닭의 후손이므로 현재까지도 닭을 먹지 않는 습관을 지닌 지역이 일본 내에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쓰루가 지역의 시로기(백목 : 白木)신사가 있는 시라기 마을에는 신라 도래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시조신의 탄생내력을 기려 닭도 기르지 않고 달걀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신라에서 온 후예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믿고 지키는 것이다.

신사란 고대 신앙의 변천이 말해주듯이 원시적인 자연숭배의 면도 간직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시대 이후에는 그들의 시조를 비롯한 선조를 모신 사당으로서의 성격이 점점 강해진다. 결국, 신라인들이 그들의 조상을 모신 사당이 바로 신라신사다. 이러한 주장이 맞는다면 이에 대한 추적은 한민족의 디아스포라(Diaspora·이주)를 연구하는데 커다란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으로 믿어진다. 다시 말해서 신라신사의 존재를 찾아내면 신라인 거주지의 자취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말로는 신라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시라기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시라기라는 발음에 대해 신라가 아닌 다른 한자들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 매우 많다. 앞에서 나온 시로기(백목 : 白木)를 비롯해 ‘백성(白城)’ ‘백귀(白鬼)’ ‘신로기(信露貴)’ ‘지목(志木)’ ‘백정(白井)’ ‘백석(白石)’ ‘백발(白髮)’ ‘백자(白子)’ ‘백빈(白濱)’ ‘백기(白磯)’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시라기 또는 시로기 등과 비슷하게 발음되는 일본식 한자표기다. 따라서 백성신사 역시 시라기진자로 발음되며 백목신사 역시 시로기진자로 발음되는 신라신사다.

이러한 신라신사의 일본식 표기는 일본에 수백 군데 존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래 들어 의도적으로 개명(改名)이 이뤄져 신라라는 그 원래 이름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져간다.

신라신사라고 해서 신이 모두 신라신은 아니다. 보통은 천일창(天日倉)처럼 신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나 신라인들의 선조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대명신(新羅大明神)과 같이 신라에서 이주한 사람들과는 그다지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존재도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에게 은혜를 베푼 신도 더러, 보인다. 오늘 소개할 곳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인 신라선신당이다.

신라선신당은 온조지(園城寺) 또는 미이데라(三井寺)로 불리는 천태종 본사인 연력사의 말사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시가현(滋賀縣) 오쓰시(大津市)에 있다. 이곳은 신라계 도래인 씨족으로 알려진 오토미씨(大友氏)의 거주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특히, 원성사는 국보인 대웅전격인 금당(金堂)을 포함한 수많은 문화재와 함께 고려대장경이 소장돼 있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곳은 원성사 경내의 암자나 다름없는 사찰로 신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보살을 모신 것이 아니라 신라선신을 모신 곳이기 때문에 선신당이라고 한다. 우리의 산신각처럼 일본 무속에서 발전한 신도(神道)와 불교가 하나가 된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일면을 볼 수 있다.

홍문천황릉(弘文天皇陵) 근처에 있는 신라선신당은 평소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다. 다만, 신사의 궁사(宮事)를 겸한 스님이 절 입구에 상주하고 있어 문으로 들어가서 잘만 얘기하면 건물은 볼 수 있게 해준다. 본전 내는 자물쇠로 잠겨 있고, 그 내부의 신라명신상은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여기저기에 그 신상의 사진이 실려 있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신라명신좌상(新羅明神坐像)과 14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신라선신당 건물 역시 일본의 국보이다.

지증대사(智證大師) 원진(圓珍)이 858년에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배에서 귀국을 도와주며 호법을 약속해준 신라명신을 만났다. 이에 신라선신당을 짓게 된 것인데, 신사에서는 신라명신이 스사나오노미코토(素盞嗚命)와 이소타케루노카미(五十猛神)라고 한다. 이소타케루노카미는 스사나오노미코토의 아들이다. 일부 일본인 학자들은 이들이 신라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듯이 이 둘 모두를 일본명신이 아닌 신라명신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점을 일본인들은 외면하고 있다.

신라명신은 일본에서는 뜻밖에 꽤 유명한 신인 듯하다. 왜냐하면, 일본의 유명한 명문대가인 미나모토씨(원씨 : 源氏)의 중시조격인 미나모토노요리요시(源賴義)가 신라명신에게 참배한 후 일본의 지배권을 장악하는 기틀을 마련한 전투에서 대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3남으로 일본 전국시대 가장 유명한 무장집안인 다케다(武田)가문 등의 시조가 된 미나모토노요시미츠(源義光)도 신라명신당에서 성년식을 거행했다. 그리고는 신라사부로(新羅三郞)로 개명했는데 이는 신라명신께서 주신 세 번째 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처럼 원래 신라명신은 고승들의 항해 안전을 도와주며 불법을 수호해 주던 호법신이었다. 그리고 이가 일본의 중세를 이끈 원씨 전쟁의 신에서 점차 일본 호국신이 되어 간 것이다.(여성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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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간 신라 제철기술자 '연오랑세오녀' 일본 神이 되다


신라식으로 만들어진 동검들.

일본에 가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신사다. 신사가 없는 일본을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수많은 신사가 있지만 그 신사들은 각각 특정한 신을 섬기고 있다.

어디를 가든 도처에 널려 있는 신사 중 한국과 연관이 있는 신사를 찾아보기 위해 이즈모시와 마쓰에시를 방문했다.

그들이 모시는 신 중에는 역사적인 인물도 있고, 특정 사물을 모신 곳도 있었다. 특히 한국 사람을 만난 것 만큼이나 반가웠던 것은 신라나 백제, 고구려의 위인을 모신 신사였다.

일본의 왕은 현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때문에 일본의 왕을 신격화 하기 위해 그들이 신성시 하는 모든 것은 신이 된다는 일본.

연오랑이 타고 간 바위, 안내판에 간단한 설명이 쓰여있다.

일본의 10월은 간나츠키(神無月)라고 했다. 매년 10월이 되면 전국의 신들이 시마네현(鳥根)으로 모이는데 그 장소가 이즈모다이샤(出雲大社)다. 이렇듯 전국의 신이 한 곳에 모이다보니 다른 지역에는 당연히 신이 없다. 신이 오는 세 갈래 길을 따라 연오랑 세오녀도 여기에 와 있을 것이란 궁사의 설명을 들었다.

일본에 있는 '귀한 여인의 섬'을 뜻하는 '히메지마(姬島)' 섬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본 큐슈(九州)동쪽 쿠니사키(國東)반도 끝 자락에서 6㎞ 더 간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총 6.85㎦, 둘레 17㎞의 작고 아름다운 섬.

세오녀를 모신 사당. 비단짜는 신으로 받들어 지지만 아픈사람을 치유하는 영험도 있다고 한다.

이곳을 특별히 보물섬이라 하는 것은 흑요석(黑曜石)이 나기 때문이다. 검고 단단한 유리를 닮은 흑요석은 화살촉, 칼날, 도끼날 등을 만드는데 사용한 고대의 중요한 석재였다는 것이다.

무 쇠가 생산되기 전에는 무쇠촉, 무쇠칼, 무쇠도끼 등을 대신해 긴요하게 쓰인 생활도구와 무기의 원자재였으나 우리나라에는 흑요석이 나지 않았다. 때문에 히메고소라는 신라 여인은 한반도에 없는 귀한 흑요석을 찾아 일본 히메지마까지 갔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 역사책에 따르면 세오녀로 알려진 히메고소는 일본 규슈의 히메지마와 무나카타(宗象)등지에서 신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라여인이다.

□ 철광석 산지에 도착한 연오랑 세오녀

이들 고장에서는 히메고소진자(比賣語曾新社)라는 사당을 지어 지금까지도 히메고소를 극진히 모신다. 특히 규슈의 무나카타에서는 비단 짜는 신으로 추앙받는다고 했다. 아메노히보코 역시 신라 명신(明神)이란 신으로 받들여진다는 것이다.

'명신'이란 말 그대로 해와 달의 신을 뜻하는 말.

일본 역사서에 등장한 이 아메노히보코와 히메고소가 바로 신라의 연오랑 세오녀로 생각된다는 말에 일본 마쓰에(松江)시 교육위원회 지도강사 니시코리아키라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라 제철 기술자인 연오랑과 세오녀를 아메노히보코와 히메고소란 이름으로 부르며 한반도에서 온 신으로 떠받드는 일본.

니시코리 아키라시는 연오랑세오녀 연구소 개소식 참석차 포항에 와서 "연오랑세오녀가 철기기술을 비롯한 각종 문화를 전해준 것은 우주에 우주선을 쏘아올린것 만큼이나 위대했다" 할만큼 그들에 대한 신격화도 대단했다.

타지마는 신라와 가까운 동해 쪽의 한 지방이다. 일본으로 먼저 건나간 신라왕자는 이곳에 정착하기전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 북쪽 기슭 요고마을에 살았다고 기록됐으며 그가 연오랑이라고 한다.

그 런데 '요고'라는 지명이 연오랑의 '연오'와 소리가 흡사해 눈여겨 봐야 한다고 이영희교수(인재개발원)는 말한다. 이곳 '요고'에는 신라 왕자 아메노히보코를 제사지내는 사당 '에레히코진자'가 있다. 에레히코의 '에레'는 납을 합금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연오랑의 이름자인 '연(延)'은 원래 납을 가리키는 '연(鉛)'연에서 비롯됐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 '세오녀'는 무엇을 뜻하는 이름일까.

'세'는 무쇠를 가리키는 신라말이라고 이영희교수는 설명한다. 그리고 '오'는 '오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즉 세오녀란 이름은 무쇠와 함께오는 여인을 의미한다는 것.

일 본 역사책에서는 세오녀가 '히메고소'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히메는 귀한 신분을 가리키는 일본말, '고소'는 강모래에서 사철을 걸러내는 총책임자를 뜻하는 '거세'와 같은 말로 불린다. 세오녀와 히메고소가 동일인물이었다면 세오녀는 제철여왕이었다는 일본인들의 말이 맞는 셈이다.

'삼국유사'에는 남편이 먼저가고 아내가 뒤따라 간다로 기록돼 있으며 '고사기', '일본서기'에는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와 히메고소는 신라에서 부부로 히메고소(세오녀)가 일본으로 먼저 왔으며 남편이 뒤따라 왔다로 기록돼 있다. 히메고소는 비단짜는 신으로 받들여지며, 남편도 일본에서 해와 달의 신으로 받들어졌다고 역사책에는 기록돼 있다. 기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두 남녀가 신라인이었다는 점과 일본에 갔다는 사실은 일치한다. 또한 그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왕과 왕비, 그리고 신으로 받들여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간 신라 제 8대 아달라왕 4년을 서기 157년으로 확실하게 밝힌 사실 때문이다.

세오녀의 발자취를 따라 이즈모시와 마쓰에시 박물관 등을 돌아보면서 신라의 많은 유물이 일본에 전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즈모시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큰 호수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다. 호수 주변을 빙 돌아 건물이 들어서고 각종 관공서와 호텔 들이 들어서 있다.

니 시코리 아키라씨와 찾아간, 세오녀를 모신 신사는 마쓰에시에서 삼나무 짙은 숲을 헤치고 승용차로 1시간 30분가량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은 원시림과 같았으며 끝없는 계곡이 펼쳐져 있었고 계곡 끝에 닿자 연오랑이 타고온 바위가 있었다. 거기에는 안내 팻말도 세워져 있었다. 1천500여년전 연오랑이 타고 온 바위, 연오랑 세오녀에 대한 막연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일본인들이 그 오랜 세월을 자손 대대로 연오랑이 타고온 바위라 했고 산 꼭대기에는 세오녀 사당이 있었다.


고대로 부터 전해온 기록을 한 낱 설화나 전설로 몰아버리지 않고 역사로 받아들이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근처에는 신라식 제철소가 있어 매년 정월에 쇠를 녹이는 작업을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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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눔아 13-04-03 00:05
   
읽기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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