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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10 21:21
[기타] 핫바지 vs 훈도시 임진왜란 최대 이색전투 청주성전투(펌)
 글쓴이 : 실험가
조회 : 4,900  

http://nasanha.egloos.com/m/11127680

조헌과 영규 -1. 청주성 전투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중봉 조헌의 이름은 들어 봤겠지? 율곡 이이의 제자로서 꽤 머리도 좋고 인정도 받은 사람이지만 한 번 ‘삘’ 받으면 그냥 궁궐 앞에 거적 깔고 엎드려서 “통촉해 주시옵소서” 부르짖다가 참다 못한 임금이 귀양을 보내 버리는 일이 흔했지. 너무 독하게 얘기를 하다가 마천령 산맥 이북 함경북도 길주까지 귀양갔다 왔는데 임금은 조헌을 두고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 “이 인간은 언젠가 또 한 번 마천령을 넘게 될 게야.”

살다 보면 곧은 건 대나무같이 곧고 어그러짐 하나 없이 바르기만 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대개 융통성이라는 단어와 매우 안 친하고 외곬수라는 평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매진하는 건 특출하고 그를 위해 물과 일신의 안위를 가리지 않을 만큼 용감하지만 때로는 그 의기와 용기를 조금 덜어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은 사람들 말이지. 바로 그게 조헌이었어.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 사신들이 뻔질나게 한양을 드나들 무렵 이 조헌은 또 한 번 결기를 세운다. 궁궐 앞에 가서 일본 사신들 목을 치고 전쟁을 준비하라고 부르짖은 거야. 그의 어깨에는 도끼가 하나 걸려 있었지. 그걸로 왜놈들 목을 치든가 아니면 자기 목을 치라는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 조헌은 도끼를 메고 대궐 앞에서 사흘을 버틴다. 전쟁을 준비하자는 건 선견지명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당최 왜 사신을 죽여야 하는지는 이해가 안가네. 그런 도발은 전쟁 준비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인데 말이야. 조헌 입장에서야 그렇게 해야 ‘대의’가 서는 일이었겠지만.

하지만 조헌은 똑똑한 사람이어서 설마 설마 하던 보통 사람과는 달리 분명히 전쟁이 난다고 예측하고 있었고 여기 저기 아는 사람들한테 전쟁이 날 테니 방비를 해 두라고 알리기도 해. 대개는 “망녕이 나셨냐고 여쭈어라.”가 대답이었지만 말이야. 그래도 연안부사 신각은 그 충고를 받아들여 방어 태세를 갖췄고 후일 연안성 방어전에 큰 몫을 했으니 일말의 다행이었지 뭐.

어쨌건 조헌이 목놓아 외치던 대로 전쟁은 난다. 그리고 경부축선을 타고 한양으로 급행한 일본군은 삽시간에 한양을 점령해 버렸고 임금은 평양으로 의주로 내처 도망가게 돼. 경기도 김포가 고향이지만 조헌은 충청도와 인연이 깊었다. 공주에서 제독관을 지내고 보은에서 현감 노릇을 했고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게 되니까. 격문도 도끼 조헌 답다. “귀신과 사람이 다 같이 증오하는 것은 도적이라. 화살이 이 원수들에게 함께하여 그들의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리라. 뜻을 굳게 먹는다면 귀신이 감동하고 백성들이 따라나서며, 일을 이루려고만 한다면 천지만물도 도우리라”

조헌은 의병을 일으킨 후 영규라는 이름의 법명의 한 스님을 만나게 돼. 이미 승병장 칭호를 얻은 헌헌장부였어. 남들보다 키는 갑절은 컸고 무예도 익혔다 하니 글로 평생을 보낸 조헌과는 차원이 다른 장재(將材)였겠지. 영규가 했다는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리는 조정에서 어뜨케 하라고 혔기 뚜레메 시방 이러는 것이 아니여. 목심이 아까운 사람들은 아예 나서지도 말어..”

이런 배포는 조헌과도 꿍짝이 맞았을 것 같아. 조헌의 의병과 영규의 승병, 그리고 언젠가 얘기했던 용인 전투에서 참패하고 쫓겨온 충청도 관군 일부가 합세한 조선군은 일본군 점령 하에 있던 청주성을 향해 칼을 겨눈다.

여기서 당시 상황을 좀 말해 보면 일본군의 주요한 장수들은 한 도씩을 맡고 있었어. 충청도를 맡은 장수는 후쿠시마 마사노리라고 풍신수길의 측근이었던 맹장이었어. 우리는 흔히 가토 기요마사를 일본군 장수 가운데 멧돼지같이 저돌적인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이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가토를 능가하는 멧돼지였다고 전해져. 그가 무서워한 사람은 딱 하나 마누라였는데 마누라가 대문 앞에서 칼을 휘두르면서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비면 “전쟁에서는 도망을 간 적이 없는데 마누라는 무섭다.”고 줄행랑을 쳤다는 공처가였다고 하지. (웬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건 왤까)

 그런데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한양과 부산을 잇는 충청 좌도 쪽 (요즘 말로 하면 충청북도)을 제외하면 충청도 전역을 석권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고, 주로 한양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 즉 청주성의 일본군도 후쿠시마나 그가 이끄는 일본군 제 5군의 주력군이라기보다는 고립된 별동대에 가까운 병력이었지. 1592년 8월 1일 조헌과 영규의 연합 의병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청주성을 들이친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이 전투를 지켜 본다면 킬킬거리고 웃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일본군은 청주성을 향해 죄어드는 조선군을 보고 “바가야로. 도망이노만 가던 것들이 공격이노 한다고!”를 부르짖으며 성 밖으로 뛰어나온다. 지금까지처럼 조선군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것을 기대했겠지.

그 방심의 증거로, 그리고 늦더위가 계속되던 기온 때문에 일본군은 훈도시만 걸친 이들이 많았다고 해. 즉 웃통벗고 으뜸 부끄럼 가리개만 차고서 전쟁하겠다고 나선 거야. 얼마나 더웠으면 또는 얼마나 조선 사람들을 얕봤으면

그런데 날씨가 덥긴 더웠나 봐. 조선군들도 웃통을 벗고 싸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 조헌은 가죽이라도 걸치고 싸우라고 호령했다지만 병사들은 싸워 죽기 전에 쪄 죽겠소! 하는 심경이었던지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고 해. 웃통을 벗어던진 훈도시와 핫바지의 대결. 피를 뿌리고 살이 떨어지는 전쟁의 참상이야 달랐겠냐면 어딘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지 않냐.

하지만 우세를 점한 건 핫바지 부대였어. 일단 사기 면에서 원기왕성한 의병들과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오마 하던 대장님은 소식도 없는 고립된 성에 있던 일본군의 차이는 있었지. 그리고 뭣보다 싸움을 할 줄 아는 키 190센티미터의 (추정 ...) 영규같은 거한이 지휘하는 승병들의 기세가 대단했지. 일본군들은 성 안으로 쫓겨들어가서 거의 함락 직전까지 몰리다가 때마침 소나기를 만나 공격을 멈춘 틈을 타서 성을 버리고 도망가 버린다. 청주성 탈환.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인 전투에서 육군이 쟁취한 첫 승리라고 평가되기도 해.

얼마나 신났을까. 아마 의병이고 승병이고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우리가 왜군들을 이겼다. 일찍이 순변사 이일이 “실로 적들은 신병(神兵) 같습니다.”라고 죽는 소리를 하고, 전쟁나고 한달도 안돼 한양을 접수해 버린 쌈박질 하나는 악귀같은 왜놈들을 숱하게 죽이고 청주성에 깃발을 꽂았으니까.

그런데 승리에 취한 병사들의 환호에 응답하며 즐거워하던 조헌의 눈이 갑자기 뒤집힌다. 관군을 지휘하던 방어사 이옥이 군량 창고에 불을 지른 거야. “지금 뭐하는 건가?” 이옥은 삐딱하게 얘기한다. “보면 모르오? 적들이 다시 오기 전에 불태우려는 거요.” 조헌은 또 한 번 소리를 지른다. “아니 불태우다니. 차라리 굶주린 백성들 먹이면 되지!” 이옥은 계속 삐딱하고. “백성들한테 나눠 주면 결국 왜놈들이 다 빼앗아가지 않겠소.” 조헌은 또 목소리 볼륨을 키웠겠지. “아니 그럼 의병들에게라도 풀어야지 그걸 불태우면 어떡하오.” 이옥은 “명령이오. 불만있소?”라고 대꾸했을 것이고.

아마 조헌은 다시 한 번 도끼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원래부터 삐거덕거리던 의병과 관군의 갈등이 선명하게 터오는 순간.

칠백의총까지 얘기하려고 했는데 길어졌네. 다음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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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위해 15-05-10 21:46
   
이렇게 읽으니 색다른맛이 있네요.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전략설계 15-05-12 06:31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후속편 기다리는 1인..

사극도 이렇게 캐릭 색깔이 분명하고, 해학이 있는 이런 느낌으로 한번 제작해봤음 하네요.
     
실험가 15-05-12 07:58
   
제가 쓴게 아니라 링크된 저 블로그주인장이 쓴겁니다(제목에 펌이라고 써놨는데;)

전쟁사에 아주 해박한분이시더군여.더블어 유머까지 ㅎㅎ

다른재미있는글들도 많으니 링크타고 눈팅해보세요.윗글 후속 편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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