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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23 10:58
[한국사] 일본군 선봉장, '조선 장군 김충선'이 된 까닭
 글쓴이 : 로적성해
조회 : 4,922  


영화나 사극에 종종 나오죠 ,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한 일본군 장수 사야가에 대한 얘기 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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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6-01-23 17:07
   
김충선의 기록은 [모하당문집/실록/승정원일기/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이 있는데

그의 본명이 뭔지?
정확한 가계?
고향이 어딘지?에 대해선 알려진게 없습니다.

[모하당문집] 자체가, 본인이 직접 쓴게 아니라, 증손자였나?
하여튼, 후손이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아
자기 할아버지인 김충선을 기리기 위해 출판된 책인지라.

당사자가 죽고, 몇십년 뒤에 간행된 것으로
어느 면에선, 자기 조상을 아름답게 포장? 한 부분이
좀 들어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아무튼,
몇가지 알수 있는것은,

1) 조선에 올때 20-25 전후로 젊었음/  일본에 형제가 있었다는 것.
2) 비교적 빨리 투항한걸보면, 일본에서부터 정벌에 회의적인 감정이 있었다는 점. 
3) 화포, 검술, 병사들 훈련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
4) 그를 만나본 조선관리들은, 그의 인품과 재능이 출중하다 평가함.
5) 선조에게 이름을 하사받은 유일무일한 항왜
6) 왜란후 조선에 정착, 조선여자와 결혼해 가족을 이룸
7) 이괄의 난, 병자호란에도 활약

- 이 정도가 팩트고

그외, 모하당문집에서 약간 포장?되었다고 볼수 있는 점은

1) 가토의 선본장
2) 같이 투항한 부하가 300명이 넘는다는 점

김충선이 가토의 선본장이라 모화당문집에 적여있으나,

실제로는 가토의 군대에 소속된게 확실히 맞는지도 알수 없으며,
따라서 가토의 선봉장 운운은 알수 없습니다.

워낙, 왜란때 가토의 악명이 자자했는지라, 조선인들에게 잘 알려진 일본장수였고
그래서, 후대에 우리 할아버지(김충선이) 가토의 군대에 있었다느니, 그 군대의 선봉장으로 섰느니-
할아버지의 명성을 좀 더 높이기 위해 썼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여집니다.

일단, 선봉장 부분도 모호하기에,

자연스럽게 그가 부하가 300명을 이끌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좀 논란이 많구요.
     
mymiky 16-01-23 17:19
   
드라마 징비록에선,

일단, 모화당문집에 따라,
가토군의 선봉장으로 나오고
가토가 다스리던 히고국(현재- 규슈 구마모토현) 출신으로 나옴.

여기서,가토의 선봉장이 맡길만한 사람이라면?

과연? 가토가 스무살이  좀 넘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에게 선봉장을 맡길수 있을까?
문제가 있고.

만약, 선봉장이란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면
그만큼 사야가를 신임했을 것이란 의미도 있는데,
그런 신임자가 조선땅에 상륙하자마자 투항해버린건 의문임.

부하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가토가 바보였다는 것이고,
또 사실이라면, 가토는 다른 장수들에게 까고 또 까일만 사건에다
본국에도 알려져, 소환당하기 쉽상이지만
뭐, 그런 기록은 찾을수가 없음.

가토군은 조선의 최북단인 함경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초반에 승승장구했기에, 과연 선봉장이 토낄수 있었는지? 매우 의문스러움.

물론, 가토군에서 제일 항왜가 많이 나왔던건 맞음
제일 최북단까지 올라가느라, 제일 쌩고생한 가토의 군대이기 때문임.
함경도 산악지형과 추위에, 제일 많이 탈영병, 동사자가 나온 부대가 여기.
          
mymiky 16-01-23 17:26
   
또한, 조선에 오자마자 초기에 투항했는데,
현실적으로 부하 몇명을 설득해 투항한건 말이되어도

대규모인 300여명을 투항시키려면,
그들을 어느세월에 같이 항복하자고 설득했는지도?

그런 과정에서 부하들 중에, 사야가가 투항하려고 한다고
더 윗계급 사람한테, 그가 반동분자라고 고발할수도 있음을 생각해보면,
무리수가 많음.

(그러므로, -300여명 부하와 투항했다는 이야기는

초반 항왜들을 간첩으로 보고, 사형시켜버리던 조선 조정이
나중에 태도를 바꾸어, 그들을 역으로 사용하기로 하는데,

이리저리 도망쳐온 항왜부대를 만들어서 그 규모가 300여명쯤 되고
거기 대장으로 사야가가 임명된 것이라고 보는게 차라리 현실적이라 생각함)

(또, 병자호란때는 참전한건 확실하지만
청나라 군사 500명을 베었다는 부분도 있는데,
이것도 당시, 사야가 나이로는 노인일때라;; 
모화당 문집이, 수적인 면에서 과장이 심한걸 감안해야함)
               
mymiky 16-01-23 18:33
   
예전에,
ebs에서 만든 다큐에선 사야가가

당시 히데요시가,
그의 처자식을 인질로 잡고 있었나? 아님 처자식을 죽였나?

하여튼 그래가지고, 히데요시를 증오하는 마음을 품고 있던 와중에
조선정벌을 하라니까, 강제로 차출되었고

안그래도, 내전중인 일본이 지긋지긋 했는데,

일본군대가 외국까지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막 죽이고 하는걸 보고
회의감이 많이 들어서,  조선에 투항해 적극적으로 조선편에서
일본과 싸웠다는 식으로 방송한적이 있음.

-물론, 이것도 정확한건 아님//
조선으로 오기전, 사야가의 일본행적은 아직도 미스테리이기 때문인데.
사야가가 왜 투항했는지? 의견은 분분함.

다만, 그가 조선에서 보여준, 교양이나 재주로 보자면,
영 무식한 농민이나 평민출신은 아니였던거 같고,

일본에서 어느정도 신분이 있었던 집안이던가
못하더라도 어느정도의 교육을 잘 받았던 중류이상 출신으로 추측됨. 

형제들을 그리워하는 시가 있는걸 보면,
형제가 있었던건 맞는거 같고

당시, 내란중이던 일본의 사정상, 형제들도 전란중에 잃었던가
아님. 집안이 아예 몰락했거나 뭐 그런 사정으로

일본에서 기반을 다 잃은 상태라, 고국에 미련을 접고, 돌아가지 않은채,
조선에 남기로 한 것인지도 모름.

모화당문집에서는, 사야가가 조선을 흠모해서, 항복했느니 하지만,
그건, 후대 손자가 책내면서 포장한거같고,
아무래도 위에 이유가 더 현실적임.

그의 일본 행적은 여전히 모호하지만,
보통, 이런식의 해석을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많이 하는거 같음.

알고보면, 난세에 태어난 불쌍한 사람 중 하나 같은데
뭐, 조선에서 잘 살다 갔고,  후손들도 나름 번성하니, 그나마 잘푼린 케이스..
               
스스슥 16-01-23 18:52
   
"대규모인 300여명을 투항시키려면,
그들을 어느세월에 같이 항복하자고 설득했는지도? "
-300여명 혹은 3000여명을 투항시켰는지 아닌지의 사실여부는 제껴놓고 가능과 불가능을 말한다면.. 불가능한 부분은 아닌듯 합니다. 일본은 봉건사회였고, 선봉장으로써 300, 혹은 3000명을 거느렸다면 그건 가토가 준 병력이 아니라 자신(혹은 자신의 가문)의 영지에서 데리고 온, 또는 자신이나 가문의 재화로 고용한 용병일 수 있습니다. 현대적 사고로 당시의 부대를 생각하시면 안될 듯 하네요...
                    
mymiky 16-01-23 19:00
   
가토병력이 1만 조금 넘었는데, 그중 조선에 닿자마자 3천이 빠져나간다?
말이 안되죠-.- (3천인지? 3백?인지를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그리고, 그정도 병력을 데리고 올 정도의
명성있는, 또는 부자 집안의 아들이였다면?
애초에, 조선에 투항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일본에서도 발칵 뒤집혀졌겠죠?
히데요시 성격상, 사야가 집안 다 죽여버렸을껄요?

차라리 일본에서 오기전에, 집안이 몰락해서
조선에 투항한건 몰라도

멀쩡히 자기 집이 일본에 그대로 있는데, 적에게 오자마자 투항을 한다?
한마디로,
우리집 사람들을 히데요시님이 다 몰살시켜도 됩니다?
우리 집안 쫄딱 망하게 해주세요.
하는거죠. 그건-.- 되놓고 미친놈이라는건데 ㅋㅋㅋ

애초에, 그런 집안이라면
사야가가 본명이 뭔지? 고향이 뭔지?도 여태껏 분분하지 않을 겁니다.

거기다,
사야가가 데리고  집단 투항 했을
신하들 집안이나 고향은 말그대로 쑥대밭 되었겠죠.
그 동네 하나 다 밀어버렸을듯-.-

가신들이, 우리 주인 도련님(?)이 오자마자 투항한다는데
무사 집안의 체면도 아닐뿐더러..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 자명하고,
정신차리라고 오히려 뜯어 말렸겠죠..
                         
구름위하늘 16-01-25 12:33
   
일본 소설 대망을 읽어본 입장에서는
가문 전체로 투항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희생이 일본식 주군과 가신의 관계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고,
이미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 형태로 다른 가문에 배속되는 형태로 있는 경우도 흔하니까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이런 일을 한두번 격는 것이 아니라서 자기 이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얻기까지 수차례 인질아닌 인질 (형태는 양자)로 이리 저리 세력가의 소속으로 끌려다닙니다.(다른 세력가로 끌려갈때마다 이름이 바뀜... 어릴 때 아명을 포함하여 10번 정도 이름이 바뀐 듯) 그 상태에서 세력가를 위하여 가신과 함께 전쟁에도 참여하고요.
          
스스슥 16-01-23 18:46
   
가토가 스무살이  좀 넘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에게 선봉장을 맡길수 있을까?... 라고 하셨는데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확히 김충선의 내력을 알 수 없기에 일반적인 부분만 언급해야 할 부분인거 같은데.. 여튼, 가토의 병력 중 선봉장이라면 대략 2~3000명 정도의 병력을 운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현대로 보면 연대급이죠. 전략적 능력보다는 전술적인 능력이 필요한 자리이고 좀 젊다고 한들 큰 문제가 될건 아닙니다. 어차피 경험많은 가신들이 보좌 했을 테니까요. 당시 일본은 봉건제 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제가 김충선이 가토의 선봉장이라고 주장하는건 아닙니다. 젊다는 문제에만 이의를 제기한겁니다.)
               
mymiky 16-01-23 19:11
   
실제로, 얼굴마담이긴 했지만
히데요시 양아들이였던 우키다가 당시 스물살이긴 합니다.
애가 당시, 명목상에 일본군 총사령관이였으니;;

근데, 우키다도 거의 끝에 왔죠.
애네가 8부대였나? 그랬으니까요.
우키다도 어려서, 명목상이지, 주변에 가신들이 다 챙겨줬었고
앞에서 고니시나 가토가 다 닦아준길 따라 올라왔으니;;

그런 마당에, 사야가가 20초중반인데, 아무리 가신들이 다해준다고 해도
내가 가토라면, 선봉장 안 세웠을거 같네요.

앞에 가는 무리들은, 그만큼 경험치나 노련한 인물을 세웠을거 같거든요.
실제로 고니시랑 가토는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속된말로
조선에서 제일 첫빠다로 매를 맞아야 하는 입장이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다른 부대의 선봉장이였을 확률도 있겠고,
저도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지만..
혼자서 대거 수백, 수천명을 이끌고 투항했다는 점에서 일단 좀 아닌거 같아요;;

이건, 후대에 미화된게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름위하늘 16-01-25 12:36
   
양쪽 다 가능성이 있지만,
일본 소설 속에 나타나는 어린 가주는 10대에 가신과 함께 출전하는 경우도 자주 나옵니다.
그것도 자기 아버지를 패배시켜서 자신을 양자 형태로 인질로 끌고간 원수의 부하 형태로요.
mymiky 16-01-23 19:47
   
일단, 김충선의 특기는 조총에 있습니다.

다른 항왜들도 기본적으로 군인으로써
검술, 창술, 등등 무기는 잘 다룬거 같은데
김충선은 검술은 기본인거고, 그외에도 총에 해박했다고 하거든요.

당시, 일본군 대부분은 창병들이고,
사실, 조총 부대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함.
(근데, 왜란 드라마에선 항상 모든 일본군이 다 총들고 있는거처럼 나옴;;)

당시, 조선은 우리도 빨리 일본군이 가지는 총을 습득해야 한다는게
제일 최우선 과제였는데

김충선이 그런점에서 쓸만했죠. 이용가치도 높았고요.
그래서, 선조가 직접 이름도 하사하고, 벼슬도 주고 그런것이고.

총기술이 아니였음,
걍. 김충선은 평범한 많은 항왜중에 하나였을듯 같은데..

조선도, 이용가치가 있으니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잘해준거고,
니들도 우리가 우대해줄때 얘처럼 빨리 투항해라고
삐라 선전용(?)으로도 잘 쓰였던거 같구요.

그래서, 어느 장군 군대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김충선이 조총병이였을거란 말이 있죠.
흑요석 16-01-24 00:05
   
mymiky 님은 동아시아 역사를 그냥 다 꿰뚫고 계시는 듯. mymiky님 방송국에 진출하셔서 우리나라 사극 고증 같은 것좀 다 검토하고 수정 좀 해주세요...ㅋㅋㅋㅋㅋ

ㄷㄷ

우리나라 방송국들은 이런 분 안 데려가고 뭐하나 -_- 뭐 기록이나 유물이 불충분 한 이유도 있겠지만 특히 고대사 고증은 개~판 아닌가요? ㅋㅋㅋ 판타지던데 ㅋㅋㅋㅋㅋ 심지어 조선 사극 고증도 개판인 경우가 허다.

모르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글고 mymiky님이 항상 울부짖듯 사극이 죄다 조선 배경임. 이젠 질림..
가상드리 16-01-24 03:17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완전 하급무사였다면 그런 대접을 못받았을 거라고 봅니다. 조총이나 왜군의 전술 등에 대한 지식이 인정받았다고 해도 말이죠. 그리고, 그런 지식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장수급일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Centurion 16-01-24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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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은 조선으로 귀화한 후, 조선에 일본식 조총 및 화약 제조법과 철포대(일본에서 조총 부대를 일컫던 이름) 전술을 전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점을 근거로 일본 측 사야카 연구가들은 일본 센고쿠 시대때 와카야마 현의 사이카(雑賀)라 불린 철포 부대의 스즈키 마고이치(鈴木孫一)가 사야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와카야마 현에서 옛 총을 연구하는 고식 총 연구회의 고문이기도 한 일본 소설가 고사카 지로도 그런 사람들의 한 명이다.[6] 실제로 스즈키 마고이치는 조선으로 출정했고, 출정 후 즉시 모든 기록에서 사라졌다. 나고야 성(현 사가 현 가라쓰 시)까지 100명을 이끌고 갔는데, 스즈키 혼자만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일본측의 기록에서 사이카슈(雑賀衆)에 소속된 스즈키 요시유키(鈴木善之)라는 인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시유키의 이름과 김충선의 자인 선지(善之)인데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고 하여, 그가 김충선이라는 설도 있다.

이에 대해 사이난가쿠인 대학의 마루야마 교수는 사야카가 스즈키 마고이치가 아니라 하라다 노부타네(原田信種)라고 주장한다. 스즈키 마고이치는 반히데요시 세력의 한 명이었기 때문에 가토의 선봉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토가 출병 전에 작성한 예하 부대 및 장수 명단에 사야카란 이름은 없지만, 철포대를 보유하고 있던 하라다 노부타네는 있으며, 하라다 역시 출병 후 기록에서 사라졌다면서 그가 사야카라고 주장한다. 전사했는데 확인이 안되었거나 투항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미다. 가능성은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7]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립하여 조선에 투항한 오카모도 에치고라는 설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고여무(沙古汝武), 사여모(沙汝某), 사야가(沙也可)라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다. 사고여무는 복성이다. 사여모(沙汝某)는 단성 인지 복성인지 확실하지 않다. 사야(沙耶), 사야(紗弥)는 주로 성보다는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사야라는 지명도 여러 있다. 사야가(沙也可)의 경우는 사야가라는 이름의 여러 해석 때문에 성인지 이름인지 명확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의 일본 장수 성명은 일본 기록과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B6%A9%EC%84%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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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에도 나오지만,
일단 크게 3가지 설이 있죠.

1.오사카 남쪽 기이국(와카야마 현)에 있던 사이카 조총부대의 두령이었던 인물로..
사이카 마고이치라는 썰.. 혹은 거기 있던 스즈키 요시유키라는 썰..

2.가토군에 실제 있었던 조총부대 지휘관 하라다 노부타네라는 썰.

3.히데요시에 반발해 조선에 투항한 오카모토 에치고노카미라는 썰.
  (가토 기요마사가 다이묘로 임명된 곳의 본래 주인이었던 아소 코레미츠의 가신 출신이었다는 썰)

근데.. 3천 병력이란게 사실 작은 병력이 아니지요..
1만석 영지에서 250명쯤 동원한다는 말이 있는데.. 10만석이면 2500명 정도..

즉, 10만석 영지의 중소 다이묘급이란 소린데.. 무시못할 인물이죠.

가토 기요마사가 총원 2만2천800명을 끌고 왔는데.. 그 중 자기 직할 부대는 1만명이었고..
그 중 3000명이 빠져나갔으면.. 이건 엄청난 타격이랄 수 있는 일이죠.

어쨌든 김충선의 정체에 대해선 이런 저런 썰이 있는데..
사이카 마고이치쪽보단.. 큐슈 히고쪽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당시 일본군 편제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의 다이묘들끼리 묵어 짜여져 있었기 때문이죠..
술담배여자 16-01-24 09:31
   
일단 당시 가토라든지 다들 능력보다는 수길이새끼 영향력에맞춰서 얼굴마담장군들이고보면
그밑에 사람들도 딱히 뭐 이름있는사람이 맡지않았을수도있지요
꿀땅콩 16-01-25 14:11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거 같은데요.. 거국적인 스타일로,,  일본인들도 보더라도 왜 국적을 바꿔야했는지 만들면 좋을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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