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6-07-06 23:35
[한국사] 이완용이랑 일진회가 노선이 좀 달랐다더군요.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3,885  

*****************************************************************************

한편 1907년에는 당시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교수형 언도를 받은채 
일본에 망명중이던 박영효가 일진회의 총재 자리를 권고받은 일이 있었다. 

적어도 당시의 정부를 디스하려는 점에서는 일진회나 박영효나 생각이 같아서, 
박영효는 일진회 당(?)의 총재가 되어 공화정의 대통령에 도전할 심산으로 
몰래 귀국해 부산에 머무른다. 

그러나 결국 합방에는 관심없었던 박영효이고
 공화정에는 관심없었던 일진회이므로, 양자간의 접촉은 별 성과가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일진회는 그냥 일진회대로 마이웨이를 가고 
박영효는 우습게도 대한제국 정부에 싹싹 용서를 빌고 궁내대신이 되었다.

아이러니한건 일진회를 이끌며 내각에도 참여했던 송병준과 
대한제국 총리라고 쓰고 매국노로 읽는다 이완용과 사이가 더럽게 나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라를 판 다음에 얻고자 하는 통치체제의 형태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송병준이 바랐던 (혹은 일본이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합방은 
기존 조선정부의 해체 그리고 대아시아 주의에 기반한 일본으로의 완전한 통합이었던 반면,
[4] 이완용은 일진회의 대동합방신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잘 알고있었고 
오히려 설령 합방을 하더라도 한국 황실의(격하되었지만) 명맥을 보존할 것과 
조선에 대한 차별화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 사망 직후인 
1909년 12월, 안그래도 이토 따라 죽고싶다는 드립을 치던 중인 이완용이 
이재명으로부터 칼빵을 맞고 잠시 사경을 헤매게 되면서 사태가 급변한다. 

같은 때에 일진회는 '한일합방 성명서'를 발표했고, 
병탄 연착륙파의 수장이었던 이토가 사라진 일본 역시 본격적으로 
한국을 먹으려는 움직임을 시작한다. 

수개월 후 병상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완용은 
비로소 피할 수 없는 망했어요의 분위기를 깨달았고, 
그나마 일진회식으로 다 뒤엎자는 합방을 막고 
기존 한국 기득권층(황실, 대신, etc)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나라를 파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송병준과 사이좋게 매국경쟁. 

결국 일본이 병탄의 그물을 슬슬 치려고 할까 하는 사이 
물고기(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가 먼저 뛰어든 꼴이 되어,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가 이루어지고 1주일 뒤 8월 29일 공표. 

공식적으로 대한제국이 시망하셨다.

아무튼지간에 엎어치나 메치나 나라가 망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완용의 구상에 가깝게 온건한(?) 병탄이 이루어졌으므로, 
급진적(?)이었던 일진회는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토사구팽'당한 꼴이 되었다. 

일제는 병탄 직후 일진회에게 해산을 명령했고, 실제로 강제로 그렇게 되었다. 

물론 일진회가 그간 5년여에 걸쳐 
일제로부터 많은 활동비를 받아처먹었으니 보상은 이미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1910년의 시점에 일진회는 회원들의 대규모 만주이주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 이주자금을 호쾌히 약속했던 일제가 병탄 후 입을 싹 씻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진회가 만주로 이주하고자 한 이유는 
회원들이 막판에 하도 막장 친일짓을 하고 다녔던 고로 
원래 살던 집들이 다 테러당해서(...)[5]이기도 하고, 

만주로 넘어가서 
일-한-만을 관통하는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하려는 이상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아무튼 일본은 일진회 명목으로는 돈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송병준에게 자작 작위를, 이용구에게는 작위 없이 10만원을 던져주고 끝이었는데, 
이용구가 짱구를 아무리 굴려봐도 자기가 10만원 받은 것을 
100만 일진회원에게 나눠준대봤자 수지가 안맞았기 때문에 아예 안 받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송병준의 경우는 나름 친일경력을 발판삼아 재빨리 주류사회로 발돋움한것 같지만, 
일진회원(=시천교도)들의 실질적 책임자이자 교주였던 이용구는 
자기가 일제에 속고 배신당한 덕택에 2천만 민중을 일본의 2류국민으로 전락시켰다는 
자괴감 속에 중병을 앓다가 1912년 일본 스마에서 사망한다. 

이후 시천교는 송병준계와 김연국계가 갈등하다가, 
김연국이 교주가 되어서 교도들을 싹 데리고 상제교(=천진교)로 독립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일진회나 시천교라고 하는 세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https://namu.wiki/w/%EC%9D%BC%EC%A7%84%ED%9A%8C

*****************************************************************************************


이걸 보니까.. 이완용이 사실 알고 보면 고종의 충신이었다는 썰이 
예전에는 헛소리로 들렸는데.. 이렇게 보니까 한편으로는 좀 와닿는 부분이 있네요..

요약하자면..

이완용이보다 더 막장인 일진회 인간들이 
고종과 조선왕실의 밥그릇도 걷어차고 일본에 나라 갖다바치려던걸...
이완용이 그래도 고종 밥그릇은 챙겨줬다.. 그런 소리인데..

그리고 일진회의 뿌리가 동학 세력이 만든 '진보회'로써..
근대화를 추진하는 세력이었는데, 이거 책임자였던 이용구란 인간이 
일본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같은 1 + 1 대등한 국가통합을 제시하니까, 
넘어가서 일제 앞잡이 짓을 했다는 부분도 있더군요.

그리고 이 일진회의 배후에 있었던 흑룡회의 우치다 료헤이라는 인간도 있는데..
참.. 이 인간이 일진회는 물론 청나라를 엿먹이는 신해혁명에서도 배후로 활동했더군요.

그 외에도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제국 엿먹이려고,
일본이 러시아혁명에도 자금지원해가며 공작질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인터넷에서 중국 우마오당, 일본 넷우익이 활개치도록 놔두는 우리나라 상태도 참 기가 찹니다.

저도 인터넷 IP 국적 표시제를 국민신문고에 제안넣었는데.. 
국정원이 몇달 째 쌩까고 있더군요. 답변 기한도 지났는데..

북한간첩말고, 중국, 일본 간첩의 심리전따윈 신경도 안쓰나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이완용 16-07-07 03:13
   
그렇군요
     
Centurion 16-07-07 05:28
   
닉이 좀 레어하시네요..

요즘 이완용평전 같은게 나와선지
각 커뮤니티나 블로그에서도  이완용에 대한 왈가왈부가 많긴 하던데...

이완용 본인 자신도 조선왕실에 대한 충신이라고 자뻑하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는 썰도 있고,
이완용이 악역을 맡아 고종이 먹을 욕을 분산시키고 반감시킨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럼에도 철저히 일본의 행위에 맞장구치며
대한제국의 인공호흡기를 직접 떼버린 인물이란 점은 분명하긴 하고..

어쨌든 예전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보긴 살짝 어렵긴 하네요.
(한 때 독립협회 위원장에... 친일로 늦게 돌아선 친미, 친러파 인물이기도 했고..)

이완용 평전의 서문인가..
원치않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차악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해서
치욕과 비난을 한몸에 받은.. 그런 의미의 악역을 맡은 충신이라는 그런 인물평까지 있던데..

예전에는 개소리라고 치부했지만..
보다 막가파식의 일진회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어찌보면 조선왕실에게 꽤나 두둑한 몫을 남겨뒀으니..
조선백성들에겐 찢어죽일 매국노지만,
조선왕실 자체엔 득이 된게 맞는 거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어차피..
 일본 입장에서도 조선인들의 반발을 고려해
왕실을 보존하는게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나중에 고종 사후 '충'을 중요시하는 유림에서조차..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이 죽은걸 슬퍼하며 받들어야 되나?
일본의 이태왕이 죽었으니 이걸 무시해야 되나? 고민을 했다는군요.

********************

"고종 사망 이후 아직까지 잔존한 유림들 사이에선 대소동이 벌어진다.

고종이 사망 이후 일부 유림들이
"우린 대한제국 황제의 신하지, 일본 이태왕의 신하는 한 적 없었다!
그러므로 우린 절을 할수 없다!"라고 고종에게 절하기 거부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유림계는
고종에게 절하는게 맞는가 아닌가를 두고 대판 싸우게 되는데
서울에서 고종이 일본에게 저항하다가 독살되었단 소식이 들어오자 그렇다면
고종은 친일을 한 것이 아닌 것이 된다고 고종에게 절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이후 유림계의 결론은
"고종께서는 무능하셨다. 근데 그것이 오직 그분의 책임인가?
우리도 여러 실책을 하여 나라가 망한 것이니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간재 전우를 비롯한 강경파를 제외한 대다수 유림들은 3.1운동 등에 참여하여
기독교 세력과도 연대하고 파리 장서 사건을 모의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https://namu.wiki/w/%EA%B3%A0%EC%A2%85(%EC%A1%B0%EC%84%A0)

그러니까.. 고종이 만약에 직접 일본의 조약서에 도장찍는 상황이 되버렸으면..
유림들조차 고종을 쌩까고, 장례식조차도 안받들고 무시했을 상황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고종이 안찍고, 이완용이 대신 찍음으로써,
오늘날에 고종 이미지가 좋게 남아 있는거긴 한데..

고종은 그 많은 위협 속에서도..
자기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빼고는
늘상 고집 좀 피우다 결국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했는데,
유일하게 진짜 단식까지 해가며 고집 피운 경우가 순종한테 양위할 때였다고 합니다.

을사조약 때에도 대충 어차피 맺을 거 유리하게 맺자는
이완용의 꾀임에 넘어가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가 통수를 맞았죠.

어쨌든, 오늘날까지 이완용이가
망국의 책임을 져야될 국정최고책임자인 고종에게 쏟아질 비난을
대신 받아내는 역할을 하는게 사실이긴합니다.

이미 고종의 "이이제이"에 기반한 외세의존적 외교노선는 러일전쟁으로 끝장나고,
더 이상 세계에서 외교로 의지할 나라가 없어져버렸으니까요.

러일전쟁 패배 이후에도 본래는 미국 공사관에 파천하여..
미국의 힘을 통해 일본견제를 노려보려 했으나..
이는 가쓰라-테프트 조약으로 이미 무의미해졌고..
훗날 을사늑약 취소를 위해  헤이그특사를 보냈으나,
결국 그것도 실패로 끝나고 그 책임으로 강제퇴위.

어쨌든 이 최후의 판에서 일본에 적극 협력해
대한제국의 숨통을 끊은 매국노 이완용이 덕분에..

고종이 한편으론 오늘날에도 계속 대접받으며
애국적 군주 이미지로 드라마나 영화에 계속 나오게 되니..
좀 복잡미묘한 상황이 되버렸달까요..
객관자 16-07-07 13:20
   
고종의 무능과 무지몽매 비겁이 조선의 멸망을 가져온건 사실이지만  이완용이 충신이라는 것은 일종의 궤변이에요.  이완용은 사리사욕을 위해  고종의 비겁함을 유도하여 조선 멸망의 길로 이끈 장본인입니다.

물론 이완용이 목에 칼을 들이대고 고종을 협박한게 아닌바에야  이완용의 노선을 최종결정한 고종의 책임이 크지요.  그래서 조선왕조는 망한것이지요

그 시대에도 최고 결정권자였던 고종에게 국체를 지킬길을 호소하며  근대화를 주장했던 선각자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고종이 만약 현명했다면 이완용 같은 간신배들의 사탕발림을 멀리하고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조선의 국체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겠죠.

고종은 조선의 개혁에도 무능했고  강대국의 위협에 무력한 외교에도 무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차라리 그 부인인 명성황후가 적어도 외교측면에서는 현명한 면을 많이보여요..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일본에 암살당한 거겠지만.
촐라롱콘 16-07-07 15:07
   
러일전쟁 전후 당시의 일본의 스파이-첩보-공작활동이 미친 범위가 상상 이상이더군요~~

첩자들이 한국-일본에서 가까운 연해주등의 극동지역은 물론 중앙시베리아 일대까지 지형지물, 부대위치

이동경로 등 전쟁수행에 필요한 관련정보를 수집하러 다닌 것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행위이고...... 

당시 러시아 내부에서 반러시아세력을 지원하기도 하고, 러시아의 압제하에 있던 폴란드, 핀란드의

민족주의자들을 부추키기도 하고......

심지어 훗날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키는 레닌까지도 이 당시 일본의 공작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목할만한 인물은 훗날 구한말 통감부시기 조선주재 헌병사령관을 거쳐 대한제국 침탈이후 조선총독부

초대 경무국장과 대만총독을 역임한 [아카시 모토지로]라는 이가 러일전쟁 당시에는 대좌계급의

러시아주재 무관으로 위와 같은 특수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발틱함대가 극동을 향해 출발하고부터는 대서양~인도양 구간은 당시 일본의 동맹국인

영국을 통해서... 싱가포르 인근부터는 일본의 정찰선이 직접 파견되어 발틱함대의 이동경로와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넘버4 16-07-07 16:26
   
하여튼 철저하게 준비하는거 하나는 인정해 줘야 되요.......
     
버섹 16-07-12 00:02
   
그 작업을 했던 놈들이 대륙낭인이라 불리던 현양사, 천우협, 흑룡회 놈들이지요...
레닌 뿐만 아니라 중국의 손문도 흑룡회의 지원을 받았죠...

이 중 현양사가 명성황후를 시해했으며, 천우협이 동학지도부에게 접근해 후원해 주겠다며 회유하려 했고, 흑룡회 놈들이 러일전쟁 사전 작업을 했던 놈들이죠...

송병준과 이용구가 만든 일진회가 흑룡회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 놈들입니다.

일진회는 러일전쟁때 일본의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만주를 오가며 정보를 수집해 일본군을 도운 쳐 죽일 놈들이죠...

레닌과 손문은 흑룡회의 후원을 받았지만 영혼까지 팔진 않았는데, 이완용과 일진회는 영혼까지 팔아먹은 극악한 놈들입니다.
버섹 16-07-11 23:49
   
전에도 얘기했지만 좀 제대로 알고 글 씁시다.
지금 있지도 않은 일로 이완용을 미화하는 겁니까?
무슨 이완용이 조선 왕가를 지켰다는 건가요?

오히려 칼을 빼들어 고종을 협박한 인물이며, 왕위를 없애고 작위를 줘서 자신들과 같은 반열로 만들려고 앞장서서 주장했던 인물이에요...

이완용이 한국원수(조선황제)의 칭호를 대공(국왕과 공작 사이)으로 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고, 일본이 오히려 구래의 칭호인 국왕으로 하는 것이 낫다고 해서 그나마 왕위를 유지하게 되었을 정돕니다.

일진회는 송병준이 만들었는데 이완용과 송병준, 일진회는 당연히 노선이 달랐습니다...
이완용은 통감부의 꼭두각시였고, 송병준은 일본 군부의 꼭두각시였으니까요.
일진회가 악질적인 친일 행각을 하려하면 이완용이 자신의 친일 공을 극대화 하기 위해 기각시키곤 했었죠...

하지만 한국 멸망을 위해 공훈을 다툰 인물이라는 점에선 둘 다 똑같은 가장 극악한 친일파들이에요...

한일병탄이후 76명의 친일파들이 작위를 받았는데, 이완용과 철종의 사위였던 박영효 등 왕족 몇 명이 가장 높은 후작의 작위를 받았어요.
또한 이완용은 엄청난 거금을 받아 당시 조선에서 돈이 두번째로 많은 부자이기도 했죠.

이들 76명의 당적을 보면 남인은 없고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 나머지 56명이 모두 노론입니다.
     
Centurion 16-08-29 12:37
   
뒤늦게 댓글을 발견하고 답글을 남깁니다..

일단, 역사 논쟁을 하는건데, 지나치게 흥분하신거 같군요.

일단, 이완용이 칼들고 협박했다는 썰을.. 황현의 매천야록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매천야록은 살짝 신빙성이 떨어지는 자료라, 100% 팩트로 신뢰하기 어렵고..
다른 사료에는 칼들고 협박한 소리가 안나와요.

*****************************************************************************
매천야록

2.1.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

동학농민운동을 '도둑 집단'으로 표현하는 등 민중 봉기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이 점에서 그가 봉건 시대의 사고에서 탈피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동학 운동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사정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나,
 방법에서 동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본 것.

그런데 이건 일반적 민란에 대한 보편적 사대부의 반응이다.
사대부인 그가 공감한 것은 민란의 배경이지, 동학운동의 지향점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참여한 독립협회에 대해서 대단히 호의적으로 기술해놓았는데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기존 실록이나 사서, 외국 자료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구한말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이 책은 야사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개인의 기록이며
사건들의 중심에 있어서 교차검증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를 역사서로 보면 안된다.

매천야록이 사료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시 흘러다니던 야담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과

사대부가 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뤘다는 거 때문이지,
그 자체로 신빙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의친왕의 모친의 사망시기가 정사에 기록된 것과는 다르다거나,
이완용이 자기 며느리의 무릎을 베고 있는 것을
일본 유학 갔다온 장남이 보고 충격을 받아 자결했다는 이야기
(이완용 문서를 보면 알지만, 시간대부터 안 맞다.)나,

아무개는 고자라서 쓸모가 없었기에 아무개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 같은 이야기,

김병국과 민규호가 거시기한 관계였는데
김병국이 판서가 되자 민규호가 "대감이 판서이니 이제 나는 정경부인"이라고
농을 걸었다는 따위의 신뢰성 제로의 기록도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당시 민중이나 사대부의 생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선 도움이 되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읽는 사람의 철저한 사료 비판이 필요한 책이라

이 책에 기록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떤 사건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는 철저한 사료검증의 노력이 크지 않고,
저자의 취향에 따라 혹은 단순히 주위에서 도는 야담을 수록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때문에 저자의 취향이 아닌 인물이나
당시 민중들에게 악평을 받던 인물들에 대한 언급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학계에서는 그냥 평판이 어떻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지만...
문제는, 대중의 입장에선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내용이
바로 이런 신뢰성이 불분명한 자극적인 기록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매천야록에는 이렇게 되어 있으니
누구는 나쁘고, 어떤 사건은 어떻다라고 말하면 바보될 수 있다.

특히 인물 관련해서
특정 인물에 대한 황현의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는 듯한 의문점이 여럿 보인다.

실제로 월간조선에서
명성황후 민씨를 깔 때 매천야록의 기록을 댔다가 역관광당한 적이 있다.

http://namu.mirror.wiki/w/%EB%A7%A4%EC%B2%9C%EC%95%BC%EB%A1%9D
*****************************************************************************

그리고 붕당 타령은 안한건 안한데.. 왜 나왔는지 잘모르겠네요.

전 종종 밝혔지만, 집안 자체가 대대로 '남인' 집안입니다.
그래서 구한말에 나라 망한거에 딱히 기여한것도 없고, 오히려 피해를 보면 본 집안이에요.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에도 조상들이 의병활동했구요.

단지, 이완용이 조선의 매국노지만, 고종의 충신일 수도 있다는 썰이 나와서하는 말입니다.

전 딱히 매국노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니고,
그냥 나라를 망쳐먹은 무능한 고종이 싫은 사람이구요.
 
 
Total 5,27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17 [한국사] 한민족관 (4) 관심병자 08-01 1516
416 [한국사] 하플로그룹 이동경로와 당시의 역사로 한국의 뿌리… (3) 알밥청소 08-01 3246
415 [한국사] 중국이 남중국해 영토분쟁인게 다행이라 생각되네요 Marauder 08-01 2214
414 [한국사] 발해 (2) 두부국 08-01 2992
413 [한국사] 도움이 절실해요 (13) 슬퍼하지마 07-31 1954
412 [한국사] 한국사에 대해 책을 집필하려는 학생입니다!! (16) 슬퍼하지마 07-31 1857
411 [한국사] 고려 라는 국호에 대해서 (5) 하얀돌 07-31 2159
410 [한국사] 가야의 미스터리 (1) 엄빠주의 07-29 2007
409 [한국사] 훈민정음 해례본 (1) 엄빠주의 07-28 2759
408 [한국사] 조몬인이 가야를 세웠다고? (86) ZeroSun 07-28 2691
407 [한국사] "日문자 '가타카나' 신라서 유래 가능성" (65) 엄빠주의 07-28 5332
406 [한국사] 제4의 제국 가야 (32) 호랭이해 07-28 2603
405 [한국사] 해태도 호랑이도 용도 봉황도 모두 동이 태생인가요? (8) 아스카라스 07-28 2101
404 [한국사] 특집·국어에 나타난 일본어의 언어적 간섭】 일본어… (13) 권커니 07-27 3358
403 [한국사] 조선은 왜 도로정비를 하지않았나요? (40) 아스카라스 07-26 3882
402 [한국사] 신라/백제 유물, 복식 및 갑옷. jpg (5) 흑요석 07-26 7672
401 [한국사]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좋게 평가가 되나요???? (9) 흑요석 07-25 2668
400 [한국사]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 -1부/2부-우… (1) Thomaso 07-25 1901
399 [한국사] 고대사 잡생각들 (1) 관심병자 07-24 1640
398 [한국사] 조선시대 무인들 17~18세기 한양은 군사도시 (3) shrekandy 07-23 4298
397 [한국사] 17-18세기 조선의 37만 대군 (113) shrekandy 07-21 7690
396 [한국사] 삼국유사, 삼국사기 원본이 일본에 있는건가요? (4) 아스카라스 07-21 3395
395 [한국사] 재밌는 조선-명나라 조공 기록 (명나라 기록!!) (4) shrekandy 07-20 4415
394 [한국사] 장옥정 사랑에 살다 보고 있는데요.. (12) 에치고의용 07-19 2010
393 [한국사] 백범 김구선생님께서 꿈꾸신 나라 (17) 두부국 07-18 3223
392 [한국사] 대만 드라마 고려와 송나라 (34) 고독한늑대 07-17 8430
391 [한국사] 유물로 보는 한국사.. (4) 고독한늑대 07-17 2159
 <  181  182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