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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03 14:11
[기타] 일본의 국력은 과대 평가 됐습니다.
 글쓴이 : 바람따라0
조회 : 6,137  


년도 일본(백만헥타아르)
930 85.5
1,450 93.8
1,592 159.0
1,600 162.1
1,720 284.6
1,874 302.5

고려전기부터 조선왕조 세종때까지
일본의 경지면적은 큰 변화없이 100만 헥타아르 미만이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1432년(세종 14년)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에,
생산환산 면적 170만결을 기록합니다.

세종시대를 기준으로 일본은 조선의 1/4도 안되는 경지면적을 가진 겁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가지 일본의 경지면적이 159만 헥타아르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 경지면적의 1/2도 안된 수준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지면적을 확충한것은,
임진왜란 이후, 150만 헥타아르에 달하는 간토평야를 개발하여, 300만 헥타아르 수준으로
경지 면적을 늘린 때입니다.

그전 까지 간토평야는 늪과 뻘로 이뤄진 불모지였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개발하면서,
경지면적 400만 헥타아르로 조선에 근접하게 됩니다.

경지면적이 중요한 것은,
기복이 심한 생산량 보다, 안정적으로 농업생산력을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농업 생산량으로 보면, 일본이 조선을 따라잡은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홋카이도 개발과 화학비료 대량도입이후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2모작을 해서 수확량이 높다고 하는데,
소가 없어 심경을 못하고. 비료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이모작은
토지의 사막화만 가속화 할 뿐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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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UN10R 17-02-03 15:46
   
왜 국력이 땅 토지로 계산이 되는지요?
설사 조선이 토지 면적과 생산량이 많다고 해도, 조선은 농본주의 사회였고, 에도 막부 시기 일본은 무역과 상업이 기반이 된 사회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본주의 사회인 조선이 생산량이 많은 건 당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만일 화폐 유통량, 대외 무역량 등 경제적인 면으로 보면 어떻지요?
     
바람따라0 17-02-03 16:02
   
화학비료 합성으로 농작물의 생산량이 급격히 증대한 1900년 이전에

국력을 재는 가장 중여한 잣대가 농업 생산량입니다.

재물이 많아도 만성적으로 식량이 부족하면, 국력이 강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역면에서도 조선은 일본에 우위였습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9918&sca=&sfl=mb_id%2C1&stx=iylsy
          
촐라롱콘 17-02-03 18:07
   
기껏 인용한 출처가 eo님이 올린 글이네요....!!! ^^

그리고 내용을 대충보니 15세기인 조선전기와 무로마치막부 시기에

한정되어 있는 것 같고....게다가 조선과 일본관계 뿐이잖아요....???

15세기는 잘 모르겠으니 가타부타 언급은 자제하겠지만.....

적어도 16세기~17세기 초반까지 일본인의 무역선(물론 상당수는 해적활동까지 병행해서)

들이 조선,중국,유구 등의 동북아권은 물론이고... 베트남, 태국, 루손, 자바 등 동남아

일대까지 주름잡고 다녔던 사실은 정녕 모르시는지......???

일례를 들자면 방콕에서 버스나 기차로 대략 2시간 거리인 옛 아유타야 왕조의

유적지에 가보면 그 당시의 일본인 집단 거주지도 유적으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태국 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지에 일본인촌들이 산재해 있었구요~~~

그리고 에도막부 시기인 17세기 초중엽 이후부터 쇄국정책을 고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역창구는 상대적으로 조선보다는 다변화되어 있었습니다.

대마도를 매개로 한 조선과, 나가사키를 통한 네덜란드와 중국, 사쓰마를 통한 유구

사쓰마가 유구를 통제한 이후 유구를 통한 간접적인 무역 상대국까지 포함하면

더욱 늘어나지요...!!! 그 뿐만 아니라 북해도 남단의 마쓰마에번을 통한 에조치(아이

누)와 특히 마쓰마에번과 에조치를 매개로 한 오호츠크해 루트를 통해서도 중국과

일본이 간접적으로 교역하기도 했었고....... 에조치의 풍부한 해산물은 나가사키로도

운송되어 나가사키에 출입하는 중국무역선들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고....

일본내부의 농업분야에도 에조치해역의 풍부한 주로 정어리어종을 이용한 비료사용이

점차 늘어나게 됩니다!

더군다나 막부의 감시를 피해 비공식적인 루트로 외부와 교역했던 제번들까지

포함한다면..... 적어도 일본이 조선보다 무역에 있어서 열세하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비약중의 비약입니다!
               
바람따라0 17-02-03 18:18
   
독해력에 문제가 있나보죠?

본문은

930년 부터 일본의 경지면적 수준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eg987님의 글을 링크한 것은, 조선과 일본의 무역에서도 조선이 앞선다는 것을 마타낸 것이지요.

다시 반복하지만 , 일본의 농업 생산량은 조선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그리고 1900년대 인전 화학비료로 식량 대량생산이 가능하기전에,

국력을 제는 척도는 농업 생산량입니다.
                    
촐라롱콘 17-02-03 18:20
   
저도 반박한 부분은 무역분야에 한정해서 말씀드렸는데.....????

독해력에 문제가 있나보죠...???
                         
바람따라0 17-02-03 18:34
   
기껏 인용한 출처가 eo님이 올린 글이네요....!!! ^^
---------------

첫문장에 이런글을 쓴건 님입니다.

본문의 댓글에 단 부가 설명을, 님은 다른 설명없이 시작한 거지요^^
                    
촐라롱콘 17-02-03 19:49
   
전근대사회에서, 또는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이전시기까지

농업생산량이 국력을 재는 척도(엄밀히 말해서는 농업생산량이 바탕이 된
인구수가 국력을 재는 척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요...!!!
그리고 국력이라는 표현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총 GDP가 우위에 있었다 정도의
표현으로 바꾸시는 것이 어떨지....)라는 견해에 큰 이견은 없으나.....

1,900년까지 보는 것은 상당한 무리라 여겨집니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800년(19세기) 이전으로 한정하시는 것은 어떨지......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중국과 인도지역이 식량생산력에서는 타 지역보다
넘사벽에 가까울 정도로 우위에 있었지만... 중국과 인도의 국력이 서구열강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보지는 않잖아요! 물론 인도는 벌써 19세기 후반이면 영국령으로 완전히
편입된 이후이기는 하지만.....
                         
바람따라0 17-02-03 20:03
   
1895년 코크스에서 규산질비료 대령 추출,
1909년에 암모니아 합성법

이 두가지가, 근대의 농업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시 발점이 됐습니다.
     
순대천하 17-02-03 16:49
   
지금이야 기술이 발달하고 국가별로 분업화 되어있지만 근대화 이전에는 농업이 중심이었고 국가 부의 척도였죠.

상업은 그 농업을 뒷받침 해주는 정도고 오히려 매점매석 등 농수산물의 유통을 방해하기도 했죠. 상업을 천시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람노래방 17-02-03 17:52
   
덧붙이자면, 상업을 천시했던 이유는 지금의 재벌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의 자본력으로 지금의 재벌이 군대까지 가지고 있고, 자기들만의 법까지 만들고 있었다 라고 생각해 보면
상업을 천시했던 이유가 딱 나온다고 봅니다.
          
2RUN10R 17-02-03 18:21
   
상업의 부정적인 면만 보시는군요.
상업이 발전하면 매점매석이 증가한다고 하시는데, 매점매석은 '공급의 부족'이 원인입니다. 오히려 상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았기에 매점매석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박지원의 '허생전'에서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지요.
     
바람노래방 17-02-03 17:49
   
상업으로 치면 조선 이전 국가들은 모두 조선에 비해 상업국가 들입니다.
농본주의 사회인 조선? 근대 이전에 농본주의 사회가 아닌 국가가 몇이나 있을까요!
근대 이전 국가들의 경제력의 척도는 결국 식량 생산량입니다.
          
2RUN10R 17-02-03 18:17
   
국력이란 설령 근대 이전이라고 해도 그 나라의 기술력, 생산력, 과학 기술, 님이 말씀하시는 식량 생산량, 군사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인구'에 있습니다.
상업이 발달한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수요'와 '공급'이 증가하고, 그걸 판매하고 생산하는 전문 장인 기술의 발달을 일으킵니다.  곧 그 나라의 물품, 넓게 봐서 백성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외에도 나가서 팔 수 있는 수출품이 많아지고, 무역으로 돈을 벌어서 다양한 곳에 이용이 가능하다 이말입니다.
또한 상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산업들도 발달하게 되고,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게 됩니다. 백성들은 하루 시간을 대부분 쏟아부어야 하는 농사일에 종사하지 않아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럼 교육의 기회도 점점 증가하고, 점차 인구도 증가하기 시작하는 거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조선은 끝까지 자급자족을 고수했고, 수많은 실학자들이 상업의 발전을 주장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죠.
상업이 발전하면 당연히 무역도 발전하게 되고, 그 무역으로 해외의 우수한 기술들을 배워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따라0 17-02-03 18:37
   
우수한 기술이요?

일본의 무역품 주종은 조선의 기술을 훔쳐서 배은 은 채광.
조선의 도공을 반치해 만든 도자기였습니다.

일본 자체 무역품이라면, 여자들 창녀로 판거 정도 되겠내요.
          
2RUN10R 17-02-03 18:28
   
그리고 무엇 때문에 계속 식량 생산량이 국력의 전부라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국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인구'입니다. 그리고 그 인구를 결정하는 것들 중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가 '식량 생산량'이겠죠.
오히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어느정도 일본의 국력을 앞섰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역'으로 인한 꾸준한 교류입니다. 한반도가 일본열도보다 왜 발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중국 대륙과 붙어 있어서 그 당시 세계 최고 최신의 기술들을 곧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단순히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어서 앞섰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일본도 막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중국 등 수많은 국가들과 '직접' 교류를 시작하고, 반대로 조선은 오히려 나라의 문을 더 철저히 닫기 시작하죠. 이미 역전의 토대는 시작된 것입니다.
               
바람따라0 17-02-03 18:35
   
식량이 모자라 굶주린 인구가 큰 의미가 있나요?
                    
2RUN10R 17-02-03 18:40
   
그럼 일본 백성들은 전부 굶주려서 쓸모 없고, 조선 백성들은 인구가 적지만 배불르니까 조선의 국력이 더 강하다는 건가요?
에도막부 시기엔 만백성이 굶주렸고, 조선시대엔 만백성들이 배부르게 살았다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그럼 왜 에도 막부 시기에 인구가 계속 증가할 수 있었을까요?
조선은 주춤하는데요?

지금도 후진국이 인구 많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들이 인구 많은 이유는 님이 주장하시는 식량 생산을 위한 것이고,
그렇게 따지면 조선이 훨씬 인구가 증가해야 할테니까요.
                         
바람따라0 17-02-03 18:43
   
일본의 인구증가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후진국형이 맞습니다.

굶주린 인구 많아야 국력의 척도가 될수 없지요.
               
2RUN10R 17-02-03 18:36
   
eo님 이후로 '아, 조선이 쌀을 더 많이 재배했었어!'라면서 조선의 국력이 앞섰느니, 일본보다 우월했다느니 라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이 되고 있는 것 같네요.
물론 eo님의 주장과 근거들이 틀렸다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ㅋㅋ
다만 그걸 가지고 '조선의 국력이 일본보다 앞섰어!'라는 이상한 주장으로 몰고 가는 건 꽤 비판이 필요하겠죠.
                    
바람따라0 17-02-03 18:38
   
비판은 님 스스로 자아비판 하기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1900년 이전 국력을 재는 척도는 식량 생산력 입니다.
                         
2RUN10R 17-02-03 18:42
   
꽉 막히셨군요 ㅋㅋ
분명 17~18세기의 실학자들도 이미 일본이 조선을 앞섰다고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ㅋㅋ
대표적으로 청장관 이덕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그러셨죠^^

무엇보다, 식량 생산량이 국력으로 이어지려면 그 나라의 수취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야죠 ㅋㅋㅋ 오히려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의 삶이 더 피폐해지는 걸로 압니다.
이게 산미 증식 계획과 뭐가 다르죠?ㅋㅋ
                         
바람따라0 17-02-03 18:44
   
2RUN10R/ ㅎㅎㅎ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인용하는 군요.

17-18세기에 일본을 낮게 평가한  학자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식량 분배가 제대로 되 않는 것은 제도를 개선하면 되지만,
절대량 자체가 부족한것은 방법이 없어요.

식량생산하는 국가에게 무릎꿇고 식량 팔아달라고 구걸하는 거에요 ^^
                         
2RUN10R 17-02-03 18:46
   
그 낮잡아본 학자들의 이름과 주장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설마 성리학에 꽉 잡힌 채 일본을 처음부터 무시하는 학자를 대진 않겠지요?

그리고 수취제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식량이 아무리 많아도 그게 백성들한테 돌아가지 못하면 그게 뭔 소용인지?
                         
바람따라0 17-02-03 18:48
   
ㅎㅎㅎ 17-18세기 조선 학자의 주류가 성리학인데,
그 사람들을 빼라고요?

ㅎㅎㅎ


그리고 식량 분배가 제대로 되 않는 것은 제도를 개선하면 되지만,
절대량 자체가 부족한것은 방법이 없어요.

식량생산하는 국가에게 무릎꿇고 식량 팔아달라고 구걸하는 거에요 ^^
                         
2RUN10R 17-02-03 19:20
   
적어도 실학자들의 기준으로 봐야 하는 건 맞는 말 아닌가요?ㅋㅋㅋ
당시 성리학자들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서도 그 우수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왜놈'이란 식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ㅋㅋㅋㅋㅋ
결국 객관적인 시각으로 '일본보다 조선이 앞섰다'를 부정한 학자는 없다는 거 아닙니까?ㅋㅋㅋ
                         
바람따라0 17-02-03 19:24
   
실학자가 무오류의 절대선인가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성리학을 제외하고.
일본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그 자체로 당시 평가를 왜곡하는 겁니다.
                         
eo987 17-02-03 19:28
   
일단 "실학자"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아직 학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해서
무엇이 실학인가 라는 논제 부터가 문제인데요
당연하겠지만 그 당시 현재 우리들이 실학자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학자"라는 인식이 전무했겠죠
그리고 이후에 과거 역사를 보니 한국 전통사회에서도 이렇게 성리학에만 빠져
공리공담을 주장만 한게 아니라 이용후생을 강조했던 선비들도 있었다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일제 식민사관의 반동으로 역사에서 발견한 사람들을 실학자라고
할수 있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일본의 사행록 즉 해행총서와 실학이 무슨 연관이고
더 나아가
당시의 관찰기록이 일본이 앞서 있었다로 단순하게 치환된다면
외람되지만 역갤에서 떠드는 부류들의 전형적 논리와 주장이라 좀 의문이 가네요
                         
eo987 17-02-03 19:31
   
기본적으로 일본으로 파견된 사신들이 전반적으로 일본이 철저히 준비한 환경속에서
한정되어가며 통제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저작들이 시중에 출판되어
알수있는 것이고 2run님의 논리대로라면 어째서 일본은 조선사신들
즉 그 규모도 보면 불과 4~500명밖에 안되는 통신사 일절을 대접하기 위해
전체 GDP의 3%를 사용했냐도 문제가 선결되어야 하고요
특히나 군사부문쪽으로 가면 문제의 일단은 좀 더 심화되기도 하공..
심지어 일본의 교호개혁 당시  자신들의 개혁 모델로 어디를 집중적으로 참고했는지 도
역시 문제가 아닐수 없고용
                    
eo987 17-02-03 19:08
   
2RUN10R님께
어떤 비판이 필요한지 여쭤봐도 될까요
비단 결론을 정해놓는게 아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지적 획득들을 서로 교환하면
그동안 서로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부분수정이나 전면수정 혹은
인지전환이 가능할수도 있을 것 같아서용

물론 일본의 국력이 막말부렵에는 조선보다 앞서 있었다 라는 현실인식도 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역사인구학이 앞으로 어떠한 결론을 도출할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알수 없지만 분명한건 농업생산량 대비 인구와의 괴리가
현격하고 뭔가 상당히 불행한 상황들이 연속되었을 것은 분명해 보여서요 ^^
                         
2RUN10R 17-02-03 19:55
   
전 실학자들이 다 옳다고 한 것도 아니공, 성리학자들이 무조건 틀렸다고 한 적도 없어용
왜 제 생각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연결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네용
일단 제가 말씀드리는 건
'분명히', 당대의 성리학자들보다 '지금의 실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더 객관적으로 일본을 본 건 확실하다고 보는데용
그 사람들이 일뽕에 맞은 것도 아니공,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일본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니까용
이 사례를 알 수 있는게 '왜구의 재침략'에 대한 이덕무와 정약용의 의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덕무는 "일본이 이제 발전했으니 재 침략은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했고,
정약용은 "일본이 더 이상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왠지 아세용?
바로 "일본이 벌써 조선을 침략하려 하고 백 번을 침략하면 조선은 백 번 졌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용

무엇보다 왜 자꾸 제 질문은 피하시는지?
전 님의 의견을 '비판'하겠다 했지 '비난'한다고 안했는데요?
'비판'은 그 학문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다시 질문할게요.
왜 식량 생산량이 일본보다 많다는 이유로 조선이 일본보다 국력이 앞섰다고 평가하는 거죵?
                         
2RUN10R 17-02-03 20:00
   
당대 조선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조선의 문제점과 다른 나라의 장점들을 배우려 한 학자들도 '군사력도, 경제력도, 인구도 일본이 더 쎈데, 식량은 우리가 더 많이 만드니 조선이 국력에서 우월'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용?

다시 한 번 말씀드려보지만 결국 국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구'와 '백성들의 생활 수준'이고, 농업 생산량은 그걸 위한 일부 요소에 지나지 않아용
이건 평범한 학생들도 아는 내용인데용
                         
바람따라0 17-02-03 20:09
   
2RUN10R/ 실학자건 누구건 일본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짓입니다.

실학자들의 몇몇 단편적 이야기를 가지고 일본의 국력이우위엿다는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주장이지요.

그리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식량부족으로 백성이 굶는 나라의 국력은
약하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합성 비료 개발로, 대규모 식량 생산이 가능하기전에
국력을 재는 척도는 농업생산량입니다.

식량이 부족한 국가는 넉넉한 국가에게 무릎꿇고 구걸해야 했습니다.
                         
eo987 17-02-03 20:11
   
2run님 언제나 그런식으로 애초에  의도적으로 발견된 개인의 단편적 인식들을 근거로 한다면 그게 과연 합리적인 토론의 형성이 될수 있을까요?
님 애초에 정약용의 발언을 따지기 이전에 과연 정약용이 당시 조선사회에서
차지했던 위치가 어느정도 였을 것이라 생각을 하시나요? 아니 더 확대해서
님이 실학자의 발언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 부류들의 사회적 위치는요?

그리고 일단 분명히 해야할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시 실학자들이 일본을 몇몇이서 어느정도도 인식하면서 살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당시 조선사회 전체로 보면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사실 재기하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정합적으로 논의할려면 여러개로 분류해서
검토해야만 하는데 짧은 글속에 여러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혼재되어 있어서 좀
벅찬감이 없지 않은데

1.이덕무의 발언은 이제 일본도 과거 왜구의 수준이 아니니
약탈은 하지 않는다라는 취지고
2.정약용도 역시 자신의 저서인 여유당전서에 삽입한 글로써 흔히들
정약용의 "일본론" 이이라는 글로 항간에 떠도는 것이죠
일단 개인 정약용의 전반적 사회 인식이야 경세유표라는 저서에도서 그렇고
율곡 이이의 경장론을 충실히 따르고 그에따라 자신의 유배시절에  조선 전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연장이라 할 수있는데 일단 백번침략 백번 패배를
님은 당시의 실제 현실이라고 믿고 계신다는 것인지요? 그것이야 말로 큰 오류가 아닐수없는데 일단 당시의 군사적 상황으로 본다면 더욱 그렇고 결국 다산의 발언은
전반적으로 사회가 몰락하고 있다라는 개인의 인식 선상에서 과거의 임란을 떠올려
각성하기 위한 수단인것이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오늘날 인지하고
인용한다면 죄송하지만 잘못된 인식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질문인지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RUN10R 17-02-03 20:23
   
자꾸 엉뚱한데로 새어나가네요.
분명히 질문 드리겠습니다.
차례대로 질문들 보시고, 그 질문이 틀렸다고 한다면 거기까지만 답해주세요.

1. 님이 주장하신 건 ['농업 생산력'이 전근대 국가에서 결정적인 국력]이고,
이를 봤을 때 [일본보다 조선이 앞섰으니 조선의 국력이 뛰어나다]라고 주장하시는 거 맞죠?
2. 그 근거는 무엇이죠? 경제력과 군사력은 도대체 어디간거죠?

2. 님이 말씀하시는 국력이라는게 뭐지요? 그 나라의 전반적인 능력을 말하는거 아닌가요? 당연히 군사력과 경제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요?
2.
                         
2RUN10R 17-02-03 20:23
   
자꾸 엉뚱한데로 새어나가네요.
분명히 질문 드리겠습니다.
차례대로 질문들 보시고, 그 질문이 틀렸다고 한다면 거기까지만 답해주세요.

1. 님이 주장하신 건 ['농업 생산력'이 전근대 국가에서 결정적인 국력]이고,
이를 봤을 때 [일본보다 조선이 앞섰으니 조선의 국력이 뛰어나다]라고 주장하시는 거 맞죠?
2. 그 근거는 무엇이죠? 경제력과 군사력은 도대체 어디간거죠?

2. 님이 말씀하시는 국력이라는게 뭐지요? 그 나라의 전반적인 능력을 말하는거 아닌가요? 당연히 군사력과 경제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요?
2.
                         
eo987 17-02-03 20:26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우선

1.군사력 문제는 바로 밑에 글에 간략하게 언급했으니 분류해서 대응이 되었으면 합니다
2.그리고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전근대 사회 즉 기계공업이 배제된 사회에서
경제력과 농업생산물이 따로 분리가 될수 있는 문제인지요? 저로서는 당최 문외한으로의
영역이어서 잘 이해가 안갑니다

3.님 제가 여기서 한가지 제안을 해보겠어요 즉 사회의 발전과 관련해서
예를들어 일본이 강제개항을 당하고 본격적으로 외국과 대외무역을 근대적
차원에서 시작할때 즉 메이지유신이후 혹은 페라내항이후 수출의 품목을 보면 무엇이 압도적이었다라고
생각을 하시나요? 예를들어 고가품? 아니면 제조업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물품들?
즉 1차상품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시나요?
                         
바람따라0 17-02-03 20:32
   
2RUN10R/

화학비료가 개발되기 이전,

농업생산력이 약하면, 백성이 굶주려야 합니다.
긂주리는 백성이 있는 국가의 국력을 강하다고 말하 수 없지요.

그리고 식량이 넉넉한 국가에게 손을 벌려야 합니다.
단순히 은 많다고 식량을 다른 나라에게 파는게 아니지요.
     
상식3 17-02-05 00:12
   
님아 당시 일본이 무슨 무역과 상업이 기반이여?
일본 아니라도 산업혁명이전이면 산업의 모든 근본은 농업입니다.
상업발전이니 나발이니 하는 것도 대도시에나 있는 아주 작은 부분이지 사회전체가 농업사회이고 대부분이 농민인 건 같아요. 조선의 경우 상업이 그렇게 발전 못 한 것도 아니고
오일장이라는 게 중세 유럽 광장에서 열리는 시장보다 2~3배 잦은 거예여
아주 단편적인 인식으로 착각을 하네요. 이런 건 일본애들이나 하는 프로파간다입니다.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이니 하는 아주 얄팍한 사기 같은 거죠.
eo987 17-02-03 20:13
   
[당대 조선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조선의 문제점과 다른 나라의 장점들을 배우려 한 학자들도 '군사력도, 경제력도, 인구도 일본이 더 쎈데, 식량은 우리가 더 많이 만드니 조선이 국력에서 우월'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용?]

이게 누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죠? 님 그리고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말은
당시 서양이나 기타 국가들의 인구수를 충분히 숙지하고 하시는 발언들이고요?
역사나 경제사가들에게는 들어 보지 못한 것이라 애초에 맬서스의 덫이라는
전근대적 인구관에 의하면 생산량대비 과도한 인구는 사회붕괴의 지름길입니다. 위태한

군사력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들어가보면 일본은 에도시대이후 사회 재통합 과정에서
여러 조치즐이 취해지는데 그중에서 군사력만 나열해 보면

1.제번의 사적인 무기 재조나 구입 금지
2.일국일성령을 통해 번 안에는 하나의 성만이 있어야 한다
3.대규모 군사용 선박 제조 금지 조치를 취합니다.
그리하여 삿초동맹 당시에도 양측의 대응은 서양의 무기를 대량으로 차여하거나 구매하는 방식이 되지 자신들의 비축물자를 활용하지 못하고 게다가 페리의 내항이라는 사건에서도 알수 있듯이 흑선 4척에 의해 항복을 하는 결과를 불러오죠 반면 당시 조선의 군사력 상태는
최근 노영구 국방대학 교수의 저서에서 자세히 알수 있으며  제가 예전에 게시한 글을
참조해 주세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9891&sca=&sfl=wr_name%2C1&stx=eo987&sop=and
     
촐라롱콘 17-02-03 21:58
   
이 분의 과대망상병은 도대체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

그것도 한-일간의 군사력 격차가 넘사벽으로 벌어졌던 근대시기에까지
조선이 일본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망상을 할 줄은 정말 몰랐네요..... ㅋㅋㅋㅋ

그런 대단한 나라가 어떻게 운요호사건 당시 보잘것 없는 나라의 고작 수 십명 탑승하는
작은 군함 한 척에게 초지진은 포격으로 박살나고, 무려 450명의 병력이 있었던 영종도는
고작 20명의 육전대에게 무참히 유린될 수 있는지.... 게다가 일본군은 단 2명 부상인데 반해
조선군은 35명이 전사하고 16명이 포로로 잡히고 나머지 대다수는 도주하기 바쁘고...... ^^

그리고 그런 대단한 나라가 어떻게 고작 미국의 흑선4척에게 굴복한 보잘것 없는 나라의
고작 8척의 군함과 800명의 병력에게 굴복하여 불평등조약을 맺었는지...... ^^

임오군란 당시 일시집권한 대원군은 어째서 군란의 책임을 물으러 온 고작 1,500명 규모의
보잘것없는 일본군 육해군병력, 그중 그나마 한양까지 전개된 일본군은 고작 400명규모
정도에 불과했는데도 이를 자력으로 물리치지 못해서 당시 조선에 출병했던 마건충이하의
청군에게 협조를 구해야 했는지..... ^^

그리고 갑신정변 당시에 동원된 일본군은 고작 1개중대 병력 최대 200명 미만이었는데
어떻게 당시 그래도 한양안팍의 대부분의 병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수구파는 자력으로 이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청나라군에게 구원을 요청해야 했는지...... ^^

동학농민전쟁 2차봉기 당시 우금치전투에서 고작 1개 대대규모의 일본군에게
(그것도 정규군이 아닌 예비군 성격의 2선급 후비보병에게) 적어도 수 만명의 동학농민군이
박살날 정도로 동학농민군의 무력은 형편없었는데....

그 형편없는 무력의 2차 동학농민군보다 더욱 수가 적었던 1차봉기 당시의 동학농민군에게
2차봉기 당시의 일본군보다도 더욱 병력수도 많았던 관군과 정예병이었던 한양의 경군은
어떻게 이를 자력으로 막지 못하여 청나라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청일전쟁의 단초를
제공했는지....^^
 
이제는 웬만한 국뽕 과대망상증 환자들이라도 유일하게 인정하는 근대시기의 일본에 대한
조선의 열세에 대한 부분까지도 해괘한 논리로 부정해 버리니~~~~
정말 관련업계의 지존이십니다....ㅋㅋㅋㅋ
          
eo987 17-02-03 22:14
   
그 과정을 탐구하고 여러 요인을 찾아내는 것이 대한제국시절을 연구하는 학자분들의
현재의 문제의식이자 당대의 의문이겠죠 예를들어 도면회교수의 경우는 세도정치와
사법적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문제적 저서를 발간하였고 .
님은 일단 WEEABOO라서 언제나 진지하게 대응할 가치를 못 느끼는데 또 동시에
느끼는 점은 너무 가소로워서 좀 웃기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리고 불평등조약이라는 건 70년대의 무지한 시기의 인식이고 최근의 연구성과들을
능력의 정도와 비례하여 찾아 보시는게 좋지 않을까요..뭐 이런 것도 결국 인터넷이니
이럴수 있겠지만.볼때마다 느끼지만 참  수오지심이 철저히 결여된 인격체라는 것을
알게 되네요 우리 WEEABOO님들은 ^^
윈도우폰 17-02-03 20:23
   
근대 이전 사회의 국력 = 인구수 = 먹여 살릴 생산량이 맞아요...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상업도 국력이고 유럽의 중상주의가 그 예이지요...하지만 일본의 산업은소수의 영주(다이묘)나 고급 무사를 위한 약간의 사치성 소비재 위주였다는 점에서 지역 생산물 재분배(유통)에 의해 형성되는 국력과는 다소 무관...일본이 왜국이라 불린 이유가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그보다는 식량이 부족해서입니다...먹을게 없어 메밀로 소바를 만들어 먹으며 탄수화물울 보충하고 물고기로 단백질 보충하는 수준...일식이 오랜 기간 식령부족의 증거...이에야스가 간토 습지를 농지화하기 전에는 만성 식량 부족이었거 에도막부 때나 식랑문제 해결했어요...일본을 가보면 그리고 지도를 보면 토쿄 아래 쪽 평야지대가 거의 없습니다. 에도 이전 먹을게 많았으며 해적질 안 했겠지요...군사력이 국력이라 하면 왜가 조선보다 나았겠지만...식량 및 문화 등의 종합적 국력은 비교 깜이 안 되었지요.
eo987 17-02-03 20:49
   
당시 다산이 가졌던 전반적인 일본관을 제가 요약해 보려다 오래된 서류라 찾기가 힘드네용
대신 전문가분의 기사를 차용합니다. 아마도 백전백패의 발언은 이러한 역사인식에서의
조선의 위기적 상황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석하는게 합리적이겠죠

이른바 다산(茶山)의 일본관(日本觀). 박 이사장이 전하는 일본과 관련된 다산의 언급을 보면 "일본의 풍속은 불교를 좋아하고 무력(武力)을 숭상하기 때문에 연해(沿海)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보물과 식량과 포백(布帛)을 약탈, 눈앞의 욕심만 채웠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근심거리가 되었던 바 신라 때부터 일찍이 무사히 몇십년을 지낸 적이 없었고, 중국은 강소성과 절강성 지방이 해마다 노략질 당하였는데 명(明)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노략질의 걱정이 그치지 않았다."(日本論)
eo987 17-02-03 21:24
   
덧붙여 통신사가 목격한 '일본'에 관해서는 한 마디로 정의하면 조선에게 인정받기 위한  연속이었음이
제각 생각하는 당대인데요  관련해서는 제가 자주 인용하는 이분의 블로그가 너무 정연하게 정리해 놓으셔서
한번 시간이 되시면 보시길 권해 보아용 ^^

http://blog.naver.com/zajo0/220653900071
     
2RUN10R 17-02-05 13:30
   
왜 자꾸 질문을 피하시죠?

왜 농업 생산량 만이 국력의 잣대냐구요?

누누히 말씀드렸지만, 국력의 토대는 여러 분야로 나뉩니다.
농업 생산량이 조선이 일본보다 앞섰다는 것에 대해선 뭐라 안하겠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대표적인게 '세입'이란 게 있겠군요.
그 나라의 재정이 부유하다는 것. 그것도 분명히 국력으로 이어지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조선이 일본보다 농업생산량이 많다고 해서 재정이 부유했습니까?
에도 막부의 세입은 조선과 비교가 안될텐데요?

그리고 농업 생산량이 많아서 백성들이 부유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조선도 분명히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정조는 물론 체제공, 당시의 신하들도 조선의 가장 큰 문제점을 '가난'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 것에 근거를 달라하면 드리지요.

서민 문화의 발달도 그렇지요.
조선의 판소리와 일본의 가부키. 
일본의 가부키는 전용 상연 극장이 있었던 반면 조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조의 상업정책이 나와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조선은 아직까지 민간자본이 형성되어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죠.

더 해볼까요?
조선은 도시화의 수준이 매우 낮았습니다. 기껏해야 2~3% 정도대죠.
동양에서 유일하게 도시화율이 10%를 넘은게 에도막부 시대 일본입니다.
          
국산아몬드 17-02-05 15:16
   
일본의 가부키는 전용 상연 극장? 농민을 착취해 극소수 부유층만 즐기는 문화가 좋아 보이나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농민이 아니고 농노지요. 겨우 살만큼 먹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목베이고
소처럼 일만하다가 죽는. 그게 삶입니까?

하지만 조선의 농민은 주체적인 사고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민에 가까운 국민이었습니다
스스로 일어나 왜적을 물리치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즐겼습니다.

바로 조선의 판소리나 탈춤, 농악대등이 그 흔적이죠.
농민들이 삶의 여유를 즐겼던 문화생활이란 말이요.

감히 조선의 삶의 질을 일본과 비교하다니
     
2RUN10R 17-02-05 13:49
   
이덕무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처음 표류인들이 아란타 사람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란타가 일본의 속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깊이 분변하지 못할 정도로 외국의 사정에 어두웠다." - "편서잡고 4"
당시 지배층의 어두운 세계관을 꼬집고 있죠?
"페르시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무릇 35개국에 아란타 상인들이 들어가서 그 나라와 교역한 다음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온갖 물품을 가지고 일본에 와서 팔았다. 곧 일본이 부국강병을 이루어 바다 가운데서 크게 세력을 떨칠 수 있는 까닭은 다른 나라와 통상했기 때문이다." - <청령국지>
분명히 일본의 부국강병을 인정하고 있고, 그 이유를 상업에서 찾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래도 농업 생산량이 국력의 결정적인 조건인가요?

정약용의 경우
"만약 (일본이) 대개 국력의 허상과 실상을 헤아리고 군사력의 엉성함과 치밀함을 살피고 승패를 판가름하는 형세를 따져본다음 우리나라를 도모하려고 했다면, 저들이 이미 왔어도 백번이나 왔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이미 백 번 모두 패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짐승의 씨조차 없어지고 말것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편안할 수 있었겠는가." <다산시문집> 중 '일본론'
 이 문단은 누가봐도 일본의 강력한 국력을 경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박제가의 경우
"더욱이 왜국은 다른 나라와도 교역을 맺었는데 그 숫자가 무려 30여 개국에 이른다. 온갖 괴이한 물건과 중국의 고동서화가 나가사키에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엄청나게 모여들고 있다. 마침내 우리나라에 다시는 물건을 요청하지 않게 되었다." <북학의> 중 외편
일본의 상업 규모를 무시하는 분들이 많군요. 일본이 더 이상 조선과 중개 무역을 하지 않게 된 것을 보고 조선의 상업의 낙후에 대해 한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라의 영토가 작고 백성들은 가난하다. 지금 농민은 온갖 노력을 다해 논밭을 경작하고,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고, 상업 활동을 허용하고, 공장에게는 혜택을 베풀어서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을 다 얻는다고 해도 오히려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북학의>중 외편
농업 생산량이 분명 조선이 더 많을텐데요? 어떻게 된건가요?

조선통신사들의 일본 분석
"여자들이 하는 일은 방적이다. 그래서 비록 하층민의 아내라고 하더라도 호미를 잡아 생계를 삼는 사람이 없다. 남자들이 하는 일은 공업과 상업이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에서는 또한 논밭을 경작해 생계로 삼지 않는다." 원중거, <화국지> 중 농작 편
이 기록은 농업 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조선과 달리 일본의 경제력이 상공업에서 나온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죠?
원중거도 분명히 일본을 비난하고 있는 편인데, 이덕무는 이런 원중거를 비판했습니다.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혀 일본을 똑바로 보지 않고 있노라고. 그런 원중거도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일본이 상업주의 국가가 아니고 뭐지요?

더 필요하신가요?
국산아몬드 17-02-03 23:17
   
2RUN10R / 다산 정약용은 일본이  이제 유교로 교화되었다는 말을  했다는 기억은 나는데 일본이 조선보다 앞섰다고 평가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정약용의 발언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출처를 알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덕무는 잘 모르지만 그분의 발언과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2RUN10R 17-02-05 13:46
   
이덕무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처음 표류인들이 아란타 사람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란타가 일본의 속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깊이 분변하지 못할 정도로 외국의 사정에 어두웠다." - "편서잡고 4"
당시 지배층의 어두운 세계관을 꼬집고 있죠?
"페르시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무릇 35개국에 아란타 상인들이 들어가서 그 나라와 교역한 다음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온갖 물품을 가지고 일본에 와서 팔았다. 곧 일본이 부국강병을 이루어 바다 가운데서 크게 세력을 떨칠 수 있는 까닭은 다른 나라와 통상했기 때문이다." - <청령국지>
분명히 일본의 부국강병을 인정하고 있고, 그 이유를 상업에서 찾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래도 농업 생산량이 국력의 결정적인 조건인가요?

정약용의 경우
"만약 (일본이) 대개 국력의 허상과 실상을 헤아리고 군사력의 엉성함과 치밀함을 살피고 승패를 판가름하는 형세를 따져본다음 우리나라를 도모하려고 했다면, 저들이 이미 왔어도 백번이나 왔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이미 백 번 모두 패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짐승의 씨조차 없어지고 말것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편안할 수 있었겠는가." <다산시문집> 중 '일본론'
유교로 교화되었다는 말은 바로 이 문단의 앞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문단은 누가봐도 일본의 강력한 국력을 경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박제가의 경우
"더욱이 왜국은 다른 나라와도 교역을 맺었는데 그 숫자가 무려 30여 개국에 이른다. 온갖 괴이한 물건과 중국의 고동서화가 나가사키에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엄청나게 모여들고 있다. 마침내 우리나라에 다시는 물건을 요청하지 않게 되었다." <북학의> 중 외편
일본의 상업 규모를 무시하는 분들이 많군요. 일본이 더 이상 조선과 중개 무역을 하지 않게 된 것을 보고 조선의 상업의 낙후에 대해 한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라의 영토가 작고 백성들은 가난하다. 지금 농민은 온갖 노력을 다해 논밭을 경작하고,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고, 상업 활동을 허용하고, 공장에게는 혜택을 베풀어서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을 다 얻는다고 해도 오히려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북학의>중 외편

조선통신사들의 일본 분석
"여자들이 하는 일은 방적이다. 그래서 비록 하층민의 아내라고 하더라도 호미를 잡아 생계를 삼는 사람이 없다. 남자들이 하는 일은 공업과 상업이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에서는 또한 논밭을 경작해 생계로 삼지 않는다." 원중거, <화국지> 중 농작 편
이 기록은 농업 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조선과 달리 일본의 경제력이 상공업에서 나온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죠?

더 필요하신가요?
          
eo987 17-02-05 14:03
   
님 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뭔가 구체적인 통계나 이론은 없이 그냥 지극히 단편적인 기록들을 기반으로 ?
다시 한번 묻지만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전형적인 역갤러 행동을 하시네요
아니면 나무위키에서 WEEABOO들이 기록하는 방식과도 유사하고
이건 그냥 믿음이지 뭔가 증명이 아닌데 정신을 차리세요 ^^

그리고 원중거의 화국지를 올리신 부분은 현재 제가 서적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과연 제대로 글을 옮긴 것인지 확인이 불가능한데 전혀 일본의 현실과 동떨어진
기록일 뿐더러 기본적으로 조선통신사가 오히려 어떠한 사행로를 통해 이동했는가에
대한 그리고 무엇을 목격했는가에 대한 그동안의 학계의 연구를 더욱 확고히
해주는 것인데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당시의 유업자 통계를 산출한 적이 있어요 당시 농업종사자가 80%이상 이였고 막말에 신분구성을 보면
에타및히닌이 3~4% 무사가 7% 상공업자가 10% 나머지는 모두 농민이고요
(조선의 경우 시기별로 다르지만 상공업자의 비율은 전체 5~6%)
 
원중거의 체험기록은 위에서 말 한 것처럼 그들의 사행로에 대한 이해가 우선인데
당시 에도막부의 계획하게 철저히 대도시만으로 이동했거든요 그리고 원중거로서는
일본에 대해 알수가 없으니 자신이 본 것 만을 기록한 것이고 ...에고
이건 초등학생 가르치는 느낌이니
이 위아부들은 전세계적 문제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러 요인들로 한국에서 특히 그
양상이 심각한 것이 맞는듯

공통점은 하나같이 저랩이고
'더 필요하신가요?' 이건 무슨 자신감인지  에그 수준이 정말...
               
2RUN10R 17-02-05 17:02
   
ㅋㅋ 제가 하면 믿음이고 님이 하면 증명이군요
님이 화국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해서 제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까?ㅋㅋ

임진왜란 때를 예로 들어보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7년 동안이나 전쟁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만큼 일본도 행정력과 경제력이 나름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ㅋㅋ
또 웃긴게 뭔지 아세요? 일본이 조선에서 현지 약탈을 하려고 했는데 상업이 발전하지 않아 물자가 풍부한 곳도 없었고, 설사 약탈했다고 해도 부족해서 고생했다고 합니다 ㅋㅋㅋ
또한 명나라도 군인들에게 은 화폐를 지급하려고 했는데 조선은 아직까지도 화폐 경제가 발전하지 못해 고생했구요 ㅋㅋㅋㅋ
즉 한마디로 조선은 가난했던 것입니다 ㅋㅋ
설사 근대 이전의 국가라고 해도, 상업을 하는 나라와 농업만 하는 나라는 국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오는 것입니다 ㅋㅋㅋ

구소련을 생각해보세요.
구소련은 당대 유일하게 미국과 맞섰던 나라였죠.
근데 그 국민들은 대부분 가난했죠.
그렇다고 해서 구소련을 약한 나라라고 했나요? 아니죠. 최강국 중 하나였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한가지 지표로 평가할 수 없단 것입니다.
분명히 조선도 찬란한 문화를 가졌지만, 한계점이 있었던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국산아몬드 17-02-05 20:41
   
현대에도 전쟁나면 전시통제가 되는데 근대이전에 전쟁중인 나라에서 돈을 가져와서 쌀을 사려고 하는게 말이되나요? 도리어 명군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왜군을 굶길려고 관군과 의병들이 얼마나 노력했는데 .
왜군이 굶은게 불쌍한가요?
일본군이 왜 굶었을까요?  먼저 보급을 차단했고 조선군이 전투에서 질것이라 예상되면
제일 먼저 쌀 저장소를 불태우고 무기를 수장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탈을 하려해도 안되었던건 조선백성이 항거하고 숨겼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굶긴건데 조선이 못살아서 왜군이 굶었다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되는 거죠.

전시에 적군이 배 곯고 은전이 유통안되었다고 조선이 가난했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정상인가요?
                    
eo987 17-02-05 22:40
   
대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알수가 없네요
말에 근거들이 없어서 하나같이 어떤 분처럼 weeaboo스러움으로 가득한 파토스만 있고
오로지 하는 행동은 일본과 비교한 조선에 대한 거의 모함에 가까울 정도의
망상적 지껄임인데 ..거의 어디서 듣고보도 못한 소리들을 자가동력으로 하고 있는데
음 확실한 수확이라면 정신상태 정도를 알수 있다 외에는
별다른게 없고 역시 이성으로는 안되는 존재들이고.
          
국산아몬드 17-02-05 14:35
   
일본의 총 은수출량은 연간 66ton이고 이걸 당시 일본 쌀 시세로 따지면 35만석 조선도량형이면 70만석
조선은 인삼 무역만 350만석 일본식으로는 175만석, 최대 호황기때 350만석의 수출(어디까지나 공식통계에서만, 밀매,사무역 등 비공식 포함하면 2배 )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035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D%B8%EC%82%BC&sop=and

최대 시장인 중국만 하더라도 조선의 무역은 최대 교역물인 인삼만 가지고도
일본의 최대 교역물인 은의 5배가 넘습니다. 비공식 무역을 포함하면 10배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무역이 더 활발했다고요?
역참 시설도 참근교대때문에 겨우 만든 교역이 뒤졌던 사회인데요?
은같은 지하자원 아니면 무역할 게 없어서 해적질만 하던 일본이?


이덕무의 주장이 진실일까요?


지금의 북한처럼 일본은 조선 통신사에게 좋은것만 보여줬습니다. 빈민가는 아예 철거시켜버렸습니다. 년간 gdp의 3%를 조선통신사 접대비로 사용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년간 gdp가 1조 4천억달러니니 400억달러, 40조를 몇달 머무른 조선통신사 접대비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조선통신사 눈에는 모든게 좋게 보일 수 밖에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0879

일본 농민은 4공6민, 5공5민등이라지만 실제로는 70%를 뜯겼습니다.
에도시대 일본인 신장이 140cm 정도 되요. 일본 역사상 역대 최저치입니다
교역으로 부유했으면 신장이 왜 줄어들까요

에도시대 일본의 군사력도 형편없었습니다. 각 영지에 성만 달랑 1개만 허락하고 군사력은 아예 제거시켰는데 정약용의 말을 그대로 믿나요?
               
2RUN10R 17-02-05 17:06
   
그렇게 무역양이 풍부했다고 주장하는 조선이, 왜 도로망과 해상 무역이 발전하지 못했죠?
왜 조선엔 유럽인들까지 와서 교역하지 않았지요?
일본이 기술이 없어서 수출할게 없었다면, 왜 몇백년동안 꾸준히 유럽과 교류한 것이죠?
일본을 엄청 얕보시는데, 우키요에 같은 그림들은 지금도 유명한 서양 화가들한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ㅋㅋ

무역이 그렇게 발전했다면, 왜 조선은 '도시'가 성장하지 못했지요?
왜 조선은 도시화율이 5%도 안되는 것이죠?
왜 무역량이 조선의 1/10인 일본은 에도뿐만 아니라 오사카, 나가사키까지 발전한 것이지요?
                    
2RUN10R 17-02-05 17:10
   
왜 무역량이 조선의 1/10인 일본은 도시 인프라가 급격하게 성장했지요?
대중목욕탕부터 은행까지 설립이 되고, 에도는 100만이 몰리는 초 대도시가 된거지요?
왜 일본에선 '외식'문화가 활성화되며 지금의 패스트푸드인 '스시'가 급격하게 활성화되지요?

그렇다면 조선은 왜 상점이 제대로 안되는거죠?
그렇게 일본의 무역량보다 많았다면, 조선이 엄청나게 물건을 밖에서 들여왔다는 건데, 그 물건들이 대체 어디있는데요?
설사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왜 그것이 도시의 발전으로 성장하지 못했는데요?
                         
햄돌 17-02-05 18:08
   
대중목욕탕이 대단한건가요?

우리나라는 신라시대때 처음 발견되어서 고려시대까지 활성화 됐었다가

조선때 쇠락했죠

그리고 패스트푸드를 얘기 하는데

세계최초로 배달음식이 생긴나라가 조선인데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산아몬드 17-02-05 20:56
   
도로망은 일본이 조선보다 못합니다.
역참이 에도시대 처음 생겼는데 조선보다 얼마나 더 나을까요?
그리고 조선은 산이 많고 강도 많아 가능하면 조운으로 유통하는 게 유리했습니다

유럽과 교역해야만 무역이 발달하는 건가요?
아편전쟁때조차 중국에 팔 물건이 없어 일방적으로 적자만 보던 서양입니다.
중국과만 교역해도 충분한데 뭐하러 유럽까지 합니까?

일본이 도시화율이 높은 건 일본이 농민 착취경제에 기반한 때문입니다.
농민들을 거의 생산량의 6~70%나 피빨아 먹으니 도시가 발전할 수 밖에요
진짜 상업이 발달할려면 기술혁신과 유통혁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직 일본은 착취구조에 기반해서 도시인이 농민을 착취한 겁니다
진정한 의미의 상업 발달이 아닙니다

그리고 에도 100만 인구 설은 일본학자들이 어거지로 추정한 겁니다.
죠닌 50만 무사 50만으로 계산하는 것인데 무사가 50만이나 있었을까요? 게다가 대부분 빈민가에 모여 살았습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290931

그렇게 부러운 상황은 아닙니다
                    
햄돌 17-02-05 18:06
   
임진왜란때 조선인 기술자들을 잡아다가

조선 도공들이 구운 도자기를 수출해서 재미좀 봤죠

은제련기술도 훔쳐다가 재미겁나게 봤고요

고작 예를 든다는게 우키요엔데

그림들을 수출할 도자기를 싸는 용도로 썼었습니다.
rozenia 17-02-05 05:54
   
상대성판단을 해보면어떨까합니다.다들 이유와 논지가 있겠지만

쉽게 말해 현실성있는 비교는 어디까지나 가정이 되겠지만 내가 당대 조선의 임금 혹은 실권을 갖은 위정자였다면과 내가 통합된 권력을 쥔 쇼군이었다면 같은 사업을 어디까지 벌일수있을까 정도면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다소 두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와 경제를 뺄수없듯이 역사의 사실과 특히나 특정된 두가지 세력의 어느 부분을 비교함에 있어서 상식적으로 어느 한부분만 딱 잘라서 보는것은 굉장히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인것 같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좀 유치하지만 구매력이나 산업력 혹은 전쟁능력(전투력보다는 장기전 혹은 원정능력정도겠죠)이 현실성있는 국력의 비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토지나 농토, 반대로 산업이나 무역 양대의 혼합혹은 국한된 이야기만으로는 결국 보고싶은 부분만 보게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경제가 계속성장하고 이나라의 위정자들 중 일부는 진짜 상위1%만 대상으로 했던 여론조사 평균 신입월급이 280만원대라든가 이런식의 숫자놀음 혹은 데이터에 의한 한계점이 있는 것 처럼

한가지 부분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단면만을 보게 되는 어찌보면 판단의 기준이 되기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예를 들어 농토의 면적 이외에도 효율적인 생산성의 비교가 포함되지 않고 생산되는 양의 데이터는 있으나 분배에 있어서 효율적이지 못했던 조선후기를 생각한다면 단순한 생산량이 갖는 의미는 줄어들 것이고

반대로 일본의 무역이나 산업또한 데지마를 제외한 각 번들의 무역량이라든지 그 무역이 사실상 내전양상에서 군사력 충당이기에 실질적인 일본국민에게 돌아가는 실 소유량이 다르다는 점이라든지

어찌보면 1인당 GDP의 개념 + 실질물가 혹은 실질소득이 반영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여러 데이터로 부자나라라고 최근 10년사이 여러이유로 이미지가 달라지고있다는데 사실 우린 별로 개인적으로 소득성장이 많은 부분 이루어지진 않았기에 "부유"하다고 하는데 모두들 부정적인 것 처럼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다들 저보다 훨씬 많이 아시고 뚜렷하신듯 합니다. 다만, 숫자만으로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한말씀 남겼습니다.
트라이던스 17-02-08 08:18
   
일본이나 조선이나 백성과 국민에게 삥뜯는건 예나지금이나
매한가지아닌가 ㅎ 뭐 발전했네 뭐했네 하시는데
전염병한번돌면 국가 인구 1/3이 날아가던 시대임
전쟁보다 역병으로 죽어나간 사람수가 더 많은게 20세기 이전의 세계임 전서계가 마찬가지였고요 근데 무슨 백만도시?
ㅋㅋㅋㅋ 통일신라시대 수도 경주가 세계5대 도시였음 그렇게 따지시면 말입니다
1200년대 그때 백만이 넘은 도시가 경주였고요
무슨 일본이 뭐 대단한듯 좇빠시는분이
계시는건지 팩트를 논하는건지 난 잘 모르것는데
일본은 그때서야 인구 백만이 온거고
존나 운대가 잘맞아 떨어져서 지금의 일본이 된거임
흥선대원군이 시바 개방이 좋은거 모르고 안한건가
잘못하면 식민지될까봐 그리고 아편전쟁을 보진 못했더라도
듣기야 했을테니 아편무서워서라도 일단 국가를 재정비하고
구때가도 늦지않겠다 판단을 한건데 민씨왕후 그미친년이 나라 다말아먹었지 고종이랑말이야 고종과 민씨가 해쳐먹어서
국가부채가 미쳐돌아갔었지 국가부도수준이었고
여튼 각설하고 현재 일본은 미국사라지면 병신되는 국가임
주변국에 밑보인게 한두번인가?? ㅎ
미국덕에 지금 여기까지와있는 일본인거고 우리나라도 그런게 좀 있지만 일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고 만약 중국이 미국을제치고 최대시장되면 세계경제지도가 바뀌고 다시한번 동서양이 부딪치게되겠지 일본은 열강이고싶겠지 일본과 미국이 왜저렇게 지랄발광하는지를 잘생각해보시길 중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이되게되면 미국에 유입된 자본들도 이미 많이 이동했지만
거의 이동하게된다면 남은건 군사력뿐이지 않겠음?
미국이 그땐 북한되는거임 ㅎ
에혀 글이자꾸 산으로가네 ㅋㅋ
그럼 이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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