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내는 말>
안녕하세요.
여러분,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라고 아시죠?
하지만 여러분의 기둥이 바로 그 나무의 기둥이랍니다.
이미 잘렸거든요.
역사란, 문서 내용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왜곡과 실수로 인한 기록들 때문에 믿기지 않는 점들이 있죠.
때문에 출토된 유물과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서(대표적인 것이 대륙백제설이죠.) 추측하면서 연구하기도 하는 학문이죠.
중국은 자신들의 역사서를 외세의 침입에도 지켜내었고 일본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게 침입을 거의 당한 적이 없어 <한서>, <위서>, <사기> 등과 같은 역사기록서드리 많답니다. (일본서기는 논쟁의 여부가 있죠.)
하지만 그와 달리 한국은 끊임없는 너무나도 많은 외세의 침입과 그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에 수많은 역사서가 불타 없어질 뿐만이 아니라, 일제에 의한 식민주의 역사학에 영향을 받아 현재 흔히 말하는 반도 역사에 갇혀있죠.
한국인인 제가 보기에도 한국은 정말 특이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러이러한 것도 했고, 이것도 했다. 또한 우리는 어디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국가들은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국가였다. 역시 우리다.'
이런 대답이 나오기 일쑤이지만.
'에이 설마, 저럴리가 있어!!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불가능해. 수많은 자료들이 뒷받침해 주고 있잖아!'
라고 말하는 국가가 한국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유일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국내의 역사 연구가 활발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가 당연히 영토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서로가 가진 편견이 첫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하네요. 환단고기를 너무 지나치게 믿는 사람을 흔히 '환빠'라고 하죠.
또 식민학같은 한국사를 비하하는 사람들을 '식민빠'라고 하고요. 이런 빠들을 떠나서 우리는 아무리 위서라고 해도 일단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충분히 다른 믿을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어느정도 연구를 해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북공정 아시죠? 여러분은 이것이 단순히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것으로만 알고있는데, 자세히 생각해보세요. 고구려는 고조선에서 나온 부여라는 국가에서 나온 국가입니다. 이제 알겠나요?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킨 다는 것은, 즉, 크게 말하면 한국 자체를 다 가져가는 것이죠.
일단은, 우리의 뿌리에 대해 한번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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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은 부정될 수 없다>
역사학에서 말하는 고조선은 3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단군이 세웠다는 단군조선, 조선에 은나라 기자가 들어와서 세워졌다는 기자 조선, 나머지 하나는 위만이 준왕을 쫓고 세웠다는 위만 조선입니다.
이것은 그냥 설명드린 것이고요, 제목 그대로 제 의견을 써보도록 할께요.
<사기>에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기자를 불러 조선의 제후로 책봉하였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기자가 조선으로 왔든 안왔든, 단군 조선은 부정될 수 없게 되버립니다. 한마디로 딜레마라는 것이죠. 즉, 중국은 스스로 판 덫에 물리게 된 것이죠. 왜냐? 아마 눈치 채셨을 겁니다.
먼저, 기자가 실제로 조선에 왔다고 가정을 합시다.
현재, 중국은 단군조선을 부정하며 기자동래설(기자조선설)을 지지하며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제후로 책봉하였다." 라는 구절을 보면 기자 이전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후로 책봉하였으니 고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시대를 생각해보세요. 그 때는 이미 중화사상이 퍼져나간 때입니다. 중화사상으로 중국은 유럽의 교황역할을 했었죠. 유럽의 교황은 왕을 인정하는 식이었거든요. 하지만 왕이 되도록 도와줄 수는 있으나 결정하지는 못하였죠. 교황의 권위 밖이니까. 다른 점이라면 유럽은 중화사상같이 '자신들이 최고이며 다른 나라는 오랑캐다'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서로 살피지는 않았지만, 중국은 자신들이 최고이며 이민족들은 오랑캐니 우리가 보살펴야한다는 식으로 속국이 아닌 나라까지 일을 살폈답니다.
또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위만조선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지요.
한 혜제와 조선의 우거왕이 서로 협약한 것 아시죠?
한 혜제가 내세운 조건 중에서 <조선은 한의 속국이 될 것>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로도 그 전에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거왕때는 한나라의 조건을 뿌리침으로서 속국이 아님을 주장했으니, 형식상 속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기자가 오지 않았다면?
말 그대로, 조선은 예맥족을 토대로 한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가 되죠.
그럼 <사기> "준왕은 기자의 후손이다"라는 구절은 어떻게 되느냐고요?
기자동래설은 기자가 살았던 시대(기원전 11세기)의 몇백년 뒤에 나옵니다.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죠. 참고로 학계에서도 이는 부정되고 있답니다.
준왕은 끼워맞추어진 희생양이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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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단군은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지칭하는 것이랍니다. (檀 박달나무 단, 君 임금 군)
또 단군신화는 시대에 상관없이 고조선이 어떻게 세워졌는 가를 신화로 나타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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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해 말아주세요.
이 글은 단지 <우리 겨례의 뿌리>를 찾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원본)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41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