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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01 17:49
[한국사] 미국의 하버드, 예일, 펜실베니아, 프린스톤, 스텐포드 영국의 캠브리지 대, 카나다 토론토 대, 호주 멜본대, 프랑스, 독일, 스웨덴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5,090  

미국의 하버드, 예일, 펜실베니아, 프린스톤, 스텐포드 등의 미국 주요대학을 중심으로 영국의 캠브리지 대, 카나다 토론토 대, 호주 멜본대, 프랑스, 독일, 스웨덴, 놀웨이, 체코, 댄마크, 유우럽, 기타 국가들에서 아시아 역사학, 국제관계, 동서 비교문명 분야에서 교재 및 연구도서로 채택돼 활용되고 있는 이홍범박사의 저서 ‘아시아의 이상주의(Asian Millenarianism)’ 책이다.
 
asian_millenarianism_1.jpg

 
 
 

식민지의 유산 1/2
Colonial Legacy
이홍범 선생님의 아시아 이상주의
Asian Millenarianism 중에서
 
 
(이홍범, 아시아 이상주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역사 교재)
Asian Millenarianism, An interdisciplinary Study of the Taiping and Tonghak Rebellions in a global context, Hong Beom RHEE, cambria press, youngstown, new york, 2007. p.12-31
 
"Previous Historiography and Colonial Legacy
Professor Lee V. Cassanelli points out:

Before 1960, most historical writing on Somalia was the by-product of research conducted by colonial officials or by scholars in the employ of colonial governments. These researchers were concerned, explicitly or implicitly, with the kinds of questions that colonial authorities everywhere were interested in, namely, how more effectively to administer their colonial subjects, or how more smoothly to implement those economic and social reforms deemed essential to fulfilling their colonial mandate. ...The predominance of colonial concerns in the early writing of Somali history is a characteristic common to the historiography of all colonial nations.

과거의 역사기술 그리고 식민지의 유산
카사넬리 교수가 지적한다.

1960년 이전 소말리아(Somalia)에 대한 대부분의 글들은 식민지 관리에 의해 또는 식민지 정부가 고용한 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연구의 부산물이었다. 이들 연구자들은 식민지 지배자들이 흥미를 가지는 문제들인, 식민지 지배를 성취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근본적인 문제인 경제개혁과 사회개혁을 어떻게 더 부드럽게 시행하느냐, 또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그들의 식민지 문제들을 관리하는가 하는 종류의 질문에 대하여 내재적으로 외재적으로 관심이 있었다. 소말리아 역사의 초기 기술(記述)에서 식민지 관심사의 우세는 모든 식민지 나라의 역사기술에 특징적인 공통점이다.

It is true. Most historical writings on Korea were also “the by-product of research conducted by colonial officials or by scholars in the employ of colonial governments,” as Lee V. Cassanelli points out. Colonial governments destroyed not only traditional social and political institutions and imposed their own, but also destroyed its history and spirit. It is important to overcome a colonial legacy in studying millenarianism related to ancient history. ​
 
그것은 사실이다. 카사넬리 교수가 지적한 것과 같이, 한국에 대한 대부분의 역사기술들은 식민지 관리나 식민지 정부가 고용한 학자들에 의해서 수행된 부산물이었다. 식민지 정부는 전통적인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를 파괴했고, 그리고 그들의 것을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제도의 역사와 정신을 파괴했다. 고대 역사에 관계되는 이상주의(理想主義)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식민지의 유산(遺産)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
The nationalistic Japanese did not want Korean history to be known as older than the Chinese and Japanese histories. ln this way both the Japanese and Chinese continued to distort real history. In 2003, under a Chinese government policy, Dongbei Gongcheng (North-East Project), and with a huge budget (probably more than $600 billion), the Chinese started to destroy ancient Korean historical and cultural relics and to distort the history of the Koguryo Dynasty. The purpose was to make false history, as if Koguryo were founded and ruled over not by the Koreans but by the Chinese. Even today, the Chinese government does not allow people to take a picture of the Koguryo relics without a permit.

민족주의적인 왜인(倭人)들은 한국 역사가 지나와 왜국(倭國)역사 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왜국(倭國)과 지나(支那) 모두 진짜 역사를 왜곡하기를 계속했다. 2003년 지나(支那) 정부의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하여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정책하에 지나인(支那人)들은 고대 한국의 역사 문화 유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구려 왕조의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지나인(支那人)들의 목적은 마치 고구려는 한국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나인들에 의해서 건국되었고 지배되었다는 거짓 역사를 만든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지나 정부는 허가 없이 고구려 유적들의 사진 촬영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Shirayanagi Shugo, one of the most prominent Japanese scholars of ancient Japanese history, argues that Chinese culture, including Confucianism and Taoism, was clearly Korean culture. The Chinese could not completely overcome Korean culture until the end of the Han Dynasty (AD. 220). It is true that the ancient Choson Korea ruled over China’s midland. In reality, Sima Qian’s Shiji was a difficult distortion of history written to hide the fact that Koreans ruled over the silk road and the Chinese midlands. Therefore, the name of Han, 漢 (Chinese) was borrowed by the Chinese from Han, 韓 (Korean).
 
 
고대(古代) 왜국(倭國) 역사의 가장 저명한 학자 중 한사람인 쉬라야나기 슈고 씨는 유교와 도교를 포함한 지나(支那) 문화는 명백하게 한국 문화였다고 논한다. 지나인(支那人)들은 한왕조(漢王朝) 끝 무렵(AD. 220)까지 한국 문화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다.
 
고대 조선 한국이 지나(支那)의 내륙부(內陸部)를 넘어서서 지배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한국인들이 실크로드(비단길)과 지나(支那)의 내륙부(內陸部)를 넘어서 지배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쓰여진 힘겨운 역사의 왜곡(歪曲)이었다. 그러므로 漢(支那語)의 이름은 韓(韓國語)로부터 지나인(支那人)들이 빌렸다.
The prominent Japanese scholar Kashima Noboru argues in his book, Wai to Shin’goku (倭と辰國), that ancient Koreans were connected to the Xia, Yin, Zhou dynasties in China and to the Japanese royal court. Some prominent Japanese intellectuals and scholars like Fukuzawa Yukichi, who is the most famous nationalisic intellectual of Meiji Japan, recognized that the Japanese learned a lot from Korea: The arts of sericulture and shipbuilding, implements for weaving and farming, writings on medicine, Confucianism, and other cultural items were either imported from Korea or developed in Japan."

저명한 왜국의 학자인 카쉬마 노보루(鹿島昇) 씨는 그의 책 (倭と辰國, 왜(倭)와 진국(辰国))에서 고대 한국인들은 지나(支那)의 하(夏), 은(殷), 주(周)와 왜국(倭國)의 황실 조정과 연결되어져 있다고 논한다. 몇몇 저명한 왜국(倭國)의 지성인들과 명치(明治)의 가장 유명한 애국적인 지성인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같은 학자들도 왜국(倭國)이 한국으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인정했다: 양잠업과 조선업, 직조(織造)와 농업 도구, 의학서, 유교 그리고 다른 문화 항목들이 한국으로부터 수입되었거나 또는 왜국에서 발전되었다.

The majority of Korean experts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the United States and other countries have not overcome the trappings of colonial legacy. There are two main reasons why we have not overcome this legacy yet. One is because many Korean historians studied under Professor Yi Pyong-do, who worked with Imanishi Ryu, a former professor at Tokyo Imperial University, for Japan on the Korea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Chosonsa P’yonch'an Wiwonhoe). This committee was established in 1910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to oversee the production of Korean history.

한국에 있는 한국 전문가의 대부분 뿐만 아니라 미국과 다른 나라에 있는 한국 전문가들이 식민지 유산의 덫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식민지 유산을 왜 극복 못하는 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많은 한국 역사학자들이 동경(東京) 제국대학의 전 교수인 이마니쉬 류와 같이 왜국(倭國)을 위하여 한국 역사 편수회 조선사 편찬 위원회에서 같이 일한 이병도 교수의 지도하에 공부했기 때문이다. 이 위원회는 1910년에 왜국(倭國)의 식민지 정부에 의해 한국 역사의 생산(生産)을 관장(管掌)하기 위하여 설립(設立)되어졌다.

Japanese activities to destroy Korean history are beyond most scholars’ imaginations. Even afier Korea was liberated from Japan in 1945, Yi Pyong-do and the colonial legacy remained the most powerful influence on Korean historians. Many Korean scholars who havc been influenced by him have been working as history professors at universities in Korea and in many other countries. His influence on Korean historians and Korean experts is still considerable. For instance, A New History of Korea, written by Professor Ki-baik Lee. published by Harvard University, argues that the Tonghak founder's doctrine included elements from Catholicism and also embraced features of popular shamanistic beliefs.
 
 
한국의 역사를 파괴하기 위한 왜인(倭人)들의 행위는 대부분 학자들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1945년 한국은 왜국(倭國)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이병도와 식민지 유산은 한국 역사가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으로 남아있다. 이병도에 영향을 받은 많은 한국 학자들이 한국의 대학들에서 그리고 많은 다른 나라에서 역사교수로서 일해왔다.
 
한국과 한국 전문가들에게 끼친 이병도의 영향은 아직도 대단하다. 예를 들어 하바드 대학에서 출판된 이기백 교수에 의해 쓰여진 신한국 역사는 동학(東學)창시자의 교리(敎理)는 가톨릭(천주교)으로부터의 요소를 포함했고 그리고 통속적인 샤마니즘(巫敎)의 신앙의 특징을 포괄했다고 논한다.
The other reason why ancient Korean history, which has a relationship with East Asian millenarianism, has not been studied in scholarly depth is because it is a very difficult and thorny task to find and read ancient Korean, Chinese, and Japanese historical sources. Furthermore, since the Korean government adopted the policy to use mainly the Korean language, or Han’gul, there are not many scholars who have the proficiency to read ancient Korean, Chinese, and Japanese documents. Therefore, few scholarly publications in English introduce ancient Korean sources. A colonial legacy on Asian studies still rules over scholarly circles. As suggested by the African work of Professor Lee V. Cassanelli, some misconceptions on Asian history, which have been caused by a colonial legacy, have influenced not only American scholarship but also world scholarship.
 
 
왜 동아시아 이상주의(理想主義)와 관계를 가지는 고대 한국 역사가 학문적인 깊이로 연구되지 않아왔던 또 다른 이유는 고대 한국, 지나(支那), 왜국(倭國)의 역사 자료들을 발견하고 읽는 과업이 아주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한국정부가 주로 한국어, 즉 한글만 사용하기로 한 정책이 채택되었기 때문에, 고대 한국, 지나(支那), 왜국(倭國)의 자료들을 읽기 위한 능숙함을 가진 그렇게 많은 학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영어로 쓰여진 학문적인 출판이 고대 한국 자료들을 거의 소개하지 못했다.
 
아시아 연구에 대하여 식민지의 유산이 아직도 학문계를 지배하고 있다. 카사넬리 교수의 아프리카 연구에 의해 제안된 것 같이, 식민지의 유산에 의해 야기되어진 몇 가지 잘못된 개념들은 미국 학계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American scholar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creating a new friendship with Japan after World War II, at the Hakone Conference in Japan in 1964, held to change Japan’s image from a warlike nation to that of a democracy. The Amencan scholars' studies mainly focused on Japanese modernization, the Meiji Restoration, Taisho liberalist movements, Samurai culture, and Japaqnese expansion abroad. Edwin Reischauer, Albert Craig, and Akira Iriye, Havard University; Hilary Conroy, Cameron Hurst III, and Frederick Dickins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John Hall and James Crowley, Yale University; Marius Jansen, Princeton University; and Peter Duus, Stanford University contributed to these Japanese Studies.
 
 
왜국(倭國)의 인상을 호전적(好戰的)임에서 민주주의로 바꾸기 위하여 개최된 1964년 왜국(倭國) 하코네 회의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왜국(倭國)과 새로운 친선관계를 창조하는 데 미국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학자들의 연구는 주로 왜국(倭國)의 현대화, 메이지 유신, 타이쇼 자유주의 운동, 사무라이 문화, 그리고 왜국(倭國)의 해외 팽창같은 데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바드 대학의 에드윈 라이샤우워, 알버트 크레이그, 그리고 펜실바니아 대학의 아키라 이리예, 힐러리 콘로이, 카메룬 허스트 III, 그리고 프레드릭 디킨슨, 예일 대학의 존 홀, 제임스 크롤리, 프린스턴 대학의 마리우스 잰슨, 스탠포드 대학의 피터 더어스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왜국(倭國) 연구들에 공헌을 했다.

In Chinese studies, American scholars mainly concentrated on the study of Chinese modernization, nationalism, revolutions, lncluding the Taiping millenarian rebellion and the Communist revolution, the prehistory of China, and why the Chinese fell behind on the way to modernity. However, half a century after World War II, we have not overcome the colonial legacy. Professor John King Fairbank of Harvard University, in his book, China: A New History, contends: “The path of historical wisdom is to find out what issues are in dispute. to identify major current questions, rather than to try to resolve them here and now. Our libraries are littered with the pronouncements of writers who knew all about China but could not see how much they did not know.

지나(支那)의 연구에서 미국학자들은 지나 현대화, 애국주의, 태평천국의 난(亂)을 포함한 혁명들,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 지나(支那)의 역사 이전, 그리고 왜 지나(支那)는 현대화의 여정에서 뒤떨어졌는가 하는 연구에 주로 집중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반세기 후에도 우리는 식민지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해왔다.
 
하바드 대학의 페어뱅크 교수는 그의 책 차이나 신역사(新歷史)에서 주장한다. 역사에 지혜의 행로는 문제와 질문들을 지금 여기서 해결하기 보다는 어떤 문제가 논란인가를 발견해 내고, 주류(主流) 질문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서관은 지나(支那)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작가들의 발표들이 쓰레기더미처럼 널려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많이 모르고 있는 지를 볼 수 없었다.

​The expansion of our knowledge has expanded the circumference of our ignorance. ”Fairbank argues: “If we wish to understand the social and human factors in China’s falling behind the West in the modern period, we must look more closely at her Korean history, classical thought, and many other features of her high civilization to see how they all may have played a part.”' However, there are few scholars who have paid attention to ancient Korean history, classical thought, and civilization, which were actually an important part of Chinese prehistory. Ancient Korean history was based on the millenarian doctrine. Without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and history, we cannot understand true social, religious, political, and human factors not only in China but also in Japan and Asia, including the Taiping and the Tonghak millenarian movements.
 
 
 
우리의 지식의 팽창은 우리의 무지(無知)의 변경이 넓어지게 했다. 페어뱅크 교수는 말한다. 만약 현대에 지나(支那)가 서방에 뒤떨어진 사회적 인적 요인들을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지나(支那)의 한국 역사와 고전적인 사상 그리고 고도의 문명을 우리는 더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어떻게 그것들 모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를 알기 위하여. 그러나 지나(支那)의 이전 역사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한부분인 고대 한국역사, 고전적 사상, 그리고 문명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고대 한국역사는 이상주의(理想主義) 교리(敎理)의 기초 위에서 근거했다. 고대 한국의 이상주의(理想主義)와 역사없이, 우리는 지나(支那)뿐만 아니라 태평(太平)과 동학(東學) 이상주의(理想主義) 운동을 포함해서 왜국(倭國)과 아시아에서의 진실한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인간적 요소들을 이해할 수 없다.
After the Second World War, the United States helped the colonized nations recover their territories. However, American scholarship of Asia has not overcome the influence of a colonial legacy, even though more than half a century has passed since the War. One of the most important tasks of scholars is to find and write on the truth of human affairs from a colonial legacy or distorted historical accounts. Three or four days before General Yamashita Yasufumi, a Japanese war criminal, was executed by the Allied Forces, he mentioned that the distortion of history made Japanese military clique go in the wrong direction.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식민지 당한 국가들의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학문은 비록 전후 반세기가 흘러갔지만 식민지 유산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학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가 식민지의 유산이나 왜곡된 역사 기술(記述)로부터 인간사의 진실들을 발견하고 기술(記述)해야만 하는 것이다. 왜국(倭國)의 전범(戰犯)인 야마쉬타 야수푸미는 처형되기 3-4일전에 역사 왜곡이 왜국(倭國) 군부 도당(徒黨)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After the victory of the the Allied Forces, scholars began digging to find true history in the world including Asia, Africa, and other colonized countries from a colonial legacy. Prominent Japanese scholar Kashima Noboru states: “Our country does not have historians, although there are history teachers. For the people who are unable to read historical account are not historians.” Koreans have more serious problems in reading historical accounts than Japanese. Our scholarship is still under a colonial legacy. Noboru argues that we have to discard the people who protect distorted historical accounts, in order to find the missing Asian history.

연합군의 승리 뒤에 학자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다른 식민지 지배를 받던 나라들을 포함하여 식민지의 유산으로부터 세계의 진실된 역사를 파기 시작했다. 저명한 왜국(倭國)의 학자인 카쉬마 노보루 씨는 말한다. 우리나라는 비록 역사 교사들은 있지만, 역사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적 서술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역사가가 아니다.
 
한국인들도 왜국(倭國)보다 역사 서술을 읽는데에 더 심각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학계는 아직도 식민지의 유산하에 있다. 노보루는 잃어버린 아시아 역사를 찾기 위하여 왜곡된 역사 서술을 보호하는 사람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As Lee V. Cassanelli points out, knowing what issues are in dispute and finding the truth of history are very important tasks in overcoming a colonial legacy. In addition to Lee V. Cassanelli, scholars at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and Harvard University, such as Hilary Conroy, cameron Hurst III, Frederick Dickinson, Edward Wagner, and others encourage overcoming a colonial legacy to find the truth of history. They provide a new direction for Asian studies as well as African and millenarian studies in a global context. One of the benefits of comparative history is that it enables scholars to view their own areas of specialization from the outside, and to discover some of the blind spots that their particular traditions of scholarship have produced. The next step in advancing the study of Asian, African, and world history will begin with the overcoming of colonial legacies and the reexamination of present scholarship.

카사넬리 교수가 지적하듯이 어떤 문제가 논의중인 것을 앎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발견함이 식민지의 유산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카사넬리 교수와 더불어 펜실바니아와 하바드 대학교의 프레데릭 디킨슨, 에드워드 와그너, 그리고 다른 분들이 역사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하여 식민지의 유산을 극복하는 것을 독려한다. 그들은 세계적 맥락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연구뿐만 아니라 이상주의(理想主義) 연구를 위하여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공한다.
 
비교(比較) 역사의 이익중의 하나가 학자들이 외부로부터 그들 자신의 전문 분야를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학문 전통이 만들어 놓은 몇몇 어두운 곳을 발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세계 역사의 연구를 전진하게 하는 다음 단계는 식민지의 역사를 극복하는 것과 현재 학계의 재검토를 시작하는 것이다.
 
 
 
Colonial Legacy, Present Scholarship of Asian Studies, and Cultural Differences

식민지의 역사, 현재 아시아 연구의 학술(學術), 그리고 문화(文化) 차이

​Here is an example on how a strong colonial legacy influences our scholarship even today. Professor Ki-baik Lee argues in his book, A New History of Korea: The Case of the Shamhan, as seen in the account of the Eastern Barbarians” (Tung-i chuan) in the Chinese source San-kuo chih, was perhaps a model of normal development. However, Professor Lee’s interpretation of Tung'i (東夷) as the Eastern barbarians is questionable, although his book has provided much valuable insight about Korea. His school of thought is no more than an outcome of a colonial legacy, copied from what the Japanese colonial scholars wrote during the colonial period. It is a common mistake that most Korean and Asian experts in America, and in other countries as well as Korea, have made.

 
여기 오늘날에도 얼마나 강하게 식민지의 유물이 우리 학문에 영항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예가 있다. 이기백 교수는 자신의 책 한국의 신역사(新歷史)에서 논한다. 지나(支那)의 자료(資料)인 삼국지(三國志)에 있는 동쪽 야만인을 동이(東夷)의 기술(技術)로 본 것처럼 삼한(三韓)의 경우는 아마도 정상적인 발전의 예(例)이다.
 
그렇지만 이기백의 동이(東夷)를 동쪽 야만인으로의 해석은 의문스럽다, 비록 그의 책이 한국에 대한 많은 가치있는 통찰력을 주지만! 그의 사상(思想) 학교는 단지 식민지 기간 동안 왜국(倭國) 식민지 학자들이 기술(記述)했던 것을 복사한 식민지의 유산의 성과일 뿐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 그리고 한국에 사는 대부분 한국 사람들과 아시아 전문가들이 범하는 공통적인 실수이다.

John King Fairbank interpreted 夷 ( yi or i ) as “barbarians on the East” in his prehistory of China. The interpretation can be challenged. The term “yi” or “i,” in prehistory period was used as “civilized people.” 東夷傳 (“Tang-i zhuan,” Biography of Tung-i), 三國誌 (Sanguozhi, Biography of the Three Kingdoms: Wei, Shu and Wu in China between AD.222-263) that Ki-baek Lee quoted, never said that Tung-i (Koreans) were barbarians. Rather it clearly praises the fact that Tung-i do not take gold, silver, and silk fabrics as treasures. Tung-i’s nature is honest, strong and brave. ... The Chinese learned morality and virtue from Tung-i in four directions when the Chinese lost them.

존 킹 페어뱅크 씨는 자신의 지나(支那)의 전(前)역사에서 동쪽의 야만인으로 이(夷, yi or i )를 해석했다. 그 해석은 도전 받을 수 있다. 전(前) 역사 시대에는 위(yi)와 이(i)는 문명ghk(文明化)된 사람으로서 쓰여졌다. 이기백이 인용했던 동이전(東夷傳, 동이(東夷)의 일대기),과 삼국지(三國誌, 위(魏)오(吳)촉(蜀) 삼국(三國)의 일대기, AD. 222-263 사이) 는 동이(東夷, (한국 사람들)을 야만인이라 말하지 않았다.
 
동이(東夷)는 보물으로서 금(金) 은(銀) 비단(緋緞)직물(織物)을 취(取)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칭송한다. 동이(東夷)의 성질(性質)은 정직(正直)하고 강(强)하고 용감하다. 지나인(支那人)들이 도덕과 선(善)을 잃어버렸을 때 네 방향으로 동이(東夷)로부터 그것을 배웠다.
This kind of story also has been written in other Chinese books. Houhan shu (後漢書) and Liji (禮記, Records of Etiquette) state that the East is "i", and "i" is foundation. Tung-i people are generous and like all living beings. The foundation comes from the earth. Tung-i people's nature is good. They practice (the Heavenly) Way. Therefore the people of virtue will not die (東方曰夷夷者抵也言仁而好生萬物 抵地而出故天性柔順易爾御至有君子不死之國). Shuowen (說文), written by Xu shen in the Chinese Han Dynasty states that Tung-i are the people of virtue who follow the great Way. Tung-i’s customs are generous, and they live long, Tung-i follow the Way, and they are great (東夷從大大人也).
 
 
 
이와 같은 이야기는 또한 다른 지나(支那)의 책에 쓰여있다. 후한서(後漢書)와 예기(禮記)는 동(東)은 이(夷) 그리고 이(夷)는 기초다 라고 기술한다. 동이(東夷) 사람들은 너그럽고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좋아한다. 그 기반은 땅으로부터 온다.
 
동이(東夷) 사람들의 성질(性質)은 선(善)하다. 그들은 천도(天道)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선(善)한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東方曰夷夷者抵也言仁而好生萬物 抵地而出故天性柔順易爾御至有君子不死之國) 한왕조때 허신(許愼)에 의해 쓰여진 설문(說文)은 동이(東夷)는 대도(大道)를 따르는 선(善)한 사람이다 라고 기술(記述)한다. 동이(東夷)의 관습(慣習)은 너그럽고, 그들은 장수(長壽)하고, 동이(東夷)는 도(道)를 따르고 그리고 그들은 위대했다.(東夷從大大人也)

According to 詩傳(“shizhuan”), “i" of Tung-i means "comfortable" and “honor”. Once upon a time, Heavenly God bestowed a bow and arrow to Ye, who is the main God of Tung-i. God requested Ye to help all countries under heaven. Ye removed all suffering from the earth. Ye helped people achieve the millenarian dream. 山海經 (Shanhai jing, Book of Mountain and Sea), wrltten in the Yin Dynasty in China, records that the state of the people of virtue is located in the north (君子國在其北).

시전(詩傳)에 따르면 동이(東夷)의 이(夷)는 편안한, 명예(名譽)를 뜻한다. 옛날에 천신(天神)은 동이(東夷)의 주신(主神)인 예(羿)에게 활과 화살을 하사했다. 신(神)은 예(羿)에게 하늘 아래 모든 나라를 도우라고 요구했다. 예는 땅으로부터 모든 괴로움을 제거했다.
 
예(羿)는 사람들이 이상주의(理想主義)에 꿈을 이루게 도왔다. 지나(支那)의 은왕조(殷王朝) 때 쓰여진 산해경(山海經)에는 선(善)한 사람들의 나라가 북쪽에 위치해 있다 라고 기록(記錄)한다.(君子國在其北)
 
Confucius and many Chinese admired Tung-i as the highest of civilized people and wanted to live in Tung-i states where there was virtue, justice, and peace, while the Chinese suffered from injustice, corruption, and internal fighting and wars at that time. According to ancient Chinese records, the Chinese viewed and admired Tung-i as bright, brave, and the most powerful and civilized people. These Chinese records testify that Ki-baik Lee’s and John Fairbank’s findings are questionable. Although we recognize now that the term “i” is used for “barbarian,” originally the meaning was completely different. In ancient times, the term was used for “great (archery) power for filial duty and peace.” The main reason why Tung-i (Koreans) invented archery was to protect the bodies of dead ancestors and respected teachers from animals and beasts for filial duty and loyalty rather than for war. The primary purpose was for defense and peace. The doctrine of filial duty, loyalty, and respect of teachers originated in ancient Korean millenarianism.

공자(孔子)와 많은 지나인(支那人)들은 동이(東夷)를 최상(最上)의 문명(文明化)된 사람으로 동경했고, 동이(東夷) 나라에서 살기를 원했다. 동이(東夷) 나라에서는 선(善), 정의(正義), 평화(平和)가 있었으나, 지나(支那)에는 그 당시에 부정의(不正義), 부패, 내부의 싸움, 전쟁에 시달렸다.
 
 
고대 지나(支那)의 기록에 따르면, 지나인(支那人)들은 동이(東夷)를 용감하고 가장 강력(强力)하고 문명화된 사람으로 보았고 동경했다. 이들 지나(支那)의 기록들은 이기백과 존 페어뱅크의 발견물(發見物)들이 의문스럽다는 것을 증언한다. 비록 우리들은 이(夷)란 단어는 원래와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 야만인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인식한다.
 
 
고대 시대에는 이 용어는 효(孝)와 평화(平和)를 위한 위대한 (궁술, 弓術)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동이(東夷)(한국(韓國) 사람들)가 왜 궁술(弓術)을 발명하였는가 하는 중요한 이유는 전쟁을 위하여서라기보다는 효(孝)와 충(忠)을 위하여 죽은 조상들과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시신을 동물들이나 야수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첫째의 목적이 방어와 평화를 위해서였다. 선생님에 대한 효(孝), 충(忠), 경(敬) 교리(敎理)는 고대 한국 이상주의(理想主義)에서 기원했다.

The ancient Korean pictographic character or Chinese character “Tung,” or 東 means the East. “I,” or 夷 is combined by two characters 大 and 弓. 大 means “great” or “big” and 弓 means “archery.” or “Heaven or Heavenly Mind.” The term “弓” (Kung) in ancient Korean pictographic characters or in Chinese characters with the meaning of “Heaven or Heavenly Mind” has long been used in Korean history. The term “弓” was also used as “Heaven or Heavenly Mind" in Korean Ch’amwisol and Tonghak millenarian movement. We have to be very careful in reading Chinese characters for the study of human affairs, particularly in Asian millenarian study. Another example which causes difficulty in translation follows: “Dong (Tung) (東) in the Chinese pinyin system means the East. “Xi” (西) means the West.

고대(古代) 한국의 상형문자(象形文字) 또는 지나(支那) 문자(文字) 동(東)은 동쪽믈 의미한다. 이(夷)는 대(大)와 궁(弓) 두 글자가 조합된 것이다. 대(大)는 위대(偉大)한 또는 큰을 의미하고 그리고 궁(弓)은 궁술(弓術) 또는 하늘 또는 천심(天心)을 의미한다. 하늘 또는 천심(天心)의 의미를 가지는 고대 한국 상형문자 또는 지나 문자로 궁(弓)은 한국의 역사(歷史)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왔다.
 
궁(弓)은 하늘 또는 천심(天心)으로 한국 참위설(讖緯說)과 동학(東學) 이상주의(理想主義) 운동에서 또한 쓰였다. 특히 아시아 이상주의(理想主義) 연구에서, 우리는 인간사의 연구를 위하여 지나 문자를 읽는 데 아주 조심해야 한다. 번역시 어려움을 일으키는 다른 예(例)가 다음과 같다. 동(東)은 지나(支那)의 핀인(병음, 拼音) 체계(體系)에서는 동쪽을 뜻한다. 서(西)는 서쪽을 뜻한다.​ 출처: 저자의 승인을 받고 정종호선생님이 해석하여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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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가오리 16-07-01 21:28
   
이런 책은 거의 자비출판.
각 대학 아시아 학과에 책을 보내주면, 워낙 동아시아에 관한 영문 자료가 부족하게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이 참고문헌으로 끼워넣는 것이지, 이 책을 교과서로 쓴다는 것이 아님.  참고문헌에 수백권 나열되어 있는데, 이 책이 들어갔다고 하버드, 예일 등에서 사용된다고 말하는 것은...그야말로 자화자찬...낯 뜨거움.
밥밥c 16-07-01 22:09
   
아시아 이상주의( 저자 이홍범)는 하버드 연구도서로 선정된 책입니다.

 그리고, 이책은 서평에서도 나와있는데 펜실베니아와 하버드공동연구로 만든 책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1886&sca=&sfl=wr_name%2C1&stx=%EB%B0%A5%EB%B0%A5c&sop=and

  그는 이상주의 연구에 승강장을 만들어준 펜실베니아, 하바드, 동경대학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그 결과는 아주 우수하다. 서양과 중동, 러시아, 아프리카 역사 및 심지어 적합한 자연과학까지 조합하여 중국, 한국, 일본의 원천자료와 개념들을 활용하여 동, 서양 이상주의의 완결을 보았다.
 
        -  힐러리 콘로이 ( 펜실베니아 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 )  , 아시아 이상주의 서문



 게다가 저자는 현재 백악관 동아시아 역사자문(명예장관)입니다.

 물론 그를 추천한 대학은 하버드와 펜실베니아겠죠.
밥밥c 16-07-01 22:19
   
http://misahyeop.com/gnu/bbs/content.php?co_id=mainmembers

이 단체의 핵심멤버로서 , 앞으로 식민사관에 대해서 백악관과 아이비리그를 중심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스리랑 16-07-01 22:23
   
미친가오리씨는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교제를 선택할 때는 얼마나 심사가 까다로운줄을 모르는 분이군요.
밥밥c 16-07-01 22:33
   
앞으로 미국의 역사학회에 알리겠다고 하는 주요내용은,


이병도씨는 일본에 부역하기 전, 법원 서기로 일을 했기에 한문을 읽는데 능통했다. 뛰어난 문장을 자랑하는 학자들로 최남선과 이병도는 일본측으로부터 고대 한국의 역사를 파괴하고 왜곡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최남선은 그의 학자적 양심을 지키며 식민지 고국을 떠나 중국으로 갔으나 이병도는 그 압력에 굴복했다. 일제는 문명과 평화를 보급한다는 미명하에 한국과 아시아를 강점하고 그 세를 불려나갔다. 한국역사를 파괴하는 일본의 행위는 대다수 학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된 이후에도 이병도와 식민지 유산들은 살아남아 한국역사에 계속 덫이 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병도교수에게 배우거나 영향을 받은 수 많은 한국의 학자들은 이후 한국과 여러나라의 대학에서 역사교수로 활약을 해왔고 지금도 이병도-이기백으로 대표되는 식민사학이 한국사학자들과 전문가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한줄로 줄이면,


이병도는 일본측으로부터 고대 한국의 역사를 파괴하고 왜곡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미친가오리 16-07-02 06:59
   
참,,,답답하네. 아이비리그에서 교재 선택할 때 특별한 절차가 있는 줄 착각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냥 강사가 제멋대로 고르는 거임. 명지대학이나 서울대학이나 평택대학이나 하나 다르지 않음.
우리나라 대학에서 교수가 리딩 리스트 죽 나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 동아시아학 전공하는 애들이 얼마나 될 것 같음? 교재는 얼마나 될 것 같음. 특히 한국은 극히 빈약하여 교수들이 영문으로 된 한국자료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어, 자기가 책 내고 그거 보내주면 당연히 받아봄.
명예장관? 그게 뭔데? 역사 자문? 그게 뭔데...그거 증거로 내보라 하삼. 누굴 만나서 한두번 얘기했다고 역사 자문?
출판사도 생전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출판사...
     
스리랑 16-07-02 08:15
   
하버드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교수회의를 통해서 책을 채택하는데
이 분야에서 최고의 학술서적으로 평가할 때에 도서연구 목록에 넣습니다.

하버드 유니버셜 라이브러리를 치면 이상주의 분야에 책이 4권이 나오는데
여기에 9년동안 한권도 하버드대학에서 채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한국 사람이 쓴 책으로서 채택 된것은 처음입니다.

하버드대학이 포문이 되어 예일, 프린스턴, 펜실베니아, 스탠포드 그리고 캐나다의 맥길 대학, 이태리 국립대학등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미친가오리 16-07-02 08:38
   
참...기가 막혀...교수회의를 통해 책을 채택해요? 어디서 그런다요?
이런 경우는 있어요. 예를 들어서 수백명이 듣는 유기화학을 여러강좌로 나누어서 여러 강사가 가르칠 때, 그 강사(교수)들이 교재를 채택하기 위해 회의를 할 수 잇어요.  그런데 하버드 대학 교수회의에서 한국에 관한 책을 채택해요./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내 동생이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닙니다. 교수들이 교재 채택하는 것은 교수 제 마음대로고, 교수회의에서 이런 책 읽어라 내주는 책도 없습니다. 일부 LAC대학에선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 200권 이런 식으로 내주는 곳은 있지만, 하버드 대학 같은 곳에선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자비로 책 내서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보내면, 당연히 그 대학에선 그 책 받아서 비치하지요. 그게 책이 대단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가면 한국말 책도 엄청 많아요. 그런다고 그 저자들이 이런식으로 자랑하지 않아요.
저도 미국 대학에 다녔지만, 한국 사람들 자기 돈으로 책 내고, 수억을 들여 자기책 사들여 일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오르면 현지 교포 신문에 자랑질하는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전 이홍범 박사가 그런 분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명예장관이니 하는 이상한 타이틀을 내세우면 그 신뢰성이 무너집니다. 이 분이 로스엔젤레스에서 2년제 사립대학(건물에 일부 사무실 임대. 영어학원이군요)을 운영하고 있구만요...이런 것만 봐도 믿음이 안가요. 책 빼놓고는 그럴 듯한 논문도 없어요.
한국에서 나온 책을(은희경, 김진명, 이정명...)미국 대학 도서관에 왠만하면 다 잇어요.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도 잇어요.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내 책 미국도서관에서 채택"같은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홍범 박사가 한국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을 가상하지만, 과장되게 자신을 알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스리랑 16-07-02 10:11
   
미친가오리씨의 댓글을 보니 자신이 하바드대학의 교수였던 사람으로 착각을 일으키는군요.
자기생각만이 100% 옳다는 내용이군요. 내가 유학을 가봐서 잘안다?? 내가 볼때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다는 느낌입니다.

전, 펠실베니아 대학 교수였던 힐러리 콘로이씨가 아시아 이상주의 추천서를 쓰셨는데 힐러리 콘로이 명예교수는 한 때  “일본이 갑오경장을 통해 한국에 근대화의 방법까지 숟가락으로 떠먹여주었으나 한국은 받아먹지 못했다”며 한민족을 우매한 나라로 취급했을 정도로 친일파 학자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철저한 친일 학자가 "중국과 일본의 어머니 나라가 한국이며 동아시아 역사의 종통도 한국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 담긴 책 아시아 이상주의 추천사를 적었다는 사실 하나가 주는 상징성은 실로 막강하다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힐러리 콘로이 자신이 젊었을 때 했던 주장과 논문이 틀렸고,이홍범 박사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힐러리 콘로이 명예 교수의 추천서가 의미 하는 것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이홍범 박사님의 주장에 대해서 아이비리그에 있는 박사들이 충분한 검증을 하였다는 것을 학자의 양심을 걸고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 연구의 최고 대가의 추천서가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이상주의"라는 책이 아이비리그의 역사 교과서로 채택이 되고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해 지고, 오바마 대통령의 키친 캐비넷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버드대학 아시아 태평양 전문가였던 라이샤워 박사와 힐러리 콘로이 교수는 미국에서 아시아 태평양 문제의 전문학자로 쌍벽을 이룬 인물이다.

1953년 일본의 하와이 진출 역사(1868~1898)에 대한 논문
1960년 일본의 한국 지배 위한 노력 역사 (1868~1910)에 대한 논문
1978년 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과 일본의 균형에 대한 논문
1990년 은퇴 및 명예 교수 발령
1990년 진주만 폭격에 대한 논문
1991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논문

 

http://www.archives.upenn.edu/faids/upt/upt50/conroy_fh.html

http://www2.hsp.org/collections/manuscripts/c/conroy3018.htm
미친가오리 16-07-02 09:01
   
이홍범 박사의 이 책에 대한 서평: 책 제목과 내용이 합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군요.
https://digilib.phil.muni.cz/bitstream/handle/11222.digilib/125364/2_Religio_19-2011-1_15.pdf?sequence=1

In summary, Rhee’s opus can hardly be called serious scholarship and will completely disappoint anyone interested in the study of millenarianism. Neither formally nor content-related does it meet the demands of high-quality research.
LUKAS POKORNY
미친가오리 16-07-02 10:26
   
스리랑님...관둡시다..
그 전에 이홍범 박사가 UPENN 정치학, 역사학 박사라고 하는데...정말인가요? 혹시 교육대학원 박사 아닌가요? 아니면 사과드리고요. 석사는 유펜에서 정치학 석사라지만 박사는 그냥 박사라 되어 있고,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하는데 정식 학위과정인지, 아니면 아무나 다 들어가는 평생교육과정인지...명확하지 않군요.
수년전에 모 종교단체에 속한 한국인의 저서가 미국에서 느닷없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죠. 난 대번에 그 단체원들이 사재기한 것을 알고 있었죠. 미국인들이 그런 책을 살리 없거든요. 아니 거져 줘도 안봐요.
이홍범 박사도 종교방송에 등장하셨군요...
더 이상 이홍범 박사에 대해 글은 쓰지 않겠지만, 한마디만 하지요.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이 선전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줍니다. 미국대통령하고 사진 찍는 것 별것 아니에요. 교포들 중에서도 쯕은 사람 많아요. 명예장관이니, 대학교수협회에서 책을 추천한다드니 하는 황당한 소리를 안하죠.
BYE...알아서 선전들 하세요.
     
Windrider 16-07-02 11:24
   
밥밥c 16-07-02 12:26
   
LUKAS POKORNY 이분의 글 출처가 여기인가요?

 한국학 중앙연구원 (옛 정신문화연구원)

 왠지 모르게 이분인듯 한데요 ;;;;; ,    동명이인인가요???

http://book.aks.ac.kr/section/book/regular_rks_list.asp?gotoPage=3

 맞다면 이 사이트 , 단순 일뽕만 오는것도 아닌듯 한데요 ^^;
밥밥c 16-07-02 12:34
   
맞다면 잘아시겠지만 그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식민사학(좋게 말하면 보수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단체입니다.

지난 10일 <한겨레>는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옛 정신문화연구원)이 2015년 광복 70돌을 맞아 펴낼 예정인 <대한민국 발전사>의 연구 및 저술 책임자를 보수 성향 학자 일변도로 채우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대한민국 발전사>는 "초중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에 현대사 서술의 근거로 제공한다"는 방침 아래 제작되는 저작물이라고 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발전사>의 연구 분야와 연구 책임자는 이배용 한중연 원장이 직접 선정한다고 한다. 이 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 교실의 자문역을 맡았다. 보수 정치색이 짙은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친일(파)에 우호적이고 독재를 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한민국 발전사>의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게 채색되지 않을까. 이를 바탕으로 서술되는 초중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발전사>가 진보-보수 간 '역사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2559
밥밥c 16-07-02 12:45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24748&sca=&sfl=wr_name%2C0&stx=%EB%B0%A5%EB%B0%A5c&sop=and&page=3

 일반적으로 학위도 없으면서 상명대교수인것 강의하는 이문영같은 분들을  흔히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LUKAS POKORNY

 제가 볼때 , 왠지 모르게  이분 또한 펜실베니아와 별 관계도 없는 분 같은데요 ;;;
     
Windrider 16-07-02 19:40
   
초록불은 소설가죠.
밥밥c 16-07-02 21:35
   
http://www.academia.edu/19398161/2014._Millenarian_Retrospects_and_Prospects_The_Post-Mun_Unification_Movement_in_Austria._In_H%C3%B6dl_Hans_Gerald_and_Lukas_Pokorny_ed._Religion_in_Austria_Volume_2_Vienna_Praesens_127-179

 LUKAS POKORNY (University of Vienna )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 , 문선명의 통일교 연구가



 선문대와 상당히 관련히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맨아래 사진만 보면 바로 나오네요 ;;;;;

 생판 첨 듣는 통일교  ;;;;;;;

 이홍범박사 당연히 통일교 아니죠, 본래 종교가 아니라 역사학입니다.


  LUKAS POKORNY 이분의 머리속은 ,

    증산교  VS  통일교 

  당연히 분노할 수 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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