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가생이에서도 유명한 서긍의 고려도경 내용이 인용되며 고려문화의 찬란함이 설명되는데, 저도 말로만 듣던 서긍의 고려도경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 구해서 읽어보았지만 딱히 고려가 송나라보다 발전된 점을 언급하기 보다는 고려가 중화를 모방했다는 뉘앙스의 책내용이었습니다.
고려는 기자가 봉작 받은 옛 땅이라서 중화의 풍속과 습관이 남아 있는 것 같다며 고려가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고을과 마을을 만들고 성위에 담을 둘러쌓은 것이 중화를 모방했다고 단정짓더군요.
왕궁은 크고 화려하나 산등성이여서 땅이 평탄하지도 넓지도 않다하고 궐문은 기술이 떨어져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다느니, 민중들의 주거지는 좁고 누추하며 가지런하지 못하다며 벌집이나 개미구멍 같다고 혹평합니다.
부유한 집은 기와집을 얹었으나 겨우 열에 한두 집이라고 합니다.
단, 성곽이 우뚝우뚝한 것에는 경계심을 내보이며 그 형세를 파악한 것을 그림으로 그려 보낸다고(간첩?) 적었더군요.
절의 웅장함을 언급하면서도 중국을 모방했다고 지적하고, 화폐문화도 일용품 같은 것은 쌀로 무게를 재서 상환하는 풍속에 익숙하고, 중국 조정에서 전보화폐를 내려준 것도 저장만 해두고 때때로 관속들에게 보여주기만 한다 라고 합니다.
관복이나 의복은 중국과 달라 모방했다고 하지는 않으나 일상시엔 검정 두건, 흰 모시 도포를 입어서 백성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왕실 호위 의장의 모습도 화려한 부분을 세세히 평가하나 종종 괴상하다느니, 후미지고 먼 곳에서 남이 알아주기에 급급하니 xxxxxxxxxxxx(생략).
중국 천자의 조서를 가지고 번쩍이는 깃발을 앞세웠더니 고려인들이 놀라 xxxxxxxxxxxxxx(생략).
목욕 문화에서 고려인들이 중국인들은 때가 많다고 비웃었다는 유명한 내용은 사실이었습니다만 남녀구별 없이 의관을 물굽이 따라 언덕에 놓고 벌거벗는데 괴상히 여기지 않더라 하며 그의 우월한 시선으로 고려인을 바라본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물론 서긍이 고려 문화를 의도적으로 폄훼한 것이 있겠지만 우리가 보통 알던대로 그가 고려를 찬탄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분명 아니더군요.
그는 중국인인데 제가 뭘 기대하고 읽었는지, 카더라를 믿고 낚인 느낌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고려를 바라본 기록은 나름 학술적인 가치가 있겠으나, 우리가 고려 문물의 찬란함을 논할때 공공연히 서긍의 고려도경을 인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