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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1 12:17
[한국사] 유사역사학이라는 악랄한 프레임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754  

도종환 의원이 문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강단 주류 역사학계의 반발이 심하다.

내로라 하는 언론사를 동원하여 연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심지어 언론사 논설위원들까지 사설이며 칼럼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이들의 비난의 요지는
"문체부 장관으로 지명된 도종환 의원은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역사관을 지닌 이로 통합과 협치를 국정방향으로 내세우는 새 정부의 성격과 맞지 않고 오히려 학문의 자율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기경량, 위가야, 안정준, 심재훈 등 젊은 역사학자들을 시작으로 하일식까지 신진과 노장 학자들의 파상공세가 계속된다.

심지어 어느 학자는 "시나 쓰던 사람이 주제 넘게 문체부 장관이라니ㅡ"하는 말을 언론 인터뷰에서 대놓고 한다.

그렇다면 도종환 의원과 이들 학계의 악연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들은 동북아역사재단 국정감사에서 처음 만났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 역사지도를 만들어 미국의회에도 보내고 이와 동시에 하버드 대학과 한국사를 6권짜리로 정리해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마무리 단계에 앞두고 있었는데

국정감사에서 이것이 문제되면서 무산된 것이다.

국정감사 전에도 국회 역사특위(좌장 김세연 의원) 토론회에서도 계속 문제가 된 것인데 국정감사를 계기로 사업이 원점으로 반려된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이 사업에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한 것은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 소장이었다. 이덕일 소장만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나 제일 앞장서서 문제점을 지적 비판하였다.

국정감사와 역사특위에서 지적된 것은ㅡ도 의원뿐만이 아니라 여야 의원 모두의 비판을 받았다ㅡ 특히 다음과 같다

Q 독도는 왜 표기하지 않았나?
A 실수였다. 다시 작업하겠다

Q 300 년 지도에 위나라 영토가 요동 남단을 지나 한반도에 들어와서 경기도까지 차지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건 무엇을 근거한 것인가?
A 삼국사기를 근거했다(실제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 없음. 위나라 관구검이 패퇴한 후에 고구려는 정국을 곧바로 안정시키고 뒤 이은 침략을 물리치며 미천왕에 이르기까지 요서요동 지역에 공세를 계속함. 이런 국경선이 그어질 수가 없음)

Q 300 년 지도에 왜 백제와 신라는 없고 마한, 진한, 변한이 표기돼 있는가?
A ㆍㆍㆍ

역사특위와 국정감사의 내용이 대략 이러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ㅡ 동북아역사재단은 순수학술단체가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단체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 독도침탈에 대항하는 역사논리를 개발하라고 만든, 정부 산하의 단체이다. 그러니 국정감사를 하는 것이다. 여느 학술단체면 어떻게 국정감사를 하겠는가?
ㅡ 동북아역사재단 문제는 도 의원 혼자만 나선 게 아니다. 여야 의원 모두 비난하고 분개했으며 공분을 산 사건이다
ㅡ 당시 도종환 의원은 야당 의원이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의원들도 함께 비난하고 공분한 사건이다

그러니 제발 당시 기사, 토론영상, 국정감사 영상을 찾아보라!

동북아역사재단이 하버드 대학과 공동으로 집필 출간하려 한 한국사의 처음이 한사군으로 시작한다. 고조선이나 위만조선, 부여도 아니고 한사군으로 시작한다.

말이 된다고 보는가?

지금 도종환 의원에게 유사역사학이라는 프레임을 걸어버렸다

유사역사학은 말그대로
ㅡ 역사학과 유사해 보이나 역사학이 아니다
ㅡ 사이비 역사학이다는 뜻이다

실제 기경량, 심재훈 등의 신진학자들은 대놓고 사이비 역사학이라 한다. 그 제목으로 책도 냈다.

이덕일, 복기대, 윤한택, 심백강 박사ㅡ이런 이들이 유사역사학자인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이고 강단에서 가르치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이 사이비 역사학자인가? 이들이 재야사학자인가?

이들은 우리 고대사 쟁점을 논할 때에 중국정사와 우리 정사, 고고학 결과물에 근거해 주장하는 이들이다.

한단고기를 근거로 주장하지 않음에도 환빠라고까지 몰리고 있다.

이 얼마나 악랄한가!

우리는 최소한 중고등 교육을 받았고, 적어도 절반 이상은 대학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훈련을 받았다.

유사역사학 프레임에 눈이 흐려질 게 아니라
과연 도종환 의원이 앞장 서서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동북아역사지도의 꼬라지가 어떠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도를 두고 소위 강단주류사학과 그들이 사이비로 부르는 비주류역사학계의 주장이 어떻게 맞섰는지

당시의 역사특위 토론영상과 국회 속기록 등을 찾아서 시시비비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는 양식과 양심의 문제이다.

토론회와 국정감사 영상을 익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역사재단측 인사들이
ㅡ제대로 답변도 못하고 항변도 못해요

또 아래 2016 년 6 월 kbs 뉴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역사 쟁점을 떠나서 지도 자체도 기술적으로 부실투성이었고, 문제가 되니까 공개하라고 요구 받은 지도 최종본의 공개를 거부하며 나모르쇠로 나왔습니다

https://youtu.be/w1leeLyDQ_4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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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06-11 12:33
   
일부 사이비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쥐락펴락하는 모습, 정말 보기 안타깝습니다.
     
감방친구 17-06-11 12:37
   
그렇지유 진짜 사이비가 누구 보고 사이비라 하는 지 당최 차암

그나저나 꼬마러브님, 아래 삼국사기 낙랑ㅡ 제 글 좀 읽고 답변 좀 해주세요
     
감방친구 17-06-11 13:25
   
허허, 꼬마러브님 거부하시네요
알겠습니다
          
꼬마러브 17-06-11 14:33
   
촐라롱콘 17-06-11 13:38
   
300 년 지도에 위나라 영토가 요동 남단을 지나 한반도에 들어와서 경기도까지 차지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건 무엇을 근거한 것인가?
A 삼국사기를 근거했다(실제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 없음. 위나라 관구검이 패퇴한 후에 고구려는 정국을 곧바로 안정시키고 뒤 이은 침략을 물리치며 미천왕에 이르기까지 요서요동 지역에 공세를 계속함. 이런 국경선이 그어질 수가 없음)
 .
.
.
동천왕 시기인 3세기 중엽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으로 고구려가 큰 타격을 받고 난 이후

한동안-길게 잡으면 근 50년 가까이 고구려가 주변에 대해 이렇다할 공세를 취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요동-요서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는 말씀이신지....??

동천왕대로부터 수 십년 이상 지난 4세기 초반 미천왕대에 이르러서야 요동초입의 서안평을 공략하고

한반도 서북부의 낙랑-대방을 축출하게 되는데....?? 이 경우도 중국대륙이 8왕의 난, 5호 16국의 진출로 인한

혼란상황으로 인해 중원의 힘이 요동-한반도북부 일대에 제대로 투사될 수 없는 틈을 이용한 측면이 큰데......???

물론 고구려 또한 3세기 시기를 거치며 국력이 신장되었기 때문에... 공세가 가능해진 것이겠지만....

관구검의 고구려침입과 대방지역의 기리영전투로 상징되는 충돌을 거치며 삼한지역 또한 이전의 목지국을

비롯한 마한의 맹주국들의 세력이 약화되고... 이 이시부터 백제가 마한지역의 대표주자로 부상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국왕이 대방태수와 혼인관계를 맺는등 백제 또한 낙랑-대방에 대해서는 움츠러드는

양상을 보이는 시기가 3세기 중후반 시기인데요.....???
     
감방친구 17-06-11 13:52
   
그러니 300 년 지도가 문제라는 겁니다
그 지도의 문제는
ㅡ 1. 위의 영토가 요동을 포함하여 내려와서 한반도 서북부와 경기도까지 차지 하고 있습니다.
ㅡ 2. 백제와 신라가 없이 삼한이 표기돼 있습니다

이 지도가 문제가 없습니까?

서기 300 년은 4세기죠
     
감방친구 17-06-11 14:00
   
고구려 본기
중천왕
4년(서기 251) 여름 4월, 임금이 관나부인(貫那夫人)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서해로 던졌다.
四年 夏四月 王以貫那夫人置革囊 投之西海

12년(서기 259) 겨울 12월, 임금이 두눌(杜訥) 골짜기에서 사냥을 하였다.
위나라 장수 위지해(尉遲楷)[이름(楷)이 장릉(長陵, 고려 인종)의 이름에 저촉된다.]가 병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임금이 정예 기병 5천 명을 선발하여 양맥(梁貊)의 골짜기에서 싸워 이기고, 8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十二年 冬十二月 王畋于杜訥之谷 魏將尉遲楷[名犯長陵諱]將兵來伐 王簡精騎五千 戰於梁貊之谷 敗之 斬首八千餘級

백제 본기
책계왕
1년 (서기 286)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쳐서 대방이 우리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앞서 임금이 대방왕의 딸 보과(寶菓)를 부인으로 삼았기에, 임금이 이르기를 “대방은 장인의 나라이니 그 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드디어 병사를 내어 구원하니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임금은 고구려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아차성(阿旦城)과 사성(蛇城)을 수리하여 대비하였다.
責稽王[或云 靑稽] 古尒王子 身長大 志氣雄傑 古尒薨 卽位 王徵發丁夫 葺慰禮城 高句麗伐帶方 帶方請救於我 先是 王娶帶方王女寶菓 爲夫人 故曰 帶方我舅甥之國 不可不副其請 遂出師救之 高句麗怨 王慮其侵寇 修阿旦城蛇城 備之
     
감방친구 17-06-11 14:16
   
그러나 님이 거론하신 기리영 전투는 상당히 흥미롭고 깊은 의문을 던지는 사건입니다

http://m.blog.naver.com/superman2208/220128718239

여기에 잘 설명돼 있군요

저는 한반도의 낙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낙랑군 한반도설, 요동설, 요서설 어느 쪽을 편들지 않고

우선적으로 삼국사기 초기기록만을 토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꼬마러브님은 고이왕 때에 요서에 백제가 진출했다고 주장하시고 또 한 편으로는 책계왕과 혼인동맹한 대방이 대방군이 아니라 한반도의 대방국이라 주장하시는데

선뜻 신뢰하기에 의문이 남습니다.

더욱이 이 시기가 이상한 것은
1. 책계왕이 한나라와 맥족 연합군과 싸우다 전사
ㅡ 한나라는 220 년에 망했는데?
2. 분서왕이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 암살
ㅡ 이미 책계왕 시절에 고구려가 대방을 압박하여 백제는 대방을 동맹임에도 돕지 못하고 국경의 성을 방비하는데 급급하는데 무슨 낙랑태수?
          
꼬마러브 17-06-11 14:35
   
저는 님이 제시하신 기록의 한(漢)이 국가 명이 아니라 종족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기록의 한(漢)은 한(漢)나라가 아닌 한족(漢族)인 겁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기록의 한(漢)은 진(晉)나라를 배후에 둔 낙랑군일 것이고 즉, 감방친구님께서 제시하신 기록은 낙랑군이 고구려에 소속되지 않은 맥족들과 함께 백제에 쳐들어가 책계왕을 전사시킨 기록이라 추측됩니다. 따라서 이 또한 백제의 대륙진출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또한 <삼국사기> 책계왕조에서 이상한 점이
책계왕 2년(서기 287년) 이후로 재위기간 10여년 동안 책계왕의 행적이 나타나지 않다가 책계왕 13년(서기 298년)에서야 님이 제시한 것처럼 낙랑으로 추정되는 한(漢)이 쳐들어오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합니다. 다시 말해 무려 10년이라는 공백기간이 있는 것인데, 어쩌면 이 시기가 백제의 대륙진출이 가장 활발했던 때인지도 모르겠다는..생각이 드는군요. 이후 책계왕이 전사한 후 즉위한 분서왕 역시 대륙으로 진출했다고 생각되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삼국사기> 분서왕 7년(서기 304년) 봄 2월, 몰래 군사를 보내 낙랑의 서쪽 현(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저는 낙랑을 포함한 한사군이 난하의 동쪽, 즉 요서에 존재했다고 생각하므로 백제의 대륙영토는 난하의 서쪽으로 비정됩니다.
               
감방친구 17-06-11 15:00
   
漢與貊人來侵
그렇네요 국역상에는 한나라라 돼 있으나
한인과 맥인이ㅡ라고 해석해야 더 합당하겠습니다
감방친구 17-06-11 14:42
   
313 년 낙랑군 교치

송나라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 권88, 진기(晋紀) 10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건흥 원년(313) 4월 요동 사람 장통(張統)은 낙랑(樂浪)과 대방 두 군을 점거하고 고구려왕 을불리(미천왕)와 해를 이어 서로 공격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낙랑인 왕준(王遵)이 장통을 설득해서 그 백성 1000여 가구를 통솔해 모용외(慕容廆)에게 귀부하니 모용외는 낙랑군을 설치해서 장통을 태수로 삼고 왕준을 참군사(參軍事)로 삼았다.”
요 동사람 장통이 낙랑과 대방 두 군을 점거하고 고구려 미천왕과 싸웠는데,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낙랑 사람 왕준의 설득을 들은 장통은 1000가구의 백성을 데리고 선비족 모용씨에게 귀부했다는 것이다. 선비족 모용외는 창려(昌黎) 극성(棘城) 사람으로 전연(前燕)의 건국자 모용황의 부친이다.
그러나 이 사료는 첫째, 고구려 미천왕 때 장통이 점거했다는 낙랑군과 대방군은 평안남도나 황해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천왕 때라면 고구려가 이미 요동반도는 물론 그 서쪽 상당 부분까지 차지한 상태였다. 낙랑군이 평양지역에 있었다면 장통이 1000가구를 거느리고 자국 영토를 지나 지금의 베이징 부근인 고대 요동에서 활동하던 선비족 모용씨에게 가는 것을 눈 뜨고 구경하고 있었겠는가?
둘째, 1000가구의 낙랑인이 이주한 것을 가지고 낙랑군 전체가 이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낙랑군의 인구에 대해 ‘한서지리지’ 낙랑군 조는 “6만2812호에 40만6748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략 한 가구의 구성원이 7명 정도라는 이야기다. 즉, 장통이 거느리고 간 1000가구는 7000명 정도라는 뜻이다. 40만7000여 명의 낙랑인 중에 7000명이 이주한 것을 낙랑군 전체가 이주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나머지 40만 명은 어디로 갔나?

ㅡ 이덕일 박사의 견해

[출처] 이투데이:
http://m.etoday.co.kr/view.php?idxno=1363869&ref=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query%3D%25EB%2582%2599%25EB%259E%2591%2B%25EC%259E%25A5%25ED%2586%25B5%2B%25EC%2599%2595%25EC%25A4%2580%26where%3Dm%26sm%3Dmob_hty.idx%26acq%3D%26acr%3D%26qdt%3D1#cb#csidx1602396a1e6fc1ea257df561da838d3
버섹 17-06-11 14:58
   
유사역사학이 나쁘다고? 일제에 부역하던 식민 사학자의 후예들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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