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rogram.sbs.co.kr/builder/endPage.do?pgm_id=00000311936&pgm_mnu_id=4029&contNo=cu0214f0023900
■ 기 획 의 도
역사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상대국(경쟁국)의 역사를 비틀어 자존심에 상처를 가하고, 반대로 자국의 우월감을 높이고자 하는 역사적 만행은 문자로 역사가 기록된 이래 끊임없이 자행되어 왔다. 그리고 한 번 잘못 형성된 역사관은 쉽사리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 그 대표적인 것이 일제 시기 일본 관변학자들에 의해 자행된 역사왜곡이다. 단순히 사료들에서 드러난 고대사의 역사 사실을 비튼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증빙 자료가 부족한 듯하자 유적과 유물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 역사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철저하게 훼손시켰다.
재검증의 필요성
일제 시기, 특히 이른바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1867~1935년) 조사단이 활동했던 시기에 이들에 의해 알려진 낙랑군재평양설 관련 증거 유적, 유물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해방 후 지금까지 거의 이러한 것들에 대한 재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가 지난해 가을 영남대 정인성 교수가 논문으로 발표한 ‘대방태수 장무이묘의 재검토’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대방군의 태수 무덤으로 알려진 장무이묘가 고고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고구려무덤이라는 주장이 대두된 것이다. 이처럼 재검증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있었어야 할 이러한 작업들이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 장무이묘를 포함하여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질 대표적인 것들은 이들 조사단이 활동했던 시기인 1911~1923년 사이에 이루어진 중요한 발견 네 가지다.
6번의 우연에 의한 발견 :
세키노는 스스로 이 관련된 발견들이 모두 우연에 의한 발견임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두세 번만 우연이 겹쳐도 우연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처럼 역사상 유례가 드문, 우연에 의한 역사 유적 및 유물 발견의 의미는 무엇일까? 프로그램 말미에 하나의 반전으로 그 의미가 다가올 것이다.
---------------------------
일제에 협력한 일본 역사학자들의 사기질과 그것을 제대로 응징히지 못하는 한국 강단사학의 무능함을 알 수 있는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