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중국문헌을 살필때 선진문헌부터 잘 살피는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그러므로 고조선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은 고조선이 존재했던 당시나 그로부터 오래지 않은 기록의 검토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주지되어 있는 바와같이 고조선의 위치를 전하는 가장 오랜 문헌은 “山海經(산해경)”이다. 산해경은 戰國時代(전국시대)로부터 西漢(서한)초기에 걸쳐서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고조선이 존재하던 당시의 기록인 것이다
산해경의 “海內北經(해내북경)”에는
“朝鮮(조선)은 列陽(열양)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위치하며 열양은 燕國(연국)에 속한다 ” 고 하였고 同書(동서) “海內經(해내경)”에는
“ 東海(동해)의 안, 北海(북해)의 귀퉁이에 명칭을 朝鮮(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있다 “
고 하였다.
이 기록은 고조선이 북쪽은 산과 접해있고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동해 안쪽에 있었음을 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고조선은 한반도 북부에 위치할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 한반도 남부에는 三韓(삼한)이나 그 전신의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고조선의 남쪽이 바다와 접할수 없으며 중국의 동해는 한국의 황해를 말하는데 한반도는 중국의 동해 밖이 되므로 산해경의 기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고조선의 위치를 보다 더 분명하게 전해주는 기록은 “史記(사기)” “朝鮮(列傳(조선열전)”이다. 여기의 위만조선에 관한 기록 이지만 위만조선은 고조선 지역에 위치했었으므로 위만조선 지역이 확인되면 그 지역이 바로 고조선지역이 된다는데 이의가 있을수 없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서한의 무제가 군사를 파견하여 위만조선을 친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 그해 가을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였는데 齊(제)를 출발하여 渤海(발해)에 떳다,,,,,,, 누선장군은 제의 병사 7천을 거느리고 먼저 王險(왕험)에 이르렀다. 右渠王(우거왕)은 성을 지키다가 누선군이 적은것을 탐지하고 바로 성을 나가 누선을 공격하니 누선군은 패하여 흩어져 도망하였다 ”
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누선장군 양복이 이끈 수군은 제를 출발하여 발해를 항해한후 위만조선의 우거왕과 전쟁을 하였다. 그런데 제는 지금이 산동성 이었으므로 발해의 위치가 확인되면 누선군의 항해 방향을 알수 있고 그렇게 되면 위만조선의 위치가 밝혀지게 된다"
이러식으로 문헌고증을 해야 맞습니다
구르뫼님의 위치비정 고증은 너무 초보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