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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09 14:00
[기타] 세종대왕 관모와 어진의 유래가 무엇 일까요? (ft. 강상원, 빈차문명)
 글쓴이 : 조지아나
조회 : 1,522  

비전문가 이지만,  올바른 한국사 재 정립에  역사 연구가, 고고학자 분들의 학술 연구에 도움 되고자  사견을 남기며,  부족한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산스트 크리어 학자  강상원 박사는  세종대왕의 관모중  천손 민족을 표현하는것이  "어진"이며,   하늘과 가장 높이 맞닿은   중국 천산, 곤륜산을 의미한다고(추정?) 이야기 합니다.

  *. 세종 대왕 관모에서  " 어진 " 이라는것은  관모의  2개의 봉우리 형태를 말합니다. 
    한민족의 정체성이   중국 천산, 곤륜산에 유래되었다.   왜곡 해석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 어진" 이  천손 민족의 상징이며,  천산, 곤륜산   산봉우리를 의미할까요?  
     본인이   70-80년대 학창시절  역사공부를 배울때는   "귀" 로 배웠습니다. 
     백성들의 말소리를 잘듣기 위함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출발한   빛살무뉘 토기 분포 지역에 (유물 발굴) 연장선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선사 시대 문명  Vinča Old Europe 기원전 5,500-4,500 년 유물중,  태극문양이 새겨진 "새" 의 얼굴을 가진 인물상과,   "새" 형상의 토기 관모 (?) 유물에서   치우 천왕의 관모(?) , 세종대왕의  관모 유래 를 찿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 자체는  하늘과 소통하는 영물을 의미하며,   태극문양이 새겨진,  "새" 의 얼굴을 가진  인물상은  그자체로,  천손 민족임을 표현 합니다.  또 다른 유물로,   "새" 형상의  도자기 관모(?)는  치우천왕 관모, 세종대왕의 관모  동일 연장선에서  해석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점에서 다소 벗어난  사안이지만,   한국 고대사  신라(?)의  관등 제도에 사용된  관등(계급)이름이  다수종류의   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컨텐츠를 본 기억 있습니다.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당시 문헌기록,  계급별 관모 형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빈차 문명의 관모(?)와  치우천왕 관모(?), 세종대왕의 관모  형태적 공통점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첫째 " 어진" 부분은  두개의 돌출형 형태로 공통점을 가지며, 모양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빈차 문화의  관모(?)는    세종대왕의 관모 (귀? 봉우리?) ,  치우천왕의 관모 (뿔?)  2가지 특징 모두를 갖고 있습니다.    뿔로 볼수도 있고, 귀 또는 봉우리 로 해석 될수도 있습니다. 

        
  
     둘째,  세종대왕 관모의  중앙 재봉선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에도  동일하게  표현되며, 아래 예시  투구를 쓴 치우 천왕 흉상에도 유사 형태로 나타납니다.     감추지 못한 재봉 흔적은 아닙니다.

    빈차 문명의  도자기 관모(?)경우  중앙 재봉선 해당 부분은,   새의 부리를 표현합니다. 
    치우천왕의 관모(?),  세종대왕의 관모(?)로만 보았을때   중앙 재봉선 두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세종대왕 관모.jpg

 


 세째,  빈차문명의   관모(?)에 새겨진  문양은  한국 토기 고유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치우 천왕,  세종대왕   또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인물이지요.  

   시간순 으로 보면,   빈차 문명의 관모(?) ->  치우의 관모(?) -> 세종대왕의 관모(?)
   인데,  시간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빈차문명의 관모와  치우 천왕의 관모는 형태적으로 매우 유사함을 알수 있습니다. 

  
VINCA(덧띠무뉘).jpg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관모의  어진은   산봉우리 처럼 보이지 않는군요. 
 오히려   동물의 귀 처럼 보입니다.    부리 부위에 해당되는 부분  양옆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리에 물고 있는 곤충처럼 보입니다.


세종대왕 동상.jpg

   빈차 문명의  새모양 관모(?)와 형태 측면에서는  치우 천왕의  흉상이  가장 유사해 보입니다. 
    아래 흉상에서는  뿔(?)의 위치는  45에서 위로 올라간 형태인데,    이미지 마다  위치 차이가 있습니다.     
치우천왕.jpg

 
 묘족의  치우 천왕  흉상  
머리에 뿔(?)  달린 사람 -  치우  천왕 

 

 

 


 - 중 략 -
 







  이미지 출처 : https://leedongdae.tistory.com/116
   
중국(치우천황).jpg

   



 
 일반적으로 새의 귀는 없으며, 구멍만 뚫려 있습니다.  
 예외의 새들중,  박쥐는 검은색을 띄며 귀는  봉우리 처럼 올라와 있습니다.
 
 빈차 문명의 관모(?)형태로만 보면  뿔 또는, 동물의 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치우 관모 유래로 추정되는 현재 묘족의  관모를 보면  크기가 매우  커진것을 알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래 이미지와 같이  "새"의 얼굴을 갖고 있으면서,  사람의 몸을 가진 인물상은 없습니다.
   참고 하실내용은  빈차 문명의 특징입니다.  
    
 논점에서 벗어난 주제이지만,  아래 새형상의 도자기들이
 어떤 새를 의미할까? 생각 갖게 합니다.    

  



VINCA(태극문양).jpg

 상단의  빈차문명의 관모(?)를  해당 새 얼굴의 인물상  머리위에 씌우는것을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VINCA(태극문양2).jpg



vinca(다뉴세문경).jpg


 
 한국인을 유목민의  후손이라고  ,  교과 과정에 가르치면서   민족 이동의 역사에 대하여 연구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것은 자기 모순이지요. 

 
   한반도에서 출발한  빛살무뉘 토기(한국 대표하는 고고학 유물)분포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면 동유럽에 해당 유적을 접하게 됩니다.
   고고학적 유물을 통하여  시간 순으로  민족이동의 역사를 밝히는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유럽 최초의 도시문명  유적 :   쿠쿠테니 트리 필리아 문영 -   태극 문양  토기, 도자기 발굴
             :    우크라이나 비중이 50%이상 , 폴란드 일부 , 루마니아, 몰도바 전체에 걸친   방대한  영역   
                 (지리적으로 한국 고대사와 깊은 관련성 가진다는  헝가리(한겨레?), 불가리아(부여?)  인접 지역입니다.)

  유럽 최대의 선사시대 유적  :  빈차  문명   -   태극 문양이 새겨진,  새 얼굴을 한 인물상,  관모형 토기 (?) 발굴 
              :  다뉴브 강을 따라 형성된 신석기 유적
                  트리필리아 문명 유적과 중복되는 지역도 있습니다. 
                    

 관련 국내 기사 


  ( 클릭시,  해당 사이트로 연결)
 
2009-01-11 17:50:13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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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폰 23-03-11 14:35
   
상상은 자유...그러나 주장은 신중하게...원숭이 엉덩이가 빨가니 원숭이 엉덩이에서 사과가 나왔다고 하거나 그 반대로 사과가 원숭이 엉덩이가 되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런 것은 주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도대체 익선관을 그렇세게 해석하면...거의 비슷하게 생긴 명의 황제나 왕들의 관모는 뭐가 됨?
     
조지아나 23-03-11 17:38
   
이해를 돕고자  본인이  예시로  올린 ,    근현대 제작 추정  관모 이미지가  부적절 한경우라 생각됩니다.
  본인이  예시로  올린  어진은  강상원 박사  주장에 근접한 형태이지만,  중국 명나라 임금의 초상화에  나타난  관모를  통해 살펴보니,  예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가지게 됩니다. 
 
댓글로 남기신,  중국 명나라의 어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중국 명나라  황제  1대 ~  16대  관모를 착용한  초상화 링크 참고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201368


    명나라 1대 임금  주원장  ~  16대  어진의 크기는  빈차 문화의 (동유럽) 관모(?) 어진과 크기와 형태면에서도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광화문  세종대왕의 어진도  형태, 크기 유사성 보여줍니다.  " 어진" 은    산봉우리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확신 갖게 합니다.

우연히,  빈차 문화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알수 있는  지도맵을 볼기회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관련성 정도만(?)  지도맵을 통하여    중국 남부, 남동부  (중국 광시우 자치주..  etc)  방대한  영역을 표시한  경우 였습니다.    중국 고대사 명나라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해당 지도맵 출처를 지금 찿지 못하여  link  걸지 못함 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중국의  빈차문화 연구 관련 논문을 참고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여기서 세종대왕의 어진의 기원(민족 이동을 포함) 어디 인가 ?  궁금증을 갖게 하지요.
  개인적 판단은 , 빈차 문명을 건설한  빛살무뉘 토기를 사용한  한민족(다민족 ?) 입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한국의 빛살무뉘 토기의 분포의 연장선뒤에  빈차 문명이 있으며 ,    중국의 경우 ,  빈차 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중국 고유의  고고학적 지표 유물을 통한 접근 사례는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신석기 문화의 시작은  정체성을 알수없는  아나톨리안의 유입으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빛살무뉘 토기의 분포도가  그해답이 될수 있어 보입니다.

    원시 인도 유럽어에 기반되는  쿠르간 가설은 중앙 아시아 를 중심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빛살무뉘 토기 분포도를 보시면,      한반도에서 출발한  빛살무뉘 토기 분포가  쿠르간 가설이 중심이 되는 중앙아사아를 거쳐  빈차 문명(쿠쿠테니 트리필리아 문명 포함) 에  이르게 됨을 아실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전통눌이문화, 음식문화, 풍습, 언어 동일, 유사성에 기인하여,  민족 이동측면에서  인도 타밀 역사를 관심갖고  보고 있습니다.   
  인도 타밀( 다물 多勿 ? )  BC 1000 추정  초기 역사의 인종표현은,  흑인 14%, 코카소서이드 35%, 몽골인30%, 오스트랄 로이드 5%,  드라비다족 (타밀인 포함 8%) 이며,  현재  인도 거주 짙은 갈색피부의  타밀인의 비중은 극소수 였습니다.    다민족 공동체 문화를 갖는 사회 였음을 방증합니다.   

 역대  중국 명나라  황제의  초상화들을  보면,  인종 표현에 있어  혈통 면에서 1대 ~  16대  이르기까지  동일 인종이라고 보기 힘든, 다양한 인종  혼혈의 형태로  비쳐집니다.
 동일한 DNA 분석은 아니지만, 초상화가 사실성을 기준으로 그려졌다면  인종표현에 있어 인도 타밀과(다물 ?) 유사성 있다고 판단됩니다.

  중국 곧산당의 문화대혁명 시기,  가장 큰업적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입니다.
  어린 홍위병들을 앞세워  4천년  문화유산을  파괴했지요.  그 배경이 의심 스럽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과거 역사를  Reset  정치  통치 목적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당시  똑똑한  모텍동이 왜  조상들이 남겨놓은  중국내 수많은 서적, 문화 유산을 파괴했을까요? 

  부연하여,  최근 들어  중국 정부가  한복이  중국(명나라)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는 배경 근거가 무엇인지 ?  생각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터부시 하였지요 ?

  본인이 "  한복" 이 중국 문화 라고 이야가  하는것 아닙니다.
  단지 ,  중국정부의 자기 주장만 있을뿐,  ( 숨기고 있는 ?)  주장 근거 배경이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지 궁금 할뿐입니다.

  중국 학자들과 교류가 잦은  한국학자분들  기회되면  ~
  중국 명나라 황제 초상화를  근거로.    다양한 인종 혼혈의 민족구성으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윈도우폰 23-03-12 22:53
   
어진이란 것이 지극히 희소한 사례라는 점에서 해석할 여지라는게 별로 없을 듯.

기본적으로 무언가 주장거리가 되려면 사례가 많아야 하는데...소위 추정을 위한 샘플 수가 너무 적을 경우 이를 일반화하여 얘기하기 어려울 듯...논리학에서 말하는 오류...즉, 궤변이나 착오

단편적인 것을 가지고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은 견강부회 내지 지극회 작위적이라 할 수 있는데...그만큼 근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주장하는 사람이 근거 자체에 대해 엄격하지 못해서 그런 것임.
그런 것이 제일 강한 학문이 바로 역사 쪽...역사학 교수도 마찬가지...기본적인 방법론이 잘못되어 있고...학술적 방법론을 무시하는 성향의 사람 들이 전공하는 것이 사학인 듯

빛살무늬 토기를 사용한 사람을 민족이라고 까지 말할 수 없음

우리가 말하는 민족이란 것 자체 근대적 개념인데...그 개념을 원시사회를 겨우 벗어난 사회에...그리고 일부 생활 도구를 가지고 민족을 얘기할 수 없는 것임...그냥 분포도일 뿐인데...그 분포에 어떠한 의미가 있느냐는 말하기 어려움...그냥 교류하였거나 전파 또는 무단 복사하여 사용하였을 뿐인데 그것을 혈통적으로 같은 종족이라고 까지 얘기하는 할 수는 없는 것임

동일성이나 유사성을 얘기하려면 샘플 수가 많아야 그럴 듯 할 수 있는거임. 역사에서 말하는 유물의 경우 대다수가 샘플 수가 지극히 부족...그래서 상상력을 가미하여 해석하는 것이 많음

그것이 사회과학 쪽 학문과 다른 점...역사 전공한 사람 들의 문제는 통계를 배우지 않아서...소위 상관계수란 것을 전혀 모름...주장을 하려면 변수간에 상관성이 어느 정도되어야 하는데...유물 중 상관성이 나올 정도로 많은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음...하여간 통계나 상관관계를 모르니 단편적인 이해력으로 억지해석이나 편의적 해석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들 생각하는 듯

또한 음성학적으로 비슷하다고 해서 무언가에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도 억지 중의 억지...예를 타밀과 다물에서 겹치는 음소가 많다고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이에 해당

역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공...그러나 우리 나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하고...이는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 모든게 정도의 차이 ...그 만큼 역사학이란게 다른 학문에 비해 결격이 많기 때문...고증학이나 문서학 그리고 유물이나 사료 자체가 숫적으로 제한적이고...그래서 해석이 너무 과장된 것임...성적이 안 되어 정치학과를 못가는 문학도 들이 전공하는 학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하여간 역사 쪽 관심이 큰 사람 들을 보면 정치 지향적 모습도 많이 보임...다른 족 학문에 비해 좀 정치적인 학문...그런데 정치적인 색채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역사 쪽 관심종자 들의 얘기...이런 부류를 보면 역사나 정치 모두에 대해 문외한...

명나라가 다민족 국가이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단일민족이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음? 그렇게 주장하는 이면이 정치적인 뭔가 주장하고 싶어서 그런거지...뭐 정치가 대단한게 아니라 정치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지만...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수단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이거나 학술적 문제가 되는 것 같음...

역사학이 그렇게 목적을 위해 단편적인 것을 확대해석하여 전체적인 흐름을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쪽으로 왜곡하는게 문제...그것이 학문이든 정부 든 비슷하기는 매 일반
     
조지아나 23-03-12 23:53
   
가장 큰 문제는  주류 사학계  , 고고학계  일본정부가 재단해놓은  역사관의 틀를 벗어나지 못하고,  연구 의지가 안 보이는점 입니다.    왜 일까요?    전문가들이 관련 유물을 연구 하고 정리를 해야 하는것이죠.    비전문가인 본인의 생각은  참고 정도일뿐..

 관련종사자들이  연구를 해야,  상관 관계든지,  객관화 할수 있는 sample 수를  확보할수 있는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개혁이 가장 필요한 분야는 정치 보다, 역사학계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민족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한것이죠.

 
 최근 2021. 11. 한국역사학계 이슈가 된 논문이 있습니다.
  국제 학술지 Natue 지에 기재된  고고학,인류학, 언어학    3개 분야 다국적 학자 73인? 의 공동논문에서  한국어의 기원을 BC 7000년 요하지역으로 특정했으며,  만주어, 몽골어, 터키어 etc 의  언어기원으로 발표하였습니다.  특히  이채로운점은  인도 남부, 남동부, 동부,  미얀마 etc을  한국어와  동일 기원으로  분류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앝타이어  ->  일본인 언어학자  1인의 5개국 제한적 언어비교로 인하여  고립어로 분류했었지요.
 

 관련 논문 link 걸어둡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4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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