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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24 12:16
[한국사] 기자동래설ㅡ문헌기록과 부정설
 글쓴이 : 하이시윤
조회 : 969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8388

기자에 관한 전승은 단편적이나마 중국의 선진시대(先秦時代 : 서기전 221년 이전) 여러 문헌에 보이고 있다.

≪죽서기년≫에는 기자가 은나라의 마지막왕인 제신(帝辛 : 紂王)에 의해 감옥에 갇혔으며, 은나라의 멸망 후 주나라 무왕(武王) 16년에 기자가 주나라 왕실에 조근(朝覲)했다고 전한다.

≪상서 尙書≫에서도 주왕에게 간하다가 감옥에 갇힌 기자가 무왕에 의해 풀려났으며, 무왕은 은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차지한 뒤 13년에 기자를 찾아가 세상을 다스리는 큰 법인 홍범(洪範)을 배웠다고 하면서,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논어≫에서는, 기자는 은나라 말기 미자(微子)·비간(比干)과 더불어 3인의 현인 중 한 사람으로 폭군 주왕의 무도를 간언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친척하며 종[奴]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상의 선진시대의 문헌기록에서는 기자가 덕과 학문이 뛰어나고 어진 이로 기술되어 있을 뿐, 그가 조선땅으로 가서 지배자가 되었다는 서술은 보이지 않는다.

한(漢)나라 이후의 기록 중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사실을 전하는 최초의 문헌은 복생(伏生)의 ≪상서대전 尙書大典≫이다. 이에 의하면 기자는 무왕에 의해 감옥에서 석방되었지만, 고국인 은나라가 망했으므로 그곳에 있을 수 없어 조선으로 망명했으며, 무왕이 그 소식을 듣고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왕 13년에 기자가 주나라 왕실에 조근을 왔고, 이 때 무왕이 기자에게 홍범을 물었다고 하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송미자 세가(宋微子世家)에서도 기자를 제신의 친척이라고 하며, 비슷한 전승을 기술하였다. 단지 ≪상서대전≫에서는 기자가 먼저 조선에 나라를 세우고 뒤에 봉함을 받았다고 한 데 비해, ≪사기≫에서는 그가 봉함을 받은 뒤 나라를 열었다고 하였다.

이는 뒷날 기자에 대한 인식에서 논점이 되었다. ≪회남자 淮南子≫와 ≪대대례기 大戴禮記≫에서는 단지 기자가 미친척하며 몸을 숨겼다고 기술하였다. 이어 후한(後漢) 때의 ≪한서 漢書≫ 지리지에서는 낙랑지역의 민속을 기자와 연결시켜서술하였다. 즉, 조선의 순후한 풍습은 기자가 팔조금법(八條禁法)으로써 교화시킨 결과라고 단정하였다.

3세기의 ≪위략 魏略≫과 그것을 저본으로 하여 편찬된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기자 이후 자손이 40여 대에 걸쳐 조선을 다스렸으며, 여러 차례 연나라와 충돌했고, 마침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겨 기씨의 조선이 멸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마지막왕인 준(準)이 위만에게 패배하자 바다로 도망가 한(韓) 땅에 건너가서 살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자처했는데, 그 뒤 준왕의 자손이 끊어졌으나 한인(韓人)들 중에 그를 제사지내는 이가 당시에도 있었다고 하였다.

≪위략≫과 ≪삼국지≫의 기록은 기자전설과 고조선의 역사 변천에 관한 전승이 어우러져 ‘기자조선’에 대한 인식의 기본적인 뼈대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한(韓)과 기자조선과의 계승관계에 대한 전승을 기술하여, 뒷날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의 논거를 제시하였다. 그 뒤 기자와 기자조선에 대한 인식은 ≪상서대전≫ 이후 ≪삼국지≫에 이르는 이상의 전승에 기본토대를 두고 윤색을 더해갔다.



기자동래설을 부정하는 견해는 먼저 상황론적인 측면에서 제기되었다. 즉, ① 기자가 조선으로 왔다는 시기는 황하 유역과 고조선 사이에는 황량하고 광대한 지역이 가로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많은 종족들이 거주하고 있어 기자가 쉽게 왕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 ② 조선에는 당시 토착정치세력이 있었는데 일개 망명객에 불과한 기자가 이를 복속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 ③ 주나라는 그 무렵 황하 유역에 한정되었으므로 조선땅에 기자를 봉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 등이다.

다음은 문헌기록상으로 기자동래설을 부정하는 견해이다. ① 기자의 동래 기록은 한(漢)나라 이후의 문헌에서 보이고, 그 이전의 문헌에서는 일체 보이지 않는다는 점, ② 기자의 무덤이 오늘날의 허난성과 산둥성의 경계지역인 멍현(蒙縣) 또는 보청(薄城) 혹은 구이더부 상추현(歸德府商邱縣) 등지에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는 점, ③ 은나라가 멸망 뒤 기자가 무왕에게 홍범을 전수했다면, 기자는 황하유역에 있었던 것이 되고, 따라서 기자동래설과는 모순이 생기는 점 등이 제시되었다.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부정하는 견해는 동북아시아지역과 황하 유역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걸쳐 문화양상이 다르며, 양자간에 깊은 교류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즉, 기자의 동래에 따라 왕조 내지 지배세력의 교체가 있었다면, 고조선의 문화에 은나라·주나라 계통의 청동기문화의 유입흔적이 뚜렷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이지 않으며, 기자동래설은 허구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부정론의 입장에서 볼 때, 기자동래설은 중국인들이 주변 민족이나 국가의 기원을 기술할 때, 이를 중국전설상 인물의 후예로 간주하는 중화의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풀이되었다. 또, 주변 민족은 모화의식(慕華意識)에서 이를 받아들여 자기들의 시조를 수식했다고 보았다.

이런 부정론은 평양에 있던 기자묘가 후세에 만든 가공의 것이고, 기자의 치적이라는 평양의 정전터가 실제로는 고구려시대 수도의 도시계획의 흔적이라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보강되었다.

이병도(李丙燾)는 기자조선을 ‘한씨조선(韓氏朝鮮)’으로 바꿔 이해하였다. 이는 ≪위략≫에서 기자의 후손이라는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 한지역(韓地域)으로 가 한왕이라 칭했다.

또한, 조선에 남아 있던 준왕의 친족들이 그로 인해 한씨성을 칭했다는 기록과, 후한시대 왕부(王符)의 ≪잠부론 潛夫論≫에서 준왕을 지칭해 성을 ‘한’이라 했다는 기록에 의거한 견해이다. 즉, 준왕은 기준(箕準)이 아니라 ‘한준(韓準)’이니, 기자동래설은 부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에도 문제는 있다. 왜냐하면, ‘한’은 ‘한(汗)’·‘간(干)’·‘가(加)’ 등으로 표기되는 족장·군장·왕의 뜻이며, 족장 또는 왕을 뜻하는 ‘한’을 중국인이 그들 사회의 관행에 따라 성(姓)으로 잘못 이해해 기술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낙랑지역의 세력가인 한씨 집안에서 가계를 과시하기 위해 기자를 끌어붙여 자신들의 시조로 삼았고, 이를 중국인들이 사실로 기술해 기자동래설이 파생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왜 하필이면 기자를 시조로 삼았겠느냐고 하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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