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능력을 가로막는게 과거제도이고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겁니다.
과거제도만큼 당대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제도는 없습니다.
양반만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리가 될 수 있었다는 식에 주장도 개구라입니다.
아래 글 보세요.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인문대학)의 저서 「과거, 출세의 사다리」에 따르면 조선을 건국한 1392년부터 과거제가 폐지된 1894년 갑오개혁까지의 문과 급제자는 1만4615명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합격자의 절반가량이 기득권이 아닌 평민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평민 급제자의 비율은 태조에서 정종까지 40.4%를 기록했고 태종 때에는 50%에 달했다. 연산군에서 숙종 집권기 20~30%대까지 떨어졌지만 정조와 순조시대에는 각각 53%, 54%로 높아졌다. 평민이 과거 합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봉건시대의 한계속에서 저 정도 비율로 일반 평민이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것은 같은 시대
어느나라에서도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과거제도 자체가 아닌 유학에 한정된 문과의 과목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문과는 기본적으로 된사람 인지를 보는 겁니다. 이 사람이 어떤 능력을 타고 났느냐보다 보다
인간으로써 얼마나 된 사람인가가 기준이었던거니깐요.
기술,역학,의학 등의 필요에는 잡과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조선초기만 해도 문과와 잡과는 거의 동등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잡과 응시생 가운데 상당수가 양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잡과 합격자에게는 연대보증인 제도가 생겨납니다.
오늘날 창업자 정신을 가로막는 법인에 대한 대표자 연대보증 제도랑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잡과의 경우 합격해 관직에 오르면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과든 외국과의 외교관계에 필요한 역관이든 음악을 다루는 악과든
결국 해당 하는 기술이나 물건 등에 대해 2명인가 3명인가가 연대보증을 하게 됩니다.
이러니 유능한 인재들이 구태여 잡과를 가려고 하겠습니까?
결국 특정 중인 가문에서 이를 세습적으로 이어받게 됩니다. 자기 아버지가 의관이니깐 아들에 대해 일가 친적이 의사로써 연대보증하는게 (의학 실력에 대해 이해할수 있으니깐) 보다 더 쉬웠을 테니깐요.
일반 평민들은 차라리 문과나 무과 시험을 볼 수 있어도 연대보증인이 필요한 잡과 응시는 어려워집니다.
결국 과거제도의 문제는 오늘날 법인대표자의 연대보증제가 사업에 실패하면 재기불능 인생나락으로 빠져버리게 만드는 것처럼 잡과에 양반이나 일반 평민이 사실상 응시할 수 없게 만들고 특정 중인가문에서 대대로 하는 걸로 만들었던게 문제였던 겁니다.
이렇게 되니 세월이 흘러 양반들에게 잡과는 천한 중인들이나 보는 시험으로 무시받게 되었던 겄입니다.
과거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하려면 최소한 이런 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 문제 삼는거면 몰라도 그냥 "과거제도=동양의 낡은 유산" 식으로 까는건 잘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